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제천, 너와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
Happy energy makin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가 끝나고 이주정도가 지났다. 이주나 지났거만, 아직도 워크캠프에서 있었던 이 불쑥 불쑥 떠올라 미소짓게 만든다. 카톡창과 페이스북 창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기억을 하나하나 되돌리며 보고서를 적어보려 한다.
1.첫만남을 준비하며
우리 캠프는 충북 제천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캠프였고 난 한국 캠퍼였기에 워크캠프를 잘 꾸려나가고 싶었다. 리더는 우리에게 한차례의 1박2일 사전답사를 그리고 하루먼저 외국친구들을 맞이할 채비를 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다행히도, 나를 포함한 한국인 캠퍼모두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우리의 워크캠프 준비는 시작되었다.
아, 우리 워크캠프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호스트기관인 제천시 사회복지협의회에서 3명의 한국인 친구들을 자체적으로 선발하였고, 9명의 한국인 캠퍼가 함께하게 되었다. 1박2일 사전 답사동안 호스트기관과 함께 우리가 하게 될 일, 우리가 머물게 될 숙소, 함께할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았다. 사실 그전까지 어떠한 일을 하게 되는지 구체적인 것들을 알 수 없었기에 그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2주.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어떠한 이야기들이 담겨질까. 설렘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혔다.
7월 22일.우리는 하루 일찍 캠프숙소인 마을회관에 모여 캠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을회관은 오랜기간 사용이 뜸했던 장소였기에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LCD티비와 1,2층의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찬물만이 나오는 샤워실( 샤워실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와 화장실 하나만이 있었다. 20명에 가까운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을지 잘 씻을 수는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뭐 어쩌랴,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수도 없는 터. 조금이라도 숙소를 깨끗하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쓸고 닦았다. 쓸고 닦고 회의를 하며 슬슬 외국 캠퍼들과의 만남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부터 '밥 잘챙겨먹어'라며 밥과 반찬들을 전해주고 가시는, 뭐든 필요한거 있으면 말하라고 반겨주시는 마을주민분들덕에 시작부터 어딘가 모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2.2주간의 활동
(1)첫만남
아직도 첫만남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우리의 미팅장소는 제천 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먼저 도착하여 외국인 친구들을 맞이할 계획이었다. 등에는 WELCOME 이라는 글자를 한글자씩 붙이고서. 하지만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고 외국친구들이 벌써 다 도착해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외국인 친구들을 맞이하러 갔다. 어색함을 이기려 W라는 글자를 등에 붙이고 앞장섰다. 그렇게 외국 캠퍼들을 만났다. 어색한 미소와 어색한 공기. 침묵을 깨보려 더듬더듬 영어로 이야기를 걸었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3, 태국 3,프랑스 1,벨기에 1 총 8명의 외국 캠퍼, 그리고 9명의 한국 캠퍼.총 17명의 캠퍼들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였다. 발대식을 하고, 함께 저녁을 먹자 어색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외국 캠퍼들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우린 서로서로 공통사를 공유하며 2주간의 첫걸음을 떼었다.
(2)활동
우리의 프로그램은 빡빡하게 짜여있었다. 마을회관을 선뜻 내어주신 마을분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1박3일동안 진행되는 제천 중고등학교 청소년 봉사캠프를 위한 프로그램. 성격이 확연히 다른 두 일정을 함께 소화해내야했기 때문이다. 일정상의 아쉬움은 많았다. 외국친구들과 함께 우리가 할 일을 만들어갈 여지가, 여유가 없었다. 외국캠퍼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프로그램들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활동은 즐거웠다. 다양한 국적의 문화의 친구들과 함께 활동을 한다는 그것 만으로도 활동은 즐거울 수 있었다.
마을 주민분들에게 사탕선물과 초대장을 만들어 집집마다 방문했고, 100개가 넘는 부채를 손수 만들었다. 마을 아이들을 위한 영어책 수십여권을 포장했고, 영화제도 열었다. 유독 더웠던 날, 땡볕에서 벽화를 그렸고 떠나기 하루전 날엔 마을 분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했다. 2주간의 시간동안 마을 분들께서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기에 그 마음에 보답해드리고 싶었다. 청소년 캠프 일정으로 인해 송학리 마을을 위한 일들을 많이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한 활동이 어쩌면 부족했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했고 마음을 다했다. 힘들고 지칠법도 한데, 작은 것 하나하나에까지도 마음을 담으려는 모습을 보았고 그게 너무도 큰 힘이 되었었다.
