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고스버그, 다름 속에서 찾은 같음 낯선 곳에서 만난 열
Gossberg 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마지막 학기를 그 동안 바랬던 직종에서 인턴으로 보냈지만 맞지 않는 일임을 깨달아 후회와 막막함을 느꼈었어요. 워크캠프는 이전부터 봉사를 해보고 싶었던 데다 복잡한 시기를 보내면서 계기가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도피'라고 해두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턴도 못 그만두고 인생의 전환점도 못 찾고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내겠구나 싶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뒤늦게 방황하는 저를 만류했지만 부모님만은 별 말씀 없이 믿고 보내주셔서 감사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촉박하게 준비를 하는 바람에 제게 친숙한 곳을 가려고 했습니다. 예전에 어학연수를 했던 영국, 혼자 여행하며 꼭 다시 와야겠다 다짐했던 아이슬란드, 친척언니들이 살고 있는 독일 3개국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으려고 비자나 추가 참가비용이 없고 항공권이 비싸지 않은 캠프로 후보를 좁혔고, 친척언니들을 오랜만에 볼 겸 라이프치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스버그로 정하게 됐어요. 때문에 원래 관심사인 Festival 이나 Art와는 거리가 있는 캠프에 가게 되었죠.
촉박하게 준비를 하는 바람에 제게 친숙한 곳을 가려고 했습니다. 예전에 어학연수를 했던 영국, 혼자 여행하며 꼭 다시 와야겠다 다짐했던 아이슬란드, 친척언니들이 살고 있는 독일 3개국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으려고 비자나 추가 참가비용이 없고 항공권이 비싸지 않은 캠프로 후보를 좁혔고, 친척언니들을 오랜만에 볼 겸 라이프치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스버그로 정하게 됐어요. 때문에 원래 관심사인 Festival 이나 Art와는 거리가 있는 캠프에 가게 되었죠.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플랫폼을 착각해 경유하는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혹시나 일행을 놓치게 될까 너무 불안했었어요. 픽업장소였던 Freiberg역에서 만나 고스버그로 차 타고 이동하는 거라 더 민폐라는 생각에 식은땀이 흐르더군요. 다행히 프라이베르크가 워낙 조그마한 도시라 기차역도 작은 덕분에 캠프 참가자들이 모여있는 걸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 국적은 한국 1, 네덜란드 1, 스페인 2, 세르비아 2, 체코 2, 우크라이나 3, 러시아 1. 동양인이 저 혼자인걸 알고 적잖이 당황했지만, 영어 늘리기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죠. 자기소개를 나누며 한참을 기다려도 호스트가 오지를 않아 한 친구가 직접 전화를 하자 그제야 약속시간이 2시간 뒤? 인줄 알았다며 지금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저희 좀 이게 뭔가 싶어 술렁였습니다.
프라이베르크에서 차로 20-30분 정도 달려 고스버그에 있는 캠프 장소로 갔어요. 고스버그는 슈퍼마켓 같은 편의시설이 별로 없는 시골 마을이었어요. 인포싯에 적힌 내용이 하도 모호해서 가기 전까지 뭐 하는 곳인지 잘 몰랐는데, The "University of the Farmhouse" is an education and communication centre. 라고 설명되어 있어 대학교인 줄 알았던 캠프 장소는 주인 안드레아스와 부인 엘리자베스가 농장 운영 겸 사람들이 와서 세미나를 하거나 하루 묵고 갈 수 있는 장소를 대여하는 곳 이었어요.
저희가 할 일은 그 동안 안드레아스가 모아 온 자재(라기보단 재활용품에 더 가까웠던)를 이모저모 사용해 세미나실로 쓸 건물을 짓거나 엘리자베스의 농장 일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안드레아스 친구인 혹스도 함께 살면서 일을 돕고 저희 캠프도 진행했습니다. 안드레아스가 자유로운 영혼이라 집안 곳곳에 각국에서 가져 온 온갖 상징물(가면, 조각상, 부적 등등)이 많아 영적인 것에 심취한 히피족인 것 같았지만 기본적으로 나이 지긋하신 좋은 분들이었고 저희에게 친절하셨어요.
