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낯선 곳에서 찾은 행복한 질주
AZIL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여행은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한 도전적인 질주이다. 누구를 만날지, 어떤 상황이 일어날 지 모르기에 두렵고도 설레인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묘미는 동행이다. 한국에서의 경쟁과 경계는 타지라는 명분으로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서로의 무언가를 뺏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공유할 수 있었던 것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 이번 여행은 내게 가장 행복한 여행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을 마친 뒤 국가 간 항공기를 타고 로마에서 프랑스-오를리 공항으로 왔다. La place역의 숙소에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이제 하나의 새로운 여행인 워크캠프에 참석하려 한다. 시작날짜보다 하루 일찍 움직였다. 혹시나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시간적 여유를 갖기로 하였다. 캠프를 찾아가는 길에 쉽진 않았지만 손짓발짓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딪혀가며 내 추측들이 확실해지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최종단계까지 와서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다행히도 나처럼 하루 일찍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큰 배낭을 매고 내 주변을 서성인다. 먼저 말을 건내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알 수 없는 버스를 열심히 찾아보고 기다리다 간신히 알맞은 버스를 찾았고, 이내 버스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이 두 여학생은 자신들을 세우고 우쭐대며 이 날 내 부족한 언어능력과 지식을 비웃고 비난했다. 난 그조차 즐거었다. 시간만 주면 나를 비웃던 그들을 친구로 만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는 비웃을 게 못된다. 나는 한국어에 있어서는 달변가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문화적인 차이는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단순하고도 작은 차이점( a little dot)이라고 생각한다. 개고기 문화를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나폴레옹 군대도 역시 머나 먼 러시아 원정에서 패전하고 돌아오던 길에 자신들을 태워주던 ‘고마운’ 동물을 생존을 위해 먹었다. 우리나라도 보릿고개라는 생사를 넘나드는 가난과 굶주림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오늘 날 그 개고기 문화는 단지 조상들에게 물려받아온 부끄럽지 않은 외국과는 조금 “다른” 문화일 뿐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에 나는 워크캠프 구성원들에게 “타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지도 못하면서 혹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선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만 하려고 하는 것이 더 부끄러운 게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다시 버스에 오른 시점으로 돌아와 한시간 가량 이동하고 미팅포인트인 시골마을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19시이었기에 주변에 사람들이 보였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미리 번역해 둔 문장을 핸드폰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물어물어 두 여학생과 함께 호스텔까지 찾아갔다. 작은 마을의 호스텔 주인이 자상하게 방이 한 개 밖에 없다고 했다. 여학생 둘이 능숙한 영어솜씨로 선수를 쳤다. 침낭도 있으니 조용한 곳을 찾아 홈리스처럼 자도 기분이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워크캠프 리더와 테크니컬 리더가 와서 나를 픽업했다. 워크캠프 숙소로 이동해서 홀로 자기를 원했고, 그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워크캠프는 구성원들이 모두 왔다. 때마침 열린 마을 축제에 다 함께 참석하고 경계는 허물어지고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 축제를 즐겼다. 국가를 막론하고 예상대로 처음엔 남자는 남자들끼리 여자는 여자들끼리 친해졌다. 춤추는 시간이 되자 나는 모두의 손목을 붙잡고 스테이지로 끌어들이며 자연스럽게 남자그룹과 여자그룹 간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줬다. 춤과 노래로 하나가 되고 날이 져물어갔다.
일이 시작됬다. 일의 내용은 하천의 범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하천제방공사와 방치되었던 하천에 자라난 식물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였다. 군대-공병대와 건축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인 나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익숙한 일에 오히려 난 들떴다. 군대에서처럼 작업내용을 능숙하게 읽어내고 나만의 계획을 잘 수립했다. 25살인 나에 비해 17살,18살,19살,20살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거나 막 졸업한 어린 친구들이었다. 일을 잘하는 친구도 있고, 하기 싫어하며 억지로 하는 친구도 있었다. 최대한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며 협력할 수 있도록 했고, 여행 출발 전 못하는척하고 뒤로 빠져있어라던 어머니의 당부도 잊고 솔선수범했다. 군대 갔다 온 한국남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일을 너무 잘하게 생겨서 숨길 수가 없었고, 어린 워크캠프 구성원들의 답답한 작업 스타일에 난 군대 본능이 치밀어 올라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곡갱이와 삽과 기타 연장질을 가르켜주며 작업에 임했다. 작은 에피소드로 곡갱이로 작은 조약돌을 정확히 조준해서 맞춰 산산조각내는 군대쇼를 보여주니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한국사람들의 일상과 코리안 파워를 설명해줄 수 있던 시간이었다. 또한 한국에서의 통상적인 쫓기는 일이 아니었기에 이 곳에서의 일은 즐거웠다.
