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Malmedy, 낯선 곳에서 찾은 특별한 휴일
ASBL Couleur Café-Malmed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을 시작한지 7개월 즈음 되던 때, 약 2주간의 (4월 4일~4월 15일) 휴일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 유럽 땅을 밟았을 때에는, 모든 건물들과 풍경들, 흔히 말하는 ‘유럽스러움’에 취해있었다. 모든 거리와 건물, 다시 말해 이 곳 현지사람들에게는 흔한 것들에 감동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틈만 나면 저가항공을 이용해 한국 배낭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파리, 바르셀로나 등등을 여행하곤 하였다. 하지만 반년 정도 유럽생활을 한 후 어느새 적응이 되어 버렸고, 유명한 관광지에 있는 성당과 박물관에 실증을 느끼던 때, 부활절 휴일에 또 어디를 여행가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을 하는 친구가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참가에 최종합격 되었다는 페이스 북 담벼락 글을 보게 되었다. 그 전까지 전혀 워크캠프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왠지 ‘최종합격’ 이라는 말에 도전의식이 생기게 되어 친구에게 정보를 캐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전혀 봉사경험도 없었던 나였기에, 국제 워크 캠프는 그리 가슴에 와닿지 않았고, 난 어차피 지원해도 내세울만한 경력이 없어서 안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국제워크캠프의 또 다른 매력인 여러 나라의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만약 떨어져도 잃을 건 없겠다 싶어서 지원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참가한 워크캠프에 대한 소개 글에서 본 바로는, 하는 일이 장판 깔기, 시멘트 깔기 등등 이어서 지원서에 군대에서 다 해봤던 거라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미천한 내가 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약간은 질렸던 유럽 유명 여행지 관광대신 할 것이 생겼다는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기대나 흥분은 없었다. 그 이후로 4월이 다가 오면서 내가 참가할 워크캠프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와 참가자들의 명단이 담긴 파일을 받기 시작했고, 심심풀이로 읽기 시작한 타 참가자들의 후기를 본 이후부터, 뭔가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대단한 뭔가가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는 참가한 첫 날부터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날 배신하지 않았다.
우선 내가 참가할 때 걱정했던 것은 나의 겸손한 영어 실력과 처음 하는 경험이라는 생소함 이었다. 하지만 참가자들 중 워크캠프의 경험이 아주 많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내가 걱정했던 영어, 즉 언어적인 면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일을 하고 모든 시간과 경험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언어이상의 공유되는 무언가로 의사소통은 전혀 지장이 없었다. 우리가 했던 주 작업은 십몇년 전 신발 공장으로 쓰였던 건물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리모델링 하는 것이었다. 생각 보다 우리가 맡은 일은 전문적인 기술과 감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처음에는 다들 좀씩 헤맸지만, 우리의 캠프 리더중 한명의 직업은 전문 목수였다. 그의 리더쉽 아래, 그리고 대한민국 예비역인 나의 약간의 경험과 함께 우리는 모든 일을 수월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장판을 다 깔고 난 후 구석 모퉁이 장판에 우리 모두의 이름을 적고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의 보람을 잊을 수 없다.
일 하는 시간 외에는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거나 각자 나라의 게임을 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또한 이번 워크캠프에서는 밥을 제공해 주었는데, 만약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나라 음식을 해도 된다고 해서, 준비해간 소스로 불고기와 제육볶음을 해주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벨기에는 맥주의 종류가 굉장히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래서 그런지 매일매일 맥주를 마셨다. 물론, 다음날 일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우리 말고도 그곳 현지 봉사자들이 우리와 함께 일도 하고 식사도 함께 했는데, 그들이 비록 영어를 쓰지 못했지만, 프랑스어, 영어를 둘 다 구사하는 친구들이 통역도 해주고, 무엇보다 통역이 없어도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느낌이 들었고 이 느낌은 매우 따뜻했다.
