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유럽 봉사, 용기 하나로 떠난 2주
ADVENTURE PLAYGROUND IN HOLZNAGELHAUSE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학교 교양강의에서 첫날 교수님께서 이 활동에 대해서 잠깐 보여주셨고 관심이 있는 학생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걸 보자마자 '하고싶다'라는 생각을 했고 바로 홈페이지에서 확인을 하였습니다. 봉사, 그것도 유럽에서 ..'해외봉사도 언젠가는 한번 꼭 가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선진국인 유럽에 봉사를 간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고 참가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겁도많고 해외도 한번도 안가본 제가 말이죠..ㅎㅎ신청한 것도 합격이 되고 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부모님께서는 그런걸 신청할 생각을 했냐면서 다들 놀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혼자이고 캠프에 한국인이 없을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꼭 가고싶다고 생각했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방학을 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돈으로 가겠다고 했고 저는 방학을 하기 전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언어를 공부해서 가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고 영어든 독일어든 공부를 하지 못하고 캠프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하는생각으로..저는 참가를 하기 전에 사전교육과 인포싯, 선참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외국친구들에게 해줄 음식재료와 반크에서 받을 수 있는 한국홍보물을 신청하여 가져갔습니다. 인포싯을 보니 하루씩 요리를 하는 것이라 하여 호떡과 불고기소스를 가져갔습니다.
인포싯을 보았는데 와이파이도 없고, 세탁기도 없고, 활동을 하는 곳도 숙소와 20분 거리에 있고 슈퍼마켓도 30분거리에 있고 오두막에서 자고, 새벽까지 활동을 한다?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인포싯을 보고 매일 걸어다녀야 한다는 것과 새벽까지 무슨 활동을 하는지, 인터넷은 또 왜 안되고 세탁기는 왜 없는지, 그리고 무거은 이불을 어떻게 가져가야 되는지 걱정이 되었고 되게 안좋은 곳인가보다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인포싯에 있던 사진들을 보니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놀이터를 만든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기대가 되었습니다. 또 외국친구들과 2주동안 같이 지내고 활동하면서 외국친구들이 생긴다는 것도 좋았고, 활동이 끝나고나 주말에 다같이 놀러가는 것도 기대를 하였습니다.
저는 방학을 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돈으로 가겠다고 했고 저는 방학을 하기 전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언어를 공부해서 가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고 영어든 독일어든 공부를 하지 못하고 캠프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하는생각으로..저는 참가를 하기 전에 사전교육과 인포싯, 선참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외국친구들에게 해줄 음식재료와 반크에서 받을 수 있는 한국홍보물을 신청하여 가져갔습니다. 인포싯을 보니 하루씩 요리를 하는 것이라 하여 호떡과 불고기소스를 가져갔습니다.
인포싯을 보았는데 와이파이도 없고, 세탁기도 없고, 활동을 하는 곳도 숙소와 20분 거리에 있고 슈퍼마켓도 30분거리에 있고 오두막에서 자고, 새벽까지 활동을 한다?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인포싯을 보고 매일 걸어다녀야 한다는 것과 새벽까지 무슨 활동을 하는지, 인터넷은 또 왜 안되고 세탁기는 왜 없는지, 그리고 무거은 이불을 어떻게 가져가야 되는지 걱정이 되었고 되게 안좋은 곳인가보다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인포싯에 있던 사진들을 보니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놀이터를 만든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기대가 되었습니다. 또 외국친구들과 2주동안 같이 지내고 활동하면서 외국친구들이 생긴다는 것도 좋았고, 활동이 끝나고나 주말에 다같이 놀러가는 것도 기대를 하였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미팅포인트를 찾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3,4시간 전에 미팅포인트인 역에 갔는데 중앙입구가 어딘지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도착해서 건물이 보여 들어갔더니 거기는 도서관이었고, 사람들이 기차역을 가르쳐줬는데 중앙입구가 아니라 우왕좌왕하다가 중간에 서서 기다리다가 리더를 만났습니다. 알고보니 저는 기차역 중앙입구라고 해서 건물 입구라고 생각을 했는데 시골이라 건물이 없고 제가 있던 곳이 입구였습니다.
