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모로코, 혼돈 속에서 찾은 아프리카의 낭만

작성자 이정은
모로코 CJM1 · CONS/ART 2014. 08 탕헤르

Tangier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된 건 약 3년 전이었다. 한 친구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에 나가 교육봉사를 하고 돌아 온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고 그 친구를 통해서 워크캠프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이고 한번쯤 참여해 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쉽게 갈 수 없었고 점점 이 프로그램은 바쁜 일상 속에 잊혀져 갔다. 그렇게 지내다 대학교 생활의 마지막 학기를 맞게 되었다. 졸업 후에 무얼 할까 생각하다 문득 이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나는 국제워크캠프기구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해외 워크 캠프 지역 부분에 ‘아프리카’를 검색했다.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을 둘러보았고 가고 싶은 곳이 굉장히 많았지만 결국 나는 모로코에 가기로 결심했다. 사실 처음부터 모로코에 가기 위해 계획하고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아프리카’ 라는 곳에 막연한 궁금증과 어떤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인 아프리카는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종교와 문화가 굉장히 다양했기 때문에 어딜 갈 지 많이 고민했다. 물론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을 갈 수도 있었지만, 때마침 ‘에볼라 바이러스’가 서아프리카를 강타했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부모님께서는 나의 아프리카 방문을 완강히 반대하시는 바람에 아프리카의 북단에 위치한 모로코, 그 국가에서도 가장 최 북단인 떼뚜안 근처 지역을 선택하게 되었다. 모로코는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가이고 마침 나는 프랑스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목적지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아프리카는 항상 오지나 동물들의 뛰어 노는 넓은 초원이었지만 모로코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굉장히 매력적인 나라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아프리카 가기’를 수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단순히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닌, 남들을 돕고, 작게나마 지역사회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여행이라는 점이 굉장히 의미 있었다. 또한 여행을 하며 동시에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자고 식사도 준비하고 24시간을 내내 함께 생활을 공유하며 서로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져 워크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생각난 김에 바로 워크캠프를 신청하고 비행기표도 샀다. 출발을 결정하기까지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굉장히 충동적이었을 이 결정으로 나는 남들보다 비싼 비행기표를 사고 어쩌면 급하게 출발한 감이 있지만 이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나는 워크캠프 일정보다 더 일찍 모로코에 갔다. 카사블랑카에 있는 공항에 도착해서 카사블랑카에서 몇 일 묵으며 지역을 둘러보고 워크캠프 지역 근처인 탕헤르에서 혼자 여행을 즐겼다. 탕헤르에서 워크캠프 활동 구역까지 가기 위해 기차를 탈까 버스를 탈까 고민하다가 사람들에게 물으니 라마단기간이고 일요일이라 버스랑 기차가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결국 나는 200디함이라는 거금을 주고 택시를 타고 가게 되었다. 한 시간 가량 갔는데 택시 기사는 길을 잘 모르는 눈치였고 계속해서 길에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또 물었다. 택시는 점점 구불구불한 산을 타고 산 속 마을로 들어갔고 나는 왠지 긴장되기 시작했다. 택시기사는 어느 마을 작은 학교 앞에 차를 세운 후, 나에게 ‘네가 알려준 주소가 2군데인데 한 군데는 존재하지 않는 주소고 한 군데는 여기서 20km떨어져있다’ 고 했다. 나는 현지 워크캠프 담당자 전화번호를 건네며 연락을 부탁했고 택시기사는 연락을 해줄 테니 여기서 내리라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택시기사는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나도 고생했고 시간을 길거리에서 너무 많이 버렸다며 나에게 추가요금을 더 낼 것을 요구했다. 기사의 태도는 굉장히 위협적이었고 그 곳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가 가고자 한 곳도 아니고 심지어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 지 조차 알 수 없었지만 돈을 더 낼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버려져 막막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간신히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전에 이 캠프는 현재 국제워크캠프기구 홈페이지에 기재되어 있는 장소에서 시행되었는데, 워크캠프 도중 참가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겨 싸움이 일어나 도중에 캠프가 중단되는 바람에 장소가 바뀌었다고 한다. 모로코로 출발 하기 전에 현지 담당자들이 보내 준 정보를 가장 우선시하고 잘 챙겼어야 했는데, 나는 국제 워크 캠프 기구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도 출력했고 모든 출력물이 다 섞이는 바람에 장소를 찾는 데 혼동이 있어 캠프 장소를 찾아가는 일부터가 고생의 연속이었다.