기본적인 일과는 평일 오전 4-5시간 정도를 일하고 오후에는 잠깐 쉬다가 혹스나 안드레아스의 다른 친구들이 진행하는 세미나에 참여하고, 주말엔 드레스덴이나 작센 스위스 같은 근교로 다같이 여행하는 거였어요.
봉사활동 주목적이었던 건물 짓기는 기초공사 중이라 돌을 나르고 또 돌을 날랐죠. 다들 Bloody stones라며 투덜댔어도 할 땐 열심히 했어요. 특히 남자 참가자가 3명이라 큰 돌덩이들 옮기느라 엄청 힘들었을 거에요. 여자애들은 잔돌이나 타일을 주워다 나르거나 아니면 밭일이나 집안일을 했어요.
한번은 거위 우리에서 혼자 따가운 구즈베리를 따고 있는데 제 주위로 거위들이 오는 거에요. 평소에 새를 엄청 싫어하고 무서워해서 HELP! 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더니 스페인이랑 세르비아 친구들이 와서 제 꼴을 보곤 막 웃으며 구해줬어요. 그 일이 있은 후 몇 일 뒤에 또 거위 우리 근처에서 웅덩이를 파게 됐는데, 애들이 절 위해서 거위들 좀 초대하자고 계속 거위소리 냈고 전 질겁을 했던 웃픈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일하는 시간 외에 자유시간이 많았는데 오후에는 게임이나 운동을 같이 했고 저녁에는 수다를 떨면서 독일 맥주를 참 많이도 마셨어요. 나중에 친해진 체코 친구가 집에서 직접 맥주를 제조할 정도로 애호가라 덕분에 저도 맥주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각국 술 문화도 서로 배워 나중엔 술자리에 별의별 규칙이 난무했죠. 처음에는 다들 이 시골에서 뭘 하면서 2주를 보내냐고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저희들끼리 이야기하고 노는 거여서 더 돈독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엔 독일인 무리가 왔는데도 저희들끼리 놀고 싶어서 그들이랑 잘 안 섞일 정도였어요.
참가자 국적은 한국 1, 네덜란드 1, 스페인 2, 세르비아 2, 체코 2, 우크라이나 3, 러시아 1. 동양인이 저 혼자인걸 알고 적잖이 당황했지만, 영어 늘리기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죠. 자기소개를 나누며 한참을 기다려도 호스트가 오지를 않아 한 친구가 직접 전화를 하자 그제야 약속시간이 2시간 뒤? 인줄 알았다며 지금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저희 좀 이게 뭔가 싶어 술렁였습니다.
프라이베르크에서 차로 20-30분 정도 달려 고스버그에 있는 캠프 장소로 갔어요. 고스버그는 슈퍼마켓 같은 편의시설이 별로 없는 시골 마을이었어요. 인포싯에 적힌 내용이 하도 모호해서 가기 전까지 뭐 하는 곳인지 잘 몰랐는데, The "University of the Farmhouse" is an education and communication centre. 라고 설명되어 있어 대학교인 줄 알았던 캠프 장소는 주인 안드레아스와 부인 엘리자베스가 농장 운영 겸 사람들이 와서 세미나를 하거나 하루 묵고 갈 수 있는 장소를 대여하는 곳 이었어요.
저희가 할 일은 그 동안 안드레아스가 모아 온 자재(라기보단 재활용품에 더 가까웠던)를 이모저모 사용해 세미나실로 쓸 건물을 짓거나 엘리자베스의 농장 일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안드레아스 친구인 혹스도 함께 살면서 일을 돕고 저희 캠프도 진행했습니다. 안드레아스가 자유로운 영혼이라 집안 곳곳에 각국에서 가져 온 온갖 상징물(가면, 조각상, 부적 등등)이 많아 영적인 것에 심취한 히피족인 것 같았지만 기본적으로 나이 지긋하신 좋은 분들이었고 저희에게 친절하셨어요.
기본적인 일과는 평일 오전 4-5시간 정도를 일하고 오후에는 잠깐 쉬다가 혹스나 안드레아스의 다른 친구들이 진행하는 세미나에 참여하고, 주말엔 드레스덴이나 작센 스위스 같은 근교로 다같이 여행하는 거였어요.
