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워크캠프, 낯선 곳에서 찾은 연결고리

작성자 류오디아
독일 ICJA14 · ENVI/AGRI/MANU 2014. 08 Teuschnitz

Arnikastadt Teuschnitz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몇 년 전,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몇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워크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들도 잘은 모르는듯 했고, 나도 꽤 오랫동안 그에 대해 잊고 지냈는데 어느날 교내 광고를 통해 워크캠프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다. 해외여행에 가고 싶었던 시기라 해외 봉사활동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 여행을 가는 것이라면, 지역 봉사활동을 하고 오는 것이 더욱 보람있는 일이 아닐까싶었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조금 더 하고, 짐을 더욱 많이 싸게 되는 일이 있어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일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태극기와 한글이 적힌 타투스티커, 한국을 알리기 좋은 엽서와 한국 음식 레시피들을 찾아보았고, 한국의 문화에 대해 설명해주기 위해 주위를 더욱 세심하게 관찰했다. 우리의 문화는 비단 먹거리와 문화유산, k-pop 뿐 아니라 우리의 언어, 행동양식, 인간관계등에도 녹아 있기 마련이고, 나는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미지의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들도 그런 것이었으니까.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우리는 총 12명으로, 독일 리더인 레베카와 레아, 우크라이나에서 온 할랴와 옥산나, 러시아에서 온 아냐와 소피야, 한국에서 온 희정이와 나, 스페인에서 온 마우로와 아나, 홀란드에서 온 타냐와 이탈리아에서 온 마르티나였다. 두 명의 참가자가 더 있었으나 불참했고, 마우로는 우리 그룹 중 청일점이 되었다. 그외에 워크캠프의 매니저였던 올리버와 올리버를 도와주던 그의 동상 알렉스도 주로 같이 일을 했다.
토이슈니츠는 작은 마을로, 현재 10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이전에는 베를린에서도 노동자가 올 정도로 번영했었다고 한다. 별다른 유흥거리가 없어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장년층만이 남는, 어느 나라나 겪는 이촌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토이슈니츠는 아니카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그 일환으로 워크캠프의 봉사자들이 아니카 아카데미가 될 초등학교 앞에 화단을 만드는 것이 이번 프로그램이었다.
소형압축블럭을 부수어 포장을 들어낸 뒤 땅을 파고 정지작업을 한 뒤 식물을 심는 것까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작업을 우리 손으로 직접 했고, 나무를 베어내고 울타리를 만드는 일도 했다. 연못에서 이끼와 수생식물들을 제거하는 일도 했는데, 무척 무겁고 어려운 일이었음에도 올리버가 왜 고작 그런 일 가지고 여러명이 달려드냐고 이야기 해 다함께 항의 아닌 항의를 하기도 했다.
날씨가 무척 추운 와중에도 주변의 크로나크와 밤베르크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밤베르크는 내가 워크캠프 참가 이전에 짧게 다녀온 곳이어서 가이드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행을 갈 때 쯤에는 이미 우리 캠프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진 상태였다. 어떤 기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리더 한 명을 포함한 넷은 크로나크에 다녀온 이후로 밤베르크에 가지 않기로 했고, 다른 리더 한 명과 남은 일곱명은 밤베르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도 찍고, 라우흐 비어도 마셨다.
즐거운 일도 많았으나 그룹이 두 개로 나뉨에 따라 불편한 상황들도 잇따라 이어졌는데, 러시아에서 온 소피야와 나는 그룹 내에서 그림을 제법 잘 그리는 편이어서, 마우로는 벽화를 그리고 싶으니 소피야와 내게 스케치를 그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스케치를 그렸으나, 마우로와 그 그룹이 우리의 스케치를 사용한 일은 없었다. 또한 소피야와 내가 했다면 한나절에 끝날 벽화 작업을 이틀간 몹시 졸렬하게 해놓아서(그들은 자랑스러워 했다), 후에 매니저의 탄식을 듣기도 했다. 마우로와 리더 하나가 캠프 기간중에 연인이 되면서 불편했던 일들도 있었다. 세탁실과 샤워실 키를 가지고 리더가 데이트를 나가는 경우, 남아있는 우리는 몇시간이고 그들을 기다려야 했다. 그뿐 아니라 그 넷은 식사 후 정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우로는 다른 여자아이들이 식사 후 정리를 바로 하지 않는것에 대해 자신은 모두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 후에 함께 정리를 한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그룹과 함께 식사가 끝나자마자 흡연을 하러 가느라 접시조차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고, 언제나 뒷정리를 맡아서 했던 아나와 나는 어이가 없어 분노조차 하지 못했다.
또한 다른 현지인 리더는 일을 하기 싫어해서 매일 핑계를 대고 일은 하지 않고 놀러갈 때에만 꼬박꼬박 참여해서, 남은 일곱명은 자연스레 우리끼리 뭉칠 수 밖에 없었다. 두 개로 나뉘어진 여자 숙소 중 인원이 적은 우리 방(한국-우크라이나)에서 데킬라 파티를 하고, 함께 밤에 산책을 나가 그네를 타는 등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봉사활동 이외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졸작인 벽화를 제외하면, 우리의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제법 그럴듯한 화단이 두 개가 생겼으며, 목가적이면서 아름다운 펜스 역시 얻었다. 비록 엄청나게 눈에 띄는 무언가를 끝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했고, 매니저도, 우리들도 제법 만족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영국과 미국과는 또 다른, 더욱 다양한 문화권(orthodox와 같은)의 친구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며 이렇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한 워크캠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룹의 협력을 위해 개인이 맡아야 할 일들을 각자의 소신에 맡기는 것이 무척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는 대학생활의 조별과제에서부터 증명된 바이나, 그에 대한 이해가 없는 리더들로 구성된 이번 캠프에서는 그룹이 그룹으로서 일을 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관료제일 필요는 없지만, 각자의 능력과 그 한계를 알고 최적의 배치를 자발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워크캠프가 사실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다. 배운 것은 반면교사고, 느낀 것은 실망감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좋은 친구들을 몇 알게 되었고, 그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