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23년 인생의 터닝포인트
Rajasthan – Jodhpu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남자들에게 있어서 터닝포인트라면 다들 떠올리기 싫어하는 군대, 하지만 23년을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만한 터닝포인트는 없었다. 남들과 똑같이 왔다갔다하며 보내는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대학생활, 그리고 4학년으로 접어드는 나에게 더욱 치열하고 바쁜 생활이라는 포장으로 평범하게만 보냈을 앞으로의 나의 인생이 짧은 기간이었지만 값진 변화들로 찾아왔다.
평소 모험심 강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좋아했던 나로써는 처음 워크캠프 공모를 봤을 때 나를 위한 일정이 아닌가 싶었다. 바쁜 학기 속에 지쳐있었던 터라 분위기 전환도 필요했고, 나의 오랜 바람이었던 해외 탐방의 기회가 되기도 했기에 망설이지 않고 공모에 신청했다. 한국인의 패기와 열정을 어렸을 때 배웠던 태권도의 발차기로 숨은 뜻을 모두 보여주기란 힘들었지만, 좋은 의미로 봐주셨던 심사위원님들 덕분에 워크캠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개별 파견이 있기까지 준비과정이 꽤 있긴 하였지만, 해외에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벅찬 나의 감정을 지치게 하진 못했다.
1월 16일부터 시작되는 봉사일정이었지만, 2주정도의 개인적인 인도여행 시간을 갖고 나의 봉사지인 조드푸르로 향했다. 설레고 벅차기만 했던 기회였지만, 막상 인도로 향하는 첫 비행기 안에서의 시작은 눈물의 시작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 조바심도 났고, 아무런 경험이 없는 나에게 머나먼 이국 땅에서의 생활이 막막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기회였고 후회하는 시간조차 워크캠프에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다시금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시작된 1월 16일 조드푸르에서의 첫날, 각 나라에서 온 봉사자들과의 첫 만남부터 높은 건물하나 없는 조금은 초라하게 보였던 그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들은 조금씩 내가 이곳에 와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과 미팅으로 앞으로의 일정을 소개받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본격적인 봉사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둘째 날, 다소 더웠던 날씨였지만 조드푸르 동네로 비춰지는 따사로운 햇살은 우리의 따뜻한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온 세상을 비춰주고 있었다. 페인트 칠과 어린아이부터 청소년에 이르는 아이들과 놀아주기로 하루가 바삐 지나갔다. 2주간의 모든 봉사를 페인트칠과 아이들과 놀아주기로 보냈지만, 지루함과 지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꺼낼 때 마다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똘망똘망한 눈망울의 아이들, 긴 생머리가 신기했는지 만날 때 마다 잡아당기기 바쁜 아이들을 뿌리친다고 봉사를 하러 온건지 아이들과의 전쟁을 이겨내러 왔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된 마음은 언제나 통한다고, 한명 한명 너무 예쁜 아이들 생각에 꿈에서조차 행복했던 나란 걸 알았는지 항상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이 얼마나 고맙고 이뻐보였는지 모른다. 가축들의 배설물을 밟는 걸로 시작해 새똥까지 맞아가며 힘들었던 봉사일정을 알기라도 하듯 아이들과의 만남의 시간만큼은 그 어떤 시간보다도 따뜻하고 행복했다. 먹을 게 풍부하진 않은 곳이었지만, 자신들이 맛있게 먹고 아껴둔 음식들을 몰래 가져와 나에게 먹어보라고 입에 넣어주던 아이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짧은 2주간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걸 도와주고 올 수 있을까, 과연 몇 안되는 우리 팀원들의 손길로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편한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봉사라는건 크게 변화된 결과물을 보는게 아닌, 우리의 진실된 마음을 그들에게 얼마만큼 전달 할 수 있는가 라는걸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매일 똑같은 카레만 먹고, 새똥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짓궂은 아이들과의 전쟁에서 벗어나면 녹초가 되어버리는 하루하루의 일정을 포기하고 싶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했지만, 고생하는 외국봉사자들을 위해서 맛있는 저녁을 초대해주시고, 자기들이 가장 아끼는 음식들을 가져와 먹여주기도 하고, 우리의 문화를 알려줄 때마다 박장대소하며 웃어주던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어쩌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시간이지만 상대방을 위하며 살아가는 우리와 그들의 똑같은 모습들을 보면서 국적은 다르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음은 어디서나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해낼 수 있을까로 시작된 나의 워크캠프 일정이 아쉬움과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조드푸르 사람들의 미소로 남아있는 걸 보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준다.
짧은 2주간의 일정이 나에겐 터닝포인트였다고 했던가. 사실 나의 삶은 달라진게 없다. 다시 학교를 다니는 4학년 대학생이 되었고, 원망스런 아침햇살보단 이불 속의 따뜻함이 좋은, 변함없는 나의 모습이지만, 봉사라는건 취직을 위해 몇 시간 적혀있는 문서로써의 결과물이 아닌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추억속에 우리의 손길로 인해 한번이라도 행복을 느끼던 그 사람들의 미소가 남아있는 것, 이것을 깨닫는 거야말로 진정한 결과물이자 앞으로 봉사를 임하는 나의 마음에 생긴 터닝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가까이에 있다. 언제나 우리가 먼저 손을 뻗어보자. 분명 당신의 추억 속에 그들의 행복한 미소가 남을 것이다.
