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몽골 초원에서 만난 특별한 여름, 우리
Orphanage farm-6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하고 출발했던 몽골! 하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안겨준 몽골 워크캠프에 감사를 표한다.
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싶지만 혼자 참가하기엔 영어 실력이 부족해 지역 주민들이나 캠프 참가자들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문화가 다른 낯선 곳에서 혼자 잘 지낼 수 있을까? 등등의 수많은 걱정을 하다가 고향 친구이자 대학 친구인 남규에게 워크캠프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방학에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자는 말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당연한 말투로 ‘좋지~’라고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8월 18일부터 8월 31일 까지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조금 떨어진 초원 위의 고아원 캠프장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꼬마 아이들은 학기 중에 울란바토르의 고아원에서 생활을 하다가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이 캠프장에 와서 농사를 지으며 지낸다. 방학 동안 농사를 해서 수확한 농작물들은 자신의 고아원으로 보내진다고 했고, 우리들은 아이들과 함께 그 농사일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는 역할이었다. 우리는 서울에 살지 않아 인천공항으로 찾아가는 것이 힘들었는데, 전날 서울에 도착하여 인천공항 주위의 찜질방에서 출발 전날을 보냈다. 8월 17일 오전 11시쯤 울란바토르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3시 경에 도착하였는데 수화물을 찾고 공항 로비로 나가는 순간, 우리를 바로 알아본 워크캠프 도우미인 바타르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게스트 하우스로 안내해주었다. 공항에서 누군가가 픽업해주는 것도 처음이고, 게스트 하우스라는 것도 처음이라 쭈뼛쭈뼛하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 조금은 부끄럽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한방에 침대가 5개 정도 있었는데 2개를 나와 남규가 짐을 풀고 있었는데, 다른 3개에는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의 여성들이 짐을 풀러 들어와서 깜짝 놀랬다. 한국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방에서 잠을 잔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는데 자연스럽게 옷도 갈아입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조금은 닫혀있는 문화였다는 생각을 했다. 얼떨결에 모르는 여성들과 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워크캠프 집결지로 향했다. 7개 국에서 온 23명의 친구들과 처음 얼굴을 맞대었는데 다들 14일 간의 캠프가 기대되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우리를 데리러 온 커다란 봉고차를 타고 캠프장으로 향했는데 몽골은 중앙선도 지키지 않고, 횡단보도가 무의미하여 위험해 보였다. 특히, 가는 길은 포장이 다 되어 있지 않아 덜컹거리기도 했고,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 심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깃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산도 낮아 하늘이 꽉 차있는 그런 곳이었다. 첫 날 짐을 풀며 함께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이렇게 어색할 수도 없었다. 다들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인지,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랐지만 웃음을 띠며 쑥스러워하는 것은 똑같았다. 각자 짐을 풀고, 방을 배정하는데 전통 가옥인 게르(ger)에서 잘 사람은 자도 된다고 했다. 멋도 모르고 남규와 함께 첫날 밤에 거기서 잠을 청했다가 입이 돌아갈 뻔 했다. 아마 우리의 침낭이 봄 여름용이어서 몽골의 추운 밤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 다음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우리의 일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우리의 일은 캠프 앞의 무척 넓게 펼쳐진 농장에서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매년 해오는 일인지 능숙하던데, 우리는 흙을 정리하는 것도 어색했다. 오히려 그 친구들에게 피해는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하며, 최대한 열심히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식사시간은 우리들이 준비를 했는데, 그 팀은 순서대로 4명씩 팀을 배정받았다. 이름하여 쿡킹팀(cooking team)이었고, 워싱팀(washing team)은 캠프 앞의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을 했고, 클리닝팀(cleaning team)은 캠프 안을 청소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농장으로 배정받는 방식이었다. 매일 돌아가는 rotation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쿡킹팀인 것 같다. 4명이서 25명 가량의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까지 해야하는데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며 오가는 정이 많이 쌓인 것 같다. 특히, 나는 비오는 날 쿡킹팀을 맡아 비를 맞으며 설거지도 했었는데 그 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온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요리를 했을 때도 있었는데 한국 음식 팀이라 불리며 한국 음식을 선보이기도 했었다. 각자가 준비해 온 신라면과 고추장, 김 그리고 불고기양념 소스를 꺼내 재료를 준비했다. 우리가 하루 동안 준비했던 음식은 김밥과 김치, 계란말이, 신라면, 떡볶이, 불고기양념닭볶음, 주먹밥 정도였는데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불고기양념닭볶음이었다. 