봉사활동 주목적이었던 건물 짓기는 기초공사 중이라 돌을 나르고 또 돌을 날랐죠. 다들 Bloody stones라며 투덜댔어도 할 땐 열심히 했어요. 특히 남자 참가자가 3명이라 큰 돌덩이들 옮기느라 엄청 힘들었을 거에요. 여자애들은 잔돌이나 타일을 주워다 나르거나 아니면 밭일이나 집안일을 했어요.
한번은 거위 우리에서 혼자 따가운 구즈베리를 따고 있는데 제 주위로 거위들이 오는 거에요. 평소에 새를 엄청 싫어하고 무서워해서 HELP! 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더니 스페인이랑 세르비아 친구들이 와서 제 꼴을 보곤 막 웃으며 구해줬어요. 그 일이 있은 후 몇 일 뒤에 또 거위 우리 근처에서 웅덩이를 파게 됐는데, 애들이 절 위해서 거위들 좀 초대하자고 계속 거위소리 냈고 전 질겁을 했던 웃픈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일하는 시간 외에 자유시간이 많았는데 오후에는 게임이나 운동을 같이 했고 저녁에는 수다를 떨면서 독일 맥주를 참 많이도 마셨어요. 나중에 친해진 체코 친구가 집에서 직접 맥주를 제조할 정도로 애호가라 덕분에 저도 맥주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각국 술 문화도 서로 배워 나중엔 술자리에 별의별 규칙이 난무했죠. 처음에는 다들 이 시골에서 뭘 하면서 2주를 보내냐고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저희들끼리 이야기하고 노는 거여서 더 돈독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엔 독일인 무리가 왔는데도 저희들끼리 놀고 싶어서 그들이랑 잘 안 섞일 정도였어요.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사실 아시아인이 저 혼자였던 게 영어 향상에 많은 도움은 되었지만 종종 난감했습니다. 아시아라는 큰 대륙에 대해 몇 가지 이미지를 토대로 한데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게 쉽진 않았거든요. 예를 들어, 체코 여자애들은 워낙 동양인 관광객이 프라하로 쏟아져 들어오는 게 탐탁지 않았던지, 처음부터 저를 대할 때 동양인에 대한 반감이 느껴졌어요. 프라하를 가봐서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인종차별로 받아들이진 않았지만요.
그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에요. 사실 우리도 잘 모르고 접하면 유럽이 다 거기서 거기 같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다 같은 하나의 민족인걸로 취급하니까요. 그래도 2주 동안 '다르다'가 '틀리다'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과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에 대해서 설명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고 피로감을 느꼈던 게 사실이었어요. 유럽국가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하고 영어까지 안 되는 상황이었다면 쉽지 않을 겁니다.
한번은 다른 캠프처럼 음식 만들고 각자 나라 소개하는 시간을 돌아가며 가졌어요. 발표를 하기 전, 캠프 참가자 중 활달하고 리더 역할을 하던 마야가 서로의 나라에 대해 아는 걸 써보자고 했는데 한국에는 아니나 다를까 '북한', '개고기', '아시안 타이거', '삼성', '강남스타일'이 나왔죠. 그들에게 최대한 친숙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최대한 유럽 국가들을 예로 들어가면서 짚어가려고 했어요.
한국에 대한 발표를 제일 마지막에 하게 됐는데, 먼저 stereotype에 관한 TED 영상을 보여줬어요. (http://www.ted.com/talks/chimamanda_adichie_the_danger_of_a_single_story) 그런 다음 참가자들이 적은 키워드를 다시 보여줬더니 다들 멋쩍게 웃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처음엔 네덜란드 사람들이 다 마약 중독자고 러시아 사람들은 다 보드카 잘 마시는 줄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서로를 만났기 때문에 더 이상 single story를 가진 게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stereotype을 깨야 한다고 덧붙이면서요.
