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땀과 짜증과 낭만의 기차여행
NARBONNAIS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파리의 기차역. 조금만 늦어도 기차를 탈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어 미리 도착했지만 마음이 콩닥콩닥. 전광판, 전광판이 어딨나… 헉! 전광판이 없다. 인포에 표를 디밀고 물었다. 뭐라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없는 이야기. 짜증스런 기다리라는 말만 이해했다. 기차 출발 시간 20분전이 되어서야 플랫폼 안내가 뜨고, 사람들이 개떼처럼 몰려간다. 이런 #@#^$$%*$#$!@$!@!!!!!!!!! 기차를 타고자 하는 승객들의 짐이 장난이 아니고, 나도 짐이 장난이 아니다. 이번에는 열차 호수가 안 보인다. 역무원에게 2번이나 물어서 가까스로 기차에 올랐다.
프랑스 사람들 정말 담배 많이 핀다. 열차 출발하는 순간까지 문에 매달려 담배를 피고, 정차하는 역에서 10분이라도 정차한다 하면 다들 몰려나간다. 꽁초는 아무데나 버린다. 헐… 선진국이라는 기대는 여기서 그 꽁초들과 함께 버렸어야 했다.
기차가 안 간다. 내 좌석 근처에 영어를 사용하는 한 가족이 있었는데, 아줌마가 기차가 안 간다며 난리이다. 안내 방송은 도통 불어 뿐이고. 기차는 계속 출발하지 않고 있다. 노란 머리 아줌마가 더 난리 법석을 피운다.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는다. 1시간이 지나 갑자기 내 옆자리에 앉은 아이를 포함 모든 사람들이 썰물이 밀려가듯 기차에서 빠져 나간다. 노란 머리 아줌마도 무슨 일이냐 난리이지만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는다. 그 아줌마가 하도 호들갑을 떨어 오히려 나는 처연히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옆 플랫폼에 정차해 있던 열차로 자연스럽게 옮겨 탔다. 여기까지 영어 안내는 전혀 없었고, 주변 사람들 또한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도와주지 않았다. 미팅 시간보다 1시간이 늦었지만 프랑스인 캠프 리더들의 반응은 ‘프랑스인데 늘 그렇지, 당연하지’ 하는 반응이다. 우리 나라 같으면 승객들이 항의하고 뉴스에도 나왔을 텐데.
도착해서 보니 다들 캐리어를 끌고 있다. 인포싯에는 캐리어 가져오지 말라고 했는데. 난 아이슬란드 짐까지 싸매고 오느라 죽을 뻔 했단 말이다. 2번의 워크 캠프 기간 동안 사용할 간장, 고추장, 참기름, 기념품으로 줄 쇠 젓가락까지 얼마나 무거웠는지 알어? 황당했지만 참가자들과 첫 만남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캠프 리더가 끌고 온 렌터카가 현대차인걸 보고 기분을 가라앉혔다. 참가자 중 한국 아이가 있다. 나랑 이름이 같다. 다른 참가자들도 신기해 했다.
여기가 우리가 묵었던 숙소이다. 요트 클럽의 게스트 하우스! 인포싯에는 텐트나 바지선이라 해서 살짝 걱정했는데, 번듯한 숙소를 보니 완전 좋았다. 바로 앞이 바다는 아니고 salty lake 이다. 물은 바다만큼 짜다.
도착 날은 금요일. 도착 날은 원래 일하지 않는데다 다음 날이 주말. 3일을 연속으로 놀게 되었다 기뻐했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가능한 이런 스케줄을 피하길 바란다. 일하면서 더 빨리 친해지는데 3일 내내 어색함이 가득했다. 토요일이라 애들 대부분 12시까지 늦잠 자고. 프랑스보다 한국은 7시간 빠르기에 일찍 일어난 나는 오전 내내 심심했다. 아래 사진은 우리 도착 두째 날 한 마을 파티 앞에서. 어색어색. 나중에야 그 아래 사진처럼 되었지만 처음 3일은 정말 심심하고 어색했다.
그리고 그 날 마을 파티의 한 장면.
어색했지만 마음은 편안하고 설렜다.
