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작은 마을, 잊지 못할 추억
Bouvesse-Quirieu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작년 터키에 워크캠프를 다녀온 후 그 매력에 빠져서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또 참가하게 되었다. 워크캠프를 떠나기 전 굉장히 들뜬 상태였었는데 인포싯을 받고 나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고소공포증과 빈혈에 대한 진단서가 일할 때 필요하니 보내달라고, 또 오래된 학교에서 지내니 침낭과 에어매트 등을 준비하고, 등산화가 필수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얼마나 시키려고 이런 준비까지 해가야 하나 싶었다. 어찌되었든 모든 준비를 마치고 프랑스로 향했다. 내가 갈 지역은 프랑스 리옹에서 한참 들어간 아주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그래서 모임장소는 리옹역 버스정류장이었고, 일찍 도착했던 나는 거기서 기다리며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려 보이는 얼굴에 짐을 잔뜩 지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면 어렵지 않게 함께 워크캠프 하는 친구인 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이고, 몇몇은 일정상 늦게 오게 된다고 해서 10명이 모였을 때 버스를 타고 워크캠프 장소로 향했다. 우리가 지낼 곳은 생각보다 훨씬 먼 곳이었다. 리옹역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작고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오래된 학교라기 보다는 그냥 큰 방이 하나 있는 집처럼 보였다. 리더가 둘이었는데 이미 방에 간이침대를 깔아 놓은 상태였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식사를 하던 중에 늦게 온다던 친구들이 하나 둘 다 도착 하였고, 그제서야 자기 소개하는 게임과 다른 게임을 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우리의 일정과 전반적인 생활을 하는 것들에 있어서 정하는 미팅시간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룰은 영어를 쓰는 것이었는데, 프랑스인 두 명이 영어를 아예 하지 못해 주의가 약간 산만했다. 또 나를 포함한 4명 정도 만이 프랑스어를 못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어느 정도 프랑스어를 다 할 줄 알았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일이 잦아졌다. 일을 몇 시부터 시작하고 밥은 몇 시에 먹을지, 청소당번과 식사당번은 어떻게 정할 지, 일은 언제하고 휴일은 언제로 정할지 등 세세한 것 하나하나 다 이야기를 통해서 정했다. 영어를 못하는 친구들 때문에 리더들이 영어로 한번, 프랑스어로 한번 설명해 주고 계속해서 통역하면서 대화를 할 때마다 시간이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의견도 각자 다 달라서 의견을 조율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모두의 의견을 반영해서 우리만의 룰을 정했다는 사실에 뭔가 뿌듯했다. 일주일에 일은 다섯번, 8시부터 2시까지 일하기로 정했는데 요일에 상관없이 우리끼리 삼 일정도 일하고 하루 쉬는 일정으로 정했다. 정하고 나서 오후에 무엇을 할지 정하고 수영을 가기로 했다. 그 때 그곳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시에서 빌려준 자전거뿐이었다. 마을 너무 작아서 주위에 집도 잘 없고, 어디를 가던지 자전거를 이용해야만 했는데 어디를 가든지 기본이 한 시간이었다. 인포싯에 자전거를 탈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그냥 넘겼었는데, 그땐 그 후 폭풍이 어떤 것일지 잘 몰랐었다. 첫날 수영을 하러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탔는데, 평소에 운동이라고는 학교 간다고 걷는 십분, 이십분이 다 인 저질체력인 나였는데, 수영을 하러 가는 데만 한 시간 반을 내리 달리는 것이었다. 정말 다리가 후들후들 거릴 정도였는데, 나머지 친구들은 쌩쌩 잘만 탔다. 혼자만 계속 뒤쳐져서 친구들이 기다려주어 무사히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이번 워크캠프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교통수단이었다. 다음날 부터 일을 시작하였는데, 첫 날 식사 및 청소당번이 나여서 일하는 것 오티만 참석한 후 돌아와 숙소일을 한 후 본격적인 일은 그 다음날부터 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프랑스 Bouvesse Quirieu 지역에 역사적인 성터의 무너지는 벽을 허물고 새로이 벽을 쌓는 일이었다. 우선 무너져가는 벽을 곡갱이와 삽을 이용해서 허물고, 새로 쌓아올릴 벽을 위한 지반을 만들고, 돌을 다른 곳에서 캐와서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또 성터에 관광객들이 오기 쉽도록 나무를 잘라 산의 길과 계단을 만들고, 기존에 이끼에 묻혀있던 돌을 깨끗이 닦는 일을 했다. 우선 일 자체가 힘을 많이 요하는 일이어서 체력소모가 많았다. 