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경쟁률 8대 1, 독일 워크캠프 도전기
Eilenbur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우리학교(영남대학교)에서는 ‘해외자원봉사’ 라는 프로그램명을 가진 국제교류 활동이 입학한 후부터 교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을로 알려져 있다. 사회봉사와 관련된 직종에 관심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개인적인 핑계들로 봉사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었다. 그러다 다음학기 휴학을 앞두고 사정들은 다 제쳐두고 미뤄왔던 봉사를 하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고, 약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게 되었다. 처음에 면접을 볼 때는 그림그리기에 관심이 많아서 작년에 벽화그리기 봉사를 했던 프랑스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개인적인 여건을 맞추다 보니 독일로 가게 되었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 혼자서 프랑스와 스위스를 2주 넘게 여행하다가 참가하게 되어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였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가다듬은 뒤, 한국에서 같이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언니를 알게 되어 뮌헨에서부터 동행해 숙소가 있는 엘렌버그(엘렌부르크)까지 가게 되었다. 지도를 보고 걷다가 워크캠프 리더친구인 현지 여자아이의 도움으로 무사히 숙소까지 갈 수 있었다. 인포싯에서는 매트가 없을 수 있는 열악한 환경일지 모르니 침낭과 간단한 매트로 쓸 수 있는 것을 들고 오라고 해서 숙소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학교를 개조한 것 같은 건물에 3명이서 한 방을 쓸 수 있고 각자 매트는 없지만 침대가 있어서 그 위에 침낭을 깔고 누울수 있었고, 화장실과 부엌에 넓은 거실을 갖춘 신식건물이었다. 나는 스페인과 러시아 친구와 함께 화장실과 샤워실에서 제일 가까운 방을 쓰게 되었다.
첫 날은 서로 도착시간이 달랐던 터라 넓은 마당에 모여 늦게오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을로 밤을 보냈다. 둘째날 역시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 서로를 소개하고 일정에 관한 설명을 들었고 일정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회의를 하였다. 이때, 영어가 능통하지 않은 터라 소극적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말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 내가 가게 된 곳의 워크캠프는 ‘건설’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주제에 맞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잡초제거 후 발리볼 코트 건설, 건물 페인트 칠하기, 시멘트 칠하기, 벽돌나르기, 블록으로 길 만들기, 땅파서 모래 옮기기, 나무파내기 등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속어로 이야기 하자면 막노동 판에서 ‘삽질’만 죽어라 하다온 격이다. 첫날에는 손으로 잡초 뽑기가 쉬워 보여서 풀밭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일을 하였는데 벌레도 굉장히 많았고 손으로 다 뽑을 수 없을 만큼 풀이 질기고 힘이 들어 페인트칠도 해보고 남자아이들과 같이 모래도 옮겨보고 여러 가지 일을 번갈아 가며 했었다. 한가지 일만 하는 것 보다 낫긴 했지만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매일 멍이 들거나 살이 까지는 상처투성이의 나날이었다. 우리캠프 아이들이 긍정적이고 이기적인 아이들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언제 상처가 생겼는지 모를 정도로 음악을 틀어놓고 소리도 질러가며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다. 일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일정이 없는 이상, 항상 매일 아침 9~10시정도부터 시작해서 1시반~2시까지 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다시 일을 하지 않고 지역 박물관을 가거나 그 지역을 돌아보고 공부하고, 게임을 하거나 다같이 여가활동을 즐겼다.
