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용기 내 떠난 최고의 선물
Ísafjarðardjúp: Nature & Fun in the Westfjord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지금 워크캠프를 떠올려보면 가장 생각 나는 문구이다. 교환학생 중에, 워크캠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한국에 있을 때는 도전하기 어려웠던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을 때 사실 고민했었다. 부모님께서도 혼자 가는 것은 위험하지 않느냐는 입장이셨고, 같이 교환학생을 온 다른 친구들은 워크캠프보다는 여행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얘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점에 이끌려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되었고, 조금은 걱정도 되었지만 그런 걱정보다는 들뜬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기다렸던 것 같다.
역시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라는 말처럼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너무 소중하고 값진 추억이였던 것 같다. 우리 팀은 총 9명 이였는데, 팀장과 같이 캠프를 온 한국인 언니 말고는 대부분의 캠퍼들이 내 나이보다 2~3살 어렸다. 처음엔 그 부분이 너무 아쉬웠지만, 하루하루 지내면서 모두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교환학생 때 만난 외국친구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였다. 아무 대가 없이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여서 그랬을까?
캠프 동안, 나에게 변한 것이 있다면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동물에 대한 사랑이다. 아이슬란드는 이름처럼 빙하도 많고 눈 쌓인 산들도 많고, 우리나라와는 다른 새로운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동물들과도 무척이나 친한 나라였다. 처음에 레이캬빅에 갔을 때도, 도둑고양이들이나 떠도는 강아지들도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더 무서워했었다. 캠프장에 갔을때도 어김없이 여러 동물들이 많았다. 주인 아주머니가 키우는 강아지, 여우, 앵무새, 말 등… 처음에는 이주동안 어떻게 생활해야되나 앞이 깜깜했었다. 하지만, 다른 캠퍼들과 주인할머니의 도움으로 마지막에는 너무 친해져 헤어지기 아쉬웠다. 항상 동물만 보면 도망가던 내가 이젠 먼저 부르고, 쓰다듬어 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어떤 것이든 재지 않고 먼저 도전해 보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constraction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간 캠프는 역시 집을 짓는 일이 주를 이루었다. 사실 주어진 일들이 여자가 하기엔 조금 버겁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힘들다는 생각보단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해보자! 하는 다독임과 도전정신들로 2주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왠만한 일에는 지레 겁먹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도전해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외국친구들과의 긴밀한 소통, 소중한 우정을 갖게 되었다. 사실, 교환학생 동안에 외국친구들에 대한 불신, 역시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마음 나눔은 불가능 한 것이였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에게. 워크캠프를 신청할 때도 그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캠프동안 같이 일했던 친구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면서, 내 생각이 얼마나 좁았는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나이 차가 조금만 더 비슷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한 명, 한 명 너무 배울 점 많고 재미있었던 시간이였던 것 같다. 나중에, 뉴욕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얘기도 농담삼아 했지만, 정말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워크캠프는 나에게 긍정적인 생각들을 가져다 준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워크캠프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나는, 한국에 가더라도 꼭 다시 참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갈까 말까 하다가 갔던 그 길이 나에게 너무나 좋은 것들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도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우물쭈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시도해 볼 생각이다.
프랑스인 친구가 우리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지만… 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거기에 대해 나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만난 것 처럼 언젠가 어디에서 분명 다시 만날 거라고 우리는 운명이라고 말했었다. 이렇게 참가보고서를 쓰니깐 우리 캠퍼들 생각이 많이 난다. 언젠가 어디서든 꼭 다시 만나자^^
역시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라는 말처럼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너무 소중하고 값진 추억이였던 것 같다. 우리 팀은 총 9명 이였는데, 팀장과 같이 캠프를 온 한국인 언니 말고는 대부분의 캠퍼들이 내 나이보다 2~3살 어렸다. 처음엔 그 부분이 너무 아쉬웠지만, 하루하루 지내면서 모두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교환학생 때 만난 외국친구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였다. 아무 대가 없이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여서 그랬을까?
캠프 동안, 나에게 변한 것이 있다면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동물에 대한 사랑이다. 아이슬란드는 이름처럼 빙하도 많고 눈 쌓인 산들도 많고, 우리나라와는 다른 새로운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동물들과도 무척이나 친한 나라였다. 처음에 레이캬빅에 갔을 때도, 도둑고양이들이나 떠도는 강아지들도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더 무서워했었다. 캠프장에 갔을때도 어김없이 여러 동물들이 많았다. 주인 아주머니가 키우는 강아지, 여우, 앵무새, 말 등… 처음에는 이주동안 어떻게 생활해야되나 앞이 깜깜했었다. 하지만, 다른 캠퍼들과 주인할머니의 도움으로 마지막에는 너무 친해져 헤어지기 아쉬웠다. 항상 동물만 보면 도망가던 내가 이젠 먼저 부르고, 쓰다듬어 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어떤 것이든 재지 않고 먼저 도전해 보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constraction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간 캠프는 역시 집을 짓는 일이 주를 이루었다. 사실 주어진 일들이 여자가 하기엔 조금 버겁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힘들다는 생각보단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해보자! 하는 다독임과 도전정신들로 2주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왠만한 일에는 지레 겁먹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도전해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외국친구들과의 긴밀한 소통, 소중한 우정을 갖게 되었다. 사실, 교환학생 동안에 외국친구들에 대한 불신, 역시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마음 나눔은 불가능 한 것이였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에게. 워크캠프를 신청할 때도 그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캠프동안 같이 일했던 친구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면서, 내 생각이 얼마나 좁았는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나이 차가 조금만 더 비슷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한 명, 한 명 너무 배울 점 많고 재미있었던 시간이였던 것 같다. 나중에, 뉴욕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얘기도 농담삼아 했지만, 정말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워크캠프는 나에게 긍정적인 생각들을 가져다 준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워크캠프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나는, 한국에 가더라도 꼭 다시 참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갈까 말까 하다가 갔던 그 길이 나에게 너무나 좋은 것들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도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우물쭈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시도해 볼 생각이다.
프랑스인 친구가 우리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지만… 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거기에 대해 나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만난 것 처럼 언젠가 어디에서 분명 다시 만날 거라고 우리는 운명이라고 말했었다. 이렇게 참가보고서를 쓰니깐 우리 캠퍼들 생각이 많이 난다. 언젠가 어디서든 꼭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