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러시아, 고생 끝에 낙이 온다
Golden cupol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러시아.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쉽게 갈 수 없는 곳.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나의 러시아 방문기는 처음부터 사건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도 캠프 1주일을 남기고서야 겨우 도착한 인포싯 때문에 그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캠프 첫 날. 우리 캠퍼들의 미팅 장소는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한 지하철역 인근 공원이었다. 그러나 캠프 이전에 유럽 여행을 했던 나는 이미 두달 전 미리 예약한 독일발(發)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가야 했기 때문에 캠프 미팅 시간보다 2시간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게다가 급히 연락한 현지 단체와 캠프 리더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았고, 결국 나는 캠프 첫날을 나홀로 모스크바의 한 호스텔에서 보내게 됐다. 다행히 다음날 웹사이트에서 확인한 현지 기관의 사무실에 찾아가 무사히 캠프 리더와 연락을 하고, 또 느린 일처리로 악명이 자자한 러시아 기차표 구매까지 모두 마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4시간을 도착한 ‘야로슬라블’ 역에서 캠프 리더 중 한 명인 ‘막심’을 만나 또 다시 2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드디어 우리의 캠프 장소인 ‘우글리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나의 캠프는 그간 내가 겪었던 캠프들과 다소 다른 점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캠퍼들의 구성이 특이했는데, 스페인, 터키, 프랑스, 세르비아, 독일, 체코, 타이, 한국 등으로 구성된 14명의 외국인 캠퍼들과 지역의 청소년으로 구성된 12명 정도의 러시아 캠퍼들이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인원이 많다 보니 캠프 숙소 역시 마을에 위치한 오래된 호스텔이었는데 한방에 2~4명이서 낡은 개인 침대를 사용하고, 2개의 공동 욕실과 5개의 화장실을 나눠야 했다. 또한 음식 역시 호스텔에서 급식을 매일 제공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사실 모든 환경이 열악했다. 먼지와 곰팡이로 얼룩진 우리의 숙소를 청소하는 것이 우리의 첫 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루의 즐거움이어야 할 음식 마저 야채와 과일이 값 비싼 러시아의 환경상 매일 감자, 단순히 삶기만 한 면과 같은 재료들이 반복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매일 인원에 비해 음식들도 부족했고, 영양에도 좋지 않아 우리들은 마트에서 개인적으로 음식을 추가로 구매해 먹어야 하는 형편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캠프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러시아의 마을들은 무척이나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차츰 이런 환경에도 적응하게 됐다.
그리고 가장 캠프에 있어 중요한 ‘프로젝트’ 역시 혼란의 연속이었다. 항상 미리 일이 계획된 다른 나라들의 캠프와 달리 러시아 캠프는 즉석으로 결정되곤 했다. 당일 아침이 돼야 내가 어디에 가서 일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들었고(때로는 설명조차 없었다) 도구나 재료들이 부족해 매번 30%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이 없어 마냥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야 할 때도 많았다. 특히 러시아 캠퍼들과의 갈등도 이번 캠프의 어려움 중 하나였다. 지금도 남성 중심의 사회인 러시아 캠퍼들은 캠프 초반 여자가 힘든 일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러시아 남자들은 항상 일을 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집안일과 도구들을 옮기는 단순한 일만 시키려고 했고, 반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유럽권의 캠퍼들과 갈등을 빚고 말았다. 결국 캠프 후반이 돼서야 ‘우리 나라는 너희와 다르다’라는 사실을 이해한 몇몇 러시아 캠퍼들과 2번의 러시아의 문화를 배우는 ‘러시아의 밤’ 시간 덕분에 이 갈등도 차츰 누그러질 수 있었다. 사실 이 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는 외국인 캠퍼들 쪽의 리더가 부재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러시아 캠퍼들이 3명의 리더를 가진 것과 달리 외국인 캠퍼들은 담당 리더를 갖지 못했다. 캠프 첫 주, 디렉터인 ‘율리아’를 제외하곤 모두 캠퍼들일뿐 이 캠프를 안내하고 우리를 조율해줄 리더가 부재했다. 그렇다 보니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4명의 캠퍼들에게 통역이란 막중한 책임이 부여됐고, 특히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러시아 캠퍼들과의 소통은 무척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말 여행 같은 경우에도 캠프 측에서 미리 정해준 것이 없었기에 버스 예약 같은 일도 외국인인 우리 스스로 해야만 했다.
