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낯선 곳에서 찾은 나

작성자 백상현
아이슬란드 WF87 · ENVI/EDU/STUDY 2012. 07 Iceland

Biofuel and soap tour around Icelan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 3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미국 뉴욕의 홈스테이 집에서 TOEFL 공부를 하고 있었다. TOEFL이랑 학교 공부를 도와 주던 홈스테이 선생님이 나에게 이번 여름에 귀국하기 전에 아이슬란드에서 워크캠프를 참가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주셨다. 나는 생각해보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초반에 나는 워크캠프에 가는 것에 대해 망설였다. 해외에서 봉사캠프에 참가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이랑 보내는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해외봉사캠프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외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나의 관심은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 중 하나인 아이슬란드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켰고, 결국 나의 마음은 이번 여름에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 참가한 다음에 귀국하는 것으로 기울어졌다. 그 당시에 나는 아이슬란드가 유럽에 있는 공화국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 나라가 유럽 어디쯤에 있고, 그 나라의 인구, 경제, 사회, 군사력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4개월동안 뉴욕에서 TOEFL이랑 SAT, 그리고 학교 공부를 하면서 그 날이 오기를 계속 기다렸다.
7월 6일, 나는 뉴욕의 JFK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원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한항공이 있는 제1터미널로 가야 했지만, 이번 첫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아이슬란드항공이 있는 제7터미널로 향했다. 공항에서 달러를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환전했다.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아이슬란드에 대해 검색했었는데, 아이슬란드는 전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아이슬란드의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혀 물가가 내려갔지만, 그 나라의 물가는 아직도 일본과 맞먹는다고 한다. 나는 아이슬란드항공 소속 보잉 757기를 타고 5시간동안 비행한 끝에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당시의 시간은 대략 밤11시에서 12시 사이였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늦은 밤인데도 해가 절대로 완전히 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30분을 달려 수도 레이캬비크의 한 조그만한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했을 당시에 나는 택시비를 보고 놀랐다. 택시비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15,000크로나에서 25000크로나 사이 정도로 나왔었기 때문이다. 원화로 환전을 하면 대략 95,000원에서 160,000원 정도가 나온다. 한국에서 택시를 30분동안 타면 택시비가 이보다 훨씬 낮게 나오며, 심지어 물가가 비싼 미국에서도 팁을 제외하면 이 정도의 택시비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택시 기사는 택시비가 평소보다 많이 나왔다고 그 일부를 깎아줬다. 한국이나 미국같은 경우, 택시기사들은 택시비가 평소보다 적게 나오든 훨씬 많이 나오든 무조건 나오는 대로 다 받아내 거의 다 냈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친절한 마음을 느끼고 호텔에 들어가 씻고 잠들었다.
7월 7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잠은 2시간 정도 밖에 못 자 엄청 피곤했지만,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 대한 설레임이 나의 피곤을 많이 풀어주었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나는 집합장소인 Worldwide Friends로 향했다. Worldwide Friends는 아이슬란드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이 아이슬란드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모이거나 워크캠프가 끝나면 해산하는 장소다. 거리는 내가 묵었던 호텔에서 걸어서 5분 정도 소요된다. 그 곳에 도착하자, 9명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참가자들이 나랑 같은 워크캠프 WF87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있었다. 그 10명의 참가자들은 나를 포함한 한국인 2명, 러시아인 3명, 스페인인 3명, 프랑스인 1명, 그리고 벨기에인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명의 아이슬란드 현지인, 독일인 1명, 그리고 핀란드인 1명으로 구성된 4명의 캠프리더들이 돌아가면서 워크캠프 WF 87를 진행했다. 