떡볶이는 맵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는데도 엄청 맵다며 사람들이 꺼려했고, 불고기양념도 조금 맵다고 할 정도였으니 외국인들의 입맛을 맞추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집에서 가져온 김치를 식탁에 올렸을 때, 사람들은 김치! 김치! 하며 한 번씩 먹어보는데 맛있다며 반응을 해주어 기분이 무척 좋았다. 캠프에 참가한 사람들과 캠프장의 아이들과 추억이 하나하나 쌓여가는 만큼 우리가 캠프에서 지낼 수 있는 날들도 조금씩 줄어들었는데 주어진 일정에 맞추어 가다 보니 시간이 무척 빠르게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오전에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일을 하고, 저녁에 조금 쉬다가 잠이 드는 일상의 반복이긴 하지만 낮에 하는 일이 힘들어 밤에는 일찍 잠에 들 수 밖에 없었다. 워크캠프 중간 중간에 있었던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운동회나 팔찌 만들기 프로그램은 정말 좋았다. 말 한 번 붙여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쉐인 베노’하며 가까워질 수도 있었고, 무언가 기억에 남는 다른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캠프 기간의 딱 중간에는 사막으로 2박 3일 간 tour를 했었는데 나름대로 좋았던 것 같다. 캠프에서는 캠프에 참가한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모든 사람들과 가까워지기는 어려웠는데 캠프 파이어를 하면서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다. 하루하루 좋은 기억들만 가지고 돌아온 워크캠프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거기서 가까워진 외국인 친구들과 페이스북 말고는 특별히 연락을 나눌만한 것들이 없어 되게 아쉬웠다. 아마도 평생 한 번이라도 더 보면 많이 봤다고 할 수 있는 외국인 친구들이라 어쩔수 없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2주 간 서로 고생하는 거 다 알아주고, 몸이 아프면 서로 챙겨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하겠다고 나서던 그런 사람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그저 봉사를 하러 왔다는 이유로, 자신이 정성스레 만든 팔찌를 내 팔목에 채워주던 친구들. 내 이름이 무어냐며 졸졸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도와주고, 항상 해맑게 웃어주던 친구들. 말이 통하지 않아 간단한 몸짓으로 대화하지만 맞장구 치면서 카드 게임을 하던 사람들. 첫날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나 모르는 사이지만 MCE에 참가한다는 걸로 은행까지 안내해주었던 사람들. 캠프를 끝내고 3일 정도 울란바타르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머무르며 케익을 사서 우리의 만남을 기념하기도 했고, 출국 비행기가 새벽이라 공항에서 함께 밤을 새기도 한 사람들. 한국에서 1주일 정도 놀다가 간다고 하여, 서울에서 한국 전통의 보쌈을 먹으며 마지막을 보냈던 사람들. 캠프의 마지막 날에 헤어질 때까지 눈물을 아끼려고 노력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눈물을 흘리게 해주었던 친구들. 이렇게 글로 설명하기엔 충분치 못한 몽골의 워크캠프지만 이렇게 짧지만 굵게 쌓은 정과 추억이 오히려 워크캠프의 매력이 아닐까? 헤어지면서 각자의 나라에 오면 가이드 해주겠다고 장담하던 우리 모두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나갈 주인공이기에 2주간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다.
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싶지만 혼자 참가하기엔 영어 실력이 부족해 지역 주민들이나 캠프 참가자들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문화가 다른 낯선 곳에서 혼자 잘 지낼 수 있을까? 등등의 수많은 걱정을 하다가 고향 친구이자 대학 친구인 남규에게 워크캠프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방학에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자는 말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당연한 말투로 ‘좋지~’라고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8월 18일부터 8월 31일 까지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조금 떨어진 초원 위의 고아원 캠프장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꼬마 아이들은 학기 중에 울란바토르의 고아원에서 생활을 하다가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이 캠프장에 와서 농사를 지으며 지낸다. 방학 동안 농사를 해서 수확한 농작물들은 자신의 고아원으로 보내진다고 했고, 우리들은 아이들과 함께 그 농사일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는 역할이었다. 우리는 서울에 살지 않아 인천공항으로 찾아가는 것이 힘들었는데, 전날 서울에 도착하여 인천공항 주위의 찜질방에서 출발 전날을 보냈다. 8월 17일 오전 11시쯤 울란바토르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3시 경에 도착하였는데 수화물을 찾고 공항 로비로 나가는 순간, 우리를 바로 알아본 워크캠프 도우미인 바타르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게스트 하우스로 안내해주었다. 공항에서 누군가가 픽업해주는 것도 처음이고, 게스트 하우스라는 것도 처음이라 쭈뼛쭈뼛하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 조금은 부끄럽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한방에 침대가 5개 정도 있었는데 2개를 나와 남규가 짐을 풀고 있었는데, 다른 3개에는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의 여성들이 짐을 풀러 들어와서 깜짝 놀랬다. 한국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방에서 잠을 잔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는데 자연스럽게 옷도 갈아입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조금은 닫혀있는 문화였다는 생각을 했다. 얼떨결에 모르는 여성들과 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워크캠프 집결지로 향했다. 7개 국에서 온 23명의 친구들과 처음 얼굴을 맞대었는데 다들 14일 간의 캠프가 기대되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우리를 데리러 온 커다란 봉고차를 타고 캠프장으로 향했는데 몽골은 중앙선도 지키지 않고, 횡단보도가 무의미하여 위험해 보였다. 