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하노이, 불편함 속에서 찾은 새로움

작성자 권오신
베트남 SJV1437 · KIDS/FEST 2014. 12 하노이

Warm X-mas for disadvantaged childre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봉사활동은 대학생활 내내 거의 해본적이 없었다. 해외에 나갈 때는 언제나 호텔을 이용했고 여행지도 대부분 유럽, 미주, 일본 등의 선진국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제대로된 여행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해본적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거의 혼자서 모든 것을 준비해서 다녔기 때문에 다른사람과 교류할 일도 별로 없었고 어쩌다 기차나 버스에서 현지인을 만나면 짧은 대화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학생활 마지막 방학의 기로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지만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을 호텔에서 편안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기말고사 2주일전 무턱대고 워크캠프 사이트에 에세이를 써서 지원하였다. 사실 첫 번째로 지원한 곳은 캄보디아였다. 일단 앙코르와트라는 유적지가 씨엠립에 있었고 캄보디아에 가면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원한지 몇 일 뒤에 전화가 와서 지원자가 적어 참가하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참가지를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다 1월부터 일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선택지가 베트남 하나 밖에 없었다. 사실 호치민은 이전에 가본적이 있어서 베트남은 나에게 그리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고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 봉사활동을 할 필요가 있는 도시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기말고사가 임박하여 고민하고 말고 할 시간도 없었다. 이왕 가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일단 지원하고 정 맘에 안들면 취소해 버리자는 생각으로 가겠다고 대답하였다. 캄보디아는 인원이 4명이로 적었지만 베트남은 참가인원이 12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도 앙코르와트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을 상쇄시켜주었다. 마지막 시험이 끝난 다음날 급하게 배낭하나에 모든 짐을 쑤셔넣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하노이로 가는 4시간 동안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도서관에서 하노이와 관련된 책을 두 권 빌려 왔는데 그 중에서 역사와 경제를 다룬 책을 계속 읽어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내리자 이번 워크캠프에 한국인이 한 명도 없어서 외국인들 사이에서 잘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내가 나태한 모습을 보이거나 하면 한국의 이미지가 좋지 않게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양보하고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인포싯에 적힌 주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공항에 내리자 마자 미니버스를 타기 위해 게이트 밖으로 짐을 들고 나갔습니다. 처음에 본 기사가 10달러를 불러 그냥 타기로 하였는데 20분이 지나도록 사람이 다 차도록 출발을 하지 않아 그냥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타니 2달러를 요구하여 어이를 상실하고 가던 차에 옆에 앉은 일본인과 대화를 하면서 하노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2시간에 걸쳐 하노이 시내에 도착하였습니다. 하노이 시내는 서울처럼 길이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고 거미줄 같이 엉켜서 있어서 지도를 봐도 정확한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고 심지어 현지인들 조차 지도로는 못 찾고 걸어서 가봐야 알 정도인 장소도 있습니다. 1시간 가량 헤매면서 이곳저곳 구경하다가 호텔에 도착하였고 짐을 풀고 티비를 켜니 한국 드라마가 나와 반가웠으나 베트남어로 더빙이 되어있어 알아듣지 못하고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구글맵 어플로 찾은 버스정류장을 찾아 4번 버스를 타고 워크캠프 집결지로 찾아갔습니다. 분명히 구글맵은 장소에 도착했다고 알리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30분 가량을 주변을 왔다갔다 하는데 전화도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노점에서 시계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건물이 어디있는지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홍콩에서 온 알버트와 프랑스에서온 세바스찬, 마루시카, 마리 가 기다리고 있었고 아직 오지 않은 4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짐을 이층 침대 위에 던져 놓고 다른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나섰습니다. 달콤한 커피향이 머리를 어질어질 하게 할 정도로 진하게 다가왔고 길거리를 가득 매우고 매연을 뿜에내며 지나가는 스쿠터의 행렬에 온지 하루만에 피로로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자 하노이 그리고 호치민에서 2명이 더 와있었고 아직 오지 않은 2명을 뒤로 한채 오리엔테이션을 한 후 식사를 하러 나섰습니다. 워크캠프 집결지는 하노이 시내와는 버스로 약 4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 시골과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첫 점심으로 먹은 볶음밥에서 나는 베트남음식의 특유의 향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 오후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시내로 다 함께 나갔습니다. 