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쉼라, 기대 이상의 가르침을 얻다

작성자 최현영
인도 RC-15/14 · SOCI/KIDS 2014. 07 인도 쉼라

Children with Disabilit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사실 나는 내가 워크캠프를 알아보고 이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서 지원한 것은 아니다. 친구가 워크캠프를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권유에 '뭐, 인도 가고 싶기도 하고 봉사도 하면 보람차겠네'하고 특별한 생각없이 지원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장애아동을 도와주는 일이라니, 힘들겠다 생각도 했지만 그만큼 얻어가는 것도 있을 거라 기대하기는 했다. 그러나 워크캠프가 주는 기대감보다 '인도'라는 곳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컸기 때문에 워크캠프에 대해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사전에 준비도 별로 하지않고 마치 그냥 여행 준비하듯이 준비하고 떠났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처음 나를 당황시켰던 건 참가자가 한국인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비자 문제로 직전에 취소했단다. 홍콩에서 한 명이 더 온다고는 하였으나 일주일 후였다. 즉, 홍콩친구는 2주의 워크캠프 기간 중 반 정도만 같이 활동하는 것이다. 외국인 친구들과의 교류를 기대했던 나로썬 좀 실망스러웠다. 두번 째로 날 당황시킨 건 캠프의 내용이 바뀐 것이다. 원래 봉사하기로 한 학교에서 누군가 죽어 한달 간 문을 닫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 다른 학교로 가서 봉사를 대신하기로 하였다. 그래도 봉사 내용은 동일하게 장애아동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지역은 솔란이란 곳에서 쉼라라는 곳으로 바뀌었는데 여름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였다. 어떻게 보면 결과적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된 셈이다.
워크캠프 첫날은 우리의 봉사활동을 직접적으로 주관하는 'RUCHI' 센터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센터 현지인들과 같이 밥도 먹고 대화도 나눴는데 인도에 대해, 그리고 인도인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계기여서 좋았다. 그 후 쉼라로 이동해 약 2주 간 장애인 학교에서 봉사를 하였다. 모든게 새로웠지만, 먼저 쉼라라는 지역 자체도 굉장히 새로웠다. 해발 2400m의 고산지대라 날씨도 시원하고 길도 구불구불하고 집들도 모두 비탈에 세워져 있었다. 또 이곳은 인도의 영국 식민지 시절 '여름 수도'로써 영국풍의 건축물들이 많아 아름답고 신기했다. 평화롭고 활기찬 도시였다.
하지만 역시 '지역'보다 더 좋았던 건 '사람'이었다. 워크캠프가 진행됐던 학교는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였다. 나는 주로 아이들과 놀아주고 몸을 가누는 게 힘든 아이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다. 사실 그냥 정말로 같이 놀기만 했다. 그림 그려주고 게임하고 같이 춤추고. 학교 장애인들의 나이대는 한 4~5살 정도 되보이는 꼬마아이부터 50살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장애인들을 만났을 땐 두려움이 컸다. 나랑 생긴 것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데, 나와 달리 장애까지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2주 동안 지내야 할지 막막했다. 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장애인을 돕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두려움은 사라지고 장애인들과 같이 있는 걸 즐기게 되었다. 나는 주로 우리나라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대의 아이들과 같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굉장히 순수하고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 느껴져 나도 기분이 좋고 아이들에게 정이 갔다.
워크캠프를 하는 기간 동안 특별한 에피소드는 딱히 없었다. 아니, 그냥 매일이 특별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일들은 있었다. 딱 하루, 시니어 반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대충 중고등학교의 나이대부터 50살까지 있는 반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많아 어떻게 해야할지 좀 어려웠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도 다들 순수했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참 배울 점이 많았다. 나에게도 굉장히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다. 특히, 그 중 한명은 자신이 색칠한 그림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림 뒷면에 'To BIHIYA'라고 써주었는데, 'BIHIYA'는 힌디어로 '형제'라는 뜻이란다. 그러면서 나를 계속 'BIHIYA'라고 불렀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다른 나라 사람을 '형제'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와 준게 고맙기도 하고 좀 감동적이었다. 시니어 반에서 비록 하루밖에 안 있었지만 많은걸 배우고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학교의 아이들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그래도 유독 기억에 남는 아이들이 있다. 유난히 나를 좋아하고 따르는 아이가 있었다. 이름이 '아르준'이었는데 첫날부터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항상 내옆에 앉았다. 내가 멀리 있어도 자기 옆자리를 항상 비워놓고 나보고 앉으라고 하였다. 봉사기간 동안 너무 잘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아티'라는 아이도 있었는데 말도 못하고 자기 표현도 제대로 하진 못했지만 항상 보면 끌어안았다. 또 기억에 남는 아이 중 하나는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굉장히 똑똑했던 여자아이다. 장애는 없는 것 같기도 했는데 거의 선생님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8~9살 정도 되보였는데 오히려 선생님을 훈계할 때도 있을 정도로 똘똘하고 리더쉽이 있었다. 그 외에도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아이들 하나하나가 다들 특별했고 착하고 순수했다.
우리 워크캠프의 팀장은 당연히 인도사람이었다. 굉장히 친절하고 유머러스했다. 같이 봉사활동을 한 홍콩 친구 '피비'는 일주일 뒤부터 같이 했는데 밝고 명랑했다. 그래서 그런지 같이 있으면 즐겁고 분위기가 좋았다. 봉사 마지막날 밤에 각자 준비해온 자기나라 음식들을 먹고 얘기도 늦게까지 했는데 정말 즐거웠다. 인도 뿐만 아니라 홍콩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서로 각자 나라의 다른점만 얘기해도 얘기할 거리가 많고 즐거웠다. 지금은 페이스북 친구를 맺어 아직도 가끔 연락을 주고 받기도 한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사실 워크캠프를 통해 배운게 너무 많아 어떻게 써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만 쓰자면, 그들은 'Disable'이 아니라 'Differently Able'이라는 거다. 이 말은 워크캠프 첫날 팀장이 한 말인데, 워크캠프 기간 뿐만 아니라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 말 중 하나이다. 그리고 워크캠프를 하면서 그 말을 느꼈다. 장애인들은 '비정상', '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나랑 '다르게 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나에게 없는 것도 많다. 순수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즐거워 한다. 항상 나와 타인을 구분짓는 우리와 달리 많은 모습이 달라도 그냥 사람 자체로서 함께 한다. 다른 방식으로의 가능성이 그들에겐 더 많은 것같다. 도우러 갔다 오히려 배우는 게 많으니 말이다.
기존에 하려 했던 프로그램에서 변경이 되기도 했고, 생각보다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못 사겼지만 워크캠프는 나에게 즐거운 추억이다. 또 해외에서 해서 그런지 더 새로운 것, 많은 것을 배운 계기가 된 것 같다. 솔직히 워크캠프 모든 기간이 즐거울 수 만은 없다. 생각했던 것과 달라 실망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낮설고 어색하기도 하다. 그래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즐거운 순간과 마찬가지로 다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곳 학교 교장 선생님이 처음 워크캠프를 시작할 때 그랬다. '즐기고 가라'고. 다른 어떤 준비보다 항상 열리고 배우는 자세로, 그리고 항상 즐긴다면 자신이 하는 워크캠프가 가장 즐겁고 보람찬 워크캠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