캠프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마당 쓰레기 줍기였다. 근처 고등학교의 정원관리가 우리의 주요 업무였기 때문에 잡초를 뽑고 꽃을 다시 심는 일을 가장 많이 했다. 그리고 근처 초등학교와 마을회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는 일도 했는데 이 일이 가장 재미있었고 보람찼다.
이 캠프의 공식 사용언어는 영어였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이기 때문에 영어사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을 예상했고 그래서 처음에 워크캠프를 갈 국가를 결정할 때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지 보고 더 신중히 선택한 부분도 있었다. 모로코는 아랍어를 사용하지만 프랑스어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 사실이 방문 할 국가를 선택할 때에 큰 역할을 했다. 워크캠프에 가서 묵묵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프랑스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모로코인이 굉장히 많았다. 더군다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내가 가게 된 캠프에는 약 30명 정도가 참가했는데 모로코인은 약 25명으로 참가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외국인은 나를 포함해 6명뿐이었다. (나, 프랑스인 2명, 스페인인 3명이었다.) 캠프 장소를 바꾸게 된 이유가 ‘소통’의 문제로 인한 갈등이었으면서 왜 아직까지도 프로그램 공식 언어를 ‘영어’로 지정해두어 혼란을 야기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곳 관리자들 중에 실질적으로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차라리 ‘프랑스어’를 공식언어로 해 두었으면 그 캠프를 방문하는 다른 외국인들에게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영어와 스페인어만을 구사하는 스페인인 친구는 워크캠프 내내 모로코인과 거의 소통하지 못했다. 그는 아랍어와 프랑스어 모두 구사하지 못했고 공식언어가 ‘영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만 보고 왔는데 현장 상황은 생각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한편, 내가 참가한 캠프에서는 밤마다 불편한 점이나 고쳤으면 하는 점을 이야기하는 모임이 있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해서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려는 취지는 굉장히 좋았지만 사실상 이 모임으로 인해 갈등이 시작되었다. 회의에 참여한 모로코인은 그들끼리 아랍어로 이야기했다. 나를 포함한 외국인들은 프랑스어 통역을 요구했지만 ‘지금 얘기 중이니 맥 끊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이야기만 들을 뿐이었다. 그럴 거면 외국인들은 왜 그 회의에 참여하게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마다 열리는 그 회의에서 외국인들은 그저 멍하니 앉아있거나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잡담하며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다. 어느 날은 회의 도중 담당자가 굉장히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모자를 던졌고 나를 포함한 외국인들은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조차 이해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프로그램도중 문제가 생기면 항상 우리들에게 책임을 전가했으며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다고 타박했다. 일정을 계획할 때도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고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인데 본인들끼리 아랍어로 상의하고 결정해서 우리에게 통보하는 식이었다. 그나마 통보라도 해주면 다행이었다. 외국인들에게는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가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어느 날은 계곡으로 소풍을 갔는데 외국인들은 근처 마을로 소풍을 간다는 사실만 들었지 계곡에 간다는 것은 몰랐기 때문에 수영복을 포함한 어떤 것도 준비하지 않고 모두 빈손으로 갔다. 결국 우리는 하루 종일 모로코인인 참가자들이 물 놀이 하는 것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운 적도 있었다. 이런 식의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니 외국인들과 모로코인들사이의 갈등이 점점 커지는 일은 당연했다. 나중에는 모로코인들 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겼고 워크캠프기간 도중에 모로코인이 일터를 떠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참가자들 사이에선 각자 몇 일에 이 캠프를 떠날 건지 서로 정보를 나누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게다가 처음에 캠프에 도착했을 때 담당자는 우리에게 서류 확인 차 여권을 요구했고 나를 포함한 6명의 외국인들은 여권을 제출했다. 그 후에 여권 반납을 요구했으나 안전상의 이유로 여권을 돌려주지 않았다. 