부엌담당날짜가 있다. 모두들 3주 중 3일은 키친 팀이 된다. 나는 한국에서 어렵게 공수해 온 2.4kg용 불고기 소스를 꺼냈다. Beef 1.5kg을 차돌박이처럼 슬라이스로 잘라서 사오라고 리더에게 요구했더니 스테이크 고기를 사왔다. 고기를 칼자루로 다지고 한국요리는 정성이라고 중얼거리며 불고기 소스가 잘 배도록 칼집을 내고 육회처럼 썰어서 파프리카와 양파 당근과 버섯으로 잘 볶아줬다. 첫 번째 요리로 모두에게 만화책에서 나오는 감동을 선사하였다. 나조차 몰랐던 나의 숨겨진 실력에 놀랐다. 케이블에서 방영했던 에드워드 권의 요리프로그램 챙겨보길 잘했다. 내가 선창으로 “Everybody say PERPECT”라고 외치자 정말 모두들 후창으로 “PERPECT”를 외쳐주었다. 내가 먹었는데도 그 정도로 맛있었다. 잊고 싶어도 못 잊을 날이다.
인종적인 차별과 같은 종류의 문제가 있었다. 조그맣던 이탈리아 여학생은 네팔계열의 인디언 혼혈아인데, 처음 내가 만났던 버스정류장 체코 여학생 둘은 이탈리아-네팔 혼혈 여학생이 검은 피부라며 알 수 없는 자기네 언어로 비웃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어눌한 언어를 비웃었다. 눈빛 몇 번 날려주니까 앞에서는 못하더니 지네들끼리 한다. 내가 화려한 요리실력과 완벽한 작업능력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니, 슬슬 내가 아닌 다른 비난할 대상을 찾더니 결국엔 불쌍한 네팔 여학생이 타겟이 되었다. 그런 종류의 여학생들이었다. 내 시점에서 상황을 전반적으로 볼 때 체코 여성 둘은 자존심 때문에 먼저 다가오는 타입이 아니었고, 도도할 이유가 없는데도 도도했고, 그렇기에 외로워했다. 모두가 친구가 되자 그들은 더 심해졌다. 마치 자기들을 봐달라는 양 허우적댔다. 모두가 모인 미팅시간에 이 캠프가 지루하다며 외로운 티를 냈고, 그 이후로 슬슬 갈등이 와해되고 모두들 경계를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자존심을 굽힐 줄 알고, 먼저 손 내밀 줄 아는 성숙함이 문화적인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호수, 바다, 와인농장, 주변도시, 주변 유적지를 자주갔다. 오전7:30-12:30까지 일하고 점심을 먹고나면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여가를 즐겼다. 정말 와인농장은 지겹게 갔다. 농장주들의 자기자랑이 끝나면 와인 시음을 하곤 했다. 또 물가에도 자주 갔다. 호수에 자주 갔다. 수영복을 필수로 준비하길 바란다. 한국의 바다보다 운치있게 여름의 물을 즐겼다. 또 한가지 수영을 잘 못한다면 물을 조심하길 바란다. 물이 생각보다 깊다.
마지막 날을 향한다. 모두들 감성이 충만해진다.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스타디움은 준비해두었던 어두운 장소를 선물해주었고, 조금은 축축했지만 푹신한 ‘잔디’매트 위에 누워 밤하늘에 가득했던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와 함께 나도 넘쳐 흘러내렸다. 불어오는 바람들의 노래가 너무 신선했다. 심심했다며 장난을 거는 꼬마개미들은 우리를 질투하나보다. 이 모두가 우리 모두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느낌이었고, 완벽한 밤을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행복함이 가득했던 미소가 너무나도 완벽했기에,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함께 했던 모두가 어디에서든 행복한 현재를 보내고 있길 바란다.