그러나 외국인 캠퍼들은 내가 지금까지 겪은 캠퍼들 중에 최고였다. 18살부터 26살, 8개국에서 온 우리 캠퍼들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다. 특히 종종 유럽에서 겪을 수 있는 동양인을 무시하는 태도도 없이 모두들 동양인인 내게 친절하고 동양의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대화했는데 캠퍼들 중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참을성 있게 기다리거나 그들을 위해 쉬운 영어를 사용하며 모두가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래서 다소 낮을 가리는 성격인 나 역시 적응기인 3일이 지나자 아이들과 어색함 없이 장난치고 함께 노래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캠프 후반, 우리들의 영어는 처음보다 조금 엉망이 됐는데, 영어를 잘 못하는 한 터키 친구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나 ‘잇’이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너무나 활기차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각자의 영어가 이 친구의 영향을 받아 단순해 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엄청난 영향력에 감탄하며 웃을 뿐이었다.
일이 없는 휴일에 우리는 인근 대도시인 ‘야로슬라블’과 크램린궁이 있는 ‘론스톱’을 방문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진 러시아답게 우리는 한 번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버스로 2~3시간 넘는 이동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러시아라는 낮 선 문화와 새로운 환경들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했고, 종종 발생했던 크고 작은 트러블들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또 한번은 마을의 기념 축제에도 참여하게 됐다. 마을 광장에서 벌어지는 마을 축제에서 우리는 한 연극의 엑스트라로 참가했다. 단지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대사 없이 단순한 동작을 취하는 것이었지만, 러시아의 전통 의상을 차려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이것 저것 의상들을 입어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스스로 준비한 ‘노래 대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인데, 저녁시간에 넓은 방에 모여 각 국가별로 짧게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었다. 평소 대화할 때 사용하던 영어가 아닌 서로에게 낮 선 언어들,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래 실력은 이 대회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부끄러우면서도 다른 친구들에게 나의 나라를 알린다는 마음으로 모두 대회에 참가한 우리들은 이날 서로의 노래를 감상하며 환호했다. 나 역시 외국인 참가자 중 마지막으로 앞에 서 ‘아리랑’과 가요 한 곡을 불렀는데, 나의 노래에 반응해주고 “너의 노래 참 좋았어”라고 말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하루 종일 미소가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약 3주,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나는 너무나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종종 있었던 사고와 갈등 조차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러시아. 우리나라의 인접국이지만 별로 아는 것도 없었고 낮 설었던 이 나라가 이제는 너무나 친숙하고 반가운 나라가 됐다(그래서 나는 복학 이후 러시아에 관련된 교양 강의를 하나 듣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의 친구들. 각기 다르고 때로는 부족한 외국어 실력으로 인해 말도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서로의 얼굴만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나의 친구들이 이번 캠프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보물이다.
이번 나의 캠프는 그간 내가 겪었던 캠프들과 다소 다른 점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캠퍼들의 구성이 특이했는데, 스페인, 터키, 프랑스, 세르비아, 독일, 체코, 타이, 한국 등으로 구성된 14명의 외국인 캠퍼들과 지역의 청소년으로 구성된 12명 정도의 러시아 캠퍼들이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인원이 많다 보니 캠프 숙소 역시 마을에 위치한 오래된 호스텔이었는데 한방에 2~4명이서 낡은 개인 침대를 사용하고, 2개의 공동 욕실과 5개의 화장실을 나눠야 했다. 또한 음식 역시 호스텔에서 급식을 매일 제공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사실 모든 환경이 열악했다. 먼지와 곰팡이로 얼룩진 우리의 숙소를 청소하는 것이 우리의 첫 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루의 즐거움이어야 할 음식 마저 야채와 과일이 값 비싼 러시아의 환경상 매일 감자, 단순히 삶기만 한 면과 같은 재료들이 반복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매일 인원에 비해 음식들도 부족했고, 영양에도 좋지 않아 우리들은 마트에서 개인적으로 음식을 추가로 구매해 먹어야 하는 형편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캠프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러시아의 마을들은 무척이나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차츰 이런 환경에도 적응하게 됐다.
