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상상 그 이상, 나를 찾은 여름
ESPREL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5년 여름, 나에게는 젊음이 있고, 특별한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가짐이 준비된 때였다. ‘해외 봉사’라는 문구는 언젠가 내가 준비되면 당장 뛰어 들 생각이었다. 나는 이루었고 뿌듯하고 행복했다. OT에 참가했는데, 가면 준비사항,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법 그리고 선참가자들의 후기를 들어 볼 수 있다. 그 당시에 메르스 바이러스 때문에 걱정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인포싯에 나와 있는 미팅포인트나 필수 준비사항을 보고 짐을 꾸려나갔다. 워크캠프에 대한 기대는 새로운 많은 외국 친구들을 보면서 반응할 나의 모든 것들이 궁금했고, 워크캠프 이후 얻게 될 엄청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바로 경험이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나의 미팅포인트는 그 마을 근처의 기차역 이었다. 시간 여유 있게 기차역에 도착하였고, 하나 둘씩 도착할 친구들이 너무 궁금했다. 맨 처음 만나 인사한 친구는 벨라루스에서 온 친구 였다. 그 후 생활하면서 그 친구는 알면 알수록 어메이징 한 친구였다.(완전 팔방미인이었던.) 그렇게 바르셀로나, 프랑스, 홍콩 친구들이 모여 한 차를 타고 우리가 머물 ESPRELS 마을로 들어갔다. 도착하니 먼저 와 있었던 친구들을 만났고, 서로 어색하지만 저녁에 우린 카드게임을 하며 놀았다.(어색하지만 게임으로 서로를 알아갔던.) 그러면서 늦게 도착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현지 리더의 계획을 듣고, 몇몇 마을 주민들도 볼 수 있는 그런 하루 였다. 프랑스식 인사는 볼을 맞대는 인사인데, 신기고도 예쁜 기억이다. 아침 7시 30분정도에 일어나서 아침식사 후에 8시부터 일터로 가서 1시 반까지 일을 하였다. 중간에 휴식 및 간식타임이 있고, 일 속도에 따라 일하는 시간을 조정하면서 작업 하였다. 식사는 키친 팀을 만들어서 돌아가면서 요리를 해서 먹었다. 대부분 친구들이 요리도 잘했다. 덕분에 맛있게 먹고, 나도 괜찮게 요리를 했다고 생각한다.(친구들이 입맛에 맞길 바라며 소스를 넣었던.)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는 한국에서 준비해 갔다.
점심식사 후엔 마을 주민들의 집을 나누어서 2-3팀씩 샤워를 하러 갔다. 우리가 머무는 학교에도 샤워를 할 순 있지만 그 bathroom은 찬물만 나와서 대부분 주민들 집에서 샤워를 했고, 집집마다 다른 그 스타일대로의 인테리어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정해진 저녁 시간은 19시 30분쯤이지만 늦어질 때가 많았고, 어느 바베큐파티 때에는 10시에 저녁을 먹었다. 평범한 저녁 이후엔 Activity Time인데, 춤을 잘 추는 친구가 춤을 가르쳐준다던지, 수영을 하러 간다던지 여러 게임을 하였다. 사실, 어느 한 일주일 전체 저녁은 주민들의 저녁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였다. 와인도 참 많이 마셨는데.. 분위기도 너무 좋고, 주민들의 배려가 참 따뜻했다. 술을 마시면 얼굴 빨개지는 나를 보고 너는 한국인이 아니라며 일본인이라며 놀리는 우리 한국리더는 술을 잘 마셨다. 보통 식사에 초대받으면 2시간 반에서 3시간정도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고, 한번은 피자를 구워주는 집에 초대받아서 종류별로 피자를 먹어보았고, 직접 피자도 만들었다. 보통 주말에는 박물관을 가거나 그 지역의 명소를 갔다. 정말 빈틈없는 알찬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지역주민들과 다양한 교류가 많았다.
21:00시 이후는 거의 Party!