워크캠프 WF 87의 일정은 아이슬란드 전 지역을 여행하면서 목적지에서 봉사하고 끝무렵에는 레이캬비크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가 떨어져 있는 Worldwide Friends 소유로 추정되는 유스호스텔에서 바이오 연료를 만들어 실험해보고 레이캬비크에 있는 모든 호텔에서 쓰다 남은 비누를 모아 후진국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우리 WF 87 일행은 레이캬비크 시내 관광을 하고 당일 자정에 벤을 타고 수도 외각에 위치한 어느 외딴 곳의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독일인 캠프리더는 숙소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추천해줬다. 우리 일행은 그 캠프리더를 따라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곳에 도착하자, 수도 레이캬비크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새벽 하늘이 한국이나 미국처럼 어둡지 않고 마치 늦은 오후에서 초저녁 사이의 하늘 색깔이라 레이캬비크의 전경은 더 아름다웠다. 다음 날, 2명의 아이슬란드인 리더와 핀란드인 리더가 우리들이 있는 숙소로 찾아왔다. 이들은 워크캠프 WF 87의 여행 및 봉사 부분을 담당했다. 우리 일행은 2명의 리더들을 포함해 총 12명이 되었으며 그 리더들의 인솔하에 따라 조그만한 미니 버스를 타고 본격적인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이 워크캠프 WF 87의 목적은 봉사 활동이지만, 여행에 약간 무게를 더 뒀기 때문에 이동하다가 주요 관광지를 발견할 때마다 멈췄다. 이로 인해서 목적지까지의 이동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소요돼 이동 도중에 어느 조그만한 소규모 도시의 문화 센터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10명의 참가자들은 이러한 여행 방식 덕분에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경치들을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기간의 이동 시간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약 이튿동안 이동한 끝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목적지의 이름은 외우기가 어려워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약 1000명 안팎의 인구가 살고 있는 조그만한 항구 마을이었다. 리더들은 이 마을에서 약 3-4일 동안 락 음악 축제가 열리는데 우리 WF 87 일행은 약 6일동안 마을 사람들의 축제 준비를 도와주고 축제 기간동안에는 질서를 유지하고 락 가수들의 임시 숙소를 경비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마을의 청소년 문화센터와 초등학교는 축제 가수들의 임시 숙소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질서를 유지하거나 건물을 경비하는 일같이 누군가나 무언가를 지키는 일을 어린 시절 때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이번 임무에 대해서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우리 일행은 이튿동안에는 다같이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지내면서 마을 사람들의 축제 준비를 도와주었다. 축제가 시작하기 하루 전이 되자, 우리 일행은 반으로 쪼개져 임시 숙소가 된 두 건물들을 맡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축제 임시 관리 요원을 상징하는 조끼를 지급했다. 본격적으로 봉사 활동이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밤에 일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심야팀에 지원했다. 축제가 시작되기 직전이어서 그런지 수 많은 가수들이 들어 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거의 새벽 3시에 가까워지자, 또 다른 한 대의 미니 버스가 임시 숙소 앞에 나타났다. 또 다른 워크캠프 일행이 축제를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축제 기간 동안 돌아가면서 거리에 있는 쓰레기들을 줍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중간에 멈추면서 이동한 것과는 달리, 이 미니 버스는 일행이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태우고 쉬지 않고 목적지까지 달려왔다. 이들은 약 11-13시간 정도의 버스 여행 때문에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그 일행 중에는 한국인 2명이 있었다. 나는 재빨리 달려가서 이들의 짐가방을 들어주고 숙소까지 안내해줬다. 본격적으로 축제가 열리자, 마을은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고, 심지어는 경찰들이 투입되기도 했다. 축제가 절정에 도달하자, 일부 관광객과 락 가수들이 술에 취해 사람을 때리거나 숙소에 난입해 술주정을 부리는 등, 숙소에서 누군가가 마약을 소지해 경찰기동대가 긴급 투입되는 등의 크고 조그만한 일들이 발생했지만, 다행히 우리 WF 87 일행과 또 다른 워크캠프 일행 중에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락 음악 축제랑 우리들의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축제가 끝난 후, 우리 WF 87 일행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우리들의 봉사활동이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에 대해 마음이 너무 뿌듯했다. 