생생후기
독일, 환경을 꿈꾸다
Upahl- Lenzen 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알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지난 학기, 어느 발표 수업에서 들을 후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넘겼던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제가 진짜로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워크캠프 참가프로그램을 알게되었고 운이 좋게도 합격하여 독일로 워캠을 떠나게 되다. 나는 워캠에 신청하기 전부터 독일에 가고싶었고, 면접을 볼 때도 오직 독일에 가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력하게 어필하였다. 독일에 가고싶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바로 "Environment", 환경.
난 어릴적부터 유독 환경에 관심이 많았고 독일이란 나라는 친환경적으로 발전된 좋은 예를 갖춘 곳이었기 때문에 내게 딱 맞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가 지금껏 해온 것들 중 최고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독일에서의 워캠은 꿈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하기도 벅찬 순간들의 연속이었으니까.
나는 Lohmen이라는 정말 정말 작은 마을에서 2주동안 워크캠프를 하였다. Lohmen은 정말 작은 마을이라 사람이 사는건지도 헷갈릴 정도로 정적이 흐르는 곳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호수가 있어서 일 끝나고 수영을 하러 자주 호수에 갔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우리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했던 그 곳. 밤에는 무수한 별이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듯 반짝였고 노을은 하늘을 불태우는듯 아름답게 지곤 했다. 아직도 Lohmen의 풍경이 눈에 생생하게 그려지는듯 하다. 여름인데도 한국만큼 덥지는 않았고 가끔 밤에 쌀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날씨는 늘 맑음이었다.
우리 캠프는 나를 포함하여 9명이었고 독일인 캠프리더 Hendrik의 지도를 받으며 생활하였다. 타이완 2명, 벨기에 1명, 체코 1명, 러시아 1명, 프랑스 1명, 한국인 2명이 우리 캠프의 구성원이었다. 침낭과 매트를 모두 챙겨갔는데 숙소에 가보니 침대가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우리의 숙소는 예전에 초등학교로 쓰이던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지역 풋볼선수들이 쓰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있는 동안에는 1층을 선수들과 게스트가 사용하고 2층을 우리가 썼다. 부엌과 샤워실도 깨끗하였고 공간이 넓어서 2주동안 정말 편하게 지냈다.
다른 후기들을 보면 알 수 있듯 나도 처음엔 이들과 그렇게 친해질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들과 헤어질 때 차오르는 눈물을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지금도 믿을 수 없다. 다들 잘 있겠지? 너무나도 보고싶다.
우리의 일은 Raking이라는 고된 '노동'이었다. 여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우리 캠프에 벅찬 일이라고도 생각이 들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든 일은 즐겁고 행복하였다. Raking을 한국말로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큰 갈퀴로 잘린 풀들을 모아 숲 속에 갖다버리는 일이다. 농부가 필드의 풀을 깎으면 우리가 그것들을 갈퀴로 모으는 것이다. 물론 인포싯을 읽고 갔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게 될 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매우 고된 일이었고 우리가 해야 할 필드가 너무나도 넓었다. 하지만! 우리는 강했기 때문에 캠프리더가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작업을 해나갔고 예상보다 빨리 일을 끝내서 데이오프를 가졌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지 고된 노동이었다.... 다들 No more raking!을 외치며 제발 비가 오기를 기도했다는..^^ 하지만 일하는 동안에는 힘든 것을 잊으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재미있는 시간들이었다. 아침 먹을 때 준비한 점심용 샌드위치를 그늘에 앉아 먹을 때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온 몸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고마운 자연의 선물이었다. 특히나 외국인 친구들이 좋아했던 것은 나와 다른 한국인 오빠가 부르던 한국의 트로트였는데 '무조건'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신나서 몇 곡 더 부르곤 했었다.
워캠의 카테고리 중에서 Environment가 가장 힘들다고는 하지만 아마 그만큼 더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것 같다. 일이 힘든만큼 나눌 얘기도, 웃음도 더 많아지니까! 누군가 워크캠프에 갈까말까 망설이고 있다면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꼭 ENVI를 선택하라고!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200% 힐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난 워크캠프를 통해 진정한 nature lover로 거듭났다. 또한 다른 이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캠프리더인 Hendrik은 우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었다. 데이오프 때는 우리를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을 하였는데 근처의 큰 도시인 Guestrow에서 난생처음 카약도 해보았고 싸이클링도 하였다. 몇 시간동안 자전거로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독일은 자전거 도로가 워낙 잘 되어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나에게도 쉬운 난이도였다. 그리고 호수가 많았던 지역이라 수영도 자주하였고, 더 큰 도시인 Lubeck에 갔을 땐 바다에서도 놀았다. 정말 현지인들만 아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내가 혼자 여행했다면 절대 몰랐을 곳들을 여행하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큰 행복이었다. 또한 모든 이동은 Hendrik이 직접 운전하였기 때문에 돈도 거의 들지 않았다.
