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용기, 두려움 대신 설렘 안고
ECO CAMP TRSIC, Loznic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 한 학기를 휴학하고 유럽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5월10일부터 7월18일 까지의 두달 여 간의 여행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아르바이트와 영어 회화학원을 다니며 휴학기간을 즐겼다. 혼자 배낭여행을 간다고 하니 부모님이 처음에는 절대 안된다며 노발대발 하셨지만 일년 동안 부모님을 조르고 졸랐다. 그냥 조르면 안 보내 줄게 뻔하니 서양미술사, 서양역사, 영어회화 수업들을 들으며 이거 써먹으러 가야한다, 견문을 쌓아야 국제적으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등등의 주장으로 설득에 성공 하였다. 지금 보고서를 쓰며 느낀 것이지만 출국 전까지 무수히 제출한 여행계획서와 설득을 위한 상소문들 덕택에 나의 타자 능력이 +5 정도 된 듯 하다.
여행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 온갖 여행 서적들과 블로그를 탐방하고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던중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다. 워크캠프는 캠프에서 지내며 봉사활동도 하고 외국인 친구들도 사귈 수 있고 또 2주동안 숙소가 제공 되므로 가난한 여행준비자인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프로그램이었다. 나의 일정에 맞는 나라와 기간을 찾던중 세르비아를 선택 하게 되었고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나는 친구 진성이와 상의해서 같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다.
드디어 시작된 여행,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레스고, 에딘버러를 거쳐 런던, 파리, 룩셈부르크, 비안덴, 브뤼셀, 암스테르담 저가항공을 타고 베를린, 프라하, 빈, 할슈타트, 짤츠부르크, 뮌헨, 인터라켄, 자그레브, 플리트비체 까지.... 도시 읊은 것만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5월10일부터 6월18일까지 약 한달 여 동안 이곳을 다 돌아다니려니 마치 국토대장정이나 기차타고 삼만리를 찍는 것과 같은 고된 일정이었다. 그림 같고 아름다운 곳들을 여행하며 너무 즐겁고 기뻤지만 한달 동안의 강행군은 나를 체력적으로 지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토종 한국인 입맛인 나는 치즈, 빵 에 물려 모든 음식에 고추장을 발라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찰나에 입성하게 된 세르비아 워크캠프! 정착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활동한 곳은 세르비아에서도 외각 로즈니카에 있는 트리시크라는 지역이었다. 트리시크는 세르비아의 국립공원 같은 곳이었는데 우리 숙소는 그 산속 초입에 있었다. 그래서 세르비아에 이주 동안 지냈지만 사람들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말해 줄만한 것이 없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멋진 산이 있다는 정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워크캠프 동안 지낸 숙소만큼은 유럽 속 나의 home sweet hoom 이랄까.... 3층짜리 가정집을 개조한 것 이었는데, 화장실도 층마다 있고 남자방 여자방이 따로 있으며 모두에게 포근한 개인침대가 마련 되었다. 따듯한 물도 콸콸콸, 수압도 콸콸콸 나오는 천국이었다. 그곳은 100년 뒤에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시작된 캠프생활, 이곳에는 나와 진성을 제외하고 11명의 참가자들이 있었고 캠프리더와 기타등등의 도우미들이 여럿 있는 복작복작한 분위기 였다. 모두들 유쾌하고 명랑한 성격이었고 다들 술과 음악을 사랑했다. 캠프리더 또한 만났던 팀 중 우리팀의 분위기가 가장 hot 하다며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톱질을 하는 대단한 팀 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사실 워크캠프에 들어오기 전에 인포싯에 hard work라고 써있었기에 겁을 잔뜩 먹고 갔지만 한달간의 여행으로 내 체력 또한 상당히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hard하지 않았다.(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나는 한달간의 여정으로 강철 체력과 무쇠다리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산을 왕복하며 쓰레기 수거하는 일과 정비되지 않은 숲 속 도로를 정리 하는 일, 아티스트를 도와 국립공원을 꾸미는 일 등을 주로 했다. 매일 산을 타고 나무를 주워오고 톱질과 도끼질을 하는 와일드한 생활 이었다. 하지만 다같이 몸을 쓰니 참 즐거(?)웠다. 부대끼며 쌓이는 우정 이랄까, 그리고 이틀은 세르비아의 고아원 아이들과 만났다. 나는 학국에서도 고와원에 다녀온 적이 없었다. 처음 도착했을때 아시아인을 처음 본 아이들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관심을 가졌다. 아이들이 영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눈빛과 몸짓으로 대화 할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밝은 성격의 아이들이었다. 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모두들 마음속에는 깊은 상처가 존재 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마지막에 헤어질때는 아쉬워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눈물이 났다. 내가 더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했다.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 날들이었다.
