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고시생에서 프랑스 워캠퍼로, 인생 2막
LET'S PROTECT THE RIVERS OF BUECH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는 왜 하게 된 거야?"
프랑스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던진 이 질문에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프랑스에 오고 싶었어. 그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사실 처음 워크캠프를 알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대학생 때였다. 어느 인터넷 카페에 누군가 올린 워크캠프 체험기는 내 마음에 불을 지폈고, 워크캠프에 참가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러나 어영부영 시간만 흐른채 나는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고, 어느덧 나는 고시생활에 실패한 백수라는 타이틀만 남아버린 이십대 후반이 되어버렸다. 준비하던 시험이 끝나고 부모님께는 비밀로 한 채, 워크캠프에 지원했다. 그리고 통장에 남은 돈을 끌어모아 비행기티켓을 사고 프랑스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지난 몇년 간 내가 저지른 일 중 가장 대담하고 용기있는 일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불문학을 전공하고 유럽으로 가는 게 꿈이었던 소망을 마음속 깊이 숨기고, 합격하면 평생 먹고 사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험 준비를 시작한 이래로 늘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남들이 가는 방향대로 가는 게 안전한 걸까? 나는 정말 이 공부를 좋아하는 걸까? 왜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해야 할 시기에 나는 어두운 독서실에 갇혀 매일매일을 투쟁하듯 살아야 할까?' 그렇게 꾸역꾸역 2년동안 준비한 시험을 보란듯이 망친 내게 워크캠프는 탈출구같이 느껴졌다. 그냥 여기와는 다른 곳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3주간 보내게 될 시간이 무척 기대되었다.
프랑스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던진 이 질문에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프랑스에 오고 싶었어. 그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사실 처음 워크캠프를 알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대학생 때였다. 어느 인터넷 카페에 누군가 올린 워크캠프 체험기는 내 마음에 불을 지폈고, 워크캠프에 참가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러나 어영부영 시간만 흐른채 나는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고, 어느덧 나는 고시생활에 실패한 백수라는 타이틀만 남아버린 이십대 후반이 되어버렸다. 준비하던 시험이 끝나고 부모님께는 비밀로 한 채, 워크캠프에 지원했다. 그리고 통장에 남은 돈을 끌어모아 비행기티켓을 사고 프랑스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지난 몇년 간 내가 저지른 일 중 가장 대담하고 용기있는 일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불문학을 전공하고 유럽으로 가는 게 꿈이었던 소망을 마음속 깊이 숨기고, 합격하면 평생 먹고 사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험 준비를 시작한 이래로 늘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남들이 가는 방향대로 가는 게 안전한 걸까? 나는 정말 이 공부를 좋아하는 걸까? 왜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해야 할 시기에 나는 어두운 독서실에 갇혀 매일매일을 투쟁하듯 살아야 할까?' 그렇게 꾸역꾸역 2년동안 준비한 시험을 보란듯이 망친 내게 워크캠프는 탈출구같이 느껴졌다. 그냥 여기와는 다른 곳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3주간 보내게 될 시간이 무척 기대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워크캠프 시작 1주 전 파리에 도착해 홀로 여행을 하고 당일 아침 참가지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도착 첫 날 만난 캠프 참가자들과는 금새 친해졌다. 한국에서 온 나, 프랑스에서 온 캠프리더 레오, 독일에서 온 마리, 레아, 헨니, 멕시코에서 온 라켈, 밀튼, 인도에서 온 디나샤, 네덜란드에서 온 므라인. 그리고 후에 조인하게 된 다른 프랑스 캠프리더 아델리와 독일에서 온 콘라드까지 총 6개 국가, 11명의 사람들이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외진 산골마을에서 보낸 시간들은 참 다사다난하고도 따뜻했다.