매일 30분씩 산을 타고 올라가 장비를 챙겨서 일하는 곳까지 운반한 후 돌로 작업하는 일이었다. 40도가 넘는 곳에서 매일 6~7시간씩 일하면서 많이 힘들고 다치고 했지만, 함께 일하는 친구들도 무척이나 열심히 일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일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 지역단체에서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항상 지켜봐주시고, 격려해주시고, 거의 매일같이 저녁식사나 파티에 초대해 주셔서 지역주민들과의 관계가 많아서 좋았다. 물론 언어적 문제에 있어서 내가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해서 처음에는 많이 당황도 하고, 말이 길게 이어지지 못해 사람들을 대하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주위에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 날은 International meal day라고 해서 우리가 직접 각자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지역단체분들께 대접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 때 나는 소고기 주먹밥, 애호박전, 호떡을 준비했다. 워크캠프 참가자 중에서 나만 유일하게 동양인이었고, 대접하는 날 젓가락을 사용하는 나의 모습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다. 또 내가 준비한 음식을 드시고는 계속 Perfect하다는 칭찬을 모든 분들이 해주셔서 너무나도 좋았다. 특히나 내가 음식준비할 때 옆에서 프랑스 요리를 하던 한 친구는 내 음식을 먹고는 자기는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고, 한국인이 되겠다고까지 말하는 데 너무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식사당번일 때도 불고기와 버섯전, 감자전 등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다들 너무 좋아해주고,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가져줘서 뿌듯하기도 하고,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번 워크캠프는 작년에 참가했던 워크캠프와 모든 것이 완전히 다 달랐다. 숙속도 침낭에, 다 함께 오픈 되어있는 공간에서 생활하였고, 일도 훨씬 힘들고, 오랫동안 힘을 많이 썼고, 교통수단이 유일하게 자전거여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자전거가 힘들어서 처음으로 히치하이킹을 시도 해보았고, 그것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또 지역단체분들과 교류가 훨씬 활발해서 프랑스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나인데도, 그분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고, 이삼일에 한번씩 미팅 시간을 통해 워캠 참가자들 모두가 모여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느낀 점, 고칠 점등을 토론하면서 모두의 의견을 맞추어 나간 것이 가장 뜻 깊었다. 미팅을 가질 때마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두번씩 얘기 해야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이것 또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일이 끝난 후 매일 오후시간에 무얼 할지 정하고, 내가 자전거를 못 타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주고, 이끌어 주고, 히치하이킹처럼 다른 방법을 제시해주고 해서 너무나 고맙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이번 워크캠프는 체력적으로는 몹시 힘들고 고된 일들을 많이 했지만 정신적으로 위안을 너무 많이 받았고, 또 친구들과, 지역주민분들과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고, 행복했다. 돌담을 쌓는데 있어서 돌담이 무너지지 않도록 돌을 고르고, 깍고,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 우리가 일하는 시간으로는 부족해서 끝에 일주일동안은 야간 작업을 하러 갔었는데, 그 때는 하고 싶은 사람들만 가는 건데도,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마지막날에는 마침내 돌담을 완성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뿌듯하고 나와 친구들이 해냈다는 것이 너무나도 대견했다. 2주가 아닌 3주라는 시간이 처음엔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었는데, 점점 끝이 다가 올수록 친구들과도 정이 많이 들고, 더 함께 같이 있지 못한다는 게 무척이나 아쉽고, 시간이 아깝기만 했다. 지역주민분들과도 정이 너무 많이들어서 헤어지는 날 다 같이 펑펑 울며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정말이지 이번 워크캠프는 마음으로 너무나도 따뜻해지는 그런 워크캠프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