사실 2주동안 늘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Hendrik이 다른 캠프를 초대하였는데 우리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결정하고 번복하고 다시 재결정을 하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여서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빼고는 전혀 큰소리 낼 일 없이 잘 생활하였지만 딱 한 번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뻘 되는 리더에게 큰 소리로 따지는 것이 마음 한 편으로는 무섭기도 하였지만 유럽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맞는 것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문화체험을 했다. 틀린 것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요구하고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인 것이다. 결국에는 다른 캠프 사람들과 재미있는 하룻밤을 보냈었다^^
우리는 다른 캠프와는 다르게 딱히 규칙도 정하지 않았고 날마다 누가 요리할지도 그냥 전날에 정하곤 하였다. 종이에 표를 만들어 누구 이름을 쓰고 하는 체계적인 방식은 아니었으나 한 명도 불만없이 2주를 잘 보냈다. 샤워실도 칸이 세 개뿐이어서 누가 먼저할지 정해야 했는데 우리는 그냥 누구 먼저 할래? 물어보고 먼저 손드는 사람이 첫 번째로 샤워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순서를 정했다. 매일밤 맥주를 마시며 새벽까지 놀다가 아침에 늦잠자면 캠프리더가 아침상을 차리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정말 규칙없이 막 살았던 것 같은데도 평화롭게 잘 돌아갔던 것 같다. 그와중에 코리안데이는 엄청난 히트를 쳐서 워크캠프가 끝나기 이틀 전에 또 요리를 해주었다. 고추장불고기덮밥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열화와 같은 성원에 내 얼굴엔 함박웃음이 멈추질 않았었다. 너무나도 맛있게 먹던 친구들의 모습이 훤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준비해간 부채와 복주머니를 선물로 주었는데 모두들 좋아해주어서 고마웠다. 부채에다가 각자의 이름을 한국으로 써주었더니 무지 기뻐해서 뿌듯하였다.
워크캠프의 마지막 주말에는 다같이 함부르크로 여행을 갔다. Lohmen이 함부르크와 베를린 중간에 위치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어딜 가든 기차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함부르크 당일치기로 친구들과 여행을 하고 그 다음날인 마지막날엔 다같이 베를린으로 가서 조금 놀다가 그곳에서 각자 일정에 따라 헤어졌다. 2주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한 명씩 떠나갈 때마다 얼마나 슬프던지.. 헤어지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그들이 보고싶었다. 17살, 19살인 두 프랑스 소녀와 19살, 20살인 귀여운 타이완 소녀들, 그리고 23살 미래의 의사인 러시아 친구와 24살의 체코 친구, 금발에 푸른눈이 매력적인 동갑내기 벨기에 친구, 그리고 40대의 나이에 안어울리는 귀여움을 갖춘 캠프리더 Hendrik과 2주동안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한국인 오빠. 워캠이 끝난지 3주가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과의 추억이 생생하고 Lohmen에서의 좋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특히나 아직도 나에게 감동을 주는 순간은 워크캠프 마지막 밤에 다같이 손을 잡고 호수에 갔을 때. 가로등 하나 없이 깜깜한 그곳을 후레쉬도 켜지 않고 오직 감각만으로 길을 더듬으며 걸어갔다. 서로의 손을 의지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의 그 두려움. 하지만 호수에 도착했을 때 나는 우주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할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다. 눈 앞에 펼쳐진 호수와 그 위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 어디가 하늘인지 물인지 구별할 수 없을만큼 온 세상이 별로 가득 차있던 그 때를 생각만 해도 벅차다. 나말고 누군가가 그 곳에 간다면 꼭 늦은 밤 호수에 가보길! 절대로 후레쉬 같은 불빛은 사용하지 말 것.
9명의 사람들은 각자 국적도 달랐고 언어도 달랐고 피부색도 달랐지만 너무나도 이상할만큼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영어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마음으로, 눈빛으로 소통하며 서로의 진심을 알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노래도 만들었다. 각자의 언어로 한 구절씩 노래를 하며 한 곡을 완성하였는데 아직도 그 노래를 들으면 마치 그곳에 있는듯 하다. 워크캠프 후 나에게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열린마음'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문화에 대해 그렇게 일상적인 경험을 할 기회도 없었고 모르는 사람들과 2주동안 생활하는 것도 낯설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하며 다른 문화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특히 경쟁사회 속에서 자란 나에게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벨기에 친구의 한 마디였다. 어느 날 다같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각자의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누구는 노래를 하고, 누군 묘기를 보이고, 누군 그림을 그리고. 각자의 개인기(?)를 보여줬던 날이 있었다. 밤이 늦어 잘 준비를 하며 내가 벨기에 친구에게 "You was the best!"라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묘기가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There was no best. Everyone has diffrent color". 그 말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줄세우기에 익숙해진 내 모습을 스스로 확인하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고 누가 최고였는지 가릴 필요는 없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난 더 열린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워크캠프는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참가하고 싶다. '청춘의 로망'이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워크캠프! 최고!
