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소불고기 양념 들고 떠난 독일 워크캠프

작성자 소슬비
독일 NIG11 · ENVI 2014. 08 Lohmen & Teterow

Teterow IV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학교를 통해 워크캠프를 접했다. 워낙에 외국나가고 외국친구 사귀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방학마다 해외로 가는게 목표였기에 학교의 글로벌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을 했다.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스스로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 큰 차이었다. 그렇기에 막막함도 있었지만 자유롭게 일정을 짤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나는 독일 워크캠프와 더불어 앞뒤로 여행을 준비했다. 덕분에 유럽에 대해 아는 게 없던 나에겐 떠나기 직전까지 설렘보다는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훨씬 더 컸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를 달고 살 정도였으니까.
특히나 내겐 요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는데, 한국에서도 요리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 내가 가서 한국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는 게 보통 걱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후기를 읽어보고 인기가 좋았다던 소불고기양념을 사서 따로 연습까지 해보았다.
그리고 출국 이틀 전 환전과 더불어 국제학생증과 국제현금카드까지 만들고 났더니 정말 떠나는구나 싶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7월 20일, 드디어 6주간의 여정을 떠났다. 나는 워크캠프에 앞서 도쿄와 독일을 보름동안 여행했는데, 내내 소불고기양념과 호떡재료를 들고 다녔다. 독일 윌링겐에서 일주일간 룸메이트였던 한국친구가 내 소불고기양념을 보고 자기것을 꺼냈나 갸우뚱해 했다. 알고보니 그 친구도 곧 프랑스 낭트로 워크캠프를 가는데 같은 것을 가져온 것이었다. 신기했다. 그리고 이후 우리캠프의 프랑스친구가 낭트에 살아서 더욱 신기했다!

8월 4일 미팅포인트인 테테로우(Teterow)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함께 캠프를 참가하는 친구들을 만나 캠프리더의 차를 타고 숙소에 갔다.
인포싯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었는데, 우리캠프에 캠프리더가 없어 다른 캠프와 합친 것이다. 같은 날 시작해서 2주간 하는 로멘(Lohmen)캠프 7명과 3주간 하는 테테로우(Teterow)캠프 11명, 그리고 이전에 다른 캠프에 참여했다 남아있던 비탈까지 총 19명의 캠프가 로멘 숙소에서 시작되었다.
기존 테테로우 멤버 중에는 한국인이 나 혼자였는데 로멘 멤버에는 2명이나 있었다. 한국3, 대만3, 일본1, 러시아4, 프랑스1, 이탈리아3, 스페인2, 벨기에1, 독일1명으로 아시아인 7명, 러시아인 4명, 유럽인 8명이었고, 여자 10명, 남자 9명으로 모든 비율이 좋았던 것 같다.

우리캠프는 시간을 맞춰가며 규칙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고 탄력적으로 운영했다. 아시아와 러시아의 몇몇 친구들은 평소에도 상당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지 이에 대한 불만이 있기도 했지만 큰 갈등은 없었다. 우리는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평일에는 매일 3시간 정도 일을 했다.
일은 필드에서 건초를 긁어모아 필드 밖으로 걷어내는 작업이었다. 8시간 막노동을 각오하고 갔던 것에 비해 일하는 시간도 길지 않았고 크게 고된 일이 아니었기에 딱히 힘들다는 생각 없이 열심히 했다. 그런데 다른 후기를 읽어보니 같은 일이었는데도 굉장히 힘들었다고 써놓은 것을 보니 사람마다 체감이 다른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들 열심히 하고 협동하는 분위기에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숙소에서 필드까지 오고가는 길에 항상 들판과 호수, 숲을 지나가며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일을 하면서도 자연 속에 있으니 힐링이 되었다.
하루는 일 끝나고 차를 기다리면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는데 너무 재밌었다. 그것도 윈도우 배경화면 같은 아름다운 들판과 숲이 있는 곳에서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말이다!