Welcome party 라던지, International party, Good bye party 등 그 외에 굳이 정해놓지 않았어도 즐길 줄 아는 마을 주민들이 놀러와 음악을 틀고 Party를 하는 것은 normal한 일상이었던 Esprels!(그곳의 모든 추억들이 그립다.)
‘러시아, 프랑스,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홍콩, 스코틀랜드, 나이지리아, 한국, 에스토니아, 바르셀로나, 터키, 인도’ 이렇게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 소통하는 일은 생각 보다 어렵지 않다. 나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가갔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귀엽게 봐주었다. (나중에는 김정은은 나의 삼촌이고 나는 북한에서 왔고 스파이라며 장난까지 치게 되었던. 소중한 한 순간 순간이다.)
현지리더와 친구인 터키나 인도 친구는 다른 지역 워크캠프자인데 우리보다 일찍 끝나서 끝나갈 즈음에 우리 쪽에 합류에서 키친팀이나 일을 도와주었다.
웃지 못할 상상도 못할 일들도 있었지만 모두 포용하고 서로 이해하는 행복하고 따뜻했던 여름이었다.(그런 추억을 함께 공유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점심식사 후엔 마을 주민들의 집을 나누어서 2-3팀씩 샤워를 하러 갔다. 우리가 머무는 학교에도 샤워를 할 순 있지만 그 bathroom은 찬물만 나와서 대부분 주민들 집에서 샤워를 했고, 집집마다 다른 그 스타일대로의 인테리어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정해진 저녁 시간은 19시 30분쯤이지만 늦어질 때가 많았고, 어느 바베큐파티 때에는 10시에 저녁을 먹었다. 평범한 저녁 이후엔 Activity Time인데, 춤을 잘 추는 친구가 춤을 가르쳐준다던지, 수영을 하러 간다던지 여러 게임을 하였다. 사실, 어느 한 일주일 전체 저녁은 주민들의 저녁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였다. 와인도 참 많이 마셨는데.. 분위기도 너무 좋고, 주민들의 배려가 참 따뜻했다. 술을 마시면 얼굴 빨개지는 나를 보고 너는 한국인이 아니라며 일본인이라며 놀리는 우리 한국리더는 술을 잘 마셨다. 보통 식사에 초대받으면 2시간 반에서 3시간정도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고, 한번은 피자를 구워주는 집에 초대받아서 종류별로 피자를 먹어보았고, 직접 피자도 만들었다. 보통 주말에는 박물관을 가거나 그 지역의 명소를 갔다. 정말 빈틈없는 알찬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지역주민들과 다양한 교류가 많았다.
21:00시 이후는 거의 Party!
Welcome party 라던지, International party, Good bye party 등 그 외에 굳이 정해놓지 않았어도 즐길 줄 아는 마을 주민들이 놀러와 음악을 틀고 Party를 하는 것은 normal한 일상이었던 Esprels!(그곳의 모든 추억들이 그립다.)
‘러시아, 프랑스,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홍콩, 스코틀랜드, 나이지리아, 한국, 에스토니아, 바르셀로나, 터키, 인도’ 이렇게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 소통하는 일은 생각 보다 어렵지 않다. 나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가갔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귀엽게 봐주었다. (나중에는 김정은은 나의 삼촌이고 나는 북한에서 왔고 스파이라며 장난까지 치게 되었던. 소중한 한 순간 순간이다.)
현지리더와 친구인 터키나 인도 친구는 다른 지역 워크캠프자인데 우리보다 일찍 끝나서 끝나갈 즈음에 우리 쪽에 합류에서 키친팀이나 일을 도와주었다.
웃지 못할 상상도 못할 일들도 있었지만 모두 포용하고 서로 이해하는 행복하고 따뜻했던 여름이었다.(그런 추억을 함께 공유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프랑스의 불어는 영어와 단 한 단어도 같은게 없다. 주민들과 처음부터 소통은 어렵지만 생활하면서 익힌 불어 몇 단어로만으로도 의사소통이 된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단지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워크캠프 기간동안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자신이 어느 면으로나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고, 워크캠프가 주는 유익함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된다는 것을!♥
단지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워크캠프 기간동안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자신이 어느 면으로나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고, 워크캠프가 주는 유익함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