PS : 마지막 날 열차 역에서 버스정류장 체코 여학생 중 하나였던 도미니카는 내게 첫 날 너무 미안했다며 사과를 하고, 내가 최고였다고 속사이며 엽서를 건내줬다.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을 마친 뒤 국가 간 항공기를 타고 로마에서 프랑스-오를리 공항으로 왔다. La place역의 숙소에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이제 하나의 새로운 여행인 워크캠프에 참석하려 한다. 시작날짜보다 하루 일찍 움직였다. 혹시나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시간적 여유를 갖기로 하였다. 캠프를 찾아가는 길에 쉽진 않았지만 손짓발짓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딪혀가며 내 추측들이 확실해지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최종단계까지 와서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다행히도 나처럼 하루 일찍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큰 배낭을 매고 내 주변을 서성인다. 먼저 말을 건내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알 수 없는 버스를 열심히 찾아보고 기다리다 간신히 알맞은 버스를 찾았고, 이내 버스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이 두 여학생은 자신들을 세우고 우쭐대며 이 날 내 부족한 언어능력과 지식을 비웃고 비난했다. 난 그조차 즐거었다. 시간만 주면 나를 비웃던 그들을 친구로 만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는 비웃을 게 못된다. 나는 한국어에 있어서는 달변가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문화적인 차이는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단순하고도 작은 차이점( a little dot)이라고 생각한다. 개고기 문화를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나폴레옹 군대도 역시 머나 먼 러시아 원정에서 패전하고 돌아오던 길에 자신들을 태워주던 ‘고마운’ 동물을 생존을 위해 먹었다. 우리나라도 보릿고개라는 생사를 넘나드는 가난과 굶주림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오늘 날 그 개고기 문화는 단지 조상들에게 물려받아온 부끄럽지 않은 외국과는 조금 “다른” 문화일 뿐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에 나는 워크캠프 구성원들에게 “타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지도 못하면서 혹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선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만 하려고 하는 것이 더 부끄러운 게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다시 버스에 오른 시점으로 돌아와 한시간 가량 이동하고 미팅포인트인 시골마을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19시이었기에 주변에 사람들이 보였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미리 번역해 둔 문장을 핸드폰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물어물어 두 여학생과 함께 호스텔까지 찾아갔다. 작은 마을의 호스텔 주인이 자상하게 방이 한 개 밖에 없다고 했다. 여학생 둘이 능숙한 영어솜씨로 선수를 쳤다. 침낭도 있으니 조용한 곳을 찾아 홈리스처럼 자도 기분이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워크캠프 리더와 테크니컬 리더가 와서 나를 픽업했다. 워크캠프 숙소로 이동해서 홀로 자기를 원했고, 그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워크캠프는 구성원들이 모두 왔다. 때마침 열린 마을 축제에 다 함께 참석하고 경계는 허물어지고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 축제를 즐겼다. 국가를 막론하고 예상대로 처음엔 남자는 남자들끼리 여자는 여자들끼리 친해졌다. 춤추는 시간이 되자 나는 모두의 손목을 붙잡고 스테이지로 끌어들이며 자연스럽게 남자그룹과 여자그룹 간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줬다. 춤과 노래로 하나가 되고 날이 져물어갔다.
일이 시작됬다. 일의 내용은 하천의 범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하천제방공사와 방치되었던 하천에 자라난 식물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였다. 군대-공병대와 건축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인 나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익숙한 일에 오히려 난 들떴다. 군대에서처럼 작업내용을 능숙하게 읽어내고 나만의 계획을 잘 수립했다. 25살인 나에 비해 17살,18살,19살,20살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거나 막 졸업한 어린 친구들이었다. 일을 잘하는 친구도 있고, 하기 싫어하며 억지로 하는 친구도 있었다. 최대한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며 협력할 수 있도록 했고, 여행 출발 전 못하는척하고 뒤로 빠져있어라던 어머니의 당부도 잊고 솔선수범했다. 군대 갔다 온 한국남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일을 너무 잘하게 생겨서 숨길 수가 없었고, 어린 워크캠프 구성원들의 답답한 작업 스타일에 난 군대 본능이 치밀어 올라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곡갱이와 삽과 기타 연장질을 가르켜주며 작업에 임했다. 작은 에피소드로 곡갱이로 작은 조약돌을 정확히 조준해서 맞춰 산산조각내는 군대쇼를 보여주니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한국사람들의 일상과 코리안 파워를 설명해줄 수 있던 시간이었다. 또한 한국에서의 통상적인 쫓기는 일이 아니었기에 이 곳에서의 일은 즐거웠다.