저녁은 매일 돌아가면서 했는데, 다른 나라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다들 어쩜 그리 요리를 잘하는지 다 맛있었다. 참고로 유럽은 저녁을 굉장히 늦게 먹는다. 우리는 거의 9~10시에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음식을 선보이는 날! 나 외에 2명의 한국인이 요리를 잘해서 천만다행이었다. 한국과 다른 날리는 쌀에 고기도 불고기용이 아닌 그냥 포장돼있는 고기라 걱정했는데, 두 한국인이 있으니 든든했다. 밥도 짓고 소불고기양념으로 고기도 재우고 각종 야채 다듬고... 갈수록 비주얼이 만족스러웠다. 냄새도 훌륭했다. 마침 놀다 들어온 친구들이 킁킁대고 부엌을 들락날락거리며 우리의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고기, 잡채, 계란말이, 그리고 숭늉까지! 한국음식을 선보인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양이 엄청 많아서 남길 줄 알았는데 싹 비웠고, 식사가 끝나고 굳이 따로 와서 정말 훌륭했다는 말까지 해주고, 여자친구들은 레시피를 물어보며 적어가기도 했다. 매일 우리가 요리해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라는 얘기도 두 번이나 들었다. 우리는 너무 기뻐서 주방에서 우리끼리 환호를 했다. 특히 내가 가져간 소불고기양념으로 요리한 불고기가 가장 인기가 좋아 뿌듯했다. 마침 이날은 함께 발리볼을 하던 지역주민 5명도 초대했는데, 우리의 음식을 대접해줄 수 있어 더욱 기뻤다.

아침 준비나 설거지, 부엌이나 화장실, 샤워실 청소 등은 누가 뭐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아서 했던 것 같다. 특히 러시아친구들이 참하고 가정적이어서 그런 것들을 도맡아 했다. 누가 뭘 하지 않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적극적으로 나서는구나에 초점을 맞추니 갈등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일을 끝낸 오후에는 수영을 하거나 현지인들과 어울려 발리볼이나 축구를 하기도 하고, 저녁을 먹은 이후에는 술을 마시며 카드게임을 하고 놀았다. 중간중간 방에서 얘기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단체로 Rostock(로스토크), Hamburg(함부르크), Berlin(베를린) 등의 다른 도시로 여행도 갔다.

나는 한국, 대만의 친구들과는 처음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초반에는 아시아인 대 유럽인으로 무리가 나뉘어 있었다. 남자들은 그나마 덜한데 여자들이 더 갈렸었다. 밤마다 1층에서 술을 마시며 게임을 했는데 다른 아시아 여자친구들은 가지 않아서 나도 좀 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대륙의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 밤에 내려가서 같이 어울렸고, 그러면서 점점 더 친해질 수 있었다. 그래도 한 일주일간은 아시아 친구들에 비해 어색함이 있었는데, 이후로는 유럽이나 러시아 친구들과도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밤마다 주스를 탄 보드카를 마시며 카드게임을 하고, 한밤중에 호수도 가고, 공터에 매트 깔고 누워 함께 별똥별도 감상하고...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2주가 지나서 로멘팀이 먼저 떠나게 되었다. 베를린에서 헤어졌는데 아시아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나만 남게 되어 여러모로 기분이 복잡했다.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는데, 그날 밤 “다들 어디 있지? 너무 조용해서 이상해.”, “베를린으로 돌아가자!!” 하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단체로 한 친구의 폰으로 아직 베를린에 있는 그들과 영상통화도 하고 라인을 통해 서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보내면서 밤새 그리워하는 마음을 여지없이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원래 우리의 캠프인 테테로우로 숙소를 옮겼고 리더도 바뀌었다. 숙소는 바로 옆에 호수가 있는 말 그대로 숲속의 오두막집이었다. 로멘보다 훨씬 작고 화장실도 샤워실과 붙어있는 하나밖에 없어 조금 불편했지만, 아담하고 아기자기해서 분위기는 더 마음에 들었다. 경치는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당에 모닥불이 있어 매일 저녁마다 불을 지피고 둘러앉아 낭만적인 시간을 보냈다. 모닥불에 과자도 구워먹고, 게임도 하고, 그냥 자연과 더불어 지냈다. 아시아 친구들이 없어서 외롭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다른 친구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정말 좋았다!

이전처럼 필드의 건초를 옮기거나 숙소 대청소를 했고, 일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테테로우는 모기천국이라 했지만 8월 중후반 독일의 날씨는 이미 쌀쌀한 가을날씨여서 모기는 없었다.
테테로우 시내 구경도 했다. 마트도 그렇고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시내였지만 굉장히 조용했다.