마을을 위한 일과 더불어, 청소년 봉사캠프를 위한 일을 하였다. 장기자랑,플래시몹에서부터 캠프참여까지 많은 일을 했다. 장기자랑을 위해 각자의 모국어로 "Let it go"를 함께 준비했다. 여자캠퍼들은 발레를 배운 마틸드의 지도로 까탈레나 춤을 준비했고, 남자 캠퍼들은 아브라카다브라에 맞추어 춤을 준비했다. 여자 캠퍼들 처럼 춤을 준비할 여력이 없었던 우리 남자들은 우리를 내려놓기로 했다. 무더운 날 속에서 우승꽝스러운, 때론 민망한 몸짓들을 취하며 장기자랑을 준비했다. 더불어 학생들과 함께할 플래시몹까지. 캠프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연습,연습. 그리고 그렇게, 1박3일의 캠프가 시작됐다. 120여명의 제천 중고등학생들과의 캠프. 언어적인 문제에서부터 이런저런 문제와 아쉬움이 많았지만 어쨌든 사고없이, 스케쥴대로 무사히 잘 끝냈다. 의사소통이 안되는 가운데에서도 외국 친구들은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고 온몸으로 캠프에 참여했다. 준비한 장기자랑도 재밌게, 후회없이 해내었다.
(3)어려움
일단, 영어를 잘 못한다는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충분한 회의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최선의 효율적인 방안을 찾는 방향보다는 함께 만들어나가는 방향에 더 중점을 두는 편이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나는 의견을 조율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일상적인 의사소통 조차도 원활히 할 수 없는 비루한 영어실력으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란 불가능했다. 답답한 상황이 많았다.
사실, 프로그램들에 대해, 특히 청소년 volunteer camp에 대해 호스트기관과의 트러블이 있었다. 프로그램을 수정하거나 조율해보자고 한국캠퍼들끼리 사전에 의견을 모았으나, 리더와 호스트기관, 그리고 리더와 한국캠퍼사이의 소통상의 문제들로 인해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시간은 하루하루 지나갔고, 프로그램은 조율되지 못했다.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1박3일의 청소년 volunteer camp가 시작되었다.
앞서 말했던 volunteer camp는 잘짜여져 있었고 무사히 끝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외국친구들을 위한 배려가 아쉬웠다. 모든 프로그램은 한국어로 진행되었고, 그것도 매우 빠르게,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캠프는 외국인 캠퍼한명과 한국인 캠퍼한명의 담당교사(staff)와 15명내외의 제천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한 그룹이 되어 모든 활동을 수행했다. 나 또한 동갑내기 베트남 친구인 희엔과 짝이되어 그룹을 맡았는데 희엔에게 미안한 순간이 많았다. 15명의 아이들을 통제함과 동시에 희엔에게 상황을 영어로 설명해줘야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프로그램의 의도는 무엇인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volunteer 캠프를 무사히 끝맞힐 수 있었던 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외국캠퍼들 덕분이었다.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제대로 들을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과 소통하려 했고, 어떻게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우리를 더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외에도 순간순간 어려움들이 있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오히려 한국캠퍼를 걱정해주던 외국캠퍼들이 눈물을 흘린 순간도 있었고,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져나오는 시간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론, 무엇을 위한 캠프인지, 과연 이게 '봉사'일 수 있는 건지, 이런저런 물음들이 많은 시간들이었고, 그 물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프로그램상의 아쉬움, 그리고 이에 따른 어려움들을 뛰어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고, 쉽게 느끼지 못할 끈끈함을 느꼈다.
(4)밥
밥은,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집에서보다 잘먹었다. 아침은 시리얼로 먹고, 대부분의 점심 저녁을 직접 만들어 먹었는데, 매끼 너무 풍족하게, 맛있게 먹었다. 김치찌개,된장찌개, 찜닭, 닭갈비 등등 한국음식을 못 먹는 친구들이 없어서 더 잘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마을 분들께서 준비해주신 삼겹살, 족발, 치맥까지. 하루하루 부족한 날이 없었다. 음식이 잘 안될때면 해결사처럼 등장해 음식을 구제해준 리더 지웅이까지. 식사를 위한 여건은 완벽했다.