아래 사진은 우리가 일했던 곳이다. 평온하게 보이지만 늪이다. 왼쪽은 짠물이고 오른쪽은 민물. 이 곳에만 서식하는 특이한 새를 보호하기 위해, 짠물이 민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작은 댐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였다. 2주 동안 일하면서 모기한테 100군데는 물렸다. 모기 크림에 스프레이에 소용이 없었다. 그늘도 없고, 화장실 당연히 없다. 물론 수풀에 들어가 일을 보면 되지만, 모기 밭에 엉덩이를 까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생리까지 터져 처음 3일은 여자인 것이 너무 싫었다. 일하는 내내 화장실 가고 싶을까 봐 너무 두려웠다. 둘러보니 나만 걱정하고 있는 듯 했다. 헉! 나이 먹고 뭔가를 한다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건가? 순간 찔끔했다.
아래 사진은 프랑스 신문에 난 사진이다. 우리 매스컴 탔다.
사실 참 대단한 일이다. 타국에 와서 우연히 참가한 봉사 활동으로 신문에까지 나고.
그러나!
왼쪽의 프랑스 아이는 풀알러지가 있다며 일에서 제외되었다. 여기 왜 온 거야! 숙소에서도 거의 한 일이 없다. 영어도 못한다. 보시다시피 2주 동안 공짜 바캉스를 즐기다 돌아갔다. 오른쪽은 참가 요강과 맞지 않는 17세 참가자이다. 심하게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게다가 애 같은 행동에 어쩔 때는 황당한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어쩔 때는 매우 기분이 나쁘다. 내가 점심을 담당한 날이었다. 가지 무침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렸다. 일하러 가서도 웃고 떠들고 놀았다. 캠프 리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늪에서 5시간 내내 삽질하다 마치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6명의 프랑스인 중 단 한 명만이 열심히 일하고 있고, 스페인 아이들도 슬슬 딴청을 피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17살 아니샤의 침대이다. 바로 옆 침대였는데 오죽하면 사진까지 찍었을까! 첫 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여기 마음에 안 들고, 애들이 영어만 쓴다면서 징징댔다. 여기 공용어 영어거든!!! 게다가 네가 맨날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그나마 영어를 썼던 애들까지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고 있잖아!!!!! 첫날부터 침대 주변을 엉망으로 하고 살더니,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이 방은 도저히 냄새 나고 지저분해서 있을 수 없다며 옆 방으로 옮겨 갔다. 나를 포함하여 같은 방을 썼던 4명은 헐~ 했다.
오전 7시부터 12시까지 일하고 오후에는 여기저기 참 많이 돌아다녔다. 그 점은 좋았다. 하지만 캠프 리더는 부랴부랴 도착해서 관광투어에 우리를 밀어 넣기 바빴다. 땡볕에 엄청 걸었던 것만 기억난다. 프랑스 남부 지방은 잘못된 시설물로 민물에 바다 물이 유입되면서 나무가 많지 않다. 있어도 키가 작다. 즉 그늘이 없다. 정말 땡볕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불어 설명을 들으며 끌려 다니다가, 이거 언제 끝나냐 하면 모른단다. 아, 정말 ㅜ.ㅠ
바닷가에서도 땡볕에 누워있는다. 이거 피부에 큰 죄를 짓는 거라고!!!
한국에서 마스크 팩 시트를 가져갔다. 내가 가져간 한국 제품 중에 가장 큰 환영을 받았다.
캠프가 끝날 무렵, 나는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이 French people, French people 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지 알 수 있을 듯 했다. 숙소에도 모기가 많았지만 방충망이 없었다. 원래 모기가 없는 지방인가 했다. 일반 가정에는 있겠지 했다. 방충망을 안단다. 그래도 방충망이 대개 없다. 그냥 스프레이 뿌린다. 아래 사진은 소방 헬리콥터 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2주 동안 2번이나 산불이 났다. 담배꽁초 때문이란다. 헉! 산에서 담배 핀단 말야? 그렇다면서 한 프랑스 남자애가 무슨 문제냐는 듯 산행 중에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러고는 소방 헬리콥터가 날아오면 저거 보라면서 좋아한다. 내가 운이 정말 없게도 정말 그런 아이들만 만났단 말인가?