식사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매일 돌아가며 식사당번을 정해 아침, 점심, 저녁을 직접 차려 먹는 시스템이었다. 아침은 리더가 2~3일에 한번 정도 장을 봐오는데 빵과 시리얼 우유로 차려졌고 점심이나 저녁 중 한번만 (가끔 2번 모두를 요리한 적도 있다.) 각자 자기나라 전통음식들을 요리해서 먹었다. 우리캠프에서는 거의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빵과 누텔라가 함꼐했던 것 같다. 나는 5일째 되는 날 저녁으로 준비해 간 불고기 소스와 고추장을 이용해 2가지 고기 요리를 만들었다. 원래 요리를 하기 전, 리더와 함께 마켓을 가는데 점심은 만들게 될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준비하게 되어 감자와 베이컨을 이용한 감자볶음과 감자와 치즈를 이용한 그라탕을 만들었는데 그 전날 러시아 아이들이 만들어준 요리와 비슷했지만 아이들은 전혀 다른 음식을 먹는 것 같이 한국전통음식이냐고 질문해 왔었다. 저녁에 만들었던 불고기는 불고기용 고기를 구하기가 어려워 요리도 더 힘들었고 그 날 저녁 게임 후, 저녁이 늦어져 시간도 없어 촉박하게 만들었는데 대 성공이었다. 아이들 모두 최고의 만찬이라는 극찬을 해 주었고 한국음식을 먹으러 한국에 오고 싶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소스를 한국에서 가져갔던 것이 굉장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마지막 날 아침으로 한국식 팬 케이크인 호떡을 만들게 되었는데 마지막 날이라서 정말 열심히 준비해 이것 역시 인터넷으로 까지 레시피를 물어와서 며칠 전에 캠프참가자들끼리 만든 페이스북 클럽에 내가 레시피를 올려주었다. 호떡믹스를 한국에서 전부 사 가기는 했지만 박력분이나 흑설탕 같은 호떡 재료들은 외국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 각자 특성 있는 호떡을 만들어서 사진으로 올리기로 약속하였다. 약 8개 국가 아이들이 모여있어서 2번 이상 요리할 기회가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2번 모두 아이들이 좋아해 주어서 한국을 알릴 수 있었고 한국에 대한 인식을 좋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우리캠프는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지역 박물관이나 고문화 유적지, 엘렌부르크 다른 워크캠프 방문, 베를린, 라이프치히와 같은 다른 중, 대도시 방문 등 많은 체험활동을 하였다. 오히려 일하는 시간보다 이런 체험활동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는데 그 시간을 이용해 다른 도시에 간 적도 있고 주말 이외에도 일 한 후, 오후에 박물관을 가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지역에 대해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에는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캠프가 시작 된후 4일 째 되는 날 베를린에 갔을 때는 자유시간에 한국인 언니와 둘이서 와이파이가 되는 곳만 찾아 다니며 그냥 자유시간을 둘이 보냈는데, 둘째 주에 라이프치히에 갔을 떄는 자유시간에 아이들 거의 모두가 모여 맥주를 마시며 자유시간을 보냈다. 베를린에서 왜 둘이서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는가 후회가 들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체험활동 이외에 많은 여가활동도 즐겼다. 볼링장에 가서 볼링을 치고, 캠프 내 탁구대가 있어서 탁구도 하였다. 양궁게임이나 정글게임등 활동적인 게임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또, 가까운 호수에 가서 수영을 하거나 카누잉을 하는 곳 에가 팀을 나누어 노젓기 시합도 하였고 우리가 만든 발리볼 코트에서 발리볼을 하여 다른 워크캠프에 방문했을 때에는 거기 팀과 시합도 하였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 모두 체육활동을 굉장히 잘 하였다.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들 스포츠맨(우먼)이었다. 일한 후 체력적으로 힘들 법 한데 바로 발리볼을 하러 나가는 것을 보니 그들은 여가활동으로 휴식대신 운동을 즐겨하는 듯 했다.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게임에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항상 밖으로 어울려 다녔다. 한국에 돌아와서 취미를 물으면 이제 ‘발리볼’이라고 할 만큼 운동이 좋아졌다. 운동을 하니 더 건강해지고 일 한 후 덜 피곤하고 무엇보다 식사가 맛있었으며,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전체적인 워크캠프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나는 마냥 좋기만 했던 것 같다. 