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교토에서 시작된 특별한 여름
Takatsuki-Keiyukai/OSAK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 7월 28일. 3개월 동안 바랬던 그 날이 왔다. 워크캠프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는 날.
평소에도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1년에 한 번씩은 갔던 일본여행이었지만 여행이 아닌 워크캠프가 목적이었던 이번 일본 행에 임하는 내 마음가짐은 그 이전과 달랐다. 비행기티켓을 예약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기 때문에 미팅장소로 제 시간에 못 가고 4시간 뒤에야 뒤늦게 합류할 수 있었다. 처음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낯선 가게,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10여명의 낯선 사람들. 자기 소개를 하고 이 곳에서 워크캠프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면서, 일본인 리더의 통역을 의존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 다음날, 두 명의 스태프와 함께 한 오사카여행은 다소 경직되어있고 어색해있던 캠프참가자들끼리의 관계도, 그리고 스태프들과의 관계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7월30일. 드디어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었다. 아침식사가 7시 30분에 제공되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한 뒤 9시부터 시작한 직원들의 미팅에 참석하여 인사를 나눈 뒤, 오늘 할 일에 대한 설명과 역할 분담을 들었다. 내가 있었던 곳은 오사카 근처 타카츠키라는 도시의 노인홈과 같은 시설로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 생활하기에 무리라서 입원해 있는 사람들과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이곳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데이케어를 받는 독거노인들이 주 이용자들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종이접기나 부채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식사를 배달해주고,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상대가 되어주는 것이다.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가진 분들이라서 이렇게 젊은 우리들이, 그리고 해외에서 온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시설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일본스탭이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서툰 일본어로 말을 먼저 걸기가 참 쑥스러웠다. 그리고 다들 나이가 80~90세여서 발음도 정확하지 않고 그리고 간사이지역의 사투리 때문에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은 계속해서 묻고, 일본스탭의 도움을 받고, 말문이 막혔을 때는 웃어가며 차차 적응해갔다. 데이케어는 보통 3~4시에 끝나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배웅하고 베드메이킹이나 청소를 하면 하루 일이 끝났다. 이 외에도 유카타를 입고 시설에서 이용자들과 함께 타카츠키 고유의 춤을 추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일이 끝난 후나 주말에는 캠프에 같이 참여한 친구들과 함께 산책을 나가거나 일본스탭들과 함께 타코야끼 파티나 꽃놀이를 하거나 마츠리에 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캠프 도중 나의 생일이 끼여있어서 스탭들이 케이크를 사주고 모두 축하해주었던 것과 같은 타카츠키 시 내에서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우리캠프 참가자의 친구랑 내가 한국에서 미리 연락하고 갔던 동생이 있어서 저녁에 만나 함께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이렇게 1주일은 타카츠키에 있는 시설에서 일을 했고 그 다음 1주일 동안은 쿄토에서 일했는데 마찬가지로 이용자들과 함께 복주머니, 안경케이스, 그림색칠 등을 하면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거나 일손이 부족하다면 시설주변의 잡초도 뽑고 나가시소멘을 위해 대나무를 자르는 등 여러 가지의 일을 했다. 쿄토에서는 하루 오프를 받아서 예전에 가이드를 했던 한 일본스탭의 안내를 받아 쿄토 관광을 했다.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보고 꼭 가보고 싶었던 후시미이나리를 비롯해 기요미즈테라, 아라시야마 등을 돌아보고 예전 헤이안 시대의 옷을 입고 사진도 찍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워크캠프를 하면서 솔직히 신체적으로 힘든 점은 없었다. 하지만 서툰 일본어로 하루 종일 말해야 하고, 발음이 불분명하고 사투리를 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상대할 때, 항상 긴장을 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그 속에는 언제나 지혜와 교훈 그리고 감동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복잡한 역사를 몸으로 겪었던 분, 한류에 푹 빠져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분, 그 옛날에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지금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분, 일제강점기 때 한국에서 일본으로 피난을 와서 갖은 수모를 겪었던 분 등 모두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와 함께 공유해 주셨고 그 이야기 속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처음에는 다른 외국인 캠프 참가자와 의견이 많이 갈리고,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있어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차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다 보니 마지막에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이 워크캠프를 선택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내 전공이 사회복지였기 때문에 일본의 앞선 사회복지 시스템을 경험해보고 싶었었다. 물론 간접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일본의 사회복지를 체험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바로 국경을 넘어, 복잡한 역사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함께 웃고 울 수 있었던 점이다.
워크캠프를 너무 늦게 알아버려서 또 다시 참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주저 말고 다시 참여하고 싶다. 끝으로, 대학시절 さいご(마지막)の 여름방학을 さいこう(최고)로 만들어준 워크캠프와 타카츠키, 쿄토의 모든 스탭들 너무 고맙습니다!!!
