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땡볕 아래, 끈끈한 동지애를 얻다

작성자 유지헌
프랑스 CONCF-278 · 보수 2016. 09 Nimes

NIMES – Building a dry stone wal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 1학년, 선배의 발표를 통해 워크캠프라는 것을 첨음 알게 되었다. 평범하지만은 않은 해외여행을 꿈꾸던 나에게 딱맞는 활동이라 생각하여 바로 지원했다. 사실, 많은 정보를 알고 지원을 한 것은 아니였기에 그냥 해외에서 다른 청년들과 봉사활동을 하는것쯤으로 생각하고 지원했다. 활동내용을 먼저 보기 보단, 그냥 내 여행계획에 맞는 시기의 활동과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원했다. 걱정이 앞서지도, 무척 설레지도 않은 여행의 일부 쯤으로만 여기고 유럽으로 떠나게 되었다. 영어 실력 향상이 목표도 아니였고, 엄청난 추억을 만들고 오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여행 중에 잠시나마 한 곳에 머물며 숙식제공을 해주기에 해보자라는 마인드였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많은 생각을 안하고 지원한터라, 워크캠프가 코앞으로 다가와도 그저 여행을 즐기기 바빴다. 하지만, 워크캠프 당일부터 시골이라 인터넷이 잘 안터지고 영어를 쓰는 사람도 없는 마을에서 워크캠프 일행을 만나는 일 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캠프 지도자를 만나고 베으스 캠프에 도착해서는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우리의 숙소는 캠핑장에 위치한 텐트였고, 주변에 건물 따위는 없는 촌구석이었다. 벌레가 사방에서 나오고 화장실조차 열악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와이파이는 없었다. 한창 파티와 축제를 즐기다가 도착한터라 더욱 충격이 컸다. 심지어 워크캠프의 일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프랑스 남부의 내리쬐는 햇빛에서 9시부터 4시까지 돌로 계단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정말 내가 군대에 온 줄 알았다. 돌들을 옮기고 내리쳐서 깎아 내리고 고정시키는 일의 반복이었는데, 정말 경험해보지 못한 힘든 일이었다. 일을 하고나서 힘든 몸을 이끌고 일을 하고 나면 오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저녁준비, 캠프 청소, 아침 준비 등 다양한 잡일도 해야해서 너무 힘들었다. 처음 이틀은 진지하게 도망가려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임이 틀림없다. 4일 정도 일을 하고 나니 계단을 만드는 일에 속력이 붙고, 점점 견딜만 했다. 벌레가 나오는 화장실에서 샤워도 거뜬히 해냈다.
함꼐한 친구들은 인도인 알파와 수크란, 독일인 론냐, 일본인 토모카, 터키인 니와 타일란, 프랑스인 쎄드릭, 덴마크인 매드와 캠프리더인 조셉과 빅터였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참가자였을 뿐만 아니라 나이대도 다양했다. 나와 론냐가 제일 어렸고 매드는 40대 중반, 2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참가자가 있었다. 한국에서 40대의 남자와는 깊은 대화를 나눠본적이 없을 뿐더러 나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여기서는 매드와 제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이들을 봤을때는 아저씨도 참가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을 들며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언제 이렇게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어보나 싶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 캠프가 시작하고 일주일쯤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리더인 조셉이 큰 폭풍우가 몰려온다고 빨래를 다 넣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을 먹을 때 부터, 비가 억수로 내리더니 정전이되었다. 나는 당황해서 소리지르고 어둠을 무서워하는 론냐는 울기까지 했다. 겨우겨우 핸드폰 플래쉬라이트와 발전기를 가져와서 메인텐트 밑에서 재정비를 하고 빨리 취침하려는데, 텐트 안에 물이 가득해서 잘 수가 없었다. 이때는 정말이지 앞이 깜깜했다. 이불과 안젖은 옷가지를 어서 챙겨나와 이 폭풍우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밤 12시쯤 비가 그치고 잘곳을 찾는데, 우리 차에는 2명 밖에 잘 수가 없어서 근처 인가의 창고에서 신세를 지게되었다. 농기구를 모아두는 창고에서 여자 참가자들 4명이 모여서 자게 되었다. 우리는 홈리스체험을 하는 거라며 최대한 긍정적으로 자보려했지만 그날은 우리모두 잠에 들지 못하고 걸스카웃캠프에 온 어린이들 마냥 떠들며 밤을 지내웠다. 다음날 보니, 내 텐트는 무너져있었고 이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슬프지도 않고 웃기기만했다. 이런 상황에도 우리는 계단을 만들러 기어코 나갔고, 천둥번개가 치는 덕분에 일찍 일을 마치고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쉬었다.
계단을 다 끝내고는 님시청에서 사람들이 수고했다고 파티를 열어주었다. 상상도 못할 일들이 반복되는 캠프였지만, 누가 이런 경험을 해보기나 했을까.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의 반복이 내 워크캠프를 더욱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만들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처음에는 진지하게 도망갈 생각을 하던 나였지만, 떠날 시간이 오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시련을 같이 겪으면 그만큼 친해진다는 말이 맞다. 처음 만날때의 어색함은 전혀 없고 2주간의 캠프 후 모두에게 끈끈한 동지애를 느꼈다. 워크캠프 일 자체는 내 생애에서 제일 재밌었던 기억이라고는 못하겠지만, 그것을 같이 견뎌내고 끝내 계단을 다 만듦에서 오는 성취감은 정말 달콤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워크캠프가 처음이었고, 특히 매드는 나에게 실제로 한국인을 만난건 내가 처음인데, 한국인의 의지와 흥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런말을 들으니 해외에서는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다 외교관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 보고서에는 다 담을 수 없겠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한 워크캠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