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탄자니아, 느림의 미학을 배우다
Empowering Youth through educatio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한국인으로서 아프리카 대륙은 미지의 땅이었다. 내가 접할 수 있는 도구들은 모두 까만 피부에 커다란 눈 그리고 앙상하게 말라버려 파리를 쫓을 힘조차 없는 아이들을 그려내곤 했다. 많은 정보들이 그랬듯 나 또한 아프리카를 대륙보다는 하나의 나라로 치부해 버리고 54개의 독단적인 나라가 있음을 은근슬쩍 넘겨짚었다. 한편으론 정말 모두 같은 “아프리카인” 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구원이 필요한 땅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탄자니아로 떠나기로 했다. 그곳에서 현지인들의 문화, 교육, 정치, 사회 등 전반적인 이해관계를 배우고 싶었다. “왜 아프리카는 아직도 개발도상국인가?”라는 생각을 해 본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직접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랬다. 그렇게 “아프리카는 위험해”라며 걱정해주는 주변인에게 만사를 맞긴 채 난 설렘과 궁금증을 가득 안고 출국일 만을 기다렸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언제 또 와보겠나”라며 경유에 경유를 거쳐 당도한 탄자니아는 “다시 또 와야 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인생에 한번뿐이라며 거금을 들여 경험한 사파리와 잔지바르섬에서의 나날은 진짜 탄자니아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탄자니아 현지 사회봉사단체인 유비큐타에 도착해보니 그 생각은 현실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물을 길어다 일명 “바가지 샤워”를 해야 했고 땡볕아래 쪼그려 앉아 손빨래를 해야 했다. 이른 아침 철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원숭이 소리에 눈을 떴고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아침을 먹었다. 사실 고생하러 간 봉사이니 생활에 대한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빠르게 적응하고 커뮤니티를 흡수하기에도 벅찼으니까. 생각보다 아이들은 겁이 없었고 외국인에 호의적이었다. 종종 뻔뻔한 낯으로 펜을 요구하는 소녀들이 있어 초반엔 외국자본의 폐해라며 슬퍼했지만 나중엔 서글하게 웃으며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지나칠 수 있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탄자니아를 떠나온지 어언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한 평 더 넓고 한 층 더 깊어진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 탄자니아는 천천히 이루어 가는 삶을 불평하지 않고 그들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 달리길 원하는 남들이 왔을 때 탄자니아는 시름시름 앓았고 나 또한 다름을 인정하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을 배웠다.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라는 한국의 센세이셔널한 노랫말 처럼 행복과 아픔은 모두 개개인의 잣대로 평가되는 것이고 나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배웠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나는 아프리카 대륙과 그들이 느껴온 타인의 손길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 가고싶다. 그들의 커뮤니티에 닿은 손길은 한 줌의 땀이었지만 그들이 나에게 닿은 손길은 내 삶을 적셔준 바다와 같았다. 되로주고 말로받은 탄자니아는 다시 한번 꼭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