우리가 했던 일은 폭우로 바닥이 침식되어 수면이 낮아진 개천에 댐을 만들어서 수위를 올리는 일이었다. 총 두 개의 개천에서 일했는데 하나는 마을에 식수를 공급하는 파이프를 보호하기 위한 일이었고, 하나는 산란을 위해 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물고기들이 알을 낳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일이었다. 사실 일은 정말 힘들었다. 매일같이 허리가 끊어져라 곡괭이와 삽으로 강을 파고, 수위를 올리기 위해 돌을 나르고 강에 부었다. 댐을 만들 때도 직접 통나무를 나르고, 그 통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긴 철근을 망치로 박아넣는 고강도 노동을 했다. 게다가 고산지역이라 새벽이면 4-5도까지 내려가는 날씨와도 싸워야 했다. 캠프자체가 잘 조직되지 않아서 총 4개의 숙소를 전전했고, 그 중 2번은 개인용 텐트를 설치해서 야외에서 취침했다. 너무 힘든 날은 정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던 건 함께했던 친구들과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다같이 노래를 부르던 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요새가 있는 마을 시스테롱(Sisteron)을 방문했던 날, 매일매일 하루가 다르게 붉게 물들어가던 가을의 알프스 산, 베이킹을 잘 하는 마리가 케이크를 굽는 동안 오븐 주위에 둘러앉아 하하호호 떠들던 시간들, 산 중턱에서 반나절 동안 말과 호흡하며 승마를 했던 날, 각국의 음식을 만들고 인터내셔널 디너파티를 열어 지역주민들을 초대했던 저녁, 지역신문에 인터뷰 요청을 받아 마을시장실에서 다과를 나누었던 날, 우리가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 이 모든 시간들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우리가 했던 일은 폭우로 바닥이 침식되어 수면이 낮아진 개천에 댐을 만들어서 수위를 올리는 일이었다. 총 두 개의 개천에서 일했는데 하나는 마을에 식수를 공급하는 파이프를 보호하기 위한 일이었고, 하나는 산란을 위해 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물고기들이 알을 낳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일이었다. 사실 일은 정말 힘들었다. 매일같이 허리가 끊어져라 곡괭이와 삽으로 강을 파고, 수위를 올리기 위해 돌을 나르고 강에 부었다. 댐을 만들 때도 직접 통나무를 나르고, 그 통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긴 철근을 망치로 박아넣는 고강도 노동을 했다. 게다가 고산지역이라 새벽이면 4-5도까지 내려가는 날씨와도 싸워야 했다. 캠프자체가 잘 조직되지 않아서 총 4개의 숙소를 전전했고, 그 중 2번은 개인용 텐트를 설치해서 야외에서 취침했다. 너무 힘든 날은 정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던 건 함께했던 친구들과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다같이 노래를 부르던 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요새가 있는 마을 시스테롱(Sisteron)을 방문했던 날, 매일매일 하루가 다르게 붉게 물들어가던 가을의 알프스 산, 베이킹을 잘 하는 마리가 케이크를 굽는 동안 오븐 주위에 둘러앉아 하하호호 떠들던 시간들, 산 중턱에서 반나절 동안 말과 호흡하며 승마를 했던 날, 각국의 음식을 만들고 인터내셔널 디너파티를 열어 지역주민들을 초대했던 저녁, 지역신문에 인터뷰 요청을 받아 마을시장실에서 다과를 나누었던 날, 우리가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 이 모든 시간들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임에도 자기의 행복이 뭔지, 자기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고 그렇게 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환경오염과 노동착취를 줄이기 위해 새옷을 사는 대신 중고시장에서만 옷을 사는 친구, 자기 신념을 가지고 채식을 하는 친구 등 휩쓸려 살기 쉬운 일상에서 자기 주관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에 큰 도전을 받았다. 늘 타인과 비교하면서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가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준다고 믿고, 더 소유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내 인생에도 뭔가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실 전환이라는 건 내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의 변화일 것이다.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소유가 아닌 존재를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워크캠프에서 돌아온 이래로 그렇게 해보자 애쓰고 있다. 개인적인 신변의 변화도 생겼다. 프랑스에서 공부해보고 싶어 유학준비를 시작했다. 짧다면 짧은 3주의 시간이 내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