제 입장에서 서방 미디어가 '북한'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방식이 불편한 이유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가지는 동정심과 적대심의 양면성, 그리고 남북 관계는 주변국과의 정세에 따라 달라지기에 매우 복잡하다는 걸 설명하는 건 참 힘겨웠어요. 놀라웠던 건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북한을 bad guys, 남한을 good guys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것도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설명하며 러시아에게 남한은 때때로 우방국일 수도 있고 적대국일 수 있다고 덧붙였죠. (소련이 망해갈 때 우리가 돈을 빌려줬는데 러시아가 여전히 채무 중이라고 놀리면서요^^) 독일처럼 분단 기간이 짧았다면 우리에게 통일의 가능성이 더 많이 있었을 거라는 건 베를린에 가서야 뒤늦게 느낄 수 있었지만, 그땐 제가 독일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게 괜히 뭉클했습니다.
'개고기'는 그걸 적은 사람이 체코 친구인 걸 미리 알고 있어서 일부러 체코 친구가 가고 싶어하는 아이슬란드를 예로 들었어요. 제가 아이슬란드에서 완전 귀여운 퍼핀 새 인형에 꽂혀서 샀는데, 그 기념품 가게 바로 옆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퍼핀 수프가 메뉴에 있는 걸 봤었어요. 퍼핀을 먹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지만 옛날에 먹고 살게 오죽 없으면 그걸 먹었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그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나라마다 독특한 식문화가 있고 사실 vegan이 아닌 이상 동물 먹는 건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괜히 개고기 먹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에 대해서는 차가 쌩쌩 다녀 매연도 많은 카페 야외 테라스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커피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던 일화를 들었습니다. 인턴으로 일했던 빌딩이 강남에 있었던 지라 제겐 강남은 그저 일 끝나면 빨리 떠나고 싶은 곳이었거든요. 동양인 관광객들이 바르셀로나나 암스테르담, 프라하 등 유럽 각지에 참 많고 그들의 모습이 가끔 우스꽝스러워 보이겠지만 그건 동양인만 그런 게 아니라 관광객 모두의 특성인 것 같다고 했죠. 너희 모습은 안 그런지 한번 봐야겠다며 서울로 초대하자 강남스타일을 외치며 반겼습니다.^^
사실 정치나 역사 같이 민감하고 지루한 얘기하기 너무 불편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친구들이 한 시간이나 진행된 제 발표를 재미있게 들었다는 얘기를 해주니까 고마웠습니다. 저희 캠프 기간 중 러시아에서 쏜 미사일 때문에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대거 탄 비행기가 추락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 친구들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있었거든요. 우크라이나 친구들이 한국이 자기네 나라랑 비슷하다고 느꼈는지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저도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에 전혀 모르던 우크라이나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던 게 큰 수확이었어요.
그렇게 캠프 거의 막바지에 서로에 대해 다 알고 오해도 풀고 나니까 더 끈끈해졌던 것 같아요. 마지막 주말에 동독에 있는 예쁜 도시 드레스덴에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클럽에서 공짜로 받은 모자 똑같이 쓰고 돌아다니면서 진짜 너무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안드레아스 딸네 집에서 다닥다닥 붙어 자는데 시간이 가는 게 아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죠.
마지막 날 밤에 헤어지는 얘기는 하지 말자고 눈시울 뜨거워지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날엔 친했던 네덜란드 닐스랑 스페인 까를라랑 세르비아 카트리나랑 거의 서로 붙잡고 몇 번이고 울먹였어요. 안드레아스가 준 서프라이즈 선물은 저희가 쓰던 장갑 안에 고스버그가 담긴 사진 엽서, 초콜릿, 미니어처 보드카랑 '그 놈의 돌덩이'가 숨겨져 있었죠. 선물에 감동받아서 울뻔 하다가 돌덩이 발견하고 빵 터졌어요. 지금도 그 장갑이랑 돌덩이가 제 방 한 켠에 잘 놓여있는데 볼 때마다 사람들이 참 많이 그립습니다.