또, 휴일에는 로즈니카에 있는 강으로 수영을 하러 다같이 놀러갔다. 강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세르비아 전통 음식들을 먹고 강에 들어가 수영을 했다. 오랜만에 물에 들어가 놀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 강을 건너면 보스니아라고 했다. 그 밖에도 참 많은 시간들을 친구들과 함께 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잊지 못할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항상 엄마처럼 챙겨주던 올리베라 이모 (나이가 좀 많은 언닌데 진성이와 나는 이모라고 부른다.) 로즈니카에 살고 있는 타냐(9년 된 남자친구도 우리 캠프에 자주 도와주러 왔다.) , 발음이 참 독특했던 체코에서 온 이고르 , 문신이 남달랐던 유쾌한 아냐 , 키가 191cm나 되는 키다리 다리우스 , 4개국어를 하는 맥스, 손수 만들어온 인형을 선물해 준 니나, 지식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엘리트 폴, 귀여운 채식주의자 마눅, 미디어 아트 전공으로 우리의 동영상과 사진을 책임져준 사비나 모두모두 좋은 친구들 이었다. 유로 2012시즌이라 매일 밤마다 자기들의 국가를 응원하며 서로 견제(?) 하는 것도 즐거웠고, 보드게임을 하며 보낸 휴식시간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다같이 즐겼던 댄스타임 그 모든 것들이 정말 잊지 못 할 기억들 이다. 그 곳 에서 보낸 시간들은 앞으로 나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고난이 있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주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것 같다.
앞으로 워크캠프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무조건 추천할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봉사하는 마음과 지성을 겸비하였기 때문에 내가 유럽에서 만난 그 어떤 그룹의 사람들보다도 유쾌하고 매력적인 사람들 이었다. 그리고 내가 어디서도 경험해 보기 힘든 일들을 나는 머나먼 유럽의 대륙에서 느꼈고 그것은 지금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를 계기로 적극적인 마음으로 앞으로도 많은 활동을 계속 해 나갈 생각이다.
워크캠프는 나에게 있어서 용기 +100을 업그레이드 시켜준 행복한 시간이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아르바이트와 영어 회화학원을 다니며 휴학기간을 즐겼다. 혼자 배낭여행을 간다고 하니 부모님이 처음에는 절대 안된다며 노발대발 하셨지만 일년 동안 부모님을 조르고 졸랐다. 그냥 조르면 안 보내 줄게 뻔하니 서양미술사, 서양역사, 영어회화 수업들을 들으며 이거 써먹으러 가야한다, 견문을 쌓아야 국제적으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등등의 주장으로 설득에 성공 하였다. 지금 보고서를 쓰며 느낀 것이지만 출국 전까지 무수히 제출한 여행계획서와 설득을 위한 상소문들 덕택에 나의 타자 능력이 +5 정도 된 듯 하다.
여행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 온갖 여행 서적들과 블로그를 탐방하고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던중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다. 워크캠프는 캠프에서 지내며 봉사활동도 하고 외국인 친구들도 사귈 수 있고 또 2주동안 숙소가 제공 되므로 가난한 여행준비자인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프로그램이었다. 나의 일정에 맞는 나라와 기간을 찾던중 세르비아를 선택 하게 되었고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나는 친구 진성이와 상의해서 같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다.