솔직히 처음에는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이랑 많은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고 수축되어 저녁에 술자리에서도 빠지고 한국인 언니와 둘이 다니며 아이들을 피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주었고 우리캠프에는 이기적인 아이나 유별난 아이 하나 없이 모두가 착하고 서로 어울리며 도와주는 분위기가 이어져 마음을 열고 난 뒤에는 행복한 나날을 보낸 것 같다. 우리 캠프는 여자 12명과 남자 3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리더와 캠프에 있는 독일인의 친구들이 일을 도와주러 오고 밤에 파티가 있을 때 마다 어울려 15명 이외의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솔직히 아이들이 한국아이들이 영어를 못해서 불편하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모두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였고 거기서 그쳤으며 그 이야기를 한 아이들도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주고 장난도 걸어주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경우라고 다녀온 모두가 이야기 할 만큼 ‘사람 좋은’ 워크캠프였다. 좀 더 일찍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아쉽기만 하고 다시 한 번 워크캠프(같은 곳 같은 사람이면 훨씬 더 좋겠다.)에 참가하고 싶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 혼자서 프랑스와 스위스를 2주 넘게 여행하다가 참가하게 되어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였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가다듬은 뒤, 한국에서 같이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언니를 알게 되어 뮌헨에서부터 동행해 숙소가 있는 엘렌버그(엘렌부르크)까지 가게 되었다. 지도를 보고 걷다가 워크캠프 리더친구인 현지 여자아이의 도움으로 무사히 숙소까지 갈 수 있었다. 인포싯에서는 매트가 없을 수 있는 열악한 환경일지 모르니 침낭과 간단한 매트로 쓸 수 있는 것을 들고 오라고 해서 숙소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학교를 개조한 것 같은 건물에 3명이서 한 방을 쓸 수 있고 각자 매트는 없지만 침대가 있어서 그 위에 침낭을 깔고 누울수 있었고, 화장실과 부엌에 넓은 거실을 갖춘 신식건물이었다. 나는 스페인과 러시아 친구와 함께 화장실과 샤워실에서 제일 가까운 방을 쓰게 되었다.
첫 날은 서로 도착시간이 달랐던 터라 넓은 마당에 모여 늦게오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을로 밤을 보냈다. 둘째날 역시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 서로를 소개하고 일정에 관한 설명을 들었고 일정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회의를 하였다. 이때, 영어가 능통하지 않은 터라 소극적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말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 내가 가게 된 곳의 워크캠프는 ‘건설’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주제에 맞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잡초제거 후 발리볼 코트 건설, 건물 페인트 칠하기, 시멘트 칠하기, 벽돌나르기, 블록으로 길 만들기, 땅파서 모래 옮기기, 나무파내기 등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속어로 이야기 하자면 막노동 판에서 ‘삽질’만 죽어라 하다온 격이다. 첫날에는 손으로 잡초 뽑기가 쉬워 보여서 풀밭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일을 하였는데 벌레도 굉장히 많았고 손으로 다 뽑을 수 없을 만큼 풀이 질기고 힘이 들어 페인트칠도 해보고 남자아이들과 같이 모래도 옮겨보고 여러 가지 일을 번갈아 가며 했었다. 한가지 일만 하는 것 보다 낫긴 했지만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매일 멍이 들거나 살이 까지는 상처투성이의 나날이었다. 우리캠프 아이들이 긍정적이고 이기적인 아이들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언제 상처가 생겼는지 모를 정도로 음악을 틀어놓고 소리도 질러가며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다. 일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일정이 없는 이상, 항상 매일 아침 9~10시정도부터 시작해서 1시반~2시까지 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다시 일을 하지 않고 지역 박물관을 가거나 그 지역을 돌아보고 공부하고, 게임을 하거나 다같이 여가활동을 즐겼다.