부엌담당날짜가 있다. 모두들 3주 중 3일은 키친 팀이 된다. 나는 한국에서 어렵게 공수해 온 2.4kg용 불고기 소스를 꺼냈다. Beef 1.5kg을 차돌박이처럼 슬라이스로 잘라서 사오라고 리더에게 요구했더니 스테이크 고기를 사왔다. 고기를 칼자루로 다지고 한국요리는 정성이라고 중얼거리며 불고기 소스가 잘 배도록 칼집을 내고 육회처럼 썰어서 파프리카와 양파 당근과 버섯으로 잘 볶아줬다. 첫 번째 요리로 모두에게 만화책에서 나오는 감동을 선사하였다. 나조차 몰랐던 나의 숨겨진 실력에 놀랐다. 케이블에서 방영했던 에드워드 권의 요리프로그램 챙겨보길 잘했다. 내가 선창으로 “Everybody say PERPECT”라고 외치자 정말 모두들 후창으로 “PERPECT”를 외쳐주었다. 내가 먹었는데도 그 정도로 맛있었다. 잊고 싶어도 못 잊을 날이다.
인종적인 차별과 같은 종류의 문제가 있었다. 조그맣던 이탈리아 여학생은 네팔계열의 인디언 혼혈아인데, 처음 내가 만났던 버스정류장 체코 여학생 둘은 이탈리아-네팔 혼혈 여학생이 검은 피부라며 알 수 없는 자기네 언어로 비웃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어눌한 언어를 비웃었다. 눈빛 몇 번 날려주니까 앞에서는 못하더니 지네들끼리 한다. 내가 화려한 요리실력과 완벽한 작업능력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니, 슬슬 내가 아닌 다른 비난할 대상을 찾더니 결국엔 불쌍한 네팔 여학생이 타겟이 되었다. 그런 종류의 여학생들이었다. 내 시점에서 상황을 전반적으로 볼 때 체코 여성 둘은 자존심 때문에 먼저 다가오는 타입이 아니었고, 도도할 이유가 없는데도 도도했고, 그렇기에 외로워했다. 모두가 친구가 되자 그들은 더 심해졌다. 마치 자기들을 봐달라는 양 허우적댔다. 모두가 모인 미팅시간에 이 캠프가 지루하다며 외로운 티를 냈고, 그 이후로 슬슬 갈등이 와해되고 모두들 경계를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자존심을 굽힐 줄 알고, 먼저 손 내밀 줄 아는 성숙함이 문화적인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호수, 바다, 와인농장, 주변도시, 주변 유적지를 자주갔다. 오전7:30-12:30까지 일하고 점심을 먹고나면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여가를 즐겼다. 정말 와인농장은 지겹게 갔다. 농장주들의 자기자랑이 끝나면 와인 시음을 하곤 했다. 또 물가에도 자주 갔다. 호수에 자주 갔다. 수영복을 필수로 준비하길 바란다. 한국의 바다보다 운치있게 여름의 물을 즐겼다. 또 한가지 수영을 잘 못한다면 물을 조심하길 바란다. 물이 생각보다 깊다.
마지막 날을 향한다. 모두들 감성이 충만해진다.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스타디움은 준비해두었던 어두운 장소를 선물해주었고, 조금은 축축했지만 푹신한 ‘잔디’매트 위에 누워 밤하늘에 가득했던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와 함께 나도 넘쳐 흘러내렸다. 불어오는 바람들의 노래가 너무 신선했다. 심심했다며 장난을 거는 꼬마개미들은 우리를 질투하나보다. 이 모두가 우리 모두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느낌이었고, 완벽한 밤을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행복함이 가득했던 미소가 너무나도 완벽했기에,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함께 했던 모두가 어디에서든 행복한 현재를 보내고 있길 바란다.
PS : 마지막 날 열차 역에서 버스정류장 체코 여학생 중 하나였던 도미니카는 내게 첫 날 너무 미안했다며 사과를 하고, 내가 최고였다고 속사이며 엽서를 건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