그리고 가장 캠프에 있어 중요한 ‘프로젝트’ 역시 혼란의 연속이었다. 항상 미리 일이 계획된 다른 나라들의 캠프와 달리 러시아 캠프는 즉석으로 결정되곤 했다. 당일 아침이 돼야 내가 어디에 가서 일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들었고(때로는 설명조차 없었다) 도구나 재료들이 부족해 매번 30%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이 없어 마냥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야 할 때도 많았다. 특히 러시아 캠퍼들과의 갈등도 이번 캠프의 어려움 중 하나였다. 지금도 남성 중심의 사회인 러시아 캠퍼들은 캠프 초반 여자가 힘든 일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러시아 남자들은 항상 일을 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집안일과 도구들을 옮기는 단순한 일만 시키려고 했고, 반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유럽권의 캠퍼들과 갈등을 빚고 말았다. 결국 캠프 후반이 돼서야 ‘우리 나라는 너희와 다르다’라는 사실을 이해한 몇몇 러시아 캠퍼들과 2번의 러시아의 문화를 배우는 ‘러시아의 밤’ 시간 덕분에 이 갈등도 차츰 누그러질 수 있었다. 사실 이 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는 외국인 캠퍼들 쪽의 리더가 부재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러시아 캠퍼들이 3명의 리더를 가진 것과 달리 외국인 캠퍼들은 담당 리더를 갖지 못했다. 캠프 첫 주, 디렉터인 ‘율리아’를 제외하곤 모두 캠퍼들일뿐 이 캠프를 안내하고 우리를 조율해줄 리더가 부재했다. 그렇다 보니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4명의 캠퍼들에게 통역이란 막중한 책임이 부여됐고, 특히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러시아 캠퍼들과의 소통은 무척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말 여행 같은 경우에도 캠프 측에서 미리 정해준 것이 없었기에 버스 예약 같은 일도 외국인인 우리 스스로 해야만 했다.
그러나 외국인 캠퍼들은 내가 지금까지 겪은 캠퍼들 중에 최고였다. 18살부터 26살, 8개국에서 온 우리 캠퍼들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다. 특히 종종 유럽에서 겪을 수 있는 동양인을 무시하는 태도도 없이 모두들 동양인인 내게 친절하고 동양의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대화했는데 캠퍼들 중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참을성 있게 기다리거나 그들을 위해 쉬운 영어를 사용하며 모두가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래서 다소 낮을 가리는 성격인 나 역시 적응기인 3일이 지나자 아이들과 어색함 없이 장난치고 함께 노래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캠프 후반, 우리들의 영어는 처음보다 조금 엉망이 됐는데, 영어를 잘 못하는 한 터키 친구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나 ‘잇’이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너무나 활기차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각자의 영어가 이 친구의 영향을 받아 단순해 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엄청난 영향력에 감탄하며 웃을 뿐이었다.
일이 없는 휴일에 우리는 인근 대도시인 ‘야로슬라블’과 크램린궁이 있는 ‘론스톱’을 방문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진 러시아답게 우리는 한 번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버스로 2~3시간 넘는 이동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러시아라는 낮 선 문화와 새로운 환경들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했고, 종종 발생했던 크고 작은 트러블들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또 한번은 마을의 기념 축제에도 참여하게 됐다. 마을 광장에서 벌어지는 마을 축제에서 우리는 한 연극의 엑스트라로 참가했다. 단지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대사 없이 단순한 동작을 취하는 것이었지만, 러시아의 전통 의상을 차려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이것 저것 의상들을 입어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스스로 준비한 ‘노래 대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인데, 저녁시간에 넓은 방에 모여 각 국가별로 짧게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었다. 평소 대화할 때 사용하던 영어가 아닌 서로에게 낮 선 언어들,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래 실력은 이 대회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부끄러우면서도 다른 친구들에게 나의 나라를 알린다는 마음으로 모두 대회에 참가한 우리들은 이날 서로의 노래를 감상하며 환호했다. 나 역시 외국인 참가자 중 마지막으로 앞에 서 ‘아리랑’과 가요 한 곡을 불렀는데, 나의 노래에 반응해주고 “너의 노래 참 좋았어”라고 말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하루 종일 미소가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약 3주,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나는 너무나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종종 있었던 사고와 갈등 조차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러시아. 우리나라의 인접국이지만 별로 아는 것도 없었고 낮 설었던 이 나라가 이제는 너무나 친숙하고 반가운 나라가 됐다(그래서 나는 복학 이후 러시아에 관련된 교양 강의를 하나 듣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의 친구들. 각기 다르고 때로는 부족한 외국어 실력으로 인해 말도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서로의 얼굴만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나의 친구들이 이번 캠프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