보고서를 쓰다 보니 안드레아스랑 엘리자베스가 저희한테 얼마나 많은 걸 베풀었는지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저희가 짧은 시간 동안 세미나실을 완성시킬 수는 없었던 탓에 도움이 많이 되는 일손 보단 먹을 걸 축내는 귀찮은 손님에 더 가까웠지만 진심으로 저희를 많이 챙겨주셨거든요. 특히 엘리자베스는 영어 실력 때문에 영어랑 독어를 섞어 써서 종종 못 알아들었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게 있었어요. 그녀가 떠나는 제 손에 본인이 출연하는 연극 책자를 쥐어줬는데 생각해보니 그녀가 저한테 그 전에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참 많이 하셨구나 깨달았어요. 그땐 다른 친구들이 안드레아스나 혹스가 캠프를 디테일하게 진행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걸 들으면서 공감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음식이든 자재든 뭐 하나라도 아끼려는 그분들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렸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참 아쉬워요.
아무튼 결국 저희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장소에서 잘 적응했고, 해야 할 일을 하려고 왔다며 돌덩이들을 묵묵히 옮겼고, 서로에게서 발견한 다른 점들과 그것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비슷한 점들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모든 건 '관심'과 '배려'에서 시작한다는 뻔한 말을 마음에 깊이 되새길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피곤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서 2주 동안 마치 요양을 다녀왔던 것마냥 따뜻한 추억과 좋은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인턴하며 힘겹게 번 돈을 모아뒀던 통장은 비록 가벼워졌지만 마음만은 더 풍족해질 수 있었고, 정말 돌이켜봐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후기가 워크캠프를 떠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에요. 사실 우리도 잘 모르고 접하면 유럽이 다 거기서 거기 같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다 같은 하나의 민족인걸로 취급하니까요. 그래도 2주 동안 '다르다'가 '틀리다'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과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에 대해서 설명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고 피로감을 느꼈던 게 사실이었어요. 유럽국가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하고 영어까지 안 되는 상황이었다면 쉽지 않을 겁니다.
한번은 다른 캠프처럼 음식 만들고 각자 나라 소개하는 시간을 돌아가며 가졌어요. 발표를 하기 전, 캠프 참가자 중 활달하고 리더 역할을 하던 마야가 서로의 나라에 대해 아는 걸 써보자고 했는데 한국에는 아니나 다를까 '북한', '개고기', '아시안 타이거', '삼성', '강남스타일'이 나왔죠. 그들에게 최대한 친숙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최대한 유럽 국가들을 예로 들어가면서 짚어가려고 했어요.
한국에 대한 발표를 제일 마지막에 하게 됐는데, 먼저 stereotype에 관한 TED 영상을 보여줬어요. (http://www.ted.com/talks/chimamanda_adichie_the_danger_of_a_single_story) 그런 다음 참가자들이 적은 키워드를 다시 보여줬더니 다들 멋쩍게 웃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처음엔 네덜란드 사람들이 다 마약 중독자고 러시아 사람들은 다 보드카 잘 마시는 줄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서로를 만났기 때문에 더 이상 single story를 가진 게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stereotype을 깨야 한다고 덧붙이면서요.
제 입장에서 서방 미디어가 '북한'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방식이 불편한 이유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가지는 동정심과 적대심의 양면성, 그리고 남북 관계는 주변국과의 정세에 따라 달라지기에 매우 복잡하다는 걸 설명하는 건 참 힘겨웠어요. 놀라웠던 건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북한을 bad guys, 남한을 good guys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것도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설명하며 러시아에게 남한은 때때로 우방국일 수도 있고 적대국일 수 있다고 덧붙였죠. (소련이 망해갈 때 우리가 돈을 빌려줬는데 러시아가 여전히 채무 중이라고 놀리면서요^^) 독일처럼 분단 기간이 짧았다면 우리에게 통일의 가능성이 더 많이 있었을 거라는 건 베를린에 가서야 뒤늦게 느낄 수 있었지만, 그땐 제가 독일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게 괜히 뭉클했습니다.