특히, 가는 길은 포장이 다 되어 있지 않아 덜컹거리기도 했고,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 심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깃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산도 낮아 하늘이 꽉 차있는 그런 곳이었다. 첫 날 짐을 풀며 함께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이렇게 어색할 수도 없었다. 다들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인지,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랐지만 웃음을 띠며 쑥스러워하는 것은 똑같았다. 각자 짐을 풀고, 방을 배정하는데 전통 가옥인 게르(ger)에서 잘 사람은 자도 된다고 했다. 멋도 모르고 남규와 함께 첫날 밤에 거기서 잠을 청했다가 입이 돌아갈 뻔 했다. 아마 우리의 침낭이 봄 여름용이어서 몽골의 추운 밤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 다음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우리의 일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우리의 일은 캠프 앞의 무척 넓게 펼쳐진 농장에서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매년 해오는 일인지 능숙하던데, 우리는 흙을 정리하는 것도 어색했다. 오히려 그 친구들에게 피해는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하며, 최대한 열심히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식사시간은 우리들이 준비를 했는데, 그 팀은 순서대로 4명씩 팀을 배정받았다. 이름하여 쿡킹팀(cooking team)이었고, 워싱팀(washing team)은 캠프 앞의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을 했고, 클리닝팀(cleaning team)은 캠프 안을 청소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농장으로 배정받는 방식이었다. 매일 돌아가는 rotation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쿡킹팀인 것 같다. 4명이서 25명 가량의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까지 해야하는데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며 오가는 정이 많이 쌓인 것 같다. 특히, 나는 비오는 날 쿡킹팀을 맡아 비를 맞으며 설거지도 했었는데 그 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온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요리를 했을 때도 있었는데 한국 음식 팀이라 불리며 한국 음식을 선보이기도 했었다. 각자가 준비해 온 신라면과 고추장, 김 그리고 불고기양념 소스를 꺼내 재료를 준비했다. 우리가 하루 동안 준비했던 음식은 김밥과 김치, 계란말이, 신라면, 떡볶이, 불고기양념닭볶음, 주먹밥 정도였는데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불고기양념닭볶음이었다. 떡볶이는 맵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는데도 엄청 맵다며 사람들이 꺼려했고, 불고기양념도 조금 맵다고 할 정도였으니 외국인들의 입맛을 맞추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집에서 가져온 김치를 식탁에 올렸을 때, 사람들은 김치! 김치! 하며 한 번씩 먹어보는데 맛있다며 반응을 해주어 기분이 무척 좋았다. 캠프에 참가한 사람들과 캠프장의 아이들과 추억이 하나하나 쌓여가는 만큼 우리가 캠프에서 지낼 수 있는 날들도 조금씩 줄어들었는데 주어진 일정에 맞추어 가다 보니 시간이 무척 빠르게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오전에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일을 하고, 저녁에 조금 쉬다가 잠이 드는 일상의 반복이긴 하지만 낮에 하는 일이 힘들어 밤에는 일찍 잠에 들 수 밖에 없었다. 워크캠프 중간 중간에 있었던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운동회나 팔찌 만들기 프로그램은 정말 좋았다. 말 한 번 붙여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쉐인 베노’하며 가까워질 수도 있었고, 무언가 기억에 남는 다른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캠프 기간의 딱 중간에는 사막으로 2박 3일 간 tour를 했었는데 나름대로 좋았던 것 같다. 캠프에서는 캠프에 참가한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모든 사람들과 가까워지기는 어려웠는데 캠프 파이어를 하면서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다. 하루하루 좋은 기억들만 가지고 돌아온 워크캠프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거기서 가까워진 외국인 친구들과 페이스북 말고는 특별히 연락을 나눌만한 것들이 없어 되게 아쉬웠다. 아마도 평생 한 번이라도 더 보면 많이 봤다고 할 수 있는 외국인 친구들이라 어쩔수 없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2주 간 서로 고생하는 거 다 알아주고, 몸이 아프면 서로 챙겨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하겠다고 나서던 그런 사람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그저 봉사를 하러 왔다는 이유로, 자신이 정성스레 만든 팔찌를 내 팔목에 채워주던 친구들. 내 이름이 무어냐며 졸졸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도와주고, 항상 해맑게 웃어주던 친구들. 말이 통하지 않아 간단한 몸짓으로 대화하지만 맞장구 치면서 카드 게임을 하던 사람들. 첫날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나 모르는 사이지만 MCE에 참가한다는 걸로 은행까지 안내해주었던 사람들. 캠프를 끝내고 3일 정도 울란바타르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머무르며 케익을 사서 우리의 만남을 기념하기도 했고, 출국 비행기가 새벽이라 공항에서 함께 밤을 새기도 한 사람들. 한국에서 1주일 정도 놀다가 간다고 하여, 서울에서 한국 전통의 보쌈을 먹으며 마지막을 보냈던 사람들. 캠프의 마지막 날에 헤어질 때까지 눈물을 아끼려고 노력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눈물을 흘리게 해주었던 친구들. 이렇게 글로 설명하기엔 충분치 못한 몽골의 워크캠프지만 이렇게 짧지만 굵게 쌓은 정과 추억이 오히려 워크캠프의 매력이 아닐까? 헤어지면서 각자의 나라에 오면 가이드 해주겠다고 장담하던 우리 모두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나갈 주인공이기에 2주간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