드디어 시작된 여행,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레스고, 에딘버러를 거쳐 런던, 파리, 룩셈부르크, 비안덴, 브뤼셀, 암스테르담 저가항공을 타고 베를린, 프라하, 빈, 할슈타트, 짤츠부르크, 뮌헨, 인터라켄, 자그레브, 플리트비체 까지.... 도시 읊은 것만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5월10일부터 6월18일까지 약 한달 여 동안 이곳을 다 돌아다니려니 마치 국토대장정이나 기차타고 삼만리를 찍는 것과 같은 고된 일정이었다. 그림 같고 아름다운 곳들을 여행하며 너무 즐겁고 기뻤지만 한달 동안의 강행군은 나를 체력적으로 지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토종 한국인 입맛인 나는 치즈, 빵 에 물려 모든 음식에 고추장을 발라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찰나에 입성하게 된 세르비아 워크캠프! 정착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활동한 곳은 세르비아에서도 외각 로즈니카에 있는 트리시크라는 지역이었다. 트리시크는 세르비아의 국립공원 같은 곳이었는데 우리 숙소는 그 산속 초입에 있었다. 그래서 세르비아에 이주 동안 지냈지만 사람들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말해 줄만한 것이 없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멋진 산이 있다는 정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워크캠프 동안 지낸 숙소만큼은 유럽 속 나의 home sweet hoom 이랄까.... 3층짜리 가정집을 개조한 것 이었는데, 화장실도 층마다 있고 남자방 여자방이 따로 있으며 모두에게 포근한 개인침대가 마련 되었다. 따듯한 물도 콸콸콸, 수압도 콸콸콸 나오는 천국이었다. 그곳은 100년 뒤에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시작된 캠프생활, 이곳에는 나와 진성을 제외하고 11명의 참가자들이 있었고 캠프리더와 기타등등의 도우미들이 여럿 있는 복작복작한 분위기 였다. 모두들 유쾌하고 명랑한 성격이었고 다들 술과 음악을 사랑했다. 캠프리더 또한 만났던 팀 중 우리팀의 분위기가 가장 hot 하다며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톱질을 하는 대단한 팀 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사실 워크캠프에 들어오기 전에 인포싯에 hard work라고 써있었기에 겁을 잔뜩 먹고 갔지만 한달간의 여행으로 내 체력 또한 상당히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hard하지 않았다.(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나는 한달간의 여정으로 강철 체력과 무쇠다리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산을 왕복하며 쓰레기 수거하는 일과 정비되지 않은 숲 속 도로를 정리 하는 일, 아티스트를 도와 국립공원을 꾸미는 일 등을 주로 했다. 매일 산을 타고 나무를 주워오고 톱질과 도끼질을 하는 와일드한 생활 이었다. 하지만 다같이 몸을 쓰니 참 즐거(?)웠다. 부대끼며 쌓이는 우정 이랄까, 그리고 이틀은 세르비아의 고아원 아이들과 만났다. 나는 학국에서도 고와원에 다녀온 적이 없었다. 처음 도착했을때 아시아인을 처음 본 아이들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관심을 가졌다. 아이들이 영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눈빛과 몸짓으로 대화 할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밝은 성격의 아이들이었다. 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모두들 마음속에는 깊은 상처가 존재 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마지막에 헤어질때는 아쉬워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눈물이 났다. 내가 더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했다.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 날들이었다.
또, 휴일에는 로즈니카에 있는 강으로 수영을 하러 다같이 놀러갔다. 강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세르비아 전통 음식들을 먹고 강에 들어가 수영을 했다. 오랜만에 물에 들어가 놀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 강을 건너면 보스니아라고 했다. 그 밖에도 참 많은 시간들을 친구들과 함께 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잊지 못할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항상 엄마처럼 챙겨주던 올리베라 이모 (나이가 좀 많은 언닌데 진성이와 나는 이모라고 부른다.) 로즈니카에 살고 있는 타냐(9년 된 남자친구도 우리 캠프에 자주 도와주러 왔다.) , 발음이 참 독특했던 체코에서 온 이고르 , 문신이 남달랐던 유쾌한 아냐 , 키가 191cm나 되는 키다리 다리우스 , 4개국어를 하는 맥스, 손수 만들어온 인형을 선물해 준 니나, 지식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엘리트 폴, 귀여운 채식주의자 마눅, 미디어 아트 전공으로 우리의 동영상과 사진을 책임져준 사비나 모두모두 좋은 친구들 이었다. 유로 2012시즌이라 매일 밤마다 자기들의 국가를 응원하며 서로 견제(?) 하는 것도 즐거웠고, 보드게임을 하며 보낸 휴식시간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다같이 즐겼던 댄스타임 그 모든 것들이 정말 잊지 못 할 기억들 이다. 그 곳 에서 보낸 시간들은 앞으로 나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고난이 있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주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것 같다.
앞으로 워크캠프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무조건 추천할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봉사하는 마음과 지성을 겸비하였기 때문에 내가 유럽에서 만난 그 어떤 그룹의 사람들보다도 유쾌하고 매력적인 사람들 이었다. 그리고 내가 어디서도 경험해 보기 힘든 일들을 나는 머나먼 유럽의 대륙에서 느꼈고 그것은 지금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를 계기로 적극적인 마음으로 앞으로도 많은 활동을 계속 해 나갈 생각이다.
워크캠프는 나에게 있어서 용기 +100을 업그레이드 시켜준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