식사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매일 돌아가며 식사당번을 정해 아침, 점심, 저녁을 직접 차려 먹는 시스템이었다. 아침은 리더가 2~3일에 한번 정도 장을 봐오는데 빵과 시리얼 우유로 차려졌고 점심이나 저녁 중 한번만 (가끔 2번 모두를 요리한 적도 있다.) 각자 자기나라 전통음식들을 요리해서 먹었다. 우리캠프에서는 거의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빵과 누텔라가 함꼐했던 것 같다. 나는 5일째 되는 날 저녁으로 준비해 간 불고기 소스와 고추장을 이용해 2가지 고기 요리를 만들었다. 원래 요리를 하기 전, 리더와 함께 마켓을 가는데 점심은 만들게 될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준비하게 되어 감자와 베이컨을 이용한 감자볶음과 감자와 치즈를 이용한 그라탕을 만들었는데 그 전날 러시아 아이들이 만들어준 요리와 비슷했지만 아이들은 전혀 다른 음식을 먹는 것 같이 한국전통음식이냐고 질문해 왔었다. 저녁에 만들었던 불고기는 불고기용 고기를 구하기가 어려워 요리도 더 힘들었고 그 날 저녁 게임 후, 저녁이 늦어져 시간도 없어 촉박하게 만들었는데 대 성공이었다. 아이들 모두 최고의 만찬이라는 극찬을 해 주었고 한국음식을 먹으러 한국에 오고 싶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소스를 한국에서 가져갔던 것이 굉장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마지막 날 아침으로 한국식 팬 케이크인 호떡을 만들게 되었는데 마지막 날이라서 정말 열심히 준비해 이것 역시 인터넷으로 까지 레시피를 물어와서 며칠 전에 캠프참가자들끼리 만든 페이스북 클럽에 내가 레시피를 올려주었다. 호떡믹스를 한국에서 전부 사 가기는 했지만 박력분이나 흑설탕 같은 호떡 재료들은 외국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 각자 특성 있는 호떡을 만들어서 사진으로 올리기로 약속하였다. 약 8개 국가 아이들이 모여있어서 2번 이상 요리할 기회가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2번 모두 아이들이 좋아해 주어서 한국을 알릴 수 있었고 한국에 대한 인식을 좋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우리캠프는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지역 박물관이나 고문화 유적지, 엘렌부르크 다른 워크캠프 방문, 베를린, 라이프치히와 같은 다른 중, 대도시 방문 등 많은 체험활동을 하였다. 오히려 일하는 시간보다 이런 체험활동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는데 그 시간을 이용해 다른 도시에 간 적도 있고 주말 이외에도 일 한 후, 오후에 박물관을 가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지역에 대해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에는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캠프가 시작 된후 4일 째 되는 날 베를린에 갔을 때는 자유시간에 한국인 언니와 둘이서 와이파이가 되는 곳만 찾아 다니며 그냥 자유시간을 둘이 보냈는데, 둘째 주에 라이프치히에 갔을 떄는 자유시간에 아이들 거의 모두가 모여 맥주를 마시며 자유시간을 보냈다. 베를린에서 왜 둘이서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는가 후회가 들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체험활동 이외에 많은 여가활동도 즐겼다. 볼링장에 가서 볼링을 치고, 캠프 내 탁구대가 있어서 탁구도 하였다. 양궁게임이나 정글게임등 활동적인 게임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또, 가까운 호수에 가서 수영을 하거나 카누잉을 하는 곳 에가 팀을 나누어 노젓기 시합도 하였고 우리가 만든 발리볼 코트에서 발리볼을 하여 다른 워크캠프에 방문했을 때에는 거기 팀과 시합도 하였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 모두 체육활동을 굉장히 잘 하였다.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들 스포츠맨(우먼)이었다. 일한 후 체력적으로 힘들 법 한데 바로 발리볼을 하러 나가는 것을 보니 그들은 여가활동으로 휴식대신 운동을 즐겨하는 듯 했다.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게임에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항상 밖으로 어울려 다녔다. 한국에 돌아와서 취미를 물으면 이제 ‘발리볼’이라고 할 만큼 운동이 좋아졌다. 운동을 하니 더 건강해지고 일 한 후 덜 피곤하고 무엇보다 식사가 맛있었으며,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전체적인 워크캠프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나는 마냥 좋기만 했던 것 같다. 솔직히 처음에는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이랑 많은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고 수축되어 저녁에 술자리에서도 빠지고 한국인 언니와 둘이 다니며 아이들을 피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주었고 우리캠프에는 이기적인 아이나 유별난 아이 하나 없이 모두가 착하고 서로 어울리며 도와주는 분위기가 이어져 마음을 열고 난 뒤에는 행복한 나날을 보낸 것 같다. 우리 캠프는 여자 12명과 남자 3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리더와 캠프에 있는 독일인의 친구들이 일을 도와주러 오고 밤에 파티가 있을 때 마다 어울려 15명 이외의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솔직히 아이들이 한국아이들이 영어를 못해서 불편하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모두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였고 거기서 그쳤으며 그 이야기를 한 아이들도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주고 장난도 걸어주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경우라고 다녀온 모두가 이야기 할 만큼 ‘사람 좋은’ 워크캠프였다. 좀 더 일찍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아쉽기만 하고 다시 한 번 워크캠프(같은 곳 같은 사람이면 훨씬 더 좋겠다.)에 참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