떠나기 전날에는 우리의 흔적을 곳곳에 남겼다. 숙소 여기저기서 이전 팀들의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도 마지막 날 부엌 문짝에 우리의 이름과 흔적을 잔뜩 남겼다!
그리고 22일, 드디어 3주간의 캠프가 모두 끝났다. 한꺼번에 헤어진 게 아니라 한두 명씩 보내서 절절한 헤어짐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나는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간 한글 캘리그라피와 편지를 준비했는데, 친구들이 떠날 때마다 전해주었다.
캠프가 끝나고 나는 스페인친구들과 함께 베를린을 여행했다. 하루는 먼저 떠났던 대만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또한 좋은 추억이었다. 그리고 한국과 대만, 스페인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가장 늦게 귀국해 페이스북을 확인한 오늘, 친구들이 올린 사진을 보며 또한번 그때를 회상하는데,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올라와 더욱 애틋하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한국에서 미리 후기를 읽고 갔던 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좋은 후기도 있었지만 영어로 소통하기가 어려워 위축되고 소외감을 느꼈다는 글, 유럽인들이 아시아인을 무시한다거나 농담이 지나치게 느껴졌다는 글, 캠프리더나 멤버와의 갈등에 관한 글 등을 읽고 갔기에 문화차이에서 오는 약간의 당황스러운 일이나 갈등도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초반에 한 친구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아시아 사람이라 눈이 작은 거니?” 라고 얘기했는데, 자칫 무시하는 듯이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아니, 심지어 내 한국친구들도 나보고 작다고 한단다~” 라면서 농담으로 받아쳤더니 그냥 유쾌하게 넘어갔다.
몇 번의 짓궂은 농담이 있었지만 나도 같이 농담으로, 혹은 못 알아들은 척 넘어갔더니 좋은 분위기가 유지되었고, 나중에 느낀 것은 이 친구들도 생각보다 참 순수하다는 것이었다.

영어 같은 경우도 크게 문제되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 한국인 오빠와 일본친구는 영어가 많이 서투른데다 한국인 오빠는 'No No No No No~'를 외치는 4차원이었고 일본친구는 과묵한 성격이었는데도, 특유의 캐릭터와 적극성으로 이후에 유럽친구들이 먼저 떠난 이들이 그리워서 매일 노래를 부를 정도로 잘 어울렸으니까! 그리고 서양 사람들은 다 영어도 잘하고 발음도 좋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들도 결국 우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발한 친구 있고, 내성적인 친구 있고, 영어를 썩 잘하지 않는 친구도 있고 말이다. 다만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만이 가까워짐을 가로막는 것 같다. 그들도 한국과 아시아에 대해 잘 몰랐지만 나도 유럽과 러시아에 대해 몰랐기에 대화의 공통주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확실히 유럽은 유럽끼리, 아시아는 아시아끼리 역사나 문화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어 재밌는 요소를 찾기가 쉬웠다.
이 친구들이 딱히 아시아에 관심이 있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한국을 알리는 것에 소극적이기도 했는데, 문득 그저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럼 내가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더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다른 대륙의 친구들과도 뭐든 소통하려고 노력했더니 나중에는 나도 그들의 나라에 많은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도 한국과 일본, 대만에 오고 싶다고 했다. 유럽친구들에게 우리는 1500유로 이상이 들었다고 하니 어마어마하게 놀랐다. 부모님 직업이 뭐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들은 가까운 나라에서 왔고 워크캠프가 그렇게 비싸지 않기에 그런 것 같았다.
우리는 특히 언어를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많이 가까워졌는데, 각국의 욕은 다 배운 것 같다. 하하..

한여름밤의 꿈만 같은 나의 첫번째 유럽, 첫번째 워크캠프!

어떻게 친해질까 초조하기도 하고 언어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다양한 문화를 직접 겪은 것, 영어의 다양한 억양, 심지어 소소한 갈등마저도 모든 것이 특별한 경험이었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너무나 감사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미소가 떠오르는 행복한 So good So good 워크캠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We can meet again!
We will meet again!
We must meet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