아래 사진 속의 아주머니는 그나마 프랑스에 쌓인 감정을 조금 달래주신 분이다. 회 좋아한단 말에 시장에 가서 생선 사다가 회 떠 주시고, 거의 마지막 날까지 이곳의 와인이 유명하다던데 아직 못 먹어봤다 하니 와인도 가져가 주셨다. 특별히 좋은 와인이라 가져오셨는데 프랑스와 스페인 아이들의 반응은 “맥주는 없어?” 였다.
한번은 다른 캠프 사람들이 우리 캠프지에 놀러 와서는 자고 간다고 머물렀다. 다음 날 아침 9시쯤, 다른 캠프 사람들은 가져온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 캠프 쪽 아이들은 나와 독일의 타냐, 우크라이나의 다샤를 빼고는 캠프 리더까지 12시가 넘어서까지 늦잠을 잤다. 다른 캠프에서 온 ‘손님’ 들은 할 일도 없고, 주변 지리도 몰라 멀뚱멀뚱… 보다 못한 내가 산책을 가자고 하니 좋다고 따라 나섰다. 12시쯤 다시 캠프지로 돌아와 자기네 숙소로 돌아간다 하니, 그제서야 눈 비비고 일어난 우리 캠프 리더 2명은 잘 가라 이야기하고는 다시 하품하고 있다. 배웅도 나와, 타냐와 다샤가 했다. 도대체 왜 부른 거야??
즐거운 경험은 결코 아니었지만 프랑스 사람에 대해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캠프가 없었다면 지금도 ‘빠뤼~ 낭만의 프랑스~’ 하면서 알롱제와 크로아상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 나라의 경쟁력을 볼 수도 있었다. 유럽의 경제 위기가 그냥 온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프랑스 사람이 어떻고, 스페인, 이탈리아 사람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정말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를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면, 공용어가 영어라 하더라도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면 가지 말 것, 선진국이라 절대 기대하지 말 것, 불만 있으면 모두 다 이야기 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워크 캠프가 끝난 후 ‘프랑스’ 하면 귀를 막았지만, 어쩌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프랑스 워크 캠프에 나중에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 하지만 캠프 기간 중 만난 또 다른 워크 캠프에서는 총 3주간 진행되는 캠프 기간 동안 전체 인원의 반이 일주일 만에 리더들과의 마찰로 중도에 나갔고, 캠프 기간이 끝나기 전에 모든 참가자들이 그만두었으니 내가 내린 결론은 그리 성급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워크 캠프에 대한 엄청난 실망감으로 다음 아이슬란드 행을 포기할까도 정말 고민했다. 그랬으면 정말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프랑스를 가고자 하는 참가자들에게 프랑스가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절대 버리고 참가하라 말해주고 싶다.
프랑스 사람들 정말 담배 많이 핀다. 열차 출발하는 순간까지 문에 매달려 담배를 피고, 정차하는 역에서 10분이라도 정차한다 하면 다들 몰려나간다. 꽁초는 아무데나 버린다. 헐… 선진국이라는 기대는 여기서 그 꽁초들과 함께 버렸어야 했다.
기차가 안 간다. 내 좌석 근처에 영어를 사용하는 한 가족이 있었는데, 아줌마가 기차가 안 간다며 난리이다. 안내 방송은 도통 불어 뿐이고. 기차는 계속 출발하지 않고 있다. 노란 머리 아줌마가 더 난리 법석을 피운다.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는다. 1시간이 지나 갑자기 내 옆자리에 앉은 아이를 포함 모든 사람들이 썰물이 밀려가듯 기차에서 빠져 나간다. 노란 머리 아줌마도 무슨 일이냐 난리이지만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는다. 그 아줌마가 하도 호들갑을 떨어 오히려 나는 처연히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옆 플랫폼에 정차해 있던 열차로 자연스럽게 옮겨 탔다. 여기까지 영어 안내는 전혀 없었고, 주변 사람들 또한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도와주지 않았다. 미팅 시간보다 1시간이 늦었지만 프랑스인 캠프 리더들의 반응은 ‘프랑스인데 늘 그렇지, 당연하지’ 하는 반응이다. 우리 나라 같으면 승객들이 항의하고 뉴스에도 나왔을 텐데.