다른 워크캠프에 참가한 친구들에게 들은 바로는, 가끔은 참가자들 중 마음이 안 맞는 친구들 때문에 힘들기도 한다고 했는데, 이번 워크캠프에서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었다. 다양한 워크캠프에 참가한 캠프리더의 말에 따르면, 주로 10명 중 1명 정도는 일을 성실히 안 해서 그런 것이 문제가 된다고 했는데, 이번 우리 조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열정적이어서 일을 마친 후에 보람도 더 컸던 것 같다.
그 동안 이런 큼직한 대외 활동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 있어 이번 해외워크캠프는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봉사’ 라 하면 힘들고 뭔가 희생해야 될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번 워크캠프에서 한 ‘봉사’는 너무나도 재미있고 희생보다는 ‘득’이 많았다. 여러 나라의 좋은 친구들도 만들게 해주었고, 봉사로 인한 보람도 얻게 해주었고, 무엇보다 정말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워크캠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 제일 먼저 한일은 다음 워크캠프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비록 교환학생의 신분 때문에 귀국 전까지 시간이 맞는 활동이 없어서 올해는 못하게 되었지만, 반드시 30세 전에 아니 그 이후로도 꼭 다시 참가 하고 싶다.
우선 내가 참가할 때 걱정했던 것은 나의 겸손한 영어 실력과 처음 하는 경험이라는 생소함 이었다. 하지만 참가자들 중 워크캠프의 경험이 아주 많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내가 걱정했던 영어, 즉 언어적인 면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일을 하고 모든 시간과 경험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언어이상의 공유되는 무언가로 의사소통은 전혀 지장이 없었다. 우리가 했던 주 작업은 십몇년 전 신발 공장으로 쓰였던 건물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리모델링 하는 것이었다. 생각 보다 우리가 맡은 일은 전문적인 기술과 감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처음에는 다들 좀씩 헤맸지만, 우리의 캠프 리더중 한명의 직업은 전문 목수였다. 그의 리더쉽 아래, 그리고 대한민국 예비역인 나의 약간의 경험과 함께 우리는 모든 일을 수월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장판을 다 깔고 난 후 구석 모퉁이 장판에 우리 모두의 이름을 적고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의 보람을 잊을 수 없다.
일 하는 시간 외에는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거나 각자 나라의 게임을 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또한 이번 워크캠프에서는 밥을 제공해 주었는데, 만약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나라 음식을 해도 된다고 해서, 준비해간 소스로 불고기와 제육볶음을 해주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벨기에는 맥주의 종류가 굉장히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래서 그런지 매일매일 맥주를 마셨다. 물론, 다음날 일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우리 말고도 그곳 현지 봉사자들이 우리와 함께 일도 하고 식사도 함께 했는데, 그들이 비록 영어를 쓰지 못했지만, 프랑스어, 영어를 둘 다 구사하는 친구들이 통역도 해주고, 무엇보다 통역이 없어도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느낌이 들었고 이 느낌은 매우 따뜻했다.
다른 워크캠프에 참가한 친구들에게 들은 바로는, 가끔은 참가자들 중 마음이 안 맞는 친구들 때문에 힘들기도 한다고 했는데, 이번 워크캠프에서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었다. 다양한 워크캠프에 참가한 캠프리더의 말에 따르면, 주로 10명 중 1명 정도는 일을 성실히 안 해서 그런 것이 문제가 된다고 했는데, 이번 우리 조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열정적이어서 일을 마친 후에 보람도 더 컸던 것 같다.
그 동안 이런 큼직한 대외 활동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 있어 이번 해외워크캠프는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봉사’ 라 하면 힘들고 뭔가 희생해야 될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번 워크캠프에서 한 ‘봉사’는 너무나도 재미있고 희생보다는 ‘득’이 많았다. 여러 나라의 좋은 친구들도 만들게 해주었고, 봉사로 인한 보람도 얻게 해주었고, 무엇보다 정말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워크캠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 제일 먼저 한일은 다음 워크캠프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비록 교환학생의 신분 때문에 귀국 전까지 시간이 맞는 활동이 없어서 올해는 못하게 되었지만, 반드시 30세 전에 아니 그 이후로도 꼭 다시 참가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