더불어 베트남친구들과 태국 친구들이 준비해줬던 음식들, 그리고 프랑스 친구와 벨기에 친구가 준비해줬던 크레페. 진짜 먹어봐야 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음식점에서 먹었던 음식들보다 맛있었다. 특히 크레페와 함께 먹었떤 화이트와인은 ..
아, 마지막 날에는 호스트기관 선생님 세분이 직접 마지막 밥상을 차려주셨다. 아침 9시부터 장장 3시간에 걸쳐 말이다. 상다리가 부러진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음식이 몇가지가 있었는지 기억조차 안난다. 그렇게 마지막 식사까지 우리는 배고픔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5)놀이
공기, 윷놀이, 유럽판 마피아, 바니바니,베스킨라빈스와 같은 각종 술게임등 수도 없이 많은 놀이들을 했다. 일과가 끝나고 하나뿐인 샤워실에서의 샤워를 위해 기다리는 동안, 이런 저런 놀이들로 시간을 보냈다. 아! 샤워 순번을 위해 사다리게임도 했다. 환호성과 탄식. 잘못하면 2시간을 기다려야 될 수도 있었기에 모두가 숨죽일 수 밖에 없었던 순간. 그렇게 마을회관안에서 우린 우리만의 재밌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주말에는 제천시내의 노래방, 찜질방, 전통시장, 그리고 청풍호도 갔다왔다. 나보다도 KPOP을 잘 아는 친구들한테 정말 놀랐고, 찜질방에서 한숨도 못잤다는 친구들이 안쓰럽기도, 한편으론 웃음이 나기도 했다.
3.워크캠프 그 이후
송학리 마을회관에서의 2주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려움과 아쉬움도 많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라는 관계맺음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하고 좋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문화권에서 모인 너와 내가 어느덧 추억과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다니 말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같이 생활해 볼 수 있었다.그렇기에 워크캠프는 끝났지만, 워크캠프의 기억은 오래오래 머물 것 같다. 캠프가 끝난지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서울에 있는 외국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서울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서의 시간이 지나고 모든 친구들이 각자의 나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이 시간을 추억하며, 언제든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이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1.첫만남을 준비하며
우리 캠프는 충북 제천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캠프였고 난 한국 캠퍼였기에 워크캠프를 잘 꾸려나가고 싶었다. 리더는 우리에게 한차례의 1박2일 사전답사를 그리고 하루먼저 외국친구들을 맞이할 채비를 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다행히도, 나를 포함한 한국인 캠퍼모두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우리의 워크캠프 준비는 시작되었다.
아, 우리 워크캠프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호스트기관인 제천시 사회복지협의회에서 3명의 한국인 친구들을 자체적으로 선발하였고, 9명의 한국인 캠퍼가 함께하게 되었다. 1박2일 사전 답사동안 호스트기관과 함께 우리가 하게 될 일, 우리가 머물게 될 숙소, 함께할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았다. 사실 그전까지 어떠한 일을 하게 되는지 구체적인 것들을 알 수 없었기에 그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2주.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어떠한 이야기들이 담겨질까. 설렘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혔다.
7월 22일.우리는 하루 일찍 캠프숙소인 마을회관에 모여 캠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을회관은 오랜기간 사용이 뜸했던 장소였기에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LCD티비와 1,2층의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찬물만이 나오는 샤워실( 샤워실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와 화장실 하나만이 있었다. 20명에 가까운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을지 잘 씻을 수는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뭐 어쩌랴,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수도 없는 터. 조금이라도 숙소를 깨끗하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쓸고 닦았다. 쓸고 닦고 회의를 하며 슬슬 외국 캠퍼들과의 만남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부터 '밥 잘챙겨먹어'라며 밥과 반찬들을 전해주고 가시는, 뭐든 필요한거 있으면 말하라고 반겨주시는 마을주민분들덕에 시작부터 어딘가 모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2.2주간의 활동
(1)첫만남
아직도 첫만남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우리의 미팅장소는 제천 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먼저 도착하여 외국인 친구들을 맞이할 계획이었다. 등에는 WELCOME 이라는 글자를 한글자씩 붙이고서. 하지만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고 외국친구들이 벌써 다 도착해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외국인 친구들을 맞이하러 갔다. 어색함을 이기려 W라는 글자를 등에 붙이고 앞장섰다. 그렇게 외국 캠퍼들을 만났다. 어색한 미소와 어색한 공기. 침묵을 깨보려 더듬더듬 영어로 이야기를 걸었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3, 태국 3,프랑스 1,벨기에 1 총 8명의 외국 캠퍼, 그리고 9명의 한국 캠퍼.총 17명의 캠퍼들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였다. 발대식을 하고, 함께 저녁을 먹자 어색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외국 캠퍼들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우린 서로서로 공통사를 공유하며 2주간의 첫걸음을 떼었다.
