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잊지 못할 2주간의 기록
East of Iceland - close to natu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드디어 아이슬란드에 간다.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던 중에 무언가 특별한 활동이 하고 싶던 찰나에 선배의 추천으로 워크캠프 홈페이지에 방문할 수 있었다. 대학교 선배 4명은 3년 전 2명은 독일, 나머지 2명은 이태리에서 약 2주간 워크캠프를 하고 난 후, 나에게 3년 동안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은 추천해왔었다. 워크캠프 홈페이지에 방문 후, 아이슬란드 라는 나라에 급격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비행기비용이 망설여 졌지만 최종적으로 아이슬란드에 마음이 굳혀졌다. 워크캠프를 신청한 후, 합격통보를 받고서는 이미 내 마음은 아이슬란드에 가 있었다. 워크캠프 시작 하루 전, 함께 신청하여 같이 가게 된 친구와 함께 밤잠을 설쳤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그렇게 우리의 2주간 워크캠프가 시작된 것이다. 첫날 미팅포인트 장소인 레이카비크의 워크캠프 지정오피스에서 하나 둘씩 모여서 인사를 한 후 대략적인 우리의 일정을 들을 수 있었다. 리더 중에서는 한국인 리더가 있었고, 그러한 사실은 나에게 크나큰 심적인 의지로 작용하여 워크캠프를 더욱 더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어색한 첫만남도 잠시 우리는 아이슬란드 동쪽 끝에 위치한 에스키피요르 라는 마을에 가게 되었고, 마을을 가는 도중에는 여러 아이슬란드 지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몇 곳의 관광지도 들렀었다. 그렇게 서서히 아이슬란드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그렇게 대략 10시간 넘게 달리고 또 달려서 우리의 베이스캠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첫날에는 서로에 대하여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클린팀, 쿡킹팀 등등 전반적인 우리들의 약속 그리고 규칙들을 정하며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업무는 지역 안에 있는 잔디공원조성, 산책로조성, 잡초제거 등등 전반적인 보수공사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루에 해야 할 봉사활동이 끝나면 하루하루 돌아가며 쿠킹팀은 나머지 봉사자들을 위하여 세계각국의 음식들을 준비하였다. 덕분에 난생 처음 먹어보는 스페인요리, 러시아요리, 폴란드요리 등등 뜻 깊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7월말부터 8월초까지 일정 이였고, 한여름이였지만 아이슬란드의 여름은 한국의 초겨울 날씨와 비슷하였다. 매일매일 샤워를 하기 위해 약 30분정도 추위와 맞서며 걸어갔는데 당시에는 무척이나 곤욕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 아련한 그리움으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주말에는 히치하이킹을 통하여 가까운 다른 마을로 이동하여 구경하였고, 또 다른 휴일에는 베이스캠프 앞 바닷가에서 보트를 타고나가 낚시를 하기도 하였다. 슬로바키아 친구 2명과 함께 한 보트에서 낚시를 하던 중 태어나서 처음 물고기를 낚았다. 어리둥절하여 팔뚝만한 물고기를 행여 놓칠 것 같아 낚시가 끝날 때까지 손에 쥔 채로 돌아왔다. 그리고 낚시한 고기는 손질하여 나의 손을 거쳐 새로운 요리로 탄생해 그날 저녁 우리의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그렇게 우리는 2주의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이제는 친구들과도 매우 친해졌고 마치 한국에서부터 지내온 것 마냥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캠프의 마지막 날은 쉽사리 잠을 청하지 못하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 또한 쉽사리 잠을 청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워크캠프가 끝난 후 본격적인 유럽여행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던 나는 마지막 날 저녁 헝가리에서 온 친구 오쉬와 연락처를 교환 하였고, 헝가리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며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드디어 마지막날 우리는 짐을 챙겨 베이스캠프와 이별인사를 나눈 후 다시 우리를 레이카비크에 데려 다줄 버스에 올라탔다. 처음 버스에 올라 어색하게 인사하던 분위기와는 반대로 우리는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더 나누려고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렇게 새벽이 되어서야 우리는 레이카비크에 도착을 하였고 도착하는 순간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마음한구석에서부터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스페인에서 온 사라와 베르타는 계속해서 나에게 꼭 연락하라고, 바르셀로나 꼭 놀러 오라며 수십 번을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와 페이스북 아이디 이메일 아이디를 주고받으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헤어졌다. 오랜 친구를 보내는 것마냥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마음한구석에서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래고 있는 듯 하였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워크캠프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나에게 선물해주었고, 나 또한 외국친구들에 대한 마음가짐 그리고 크고작은 선입견들이 없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항상 웃음을 주던 우리 프랑스형 벤, 그리고 곰을닮은 호망, 까불이 이태리친구 안드레아스, 러시아 인형친구 마리,제인 동갑내기 슬로바키아친구 마리 그리고 미카, 헝가리에서 나에게 여행안내를 해주었던 오쉬, 알라딘 헤수스 4차원 제이콥 그리고 정말 나와는 잘 맞았던 스페인친구 사라,베르타,좐 듬직한 리더 랄스 , 한국말을 곧 잘하던 카롤리나 그리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항상 우리를 이끌어주던 송현이누나 까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그곳에서의 추억..
언젠가는 꼭 다시 다들 만나고 싶다. 2012년 나에게 보물과도 같은 특별한 경험을 준 워크캠프에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드디어 마지막날 우리는 짐을 챙겨 베이스캠프와 이별인사를 나눈 후 다시 우리를 레이카비크에 데려 다줄 버스에 올라탔다. 처음 버스에 올라 어색하게 인사하던 분위기와는 반대로 우리는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더 나누려고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렇게 새벽이 되어서야 우리는 레이카비크에 도착을 하였고 도착하는 순간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마음한구석에서부터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스페인에서 온 사라와 베르타는 계속해서 나에게 꼭 연락하라고, 바르셀로나 꼭 놀러 오라며 수십 번을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와 페이스북 아이디 이메일 아이디를 주고받으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헤어졌다. 오랜 친구를 보내는 것마냥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마음한구석에서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래고 있는 듯 하였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워크캠프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나에게 선물해주었고, 나 또한 외국친구들에 대한 마음가짐 그리고 크고작은 선입견들이 없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항상 웃음을 주던 우리 프랑스형 벤, 그리고 곰을닮은 호망, 까불이 이태리친구 안드레아스, 러시아 인형친구 마리,제인 동갑내기 슬로바키아친구 마리 그리고 미카, 헝가리에서 나에게 여행안내를 해주었던 오쉬, 알라딘 헤수스 4차원 제이콥 그리고 정말 나와는 잘 맞았던 스페인친구 사라,베르타,좐 듬직한 리더 랄스 , 한국말을 곧 잘하던 카롤리나 그리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항상 우리를 이끌어주던 송현이누나 까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그곳에서의 추억..
언젠가는 꼭 다시 다들 만나고 싶다. 2012년 나에게 보물과도 같은 특별한 경험을 준 워크캠프에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