난 어릴적부터 유독 환경에 관심이 많았고 독일이란 나라는 친환경적으로 발전된 좋은 예를 갖춘 곳이었기 때문에 내게 딱 맞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가 지금껏 해온 것들 중 최고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독일에서의 워캠은 꿈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하기도 벅찬 순간들의 연속이었으니까.
나는 Lohmen이라는 정말 정말 작은 마을에서 2주동안 워크캠프를 하였다. Lohmen은 정말 작은 마을이라 사람이 사는건지도 헷갈릴 정도로 정적이 흐르는 곳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호수가 있어서 일 끝나고 수영을 하러 자주 호수에 갔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우리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했던 그 곳. 밤에는 무수한 별이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듯 반짝였고 노을은 하늘을 불태우는듯 아름답게 지곤 했다. 아직도 Lohmen의 풍경이 눈에 생생하게 그려지는듯 하다. 여름인데도 한국만큼 덥지는 않았고 가끔 밤에 쌀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날씨는 늘 맑음이었다.
우리 캠프는 나를 포함하여 9명이었고 독일인 캠프리더 Hendrik의 지도를 받으며 생활하였다. 타이완 2명, 벨기에 1명, 체코 1명, 러시아 1명, 프랑스 1명, 한국인 2명이 우리 캠프의 구성원이었다. 침낭과 매트를 모두 챙겨갔는데 숙소에 가보니 침대가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우리의 숙소는 예전에 초등학교로 쓰이던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지역 풋볼선수들이 쓰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있는 동안에는 1층을 선수들과 게스트가 사용하고 2층을 우리가 썼다. 부엌과 샤워실도 깨끗하였고 공간이 넓어서 2주동안 정말 편하게 지냈다.
다른 후기들을 보면 알 수 있듯 나도 처음엔 이들과 그렇게 친해질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들과 헤어질 때 차오르는 눈물을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지금도 믿을 수 없다. 다들 잘 있겠지? 너무나도 보고싶다.
우리의 일은 Raking이라는 고된 '노동'이었다. 여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우리 캠프에 벅찬 일이라고도 생각이 들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든 일은 즐겁고 행복하였다. Raking을 한국말로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큰 갈퀴로 잘린 풀들을 모아 숲 속에 갖다버리는 일이다. 농부가 필드의 풀을 깎으면 우리가 그것들을 갈퀴로 모으는 것이다. 물론 인포싯을 읽고 갔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게 될 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매우 고된 일이었고 우리가 해야 할 필드가 너무나도 넓었다. 하지만! 우리는 강했기 때문에 캠프리더가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작업을 해나갔고 예상보다 빨리 일을 끝내서 데이오프를 가졌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지 고된 노동이었다.... 다들 No more raking!을 외치며 제발 비가 오기를 기도했다는..^^ 하지만 일하는 동안에는 힘든 것을 잊으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재미있는 시간들이었다. 아침 먹을 때 준비한 점심용 샌드위치를 그늘에 앉아 먹을 때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온 몸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고마운 자연의 선물이었다. 특히나 외국인 친구들이 좋아했던 것은 나와 다른 한국인 오빠가 부르던 한국의 트로트였는데 '무조건'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신나서 몇 곡 더 부르곤 했었다.
워캠의 카테고리 중에서 Environment가 가장 힘들다고는 하지만 아마 그만큼 더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것 같다. 일이 힘든만큼 나눌 얘기도, 웃음도 더 많아지니까! 누군가 워크캠프에 갈까말까 망설이고 있다면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꼭 ENVI를 선택하라고!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200% 힐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난 워크캠프를 통해 진정한 nature lover로 거듭났다. 또한 다른 이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캠프리더인 Hendrik은 우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었다. 데이오프 때는 우리를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을 하였는데 근처의 큰 도시인 Guestrow에서 난생처음 카약도 해보았고 싸이클링도 하였다. 몇 시간동안 자전거로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독일은 자전거 도로가 워낙 잘 되어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나에게도 쉬운 난이도였다. 그리고 호수가 많았던 지역이라 수영도 자주하였고, 더 큰 도시인 Lubeck에 갔을 땐 바다에서도 놀았다. 정말 현지인들만 아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내가 혼자 여행했다면 절대 몰랐을 곳들을 여행하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큰 행복이었다. 또한 모든 이동은 Hendrik이 직접 운전하였기 때문에 돈도 거의 들지 않았다.
