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리투아니아, 낯선 곳에서 찾은 성숙
BOTANICAL GARDEN I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가기 전에 혼자 여행을 잠깐 했었다. 새로운 곳의 날씨는 정말 아름다웠다. 한국과 다른 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계절이 너무 좋았다. 적당한 선선함과 신선함이 내 주위를 마구 감싸서 비행기에서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유럽이라는 새로운 땅과 계절 안에서 혼자 다니니 이모저모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낯선 곳에서 적응해가는 나의 모습이 예전의 나보다 더욱 성숙한 것 같아서 정말 뿌듯하였다.
워크캠프에서는 다른 몇 안 되는 외국인 캠퍼들과 같이 경험도 공유하고, 가족처럼 매일 붙어 있었다. 워크캠프를 갔다 오고 나서 한동안 향수병을 앓았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기 보다는 자유로움 속에서 그들과 매일매일 가족처럼 지냈던 나날들이 날 그 곳이 그립도록 만들었다. 2주 정도를 그 때 먹었던 음식만 먹었던 것 같다. 그 친구들로 인해 음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도 간접적으로 체험 할 수 있었다. 우리와 닮은 독일의 분열과 통일에 대한 역사와 러시아의 지배 하에 있었던 리투아니아의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다른 현지인들과도 매일매일 마주치며 현지 언어도 조금씩 배워가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알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혼자서 여행했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은 이번 워크캠프에 대해서 조금 실망한 것이 있었다. 어떠한 특정한 프로젝트를 했더라면 친구들과 더욱 으쌰으쌰해서 열심히 했을 것이고, 보람됨을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있었던 곳에서는 그냥 잡초를 뽑거나 잎을 따는 등의 단조로운 일만 해서, 그냥 정말 일만 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있었던 워크캠프에는 커플이 한 커플 있었다. 처음엔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6명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의 캠프에서 커플이 존재한다는 것은 단합을 약화시킨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몰고 왔다. 유럽 사람들은 이런 점을 별로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들의 개인 행동과 잦은 스킨쉽이 팀 분위기를 흐리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정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질 때면 너무 아쉬워 눈물을 감출 길이 없었는데, 이번 워크캠프에서는 그냥 잘 가라고 인사를 간단히 했다. 이 정도로 우리는 단합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워크캠프가 인생에 있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고, 나를 좀 더 깊게 탐구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유럽인들의 사고 방식, 여유와 직업의 귀천에 대한 의식과 같은 것들을 엿보고 배워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강하게 느꼈던 것은 언어와 리더에 대한 자질이었다. 세상을 조금 더 넓게 살아가려면 제 2외국어가 반드시 필요하겠다라는 생각.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려면 불어나 스페인어 정도는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또한, 그래야만 불어가 모국어이면서 모국어에 자부심을 지나치게 가져 불어를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무시당하지 않고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팀의 리더는 리투아니아 현지인이면서 스무 살(한국인 나이로)인 여자아이였는데, 그녀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실행하지 못한 것 같다. 일단, 워크캠프에 다른 워크캠퍼들보다 하루 늦게 도착하였고, 오는 그 날부터 자기가 여기에 왜 다시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국인인 나와 다른 워크캠퍼를 무시하는 발언도 조금씩 하곤 했다. 그녀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원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계획‐그 지역은 무엇이 유명하고, 관광으로 할 것, 휴식시간에 할 것 정도를 생각해오는 정도‐을 가지고 와서 팀을 이끌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내가 만약 한국에서 리더가 된다면 준비를 많이 해와서 팀원들에게 보람차고 재미있는 워크캠프를 보내게 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돌아왔다.
워크캠프에서는 다른 몇 안 되는 외국인 캠퍼들과 같이 경험도 공유하고, 가족처럼 매일 붙어 있었다. 워크캠프를 갔다 오고 나서 한동안 향수병을 앓았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기 보다는 자유로움 속에서 그들과 매일매일 가족처럼 지냈던 나날들이 날 그 곳이 그립도록 만들었다. 2주 정도를 그 때 먹었던 음식만 먹었던 것 같다. 그 친구들로 인해 음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도 간접적으로 체험 할 수 있었다. 우리와 닮은 독일의 분열과 통일에 대한 역사와 러시아의 지배 하에 있었던 리투아니아의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다른 현지인들과도 매일매일 마주치며 현지 언어도 조금씩 배워가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알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혼자서 여행했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은 이번 워크캠프에 대해서 조금 실망한 것이 있었다. 어떠한 특정한 프로젝트를 했더라면 친구들과 더욱 으쌰으쌰해서 열심히 했을 것이고, 보람됨을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있었던 곳에서는 그냥 잡초를 뽑거나 잎을 따는 등의 단조로운 일만 해서, 그냥 정말 일만 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있었던 워크캠프에는 커플이 한 커플 있었다. 처음엔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6명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의 캠프에서 커플이 존재한다는 것은 단합을 약화시킨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몰고 왔다. 유럽 사람들은 이런 점을 별로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들의 개인 행동과 잦은 스킨쉽이 팀 분위기를 흐리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정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질 때면 너무 아쉬워 눈물을 감출 길이 없었는데, 이번 워크캠프에서는 그냥 잘 가라고 인사를 간단히 했다. 이 정도로 우리는 단합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워크캠프가 인생에 있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고, 나를 좀 더 깊게 탐구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유럽인들의 사고 방식, 여유와 직업의 귀천에 대한 의식과 같은 것들을 엿보고 배워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강하게 느꼈던 것은 언어와 리더에 대한 자질이었다. 세상을 조금 더 넓게 살아가려면 제 2외국어가 반드시 필요하겠다라는 생각.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려면 불어나 스페인어 정도는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또한, 그래야만 불어가 모국어이면서 모국어에 자부심을 지나치게 가져 불어를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무시당하지 않고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팀의 리더는 리투아니아 현지인이면서 스무 살(한국인 나이로)인 여자아이였는데, 그녀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실행하지 못한 것 같다. 일단, 워크캠프에 다른 워크캠퍼들보다 하루 늦게 도착하였고, 오는 그 날부터 자기가 여기에 왜 다시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국인인 나와 다른 워크캠퍼를 무시하는 발언도 조금씩 하곤 했다. 그녀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원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계획‐그 지역은 무엇이 유명하고, 관광으로 할 것, 휴식시간에 할 것 정도를 생각해오는 정도‐을 가지고 와서 팀을 이끌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내가 만약 한국에서 리더가 된다면 준비를 많이 해와서 팀원들에게 보람차고 재미있는 워크캠프를 보내게 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