활동을 하는 첫 날,부모들이 등록을 하고나서 ASP팀의 조원들이 각자 아이들을 몇명씩 맡아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떻게 활동을 하는걸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활동이 시작되자 마자 많은 아이들이 나무를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어린 아이들부터 10대아이들까지 있었는데 정말 어린 아이들이 여럿이 모여 큰 나무파레트를 옮기는 모습이 인상깊었고, 정말 귀여웠고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어서 신기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놀이터를 짓는다고 해서 한국에 있는 좋은 놀이터처럼 짓는다고 생각을 했었고, 정말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 활동의 주는 아이들이었고 우리는 아이들이 나무를 옮기거나 망치질을 할 때 도와주는 서포터즈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타이완 친구와 vitel이라는 조원과 같이 활동을 하였습니다. 우리 팀은 거의 여자아이들로 구성되어있었는데 정말 어린 아이들과 같이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못을 잡고 낑낑대면서 망치질하는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을 힘들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개성에 맞게 집을 지으면서 피자도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옆에 천막에서 종이접기나 물감, 그림그리기와 같은 예술활동도 할 수 있고, 중간중간 물놀이도 하며 되게 자유로운 활동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모든것이 신기했고,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것이 첫주 금요일에 바베큐파티를 한 것이었습니다. ASP팀과 워크캠프팀만 모여 파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함께하는 파티였습니다. 부모들이 샐러드를 가져와 여기서 준비한 고기를 먹고 같이 놀다가 가는 것인데 다같이 어울리는 광경이 되게 재미있었습니다.
활동을 하는 첫 날,부모들이 등록을 하고나서 ASP팀의 조원들이 각자 아이들을 몇명씩 맡아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떻게 활동을 하는걸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활동이 시작되자 마자 많은 아이들이 나무를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어린 아이들부터 10대아이들까지 있었는데 정말 어린 아이들이 여럿이 모여 큰 나무파레트를 옮기는 모습이 인상깊었고, 정말 귀여웠고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어서 신기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놀이터를 짓는다고 해서 한국에 있는 좋은 놀이터처럼 짓는다고 생각을 했었고, 정말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 활동의 주는 아이들이었고 우리는 아이들이 나무를 옮기거나 망치질을 할 때 도와주는 서포터즈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타이완 친구와 vitel이라는 조원과 같이 활동을 하였습니다. 우리 팀은 거의 여자아이들로 구성되어있었는데 정말 어린 아이들과 같이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못을 잡고 낑낑대면서 망치질하는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을 힘들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개성에 맞게 집을 지으면서 피자도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옆에 천막에서 종이접기나 물감, 그림그리기와 같은 예술활동도 할 수 있고, 중간중간 물놀이도 하며 되게 자유로운 활동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모든것이 신기했고,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것이 첫주 금요일에 바베큐파티를 한 것이었습니다. ASP팀과 워크캠프팀만 모여 파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함께하는 파티였습니다. 부모들이 샐러드를 가져와 여기서 준비한 고기를 먹고 같이 놀다가 가는 것인데 다같이 어울리는 광경이 되게 재미있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저는 누군가 워크캠프를 간다고 하면 꼭 영어회화를 준비하고 가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영어와 독일어 둘다 잘 못해서 많은 친구들과 많이 이야기를 많이 못했고, 아이들과도 많이 놀지 못하고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유럽아이들은 기본 3개국어를 해서 다른 언어는 못하더라도 영어는 꼭 공부를 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또한 저는 내가 속한 캠프에 한국인이 없는 것이 다른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친구끼리 가는 것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희 캠프에 친구랑 같이 온 친구들이 좀 있었는데 서로 의지하며 언어를 못알아 들었을 때 서로 알려주고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부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