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다하우, 역사를 넘어선 우정

작성자 윤성국
독일 CPD10 · STUDY/RENO 2012. 07 - 2012. 08 다하우(Dachau)

Dachau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4학년이 되기 전 맞이하게 된 긴 여름방학. 학생으로서 자유롭게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다고 생각해 해외여행 계획을 짜던 중, 학교 홈페이지에서 워크캠프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단순히 여행하며 나 혼자서 구경만 하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모인,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친구들과 만나 젊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워크캠프의 장점이 내게는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워크캠프에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읽고서 워크캠프에 참여해야겠다는 뜻을 확고히 굳히고 프로그램을 검색하던 중, 나의 시선이 우연히 한 곳에 머물렀다.
‘Dachau(다하우)’. 뮌헨 근처에 위치한 독일의 소도시. 과거 나치 집권 시기에는 집단수용소(Concentration Camp)가 존재했다고 하는, 세계사의 파란을 겪은 곳이었다. 그때까지, 내게 독일이라는 나라는 무척이나 신기한 국가였다. ‘자기반성’, ‘근면함’, ‘선진국’, 혹은 칸트나 헤겔 등의 유명한 철학자들. 이처럼 훌륭한 미덕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홀로코스트란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인지, 그 근원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다하우로 이끈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내가 참여하게 된 프로그램은 IYM(International Youth Meeting)이라는 독일의 단체가 주관하는 역사가 깊은 연례행사였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과 인종차별, 편견, 소수자 탄압 등을 넘어선 올바른 인권의식의 정립에 있었는데, 대학교에서 철학학회를 했던 내겐 무척이나 흥미롭고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여서 참여하기 전부터 이 프로그램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프로그램은 2주 동안, 다하우에 위치한 유스호스텔에서 진행이 되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약 80명의 친구들은 총 18개국에서 왔는데, 내가 평소에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유럽, 이스라엘 출신들이 많았다. 프로그램 기간 동안 나는 Marko, Ivan, Andreja와 방을 함께 썼는데, Marko는 크로아티아에서, Ivan과 Andreja는 세르비아 출신이었다. 유스호스텔에 도착한 첫날 먼저 도착해있던 Marko, Ivan과 서로의 나라에 대해서 두 시간이 넘게 길게 대화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얼핏 듣기만 했던 코소보 분쟁을 직접 경험한 Ivan은 정치, 헌법, 나토, 미국을 어우르는, 대학교 1학년의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스스로의 사색을 말해주었다.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Marko는 놀랄 정도로 한국에 대해서 박식했다. Marko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한국의 군사 쿠데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외국인이 한국의 정치와 역사에 이렇게나 관심을 보인다는 것에 기뻐 열띤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2주 동안의 프로그램은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Small Workshop으로 나는 ‘Stereotype’에 관한 워크숍에 참여했다. 한국에 대해 각국의 참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관과 편견을 들었던 것은 무척이나 진귀한 경험이었다. (그들이 말했던 선입관 중에서는 정말 사실과 일치하는 것도 있었다; 가령, 지하철에 타면 모든 사람이 핸드폰만 만진다거나, 스타크래프트가 국민 스포츠라거나 등등..)
두 번째는 Regular Workshop으로, 나는 ‘Racism’에 관련된 워크숍에 참여했다. 일 주일 동안의 긴 기간 동안 인종차별의 역사와, 현대의 인종차별을 공부하고, 인종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방법들을 여러 외국인 친구들과 토론을 하면서 모색해볼 수 있었다. 워크숍의 마지막 날에는 여태까지 이야기하고 공부했던 내용을 토대로 모든 참석자들 앞에서 연극도 했다. 아시아에서 온 내가 인종차별의 가해자 역으로서, 무대 위에 서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극을 처음으로 하게 되어 긴장도 많이 되었지만, 여러 친구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박수갈채를 받을 때, 긴장이 사르르 풀리면서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이 무척이나 좋았다.
마지막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Eye-witness들과의 대화였다. 나는 다른 여러 친구들과 함께 ‘Bernard’와의 대화에 참여했는데,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아우슈비츠, 다하우, 그가 경험했던 인간의 비인간성, 전쟁의 폐허, 그 모든 것이 나와 모든 참석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었던 미래에 대한 믿음, 휴머니티에 대한 신뢰는 현실의 무게에 다소 지쳐있었던 내게 크나큰 격려와 활력이 되어주었다.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에 그가 우리들에게 제기했던 물음이 선명하게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What would be your, new generation’s obligation in the new world?’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보았던 바로 그 직후, 먹먹했던 내 마음은 그 하나의 ‘의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의무란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비인간성이 가득한 참상을, 그것을 직접 경험한 전 세대(The old generation)로부터 전달받아, 그것을 다시 이후의 세대(The future generation)에게 전달하는 것. 우리의 후대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항상 자기반성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비록 워크캠프가 끝난 지는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그때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Bernard의 저 질문이 들려오는 듯하다. 2주 간의 짧은 기간 동안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친구들과, 아름다운 추억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있다면, 보다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한 다른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보고, 나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점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