축제가 끝나기 하루 전, 1명의 또 다른 아이슬란드인 캠프 리더가 마을에 왔다. 핀란드인 캠프리더와 교대하기 위해서였다. 핀란드인 캠프리더는 그 또 다른 워크캠프 일행과 같이 마을 축제 후의 뒷처리를 담당하게 됐다. 1명이 빠져 나가고 또 다른 1명이 다시 새로 합류한 WF 87 일행은 원래 목적인 바이오 연료 만들기 및 쓰다 남은 비누 기부를 위해 두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두 번째 목적지는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가 떨어져 있는 Worldwide Friend 소유의 유스호스텔이다. 하지만, 두 번째 목적지는 마을에서 거리가 엄청 멀리 떨어져 있어 이동하다가 하룻밤을 근처에서 지내야 하는 일이 불가피해졌다. 우리 일행은 논의 끝에 이동하다가 근처의 캠프장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결정했다. 캠프장으로 이동하던 도중, 우리는 빙하가 많은 지역에 멈췄다. 사진으로만 보던 빙하를 내 눈으로 처음 보게 된 것이었다. 나는 빙하가 너무 신기했는지 마치 어린 아이처럼 빙하에서 나온 얼음 조작을 강에서 건져내 만져 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커다란 돌덩이를 던져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커다란 얼음 조각을 깨뜨려 보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이동 시간동안 소비할 식량들을 마트에서 사온 뒤, 벤 뒤에 딸려 있는 짐칸 전용 차량에다 놓왔다. 벤은 자정이 다되서야 캠프장 입구에 도달했는데 입구에서 캠프장 내부까지의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길이 포장되어 있지 않아 너무 험했다. 그 험한 길을 약 20-30분을 달린 끝에, 우리는 캠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캠프장에 도착하고 저녁 식사를 만들기 위해 짐칸 전용 차량에 가봤는데 상당 수의 식사 재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 그 험한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에 재료들이 짐칸 차량의 큰 흔들림으로 차량 밖으로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차량에 남아 있는 적은 양의 식량으로 간단한 끼니를 떼우고 취침해야 했다.
우리 WF 87 일행을 태운 벤은 캠프장을 떠나 약 8시간 동안 달린 끝에 두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Worldwide Friends 직원들이 우리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해놨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감사하면서 맛있게 먹고 일찍 잠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숙소의 차고로 들어갔다. 그 곳에 들어가자, 조그만한 기계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기름 냄새가 났다. 캠프 리더는 그 기계로 바이오 연료를 만든다고 설명해줬다. 나는 바이오 연료가 무엇인지, 또 그 연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전 세계의 주요 자원인 석유가 고갈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전 세계는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를 찾고 있었다. 바이오 연료가 그 후보 중 하나였다. 바이오 연료는 환경 오염에 별다른 위험이 없고 재생에너지라는 장점이 있으나, 주요 곡물들이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에 에너지 생산에 많이 투입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전 세계에 식량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어쨌든, 우리 일행은 그 기계를 이용해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또, 우리는 레이캬비크에 있는 주요 호텔에서 쓰다 남은 비누들을 모으러 가기 위해 우리가 직접 생산한 연료를 벤에다 투입하고 레이캬비크로 향했다. 우리가 모은 비누들은 후진국의 아이들에게 기부하게 될 것이다.
일정이 모두 끝나자, 나는 일행과 작별 인사하고 다음 날에 있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케플라비크 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아이슬란드항공 호텔로 향했다. 나는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에서 아이슬란드 항공 소속 보잉 757기를 타고 영국의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에 간 다음, 한국으로 돌아 가기 위해 대한항공 소속 보잉 747기로 갈아 탈 것이다. 한국에서의 휴가가 끝나면 나는 미국 뉴욕으로 돌아가 남은 학업을 계속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워크캠프 덕분에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경치들을 보고 봉사 활동에 대한 뿌듯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정말로 만약에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나는 워크캠프에 다시 참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