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잊지 못할 2주간의 기록

작성자 김보람
아이슬란드 SEEDS 013 · ENVI/ CONS 2012. 05 - 2012. 06 Skálanes

Natural heritage in the far East (1: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아이슬란드에서 보낸 시간은 제 인생에서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습니다. 이름 마저도 생소한 아이슬란드, 그 곳에서 2주가 넘는 시간을 보낸 것은 돌이켜보면 큰 행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지내게 된 장소는 수도인 레이카빅과 정반대인, 아이슬란드의 동쪽 끝이었습니다. 캠프 멤버들을 레이카빅에서 만나 캠프 장소로 차를 타고 다같이 가야 했는데,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하루가 꼬박 걸릴 정도로 먼 곳이었습니다. 캠프 측에서 제공하는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레이카빅에서 시작해서 아이슬란드의 아랫쪽을 쭉 따라 이동하게 됐습니다. 가는 길에 커다란 폭포, 빙하 등에 잠시 서서 휴식을 취하면서 풍경을 감상했는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자연 경관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슬란드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자연이 사는 곳에 사람이 얹혀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어느 나라와도 차별화된 자연을 가지고 있는 곳이 아이슬란드였습니다. 폭포 안쪽에서 물을 바라봤을 때 보였던 무지개, 말로만 듣던 빙하가 부서지고 움직이던 그 모습은 정말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동하여 도착한 캠프 장소는 national heritage center로 불릴 정도로 천연 자원이 잘 보존된 곳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어서 피요르드와 바다가 만나는 몹시 아름다운 절경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새를 관찰하러 일부러 그 곳까지 찾아오기도 하고, 최근에는 동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연구 프로그램을 연계하여 진행하기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봉사자들이 한 일은 주로 그 환경을 되살리는 일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해변가에 떠내려온 쓰레기를 줍고 겨우내 땔감을 모으고, 집 뒤에 있는 밭을 일구고 농장의 동물들을 돌보고 나무를 심는 일이 주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몇 일은 근처 도시에 나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는 공공 공원을 조성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어떤 일 하나 익숙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닭이 낳은 알들을 모아왔을 때, 처음으로 드릴을 잡고 울타리를 만들었을 때, 옷에 페인트를 묻혀가며 더러웠던 벽을 새하얗게 만들었던 때 등 모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호스트 아저씨와의 대화도 소중한 재산이었습니다. 나라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닌데 자연을 위해 모든 일을 하고 계셨던 아저씨는 봉사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셔서 식사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여러가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꽃도 하나 없는 곳에 벌을 키우시는 것이 의아해 왜 이런 일을 하시게 됐는지 여쭈어 봤는데, 단순히 “자연을 위해서요”라고 말씀하시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고등학교 때 브라질로 갔던 교환학생 경험이 지질학을 공부하게 이끌었고, 그 뒤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보존하기 위한 일을 하리라 맘을 먹으셨다는 아저씨는 여태껏 누구의 지원도 없이 그저 자연이 이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맘으로 여러가지 일을 해오셨다고 합니다. 나무를 심을 때에도 네모 구획을 지어 질서정렬하게 심지 말라시던 아저씨는, 그것은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며 손사레를 치셨습니다. 줄을 지어 심으면 같은 땅에도 더 많은 나무를 심을 수 있고 일이 더 쉬워짐에도 불구하고, 그냥 마구잡이로 너무 가깝지만 말게 심어달라는 당부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저에게는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힘을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돕자는 말씀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캠프 멤버는 저를 포함하여 5명의 여자였고 리더는 남자 한 명이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을 요하는 일이 많아 가끔은 힘들기도 했지만, 소소하게 수다를 떨며 나무를 심고 밭을 일구는 것은 재밌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어서 학교 얘기와 고민 얘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수 있었습니다. 식사 시간은 워크캠프의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리더를 포함하여 6명이었기 때문에 두명씩 조를 이뤄 하루에 한 끼씩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조인 친구와 오늘 저녁엔 뭘 만들지? 어떤 재료가 냉장고에 있지? 고민하는 것은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기에 요리하는 방법도 다르고 취향도 달라서 이것저것 배울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지금도 아이슬란드를 회상해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일과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맛있는 저녁밥을 먹은 후 차를 마시며 일기를 쓰던 그 시간엔 시간이 멈춘 듯 여유로웠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떄여서 한 번도 캄캄한 밤을 보지 못했고, 한 번 깨면 잠들기도 어려웠지만 그것 마저도 그리울 정도로 아이슬란드의 시간은 저에게 그저 최고로 아름다웠던 2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농장에 있던 개와 산책을 하던 때, 개의 몸을 베개삼아 누워 자던 낮잠, 처음으로 아기 양이 농장으로 오던 날 제가 주는 우유를 쪽쪽 빨아먹던 그 모습, 아기 오리들이 물가에서 모여 놀던 모습 등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찼던 그 곳을 지금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워크캠프 프로그램 중에서 아이슬란드를 선택하고, 그 중에서도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제 인생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만들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저는 이제 마음이 조급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아이슬란드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 곳에서 보냈던, 도시 생활에 익숙한 저에게는 너무나 새로웠던 시간들이 단순히 과거의 좋은 기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곱씹으며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재산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떠나는 날 호스트 아저씨에게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온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