사실 2주동안 늘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Hendrik이 다른 캠프를 초대하였는데 우리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결정하고 번복하고 다시 재결정을 하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여서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빼고는 전혀 큰소리 낼 일 없이 잘 생활하였지만 딱 한 번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뻘 되는 리더에게 큰 소리로 따지는 것이 마음 한 편으로는 무섭기도 하였지만 유럽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맞는 것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문화체험을 했다. 틀린 것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요구하고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인 것이다. 결국에는 다른 캠프 사람들과 재미있는 하룻밤을 보냈었다^^
우리는 다른 캠프와는 다르게 딱히 규칙도 정하지 않았고 날마다 누가 요리할지도 그냥 전날에 정하곤 하였다. 종이에 표를 만들어 누구 이름을 쓰고 하는 체계적인 방식은 아니었으나 한 명도 불만없이 2주를 잘 보냈다. 샤워실도 칸이 세 개뿐이어서 누가 먼저할지 정해야 했는데 우리는 그냥 누구 먼저 할래? 물어보고 먼저 손드는 사람이 첫 번째로 샤워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순서를 정했다. 매일밤 맥주를 마시며 새벽까지 놀다가 아침에 늦잠자면 캠프리더가 아침상을 차리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정말 규칙없이 막 살았던 것 같은데도 평화롭게 잘 돌아갔던 것 같다. 그와중에 코리안데이는 엄청난 히트를 쳐서 워크캠프가 끝나기 이틀 전에 또 요리를 해주었다. 고추장불고기덮밥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열화와 같은 성원에 내 얼굴엔 함박웃음이 멈추질 않았었다. 너무나도 맛있게 먹던 친구들의 모습이 훤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준비해간 부채와 복주머니를 선물로 주었는데 모두들 좋아해주어서 고마웠다. 부채에다가 각자의 이름을 한국으로 써주었더니 무지 기뻐해서 뿌듯하였다.
워크캠프의 마지막 주말에는 다같이 함부르크로 여행을 갔다. Lohmen이 함부르크와 베를린 중간에 위치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어딜 가든 기차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함부르크 당일치기로 친구들과 여행을 하고 그 다음날인 마지막날엔 다같이 베를린으로 가서 조금 놀다가 그곳에서 각자 일정에 따라 헤어졌다. 2주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한 명씩 떠나갈 때마다 얼마나 슬프던지.. 헤어지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그들이 보고싶었다. 17살, 19살인 두 프랑스 소녀와 19살, 20살인 귀여운 타이완 소녀들, 그리고 23살 미래의 의사인 러시아 친구와 24살의 체코 친구, 금발에 푸른눈이 매력적인 동갑내기 벨기에 친구, 그리고 40대의 나이에 안어울리는 귀여움을 갖춘 캠프리더 Hendrik과 2주동안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한국인 오빠. 워캠이 끝난지 3주가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과의 추억이 생생하고 Lohmen에서의 좋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특히나 아직도 나에게 감동을 주는 순간은 워크캠프 마지막 밤에 다같이 손을 잡고 호수에 갔을 때. 가로등 하나 없이 깜깜한 그곳을 후레쉬도 켜지 않고 오직 감각만으로 길을 더듬으며 걸어갔다. 서로의 손을 의지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의 그 두려움. 하지만 호수에 도착했을 때 나는 우주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할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다. 눈 앞에 펼쳐진 호수와 그 위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 어디가 하늘인지 물인지 구별할 수 없을만큼 온 세상이 별로 가득 차있던 그 때를 생각만 해도 벅차다. 나말고 누군가가 그 곳에 간다면 꼭 늦은 밤 호수에 가보길! 절대로 후레쉬 같은 불빛은 사용하지 말 것.
9명의 사람들은 각자 국적도 달랐고 언어도 달랐고 피부색도 달랐지만 너무나도 이상할만큼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영어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마음으로, 눈빛으로 소통하며 서로의 진심을 알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노래도 만들었다. 각자의 언어로 한 구절씩 노래를 하며 한 곡을 완성하였는데 아직도 그 노래를 들으면 마치 그곳에 있는듯 하다. 워크캠프 후 나에게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열린마음'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문화에 대해 그렇게 일상적인 경험을 할 기회도 없었고 모르는 사람들과 2주동안 생활하는 것도 낯설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하며 다른 문화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특히 경쟁사회 속에서 자란 나에게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벨기에 친구의 한 마디였다. 어느 날 다같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각자의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누구는 노래를 하고, 누군 묘기를 보이고, 누군 그림을 그리고. 각자의 개인기(?)를 보여줬던 날이 있었다. 밤이 늦어 잘 준비를 하며 내가 벨기에 친구에게 "You was the best!"라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묘기가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There was no best. Everyone has diffrent color". 그 말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줄세우기에 익숙해진 내 모습을 스스로 확인하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고 누가 최고였는지 가릴 필요는 없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난 더 열린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워크캠프는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참가하고 싶다. '청춘의 로망'이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워크캠프!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