도착해서 보니 다들 캐리어를 끌고 있다. 인포싯에는 캐리어 가져오지 말라고 했는데. 난 아이슬란드 짐까지 싸매고 오느라 죽을 뻔 했단 말이다. 2번의 워크 캠프 기간 동안 사용할 간장, 고추장, 참기름, 기념품으로 줄 쇠 젓가락까지 얼마나 무거웠는지 알어? 황당했지만 참가자들과 첫 만남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캠프 리더가 끌고 온 렌터카가 현대차인걸 보고 기분을 가라앉혔다. 참가자 중 한국 아이가 있다. 나랑 이름이 같다. 다른 참가자들도 신기해 했다.
여기가 우리가 묵었던 숙소이다. 요트 클럽의 게스트 하우스! 인포싯에는 텐트나 바지선이라 해서 살짝 걱정했는데, 번듯한 숙소를 보니 완전 좋았다. 바로 앞이 바다는 아니고 salty lake 이다. 물은 바다만큼 짜다.
도착 날은 금요일. 도착 날은 원래 일하지 않는데다 다음 날이 주말. 3일을 연속으로 놀게 되었다 기뻐했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가능한 이런 스케줄을 피하길 바란다. 일하면서 더 빨리 친해지는데 3일 내내 어색함이 가득했다. 토요일이라 애들 대부분 12시까지 늦잠 자고. 프랑스보다 한국은 7시간 빠르기에 일찍 일어난 나는 오전 내내 심심했다. 아래 사진은 우리 도착 두째 날 한 마을 파티 앞에서. 어색어색. 나중에야 그 아래 사진처럼 되었지만 처음 3일은 정말 심심하고 어색했다.
그리고 그 날 마을 파티의 한 장면.
어색했지만 마음은 편안하고 설렜다.
아래 사진은 우리가 일했던 곳이다. 평온하게 보이지만 늪이다. 왼쪽은 짠물이고 오른쪽은 민물. 이 곳에만 서식하는 특이한 새를 보호하기 위해, 짠물이 민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작은 댐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였다. 2주 동안 일하면서 모기한테 100군데는 물렸다. 모기 크림에 스프레이에 소용이 없었다. 그늘도 없고, 화장실 당연히 없다. 물론 수풀에 들어가 일을 보면 되지만, 모기 밭에 엉덩이를 까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생리까지 터져 처음 3일은 여자인 것이 너무 싫었다. 일하는 내내 화장실 가고 싶을까 봐 너무 두려웠다. 둘러보니 나만 걱정하고 있는 듯 했다. 헉! 나이 먹고 뭔가를 한다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건가? 순간 찔끔했다.
아래 사진은 프랑스 신문에 난 사진이다. 우리 매스컴 탔다.
사실 참 대단한 일이다. 타국에 와서 우연히 참가한 봉사 활동으로 신문에까지 나고.
그러나!
왼쪽의 프랑스 아이는 풀알러지가 있다며 일에서 제외되었다. 여기 왜 온 거야! 숙소에서도 거의 한 일이 없다. 영어도 못한다. 보시다시피 2주 동안 공짜 바캉스를 즐기다 돌아갔다. 오른쪽은 참가 요강과 맞지 않는 17세 참가자이다. 심하게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게다가 애 같은 행동에 어쩔 때는 황당한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어쩔 때는 매우 기분이 나쁘다. 내가 점심을 담당한 날이었다. 가지 무침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렸다. 일하러 가서도 웃고 떠들고 놀았다. 캠프 리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늪에서 5시간 내내 삽질하다 마치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6명의 프랑스인 중 단 한 명만이 열심히 일하고 있고, 스페인 아이들도 슬슬 딴청을 피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17살 아니샤의 침대이다. 바로 옆 침대였는데 오죽하면 사진까지 찍었을까! 첫 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여기 마음에 안 들고, 애들이 영어만 쓴다면서 징징댔다. 여기 공용어 영어거든!!! 게다가 네가 맨날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그나마 영어를 썼던 애들까지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고 있잖아!!!!! 첫날부터 침대 주변을 엉망으로 하고 살더니,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이 방은 도저히 냄새 나고 지저분해서 있을 수 없다며 옆 방으로 옮겨 갔다. 나를 포함하여 같은 방을 썼던 4명은 헐~ 했다.
