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길치도 반한 아이슬란드의 매력
Photo Marathon & Gay Prid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4-1학기, 24살의 나. 전공과제에 대외활동에, 쏟아지는 과제와 미션 속에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꽉꽉 채워보냈다. 마지막 학년이라는 것이 아쉽기도 했고, 사회로 나가기 전에 학생으로서 질리도록 바쁘게 살아보자는 결심때문에 야심차게 많은 일들을 벌려놓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얽히고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에 홀로 바르셀로나 여행 5일, 런던 여행 3일을 해 본 결과, 나는
어마어마한 길치임이 증명되었다. 아니나다를까, 아이슬란드 첫 시작부터 나의 길 헤메기 역사는 시작되었다. 인포싯에 그려진 약도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반나절 내내 거리에서 미팅포인트를 찾아 헤맸다. 슬슬 짜증나고 지칠 무렵 내가 들고 있는 인포싯을 보고 한 외국인이 다가왔고, 겨우 미팅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무하게도 내가 맴맴 돌았던 곳 바로 뒷편이 미팅포인트였다. 내가 길치가 아니었어도 못찾았을 것 같은 장소였다. 저녁 일곱시까지 거실에서 다른 워크캠프 참가자를 만나 경험담을 전해 듣고, 빨간 봉고차를 타고 열흘간 머물게 될 숙소로 이동하였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빅의 다운타운 외곽에 위치한 한적한 정원, 그 속에 파묻혀
있는 작은 집. 사실 첫날 도착하자마자 생각보다 낡고 비좁은 공간에 앞으로의 열흘이 걱정
어마어마한 길치임이 증명되었다. 아니나다를까, 아이슬란드 첫 시작부터 나의 길 헤메기 역사는 시작되었다. 인포싯에 그려진 약도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반나절 내내 거리에서 미팅포인트를 찾아 헤맸다. 슬슬 짜증나고 지칠 무렵 내가 들고 있는 인포싯을 보고 한 외국인이 다가왔고, 겨우 미팅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무하게도 내가 맴맴 돌았던 곳 바로 뒷편이 미팅포인트였다. 내가 길치가 아니었어도 못찾았을 것 같은 장소였다. 저녁 일곱시까지 거실에서 다른 워크캠프 참가자를 만나 경험담을 전해 듣고, 빨간 봉고차를 타고 열흘간 머물게 될 숙소로 이동하였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빅의 다운타운 외곽에 위치한 한적한 정원, 그 속에 파묻혀
있는 작은 집. 사실 첫날 도착하자마자 생각보다 낡고 비좁은 공간에 앞으로의 열흘이 걱정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아이슬란드에서 했던 관광 투어는 사실 말이 투어지, 거의 극기훈련이나 다름없었다. 아이슬란드의 여름이 한국의 선선한 가을날씨와 비슷하다는 말만 믿고 얇은 가디건
하나만 챙겨간 나에게 그 곳의 비바람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다행히 캠프 시작 전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대만의 한 소녀가 나에게 오리털 잠바를 주어 현지에서 비싸게
외투를 사는 일은 없었지만, 희한하게도 우리가 투어를 하는 날에 비바람이 몰아쳐
오들오들 떨기 일쑤였다.
가장 처음으로 한 투어인 Hot River Hike는 내 생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한시간이 넘게 등산을 하고, 진흙탕에서 굴러 떨어지며
허허벌판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뜨거운 물이 흐르는 좁은 강에서 온천욕을 하다니..
마음 속으로 몇번이나 대한민국을 외쳤는지 모른다. 인생에서 힘든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이 날의 투어가 생각나지 않을까? 다른 캠프멤버들도 웃으면서 이 말에
동의하였다.
24년간 살면서 내가 느낀 대한민국 사회는 <정사각형>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진학, 대학교 졸업, 취직, 결혼, 내집마련의 어떠한 일정한 사각형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제일 자유롭다는 대학생활도 취직을 위한 준비로
시달리고, 외국을 잠시 나갔다온다 한들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이 틀에 맞춰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이 최근의 나를 가장 우울하게 하였는데,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는
나의 정사각형 삶 바깥에 하나의 점을 찍어주었다. 언제든지 사각형과 연결될 수
있는 점, 사각형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있는 자체만으로도 내 인생에 큰 기억으로,
어떠한 환기구로 남을 점.
비록 다른 곳으로 유럽여행을 간 친구들이 즐긴 따뜻한 햇살, 예쁜 인테리어의 카페, 아기자기한 풍경들, 맛있는 음식들은 없지만,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창 고민 많을
시기인 나에게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자연과 외국 친구들의 틀에 박히지 않은,
주체적인 사고방식은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떠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만 챙겨간 나에게 그 곳의 비바람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다행히 캠프 시작 전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대만의 한 소녀가 나에게 오리털 잠바를 주어 현지에서 비싸게
외투를 사는 일은 없었지만, 희한하게도 우리가 투어를 하는 날에 비바람이 몰아쳐
오들오들 떨기 일쑤였다.
가장 처음으로 한 투어인 Hot River Hike는 내 생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한시간이 넘게 등산을 하고, 진흙탕에서 굴러 떨어지며
허허벌판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뜨거운 물이 흐르는 좁은 강에서 온천욕을 하다니..
마음 속으로 몇번이나 대한민국을 외쳤는지 모른다. 인생에서 힘든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이 날의 투어가 생각나지 않을까? 다른 캠프멤버들도 웃으면서 이 말에
동의하였다.
24년간 살면서 내가 느낀 대한민국 사회는 <정사각형>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진학, 대학교 졸업, 취직, 결혼, 내집마련의 어떠한 일정한 사각형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제일 자유롭다는 대학생활도 취직을 위한 준비로
시달리고, 외국을 잠시 나갔다온다 한들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이 틀에 맞춰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이 최근의 나를 가장 우울하게 하였는데,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는
나의 정사각형 삶 바깥에 하나의 점을 찍어주었다. 언제든지 사각형과 연결될 수
있는 점, 사각형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있는 자체만으로도 내 인생에 큰 기억으로,
어떠한 환기구로 남을 점.
비록 다른 곳으로 유럽여행을 간 친구들이 즐긴 따뜻한 햇살, 예쁜 인테리어의 카페, 아기자기한 풍경들, 맛있는 음식들은 없지만,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창 고민 많을
시기인 나에게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자연과 외국 친구들의 틀에 박히지 않은,
주체적인 사고방식은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떠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