'개고기'는 그걸 적은 사람이 체코 친구인 걸 미리 알고 있어서 일부러 체코 친구가 가고 싶어하는 아이슬란드를 예로 들었어요. 제가 아이슬란드에서 완전 귀여운 퍼핀 새 인형에 꽂혀서 샀는데, 그 기념품 가게 바로 옆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퍼핀 수프가 메뉴에 있는 걸 봤었어요. 퍼핀을 먹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지만 옛날에 먹고 살게 오죽 없으면 그걸 먹었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그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나라마다 독특한 식문화가 있고 사실 vegan이 아닌 이상 동물 먹는 건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괜히 개고기 먹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에 대해서는 차가 쌩쌩 다녀 매연도 많은 카페 야외 테라스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커피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던 일화를 들었습니다. 인턴으로 일했던 빌딩이 강남에 있었던 지라 제겐 강남은 그저 일 끝나면 빨리 떠나고 싶은 곳이었거든요. 동양인 관광객들이 바르셀로나나 암스테르담, 프라하 등 유럽 각지에 참 많고 그들의 모습이 가끔 우스꽝스러워 보이겠지만 그건 동양인만 그런 게 아니라 관광객 모두의 특성인 것 같다고 했죠. 너희 모습은 안 그런지 한번 봐야겠다며 서울로 초대하자 강남스타일을 외치며 반겼습니다.^^
사실 정치나 역사 같이 민감하고 지루한 얘기하기 너무 불편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친구들이 한 시간이나 진행된 제 발표를 재미있게 들었다는 얘기를 해주니까 고마웠습니다. 저희 캠프 기간 중 러시아에서 쏜 미사일 때문에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대거 탄 비행기가 추락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 친구들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있었거든요. 우크라이나 친구들이 한국이 자기네 나라랑 비슷하다고 느꼈는지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저도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에 전혀 모르던 우크라이나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던 게 큰 수확이었어요.
그렇게 캠프 거의 막바지에 서로에 대해 다 알고 오해도 풀고 나니까 더 끈끈해졌던 것 같아요. 마지막 주말에 동독에 있는 예쁜 도시 드레스덴에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클럽에서 공짜로 받은 모자 똑같이 쓰고 돌아다니면서 진짜 너무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안드레아스 딸네 집에서 다닥다닥 붙어 자는데 시간이 가는 게 아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죠.
마지막 날 밤에 헤어지는 얘기는 하지 말자고 눈시울 뜨거워지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날엔 친했던 네덜란드 닐스랑 스페인 까를라랑 세르비아 카트리나랑 거의 서로 붙잡고 몇 번이고 울먹였어요. 안드레아스가 준 서프라이즈 선물은 저희가 쓰던 장갑 안에 고스버그가 담긴 사진 엽서, 초콜릿, 미니어처 보드카랑 '그 놈의 돌덩이'가 숨겨져 있었죠. 선물에 감동받아서 울뻔 하다가 돌덩이 발견하고 빵 터졌어요. 지금도 그 장갑이랑 돌덩이가 제 방 한 켠에 잘 놓여있는데 볼 때마다 사람들이 참 많이 그립습니다.
보고서를 쓰다 보니 안드레아스랑 엘리자베스가 저희한테 얼마나 많은 걸 베풀었는지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저희가 짧은 시간 동안 세미나실을 완성시킬 수는 없었던 탓에 도움이 많이 되는 일손 보단 먹을 걸 축내는 귀찮은 손님에 더 가까웠지만 진심으로 저희를 많이 챙겨주셨거든요. 특히 엘리자베스는 영어 실력 때문에 영어랑 독어를 섞어 써서 종종 못 알아들었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게 있었어요. 그녀가 떠나는 제 손에 본인이 출연하는 연극 책자를 쥐어줬는데 생각해보니 그녀가 저한테 그 전에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참 많이 하셨구나 깨달았어요. 그땐 다른 친구들이 안드레아스나 혹스가 캠프를 디테일하게 진행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걸 들으면서 공감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음식이든 자재든 뭐 하나라도 아끼려는 그분들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렸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참 아쉬워요.
아무튼 결국 저희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장소에서 잘 적응했고, 해야 할 일을 하려고 왔다며 돌덩이들을 묵묵히 옮겼고, 서로에게서 발견한 다른 점들과 그것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비슷한 점들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모든 건 '관심'과 '배려'에서 시작한다는 뻔한 말을 마음에 깊이 되새길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피곤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서 2주 동안 마치 요양을 다녀왔던 것마냥 따뜻한 추억과 좋은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인턴하며 힘겹게 번 돈을 모아뒀던 통장은 비록 가벼워졌지만 마음만은 더 풍족해질 수 있었고, 정말 돌이켜봐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후기가 워크캠프를 떠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