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낯선 새벽을 달리다
Rey Cup - Football Festival for kid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밤 12시. 레이캬빅 공항에 자전거 한 대와 함께 덩그러니 내던져 졌다. 레이캬빅 공항의 창 밖엔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환한 어둠이 내리깔려 있었다. 선뜻 나서기에 쌀쌀한 추위에, 몸을 녹이며 공항에서 기웃기웃거리다 이내 잠이 들었다. 한 5시간쯤 흘렀을까, 공항 한 구석에서 초라한 여행자와 노숙자의 중간 즈음을 한 모습으로 피곤함을 달래다 눈을 떴다. 그렇게 새벽 기지개와 함께 공항을 빠져 나와 페달을 밟았다. 내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의 첫 시작이었다. 아직도 그날의 서늘한 공기가 내 뺨을 스쳐갔던 새벽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4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레이캬빅 시내의 숙소에서 마침내 2주를 함께할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 워크캠프는 총 9개국 15명의 참가자로 구성된 캠프였는데, 주된 일은 몇 일 후에 열릴 유소년 축구대회 준비를 돕는 일이었다. 서먹서먹한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이 우리는 곧장 우리가 묵을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시내에서 50분 가량 떨어져 있는 학교가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샤워 시설이 학교엔 없어서 근처 수영장을 이용해야 한다는 불편함(?)빼고는 머물며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부터 우리의 추억 필름이 녹화되었다. 일과는 비교적 쉬웠다. 처음에는 대회 준비를 위해 물건을 나르고 짐을 옮기느라 고생을 좀 했지만, 대회 기간 때는 의외로 할 일이 많지 않았다. 나와 후안은 축구 심판경험이 있어서 축구 심판을 보기도 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생각보다 수월한 일들을 맡아서 하곤 했다. 쉬는 날이면, 근처의 골든 서클과 같은 관광지나 블루라곤이라는 온천 등을 갔다 오며 추억을 녹화했고, 저녁에는 간간히 근처 바에 들러 맥주 한잔으로 또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 내리기도 했다. 근처, 중고장터도 여러 번 다녀오고, 고래를 구경하려 배타고 바다로 나가기도 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은 바로 수영장이었다. 우리는 봉사기간 내내 숙소에 욕실이 없었기에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 일과가 마치면 언제나 달려가던 곳이 바로 이 수영장이었다. 사실 수영장이라기 보다 온천에 가까웠다. 사우나에, 온천에, 놀이기구에 없는 게 없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수영장이었기에 우리는 매일 그 곳을 찾아 몸의 피로를 풀어내곤 했다. 아니 거의 요양 수준의 2주를 보냈다. 어느덧, 2주가 순식간에 흘러 대회가 잘 마무리되면서 끝이 났고, 우리들이 헤어져야 할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2주간의 시간이 그렇게 쉽게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그 사이 일이 거의 없던 캠퍼 친구들의 불만이 나오기도 했고, 리더들간의 불화로 중간에서 우리가 중재를 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힘들었던 추억보다 즐겁고 좋았던 기억이 훨씬 더 강렬하기에, 이 2주간의 시간을 추억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 같다. 매일 저녁 요리를 해먹으며 느꼈던 행복, 밤마다 어울려서 게임을 하고 수다를 떨었던 즐거움 등, 이번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는, 내 삶에서 잊을 수 없는 명 장면 중 하나로 새겨질 것이다. 떠나기 마지막 밤, 나는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이 친구들 몰래 선물을 준비했다. 단체 사진 찍었던 걸 하나 챙겨, 근처 사진관에서 인화를 한 뒤 편지와 함께 각각 나눠주었다. 받는 친구들은 물론, 나까지 행복해지는 밤이었다. 아직도 미겔이라는 멕시코 친구가 나에게 해줬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함께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자기에겐 우리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고 나를 붙잡고 울며 해줬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런 가슴 뜨거운 추억을 기억하기에 아이슬란드에서 웃으며 비행기에 올라 탈 수 있던 것 같다. 이번이 나에겐 2번째 워크캠프였지만, 첫 번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역시 나에겐 사람이 남고, 사람을 추억하는 휴먼캠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