평소 모험심 강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좋아했던 나로써는 처음 워크캠프 공모를 봤을 때 나를 위한 일정이 아닌가 싶었다. 바쁜 학기 속에 지쳐있었던 터라 분위기 전환도 필요했고, 나의 오랜 바람이었던 해외 탐방의 기회가 되기도 했기에 망설이지 않고 공모에 신청했다. 한국인의 패기와 열정을 어렸을 때 배웠던 태권도의 발차기로 숨은 뜻을 모두 보여주기란 힘들었지만, 좋은 의미로 봐주셨던 심사위원님들 덕분에 워크캠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개별 파견이 있기까지 준비과정이 꽤 있긴 하였지만, 해외에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벅찬 나의 감정을 지치게 하진 못했다.
1월 16일부터 시작되는 봉사일정이었지만, 2주정도의 개인적인 인도여행 시간을 갖고 나의 봉사지인 조드푸르로 향했다. 설레고 벅차기만 했던 기회였지만, 막상 인도로 향하는 첫 비행기 안에서의 시작은 눈물의 시작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 조바심도 났고, 아무런 경험이 없는 나에게 머나먼 이국 땅에서의 생활이 막막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기회였고 후회하는 시간조차 워크캠프에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다시금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시작된 1월 16일 조드푸르에서의 첫날, 각 나라에서 온 봉사자들과의 첫 만남부터 높은 건물하나 없는 조금은 초라하게 보였던 그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들은 조금씩 내가 이곳에 와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과 미팅으로 앞으로의 일정을 소개받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본격적인 봉사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둘째 날, 다소 더웠던 날씨였지만 조드푸르 동네로 비춰지는 따사로운 햇살은 우리의 따뜻한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온 세상을 비춰주고 있었다. 페인트 칠과 어린아이부터 청소년에 이르는 아이들과 놀아주기로 하루가 바삐 지나갔다. 2주간의 모든 봉사를 페인트칠과 아이들과 놀아주기로 보냈지만, 지루함과 지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꺼낼 때 마다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똘망똘망한 눈망울의 아이들, 긴 생머리가 신기했는지 만날 때 마다 잡아당기기 바쁜 아이들을 뿌리친다고 봉사를 하러 온건지 아이들과의 전쟁을 이겨내러 왔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된 마음은 언제나 통한다고, 한명 한명 너무 예쁜 아이들 생각에 꿈에서조차 행복했던 나란 걸 알았는지 항상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이 얼마나 고맙고 이뻐보였는지 모른다. 가축들의 배설물을 밟는 걸로 시작해 새똥까지 맞아가며 힘들었던 봉사일정을 알기라도 하듯 아이들과의 만남의 시간만큼은 그 어떤 시간보다도 따뜻하고 행복했다. 먹을 게 풍부하진 않은 곳이었지만, 자신들이 맛있게 먹고 아껴둔 음식들을 몰래 가져와 나에게 먹어보라고 입에 넣어주던 아이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짧은 2주간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걸 도와주고 올 수 있을까, 과연 몇 안되는 우리 팀원들의 손길로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편한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봉사라는건 크게 변화된 결과물을 보는게 아닌, 우리의 진실된 마음을 그들에게 얼마만큼 전달 할 수 있는가 라는걸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매일 똑같은 카레만 먹고, 새똥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짓궂은 아이들과의 전쟁에서 벗어나면 녹초가 되어버리는 하루하루의 일정을 포기하고 싶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했지만, 고생하는 외국봉사자들을 위해서 맛있는 저녁을 초대해주시고, 자기들이 가장 아끼는 음식들을 가져와 먹여주기도 하고, 우리의 문화를 알려줄 때마다 박장대소하며 웃어주던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어쩌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시간이지만 상대방을 위하며 살아가는 우리와 그들의 똑같은 모습들을 보면서 국적은 다르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음은 어디서나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해낼 수 있을까로 시작된 나의 워크캠프 일정이 아쉬움과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조드푸르 사람들의 미소로 남아있는 걸 보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준다.
짧은 2주간의 일정이 나에겐 터닝포인트였다고 했던가. 사실 나의 삶은 달라진게 없다. 다시 학교를 다니는 4학년 대학생이 되었고, 원망스런 아침햇살보단 이불 속의 따뜻함이 좋은, 변함없는 나의 모습이지만, 봉사라는건 취직을 위해 몇 시간 적혀있는 문서로써의 결과물이 아닌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추억속에 우리의 손길로 인해 한번이라도 행복을 느끼던 그 사람들의 미소가 남아있는 것, 이것을 깨닫는 거야말로 진정한 결과물이자 앞으로 봉사를 임하는 나의 마음에 생긴 터닝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가까이에 있다. 언제나 우리가 먼저 손을 뻗어보자. 분명 당신의 추억 속에 그들의 행복한 미소가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