본인의 여권은 본인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니 돌려달라고 하자 이게 모로코의 룰이니 따라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한 프랑스 친구가 화가 나서 프랑스 영사관에 연락을 취했고 프랑스 워크캠프 지사에 항의를 해서 우리는 간신히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또한 탕헤르 캠프 관리자들은 기본적인 것들 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우선 제대로 된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 후에도 제대로 씻지 못했다. 캠프지 이사 후 첫 캠프였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창고로 쓰이던 방의 물건들을 다 이동시킨 후, 빈 공간을 만들어 잠은 잘 수 있었지만, 씻을 수 있는 시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식사도 굉장히 부실해서 저녁식사는 우유죽과 삶은 달걀로 끼니를 때우는 식이었다. 우리는 일을 한 후에 동네에서 친해진 아이들에 집에 찾아가서 동냥하듯이 간신히 샤워를 해야 했고 그나마 근처 고등학교에서 다같이 샤워를 할 수 있도록 허가 받은 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다. 우리가 함께 지내던 회관은 단수가 일상이었기 때문에 세수는 커녕 마실 물도 없는 일이 허다했다. 사실 나는 원래 워크캠프가 이렇게 열악한 환경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곳의 상황은 모로코인에게도 일반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캠프에 참여했던 아이들도 이렇게 열악하고 제대로 기획되지 않은 캠프는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다른 지역에서 시행하는 캠프는 굉장히 쾌적한 분위기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참가한 캠프에서는 기본적인 것을 요구하고 불편사항을 말하면, ‘이 곳에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니라 봉사하러 왔다는 사실을 잊지마. 자발적으로 봉사를 하러 왔으면 이 정도는 참아야지’ 라는 식으로 반응할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마실 물도 슈퍼에 가서 자비로 사다 마셨고 우리는 돈을 지불했음에도 기관측에서 제공하는 받은 것은 거의 없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우선 내가 참가했던 캠프는 굉장히 문제가 많았다. 시장이 이 캠프 유지를 위해 천 유로씩 투자하고 참가자들에게도 분명 참가비를 받았음에도 우리는 기본적인 것을 제공받지 못했다. 또한 시장은 이 캠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마을의 학교와 기관들을 개방해주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을 하는 일 외에 샤워를 하러 가거나 학교나 공공기관의 시설을 이용하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것도 학교 관리자와 매번 협상이 필요했다. 협상이 타결되어 샤워를 할 수 있게 된 날 또한 열쇠를 가지고 있는 관리자가 올 때까지 땡볕에서 한 시간씩 기다리기 일쑤였다. 실질적으로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 마을의 기관의 이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또한 현지 담당자와의 초반의 약속과는 다르게 바다나 시내에 가는 차비도 전부 우리가 따로 다 지불해야 했다. 우리를 위해 사용된 비용은 식사 비용 정도가 전부였다. 게다가 나중에 모로코친구에게 들은 건데, 사실상 담당자중에 돈을 횡령한 사람이 있었고 게다가 대부분의 모로코인들은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묵인했다는 이야기였다.
모로코 워크캠프에 갔다 와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가장 큰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굉장히 뻔한 말일 수도 있지만 물의 소중함에 대해서 정말 절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캠프를 마치고 카사블랑카로 다시 돌아왔을 때 호텔에서 물을 틀었는데 물이 콸콸 나와서 정말 형용할 수 없는 굉장한 행복감을 느꼈다. 조금 과장한다면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씻고 싶을 때 씻고 인터넷도 하고 전화도 하며 여가시간을 보내는 일이 한국에서의 일상생활 속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그 곳에선 하기 힘든 일이 되었고 마침내 그 일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을 때 큰 기쁨을 맛보았고 감사함을 느꼈다. 물론 처음에 워크캠프를 시작했을 땐 참가자들이 대부분 모로코인이고 생각보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짧은 시간 동안 ‘진짜’ 모로코를 제대로 경험하고 돌아온 것 같아서 정말 만족스럽고 좋았다. 아랍어만 구사할 수 있었던 모로코인과는 제대로 대화가 불가능했던 점은 굉장히 아쉽지만 말이다. 물론 워크캠프 자체에 굉장히 문제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고 제대로 기획되지 않은 부분 때문에 갈등의 연속이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나의 인생에서 이번 워크캠프는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