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토마토밭에서 찾은 인생의 쉼표

작성자 채다현
프랑스 CONCF-3308 · 보수 2024. 07 Bazas

THE PATH UNDER THE GISQUET GAT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번아웃이 왔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정신을 리셋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공과 관련 있고 평소에 관심이 있던 건축과 관련된 봉사활동을 찾아보던 참에 워크캠프 후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활동 내용만 보고 지원했기 때문에 후에 위치가 파리보다 바르셀로나에 가깝다는 사실을 후에 알고 내가 정말 대책 없이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구나라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습니다. 국제 학생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 친구들을 사귄 경험은 있지만 내가 이방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두려움도 있었고 설레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봉사활동 장소였던 Bazas는 작은 마을이었고, 가장 가까운 역이 차로 30분 거리였던 만큼 고립된 느낌도 있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이동 거리가 멀고 캐리어를 챙겨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짐을 챙길 때 고민이 매우 많았습니다. 매일 빨래를 할 생각으로 최대한 욕심을 버리고 옷을 효율적으로 챙겼기 때문에 고생을 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캠프 마지막 날에 제 가방 크기를 보고 다른 친구들이 그게 다냐고 양 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물어봤을 때 승리의 미소를 띨 수 있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우리 팀은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슬로바키아에서 온 친구들로 구성이 되어있었고 캠프 리더는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과 보르도에서 온 현지인 두 분이었습니다. 15세기 즈음 만들어진 길을 갈아엎고 시멘트를 만들어 돌 사이 틈을 다시 채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매일 오전 9시에 아침을 먹고 햇볕이 살인적이었기 때문에 오후 1시에는 캠프 장소에 돌아왔습니다. 마을 운동장 옆 잔디밭에 텐트를 쳤고 체육관에 딸린 부엌에서 요리를 했습니다. 캠프 초반에는 모든 요리에 항상 토마토나 토마토 소스가 들어갔기 때문에 토마토에 트라우마가 있어 지난 10년 동안 토마토를 입에 대지도 않았던 저는 눈물을 머금고 밥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점점 친해지고 식사 당번을 돌아가면서 하게 되며 식탁 위에 오르는 접시의 국적이 다양해졌고, 저는 토마토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는 가지고 간 신라면을 끓였을 때 평소에 매운 걸 먹는 러시아 친구를 제외하고 모두 얼굴이 벌겋게 되어 눈물을 흘렸던 저녁입니다. 평소에 더위를 많이 탄다고 놀림을 받았던 우리 둘을 이때다 싶어 합심하여 다른 친구들을 열심히 놀렸습니다.

오후에는 캠프 리더가 계획한 활동을 하거나 체육관에서 카드 게임을 했습니다. 영어와 스페인어, 프랑스어가 섞인 우노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친구들의 모임이었고, 모두가 자신의 영어가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어가 서툴더라도, 프랑스어를 못하더라도, 그저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말에는 인근 마을에 가서 피크닉을 하거나 카약과 같은 액티비티도 했습니다. 마을에서 수영장을 무료로 개방해줘서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도 있습니다. 마을 이장님과 역사에 해박하신 마을 의사 선생님이 역사 투어를 시켜줘서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지하 동굴과 성당 종탑까지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 전공인 캠프 리더와 눈을 반짝이며 서로 미소를 주고 받았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일요일에 벼룩시장이 열렸을 때 3명씩 팀을 만들어 감자 한 개로부터 시작해서 누가 가장 가치 있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을 지 게임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프랑스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뒤에서 열심히 웃으며 인사 로봇으로서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페이커로 대동단결해서 함께 팀을 이루었던 프랑스인 친구들이 열심히 활약을 해줘서 결국 우리는 감자를 근사한 사진 액자로 교환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캠프에는 파리에서 온 18살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캠프 인원의 절반이 프랑스인이다 보니 캠프 초반에 대부분 프랑스어로 소통할 때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제가 소외되지 않도록 캠프 리더와 함께 정말 많이 챙겨주어 고마운 친구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싶을 때 그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오늘은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날이고 우리는 어쩌면 이주일 뒤에는 평생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르는데 현재를 즐기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을 때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당연한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쉽게 말할 수 없게 된 게 슬펐던 것 같습니다. 워크캠프는 해보지도 않은 수많은 가능성을 뒤로 하고 좌절하고 있던 저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 계기였습니다. 서로 텐트에 더 큰 거미가 있을 것이라며 했던 실없던 말들과 공용 샤워실에서 나와서 머리가 마르길 기다리며 멍때리며 별들을 바라보았던 시간이 벌써 그리운 것 같습니다. 모두가 친절했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