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기차역 미아, 독일인의 친절로 극복
Mittweid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전: 친척 동생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나도 워크캠프를 지원하게 되었다. 둘이 같이 갈까 고민하다가 이왕이면 아예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서 결국 따로따로 지원했다. 가장 걱정되었던 점은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었다. 내가 영어회화 실력이 별로 안 좋아서 따로 공부를 조금 하고 갔다. 또한 외국 친구들에게 소개 시켜 줄만한 한국 자료들도 챙겨갔다.
워크캠프 중: 일단 찾아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독일 철도를 처음 혼자 타다 보니까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중간에 갈아타야 했던 역에서 못 내리고 지나쳤다. 그 무거운 짐을 들고 홀로 외딴 시골역에 내려서 정말 많이 당황했었는데 다행히도 친절한 독일 분이 직접 차로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고, 버스도 알아봐주고, 버스 기사한테까지 내가 내려야 할 곳에 내려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정말 이 분 덕에 워크캠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한국인이 나 말고 한 명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인이 나 혼자였다. 처음엔 정말 멘탈이 붕괴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한국인이 나 혼자였다는 것 외에도 또 나에게 시련은 찾아왔다. 영어의사소통불가. 생각했던 것보다 애들이 영어를 너무 잘했다. 나보다 너무 월등히. 그리고 발음도 너무 제각각. 정말 내가 2주를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차차 혼자 한국인인 것도 적응이 되고 영어 의사소통도 어느 정도는 가능해졌다. 사실 처음엔 거의 다 알아듣는 척 했다. 너무 못 알아들으면 처음부터 못 친해질까봐. 내 작전은 대 성공. 정말 여러 가지 활동을 했는데 반 이상이 게임이었다. 한국 애들도 참 게임을 좋아하는데 외국 애들은 좀 더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던 듯하다. 클라이밍, 보딩, 벽 그림그리기, 정원가꾸기 등 많은 것을 했었는데 봉사활동이 아닌 것 같았다. 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들 이었다. 그 중 제일 좋았던 것은 벽 그림그리기였다.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부터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한 일주일 정도가 흐른 후부터는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별이 안갔다. 그냥 똑 같은 인간들만 있었을 뿐. 쇼핑도 하고 춤도 추고. 영어실력도 늘고! 최고 였다.
워크캠프 후: 영어로 “BYE” 하는데 별로 안 슬펐다. 그냥 아 이제 정말 헤어지는 시간이구나. 이 생각뿐이었다. 근데 Lotte라는 친구가 “BYE가 한국말로 뭐야?” 물었고, 나는 “안녕”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곤 “안녕”이라는 말을 그들로부터 들었을 때,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한국말로 “안녕”을 들으니까 실감이 났나 보다. 너무 슬퍼서 주체가 안 되는데 과연 내가 이 친구들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더 눈물이 났었던 것 같다.
느낀 점: 결국 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원래는 외국인을 보면 “헐 외국인이다” 이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외국인이라는 말 조차 어색하다. 그냥 똑 같은 사람일 뿐이다. 언어와 문화만 다를 뿐. 게다가 같은 나이 대의 친구들과의 생활이어서 그런지 더욱 잘 맞았고 더욱 재밌었던 것 같다. 2달이 흐른 지금도 그 때가 그립다. 안 그리울 줄 알았는데… 물론 지금 SNS를 통해서 연락은 계속 하고 있다. 과연 언제쯤 우리 10명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날이 올까..?
워크캠프 중: 일단 찾아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독일 철도를 처음 혼자 타다 보니까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중간에 갈아타야 했던 역에서 못 내리고 지나쳤다. 그 무거운 짐을 들고 홀로 외딴 시골역에 내려서 정말 많이 당황했었는데 다행히도 친절한 독일 분이 직접 차로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고, 버스도 알아봐주고, 버스 기사한테까지 내가 내려야 할 곳에 내려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정말 이 분 덕에 워크캠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한국인이 나 말고 한 명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인이 나 혼자였다. 처음엔 정말 멘탈이 붕괴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한국인이 나 혼자였다는 것 외에도 또 나에게 시련은 찾아왔다. 영어의사소통불가. 생각했던 것보다 애들이 영어를 너무 잘했다. 나보다 너무 월등히. 그리고 발음도 너무 제각각. 정말 내가 2주를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차차 혼자 한국인인 것도 적응이 되고 영어 의사소통도 어느 정도는 가능해졌다. 사실 처음엔 거의 다 알아듣는 척 했다. 너무 못 알아들으면 처음부터 못 친해질까봐. 내 작전은 대 성공. 정말 여러 가지 활동을 했는데 반 이상이 게임이었다. 한국 애들도 참 게임을 좋아하는데 외국 애들은 좀 더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던 듯하다. 클라이밍, 보딩, 벽 그림그리기, 정원가꾸기 등 많은 것을 했었는데 봉사활동이 아닌 것 같았다. 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들 이었다. 그 중 제일 좋았던 것은 벽 그림그리기였다.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부터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한 일주일 정도가 흐른 후부터는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별이 안갔다. 그냥 똑 같은 인간들만 있었을 뿐. 쇼핑도 하고 춤도 추고. 영어실력도 늘고! 최고 였다.
워크캠프 후: 영어로 “BYE” 하는데 별로 안 슬펐다. 그냥 아 이제 정말 헤어지는 시간이구나. 이 생각뿐이었다. 근데 Lotte라는 친구가 “BYE가 한국말로 뭐야?” 물었고, 나는 “안녕”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곤 “안녕”이라는 말을 그들로부터 들었을 때,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한국말로 “안녕”을 들으니까 실감이 났나 보다. 너무 슬퍼서 주체가 안 되는데 과연 내가 이 친구들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더 눈물이 났었던 것 같다.
느낀 점: 결국 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원래는 외국인을 보면 “헐 외국인이다” 이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외국인이라는 말 조차 어색하다. 그냥 똑 같은 사람일 뿐이다. 언어와 문화만 다를 뿐. 게다가 같은 나이 대의 친구들과의 생활이어서 그런지 더욱 잘 맞았고 더욱 재밌었던 것 같다. 2달이 흐른 지금도 그 때가 그립다. 안 그리울 줄 알았는데… 물론 지금 SNS를 통해서 연락은 계속 하고 있다. 과연 언제쯤 우리 10명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