가면을 만들고 보자를 만들고 산타복을 만들고 트리를 만들 재료를 모두 구매하고 난 뒤 5000동(한화 약 300원)에 한잔 하는 맥주를 마셨는데 우리나라 H000, C000등의 맥주보다도 더 맛있어서 놀라웠습니다. 다음날 부터 3개의 팀으로 나누어서 각각 크리스마스 트리, 가면, 모자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물감으로 모자를 이쁘게 색칠하는 것을 담당하였는데 참각자 각국의 재미있는 언어를 모자에 새겨 넣기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려넣기도 하였습니다. 셋 째 날 부터는 고아원과 장애인학교 몸이 아픈 아이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 등을 돌아다니면서 크리스마스 파티 및 공연을 하였는데 홍콩에서 온 네트가 쿵푸체조를 가르쳐 주었고 저는 강남스타일 댄스를 가르쳐서 다 같이 공연하였는데 아이들이 따라하면서 호응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세번째 파티 장소였던 장애인 학교에서는 제가 산타복을 입고 산타역할을 하면서 공연을 하였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주어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에 헤어질 때에는 아이들이 산타가 간다면서 아쉬워하여 제가 눈물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워크캠프의 마지막날에는 일본의 안경업체에서 지원해 주어서 하노이를 건너온 안경을 학교 및 병원에 나누어주는 일을 하였는데 한화로 20,000 정도 하는 안경에도 너무나 기뻐하면서 받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풍족한 물자를 없는 곳으로 이전하여 나누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하노이 시내는 스쿠터가 내 뿜는 연기에 숨을 쉬기 조차 힘들었습니다. 신호등과 교통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 알아서 눈치껏 건너가야 했고 워크캠프 숙소였던 곳은 그 곳에서 아주 드문 아파트 형식의 빌딩 안에 있었지만 화장실은 고장이 잦았고 바퀴벌레가 나타날 정도로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날이면 찬물로 새벽에 샤워를 해야할 때도 있었습니다. 길거리에 나가면 툭하면 바가지를 씌우기 일수여서 현지인 친구가 대신 물어봐준 뒤에야 제가격에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나 2~3일 정도가 지나고 어느 정도 적응되자 베트남인들의 좋은 면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자기들에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워크캠프에 참여한 대부분의 현지인 자원봉사자들은 베트남에서는 나름대로 이름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나라를 떠나고 싶지는 않은지? 물어보았지만 누구하나 자신의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하노이를 좋아하고 국민소득이 낮다고 하여 자신의 나라가 다른나라 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베트남의 국부로 지금까지도 그의 유훈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호치민은 묘소에서 아직도 군인들의 경계 속에서 잠들어있고 곳곳이 그를 기념하는 공원, 사당 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우리나의 화폐는 100원 500원 1000원 등 환폐 단위마다 환폐에 그려져 있는 위인들이 다른 반면 베트남의 화폐는 모두가 호치민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길거리에도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그를 기리기 위한 노래가 방송에서 불러질 정도이니 그의 인기와 영향력이 베트남에서 어느정도인지를 가늠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듯 그들은 자신의 국가와 국부 호치민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주위환경에 대한 불평보다는 주변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워크캠프 참가자 중에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던 관계로 언제나 대화상대는 외국인이었습니다. 다행히 영어공부를 대학생활 내내 해와서 의사소통을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이나 동아리에 잠시 같이 활동했던 외국인들과 친구가 된 적은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그들의 한국생활을 도와주는 편에서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성향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사실 상 없었습니다. 그러나 워크캠프를 통해서 여러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자고 먹고 생활을 같이 하면서 다양한 국가의 문화와 성향을 얕게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홍콩에서 온 친구들의 때론 계산적으로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발벗고 나서주는 따뜻함과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의 열정과 친절함, 그리고 베트남인들의 배려와 추진력은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야를 갖게 해주는 의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봉사활동은 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장식을하고 꾸미고 찾아가면서 비록 의사소통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하루를 만들어 준다는 것 의미있는 물건을 전달해 준다는 것이 가져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은 제 생일이었는데 전 날 함께 한 친구들이 파티를 해 주었고 다음날에는 학교 및 병원에 안경을 나누어주러 갔는데 생일날 선물을 받는 것이 아닌 나누어준다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안경하나에 너무나 기뻐하는 그들을 보면서 제 마음도 너무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그 어떤 생일보다도 의미가 있는 하루였습니다. 나의 작은 봉사로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었다는 점. 그것이 워크캠프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