오전 7시부터 12시까지 일하고 오후에는 여기저기 참 많이 돌아다녔다. 그 점은 좋았다. 하지만 캠프 리더는 부랴부랴 도착해서 관광투어에 우리를 밀어 넣기 바빴다. 땡볕에 엄청 걸었던 것만 기억난다. 프랑스 남부 지방은 잘못된 시설물로 민물에 바다 물이 유입되면서 나무가 많지 않다. 있어도 키가 작다. 즉 그늘이 없다. 정말 땡볕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불어 설명을 들으며 끌려 다니다가, 이거 언제 끝나냐 하면 모른단다. 아, 정말 ㅜ.ㅠ
바닷가에서도 땡볕에 누워있는다. 이거 피부에 큰 죄를 짓는 거라고!!!
한국에서 마스크 팩 시트를 가져갔다. 내가 가져간 한국 제품 중에 가장 큰 환영을 받았다.
캠프가 끝날 무렵, 나는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이 French people, French people 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지 알 수 있을 듯 했다. 숙소에도 모기가 많았지만 방충망이 없었다. 원래 모기가 없는 지방인가 했다. 일반 가정에는 있겠지 했다. 방충망을 안단다. 그래도 방충망이 대개 없다. 그냥 스프레이 뿌린다. 아래 사진은 소방 헬리콥터 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2주 동안 2번이나 산불이 났다. 담배꽁초 때문이란다. 헉! 산에서 담배 핀단 말야? 그렇다면서 한 프랑스 남자애가 무슨 문제냐는 듯 산행 중에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러고는 소방 헬리콥터가 날아오면 저거 보라면서 좋아한다. 내가 운이 정말 없게도 정말 그런 아이들만 만났단 말인가?
아래 사진 속의 아주머니는 그나마 프랑스에 쌓인 감정을 조금 달래주신 분이다. 회 좋아한단 말에 시장에 가서 생선 사다가 회 떠 주시고, 거의 마지막 날까지 이곳의 와인이 유명하다던데 아직 못 먹어봤다 하니 와인도 가져가 주셨다. 특별히 좋은 와인이라 가져오셨는데 프랑스와 스페인 아이들의 반응은 “맥주는 없어?” 였다.
한번은 다른 캠프 사람들이 우리 캠프지에 놀러 와서는 자고 간다고 머물렀다. 다음 날 아침 9시쯤, 다른 캠프 사람들은 가져온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 캠프 쪽 아이들은 나와 독일의 타냐, 우크라이나의 다샤를 빼고는 캠프 리더까지 12시가 넘어서까지 늦잠을 잤다. 다른 캠프에서 온 ‘손님’ 들은 할 일도 없고, 주변 지리도 몰라 멀뚱멀뚱… 보다 못한 내가 산책을 가자고 하니 좋다고 따라 나섰다. 12시쯤 다시 캠프지로 돌아와 자기네 숙소로 돌아간다 하니, 그제서야 눈 비비고 일어난 우리 캠프 리더 2명은 잘 가라 이야기하고는 다시 하품하고 있다. 배웅도 나와, 타냐와 다샤가 했다. 도대체 왜 부른 거야??
즐거운 경험은 결코 아니었지만 프랑스 사람에 대해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캠프가 없었다면 지금도 ‘빠뤼~ 낭만의 프랑스~’ 하면서 알롱제와 크로아상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 나라의 경쟁력을 볼 수도 있었다. 유럽의 경제 위기가 그냥 온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프랑스 사람이 어떻고, 스페인, 이탈리아 사람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정말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를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면, 공용어가 영어라 하더라도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면 가지 말 것, 선진국이라 절대 기대하지 말 것, 불만 있으면 모두 다 이야기 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워크 캠프가 끝난 후 ‘프랑스’ 하면 귀를 막았지만, 어쩌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프랑스 워크 캠프에 나중에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 하지만 캠프 기간 중 만난 또 다른 워크 캠프에서는 총 3주간 진행되는 캠프 기간 동안 전체 인원의 반이 일주일 만에 리더들과의 마찰로 중도에 나갔고, 캠프 기간이 끝나기 전에 모든 참가자들이 그만두었으니 내가 내린 결론은 그리 성급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워크 캠프에 대한 엄청난 실망감으로 다음 아이슬란드 행을 포기할까도 정말 고민했다. 그랬으면 정말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프랑스를 가고자 하는 참가자들에게 프랑스가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절대 버리고 참가하라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