평소에도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1년에 한 번씩은 갔던 일본여행이었지만 여행이 아닌 워크캠프가 목적이었던 이번 일본 행에 임하는 내 마음가짐은 그 이전과 달랐다. 비행기티켓을 예약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기 때문에 미팅장소로 제 시간에 못 가고 4시간 뒤에야 뒤늦게 합류할 수 있었다. 처음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낯선 가게,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10여명의 낯선 사람들. 자기 소개를 하고 이 곳에서 워크캠프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면서, 일본인 리더의 통역을 의존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 다음날, 두 명의 스태프와 함께 한 오사카여행은 다소 경직되어있고 어색해있던 캠프참가자들끼리의 관계도, 그리고 스태프들과의 관계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7월30일. 드디어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었다. 아침식사가 7시 30분에 제공되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한 뒤 9시부터 시작한 직원들의 미팅에 참석하여 인사를 나눈 뒤, 오늘 할 일에 대한 설명과 역할 분담을 들었다. 내가 있었던 곳은 오사카 근처 타카츠키라는 도시의 노인홈과 같은 시설로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 생활하기에 무리라서 입원해 있는 사람들과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이곳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데이케어를 받는 독거노인들이 주 이용자들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종이접기나 부채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식사를 배달해주고,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상대가 되어주는 것이다.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가진 분들이라서 이렇게 젊은 우리들이, 그리고 해외에서 온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시설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일본스탭이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서툰 일본어로 말을 먼저 걸기가 참 쑥스러웠다. 그리고 다들 나이가 80~90세여서 발음도 정확하지 않고 그리고 간사이지역의 사투리 때문에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은 계속해서 묻고, 일본스탭의 도움을 받고, 말문이 막혔을 때는 웃어가며 차차 적응해갔다. 데이케어는 보통 3~4시에 끝나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배웅하고 베드메이킹이나 청소를 하면 하루 일이 끝났다. 이 외에도 유카타를 입고 시설에서 이용자들과 함께 타카츠키 고유의 춤을 추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일이 끝난 후나 주말에는 캠프에 같이 참여한 친구들과 함께 산책을 나가거나 일본스탭들과 함께 타코야끼 파티나 꽃놀이를 하거나 마츠리에 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캠프 도중 나의 생일이 끼여있어서 스탭들이 케이크를 사주고 모두 축하해주었던 것과 같은 타카츠키 시 내에서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우리캠프 참가자의 친구랑 내가 한국에서 미리 연락하고 갔던 동생이 있어서 저녁에 만나 함께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이렇게 1주일은 타카츠키에 있는 시설에서 일을 했고 그 다음 1주일 동안은 쿄토에서 일했는데 마찬가지로 이용자들과 함께 복주머니, 안경케이스, 그림색칠 등을 하면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거나 일손이 부족하다면 시설주변의 잡초도 뽑고 나가시소멘을 위해 대나무를 자르는 등 여러 가지의 일을 했다. 쿄토에서는 하루 오프를 받아서 예전에 가이드를 했던 한 일본스탭의 안내를 받아 쿄토 관광을 했다.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보고 꼭 가보고 싶었던 후시미이나리를 비롯해 기요미즈테라, 아라시야마 등을 돌아보고 예전 헤이안 시대의 옷을 입고 사진도 찍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워크캠프를 하면서 솔직히 신체적으로 힘든 점은 없었다. 하지만 서툰 일본어로 하루 종일 말해야 하고, 발음이 불분명하고 사투리를 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상대할 때, 항상 긴장을 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그 속에는 언제나 지혜와 교훈 그리고 감동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복잡한 역사를 몸으로 겪었던 분, 한류에 푹 빠져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분, 그 옛날에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지금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분, 일제강점기 때 한국에서 일본으로 피난을 와서 갖은 수모를 겪었던 분 등 모두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와 함께 공유해 주셨고 그 이야기 속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처음에는 다른 외국인 캠프 참가자와 의견이 많이 갈리고,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있어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차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다 보니 마지막에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이 워크캠프를 선택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내 전공이 사회복지였기 때문에 일본의 앞선 사회복지 시스템을 경험해보고 싶었었다. 물론 간접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일본의 사회복지를 체험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바로 국경을 넘어, 복잡한 역사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함께 웃고 울 수 있었던 점이다.
워크캠프를 너무 늦게 알아버려서 또 다시 참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주저 말고 다시 참여하고 싶다. 끝으로, 대학시절 さいご(마지막)の 여름방학을 さいこう(최고)로 만들어준 워크캠프와 타카츠키, 쿄토의 모든 스탭들 너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