(2)활동
우리의 프로그램은 빡빡하게 짜여있었다. 마을회관을 선뜻 내어주신 마을분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1박3일동안 진행되는 제천 중고등학교 청소년 봉사캠프를 위한 프로그램. 성격이 확연히 다른 두 일정을 함께 소화해내야했기 때문이다. 일정상의 아쉬움은 많았다. 외국친구들과 함께 우리가 할 일을 만들어갈 여지가, 여유가 없었다. 외국캠퍼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프로그램들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활동은 즐거웠다. 다양한 국적의 문화의 친구들과 함께 활동을 한다는 그것 만으로도 활동은 즐거울 수 있었다.
마을 주민분들에게 사탕선물과 초대장을 만들어 집집마다 방문했고, 100개가 넘는 부채를 손수 만들었다. 마을 아이들을 위한 영어책 수십여권을 포장했고, 영화제도 열었다. 유독 더웠던 날, 땡볕에서 벽화를 그렸고 떠나기 하루전 날엔 마을 분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했다. 2주간의 시간동안 마을 분들께서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기에 그 마음에 보답해드리고 싶었다. 청소년 캠프 일정으로 인해 송학리 마을을 위한 일들을 많이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한 활동이 어쩌면 부족했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했고 마음을 다했다. 힘들고 지칠법도 한데, 작은 것 하나하나에까지도 마음을 담으려는 모습을 보았고 그게 너무도 큰 힘이 되었었다.
마을을 위한 일과 더불어, 청소년 봉사캠프를 위한 일을 하였다. 장기자랑,플래시몹에서부터 캠프참여까지 많은 일을 했다. 장기자랑을 위해 각자의 모국어로 "Let it go"를 함께 준비했다. 여자캠퍼들은 발레를 배운 마틸드의 지도로 까탈레나 춤을 준비했고, 남자 캠퍼들은 아브라카다브라에 맞추어 춤을 준비했다. 여자 캠퍼들 처럼 춤을 준비할 여력이 없었던 우리 남자들은 우리를 내려놓기로 했다. 무더운 날 속에서 우승꽝스러운, 때론 민망한 몸짓들을 취하며 장기자랑을 준비했다. 더불어 학생들과 함께할 플래시몹까지. 캠프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연습,연습. 그리고 그렇게, 1박3일의 캠프가 시작됐다. 120여명의 제천 중고등학생들과의 캠프. 언어적인 문제에서부터 이런저런 문제와 아쉬움이 많았지만 어쨌든 사고없이, 스케쥴대로 무사히 잘 끝냈다. 의사소통이 안되는 가운데에서도 외국 친구들은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고 온몸으로 캠프에 참여했다. 준비한 장기자랑도 재밌게, 후회없이 해내었다.
(3)어려움
일단, 영어를 잘 못한다는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충분한 회의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최선의 효율적인 방안을 찾는 방향보다는 함께 만들어나가는 방향에 더 중점을 두는 편이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나는 의견을 조율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일상적인 의사소통 조차도 원활히 할 수 없는 비루한 영어실력으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란 불가능했다. 답답한 상황이 많았다.
사실, 프로그램들에 대해, 특히 청소년 volunteer camp에 대해 호스트기관과의 트러블이 있었다. 프로그램을 수정하거나 조율해보자고 한국캠퍼들끼리 사전에 의견을 모았으나, 리더와 호스트기관, 그리고 리더와 한국캠퍼사이의 소통상의 문제들로 인해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시간은 하루하루 지나갔고, 프로그램은 조율되지 못했다.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1박3일의 청소년 volunteer camp가 시작되었다.
앞서 말했던 volunteer camp는 잘짜여져 있었고 무사히 끝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외국친구들을 위한 배려가 아쉬웠다. 모든 프로그램은 한국어로 진행되었고, 그것도 매우 빠르게,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캠프는 외국인 캠퍼한명과 한국인 캠퍼한명의 담당교사(staff)와 15명내외의 제천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한 그룹이 되어 모든 활동을 수행했다. 나 또한 동갑내기 베트남 친구인 희엔과 짝이되어 그룹을 맡았는데 희엔에게 미안한 순간이 많았다. 15명의 아이들을 통제함과 동시에 희엔에게 상황을 영어로 설명해줘야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프로그램의 의도는 무엇인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volunteer 캠프를 무사히 끝맞힐 수 있었던 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외국캠퍼들 덕분이었다.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제대로 들을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과 소통하려 했고, 어떻게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우리를 더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외에도 순간순간 어려움들이 있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오히려 한국캠퍼를 걱정해주던 외국캠퍼들이 눈물을 흘린 순간도 있었고,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져나오는 시간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론, 무엇을 위한 캠프인지, 과연 이게 '봉사'일 수 있는 건지, 이런저런 물음들이 많은 시간들이었고, 그 물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프로그램상의 아쉬움, 그리고 이에 따른 어려움들을 뛰어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고, 쉽게 느끼지 못할 끈끈함을 느꼈다.
(4)밥
밥은,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집에서보다 잘먹었다. 아침은 시리얼로 먹고, 대부분의 점심 저녁을 직접 만들어 먹었는데, 매끼 너무 풍족하게, 맛있게 먹었다. 김치찌개,된장찌개, 찜닭, 닭갈비 등등 한국음식을 못 먹는 친구들이 없어서 더 잘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마을 분들께서 준비해주신 삼겹살, 족발, 치맥까지. 하루하루 부족한 날이 없었다. 음식이 잘 안될때면 해결사처럼 등장해 음식을 구제해준 리더 지웅이까지. 식사를 위한 여건은 완벽했다.
더불어 베트남친구들과 태국 친구들이 준비해줬던 음식들, 그리고 프랑스 친구와 벨기에 친구가 준비해줬던 크레페. 진짜 먹어봐야 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음식점에서 먹었던 음식들보다 맛있었다. 특히 크레페와 함께 먹었떤 화이트와인은 ..
아, 마지막 날에는 호스트기관 선생님 세분이 직접 마지막 밥상을 차려주셨다. 아침 9시부터 장장 3시간에 걸쳐 말이다. 상다리가 부러진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음식이 몇가지가 있었는지 기억조차 안난다. 그렇게 마지막 식사까지 우리는 배고픔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5)놀이
공기, 윷놀이, 유럽판 마피아, 바니바니,베스킨라빈스와 같은 각종 술게임등 수도 없이 많은 놀이들을 했다. 일과가 끝나고 하나뿐인 샤워실에서의 샤워를 위해 기다리는 동안, 이런 저런 놀이들로 시간을 보냈다. 아! 샤워 순번을 위해 사다리게임도 했다. 환호성과 탄식. 잘못하면 2시간을 기다려야 될 수도 있었기에 모두가 숨죽일 수 밖에 없었던 순간. 그렇게 마을회관안에서 우린 우리만의 재밌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주말에는 제천시내의 노래방, 찜질방, 전통시장, 그리고 청풍호도 갔다왔다. 나보다도 KPOP을 잘 아는 친구들한테 정말 놀랐고, 찜질방에서 한숨도 못잤다는 친구들이 안쓰럽기도, 한편으론 웃음이 나기도 했다.
3.워크캠프 그 이후
송학리 마을회관에서의 2주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려움과 아쉬움도 많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라는 관계맺음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하고 좋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문화권에서 모인 너와 내가 어느덧 추억과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다니 말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같이 생활해 볼 수 있었다.그렇기에 워크캠프는 끝났지만, 워크캠프의 기억은 오래오래 머물 것 같다. 캠프가 끝난지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서울에 있는 외국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서울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서의 시간이 지나고 모든 친구들이 각자의 나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이 시간을 추억하며, 언제든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이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