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푸시아노, 걱정이 설렘으로 바뀐 곳
Pusian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친척언니의 소개로 알게 된 국제워크캠프. 처음에 신청했을 때만해도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합격해서 내가 참가를 하게 된다 해도 언어의 장벽을 뚫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막상 합격을 하고 참가를 하게 되니 수많은 걱정들이 모두 사라졌다.
캠프의 시작은 미팅포인트에서 부터였다. 나는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미팅포인트를 찾아가기가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미팅포인트인 Erba역에 가기 위해서 인포싯에 나와있던 방법 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했는데 나는 밀라노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밀라노에서 Erba역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는데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하는 코스였다. 열차를 갈아타기까지는 7분의 텀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기차의 고질적인 문제인 연착 때문에 다음 열차를 놓칠뻔한 아찔한 경험을 하였다. 더군다나 Erba역은 시골의 작은 역이라 Erba행 열차를 어디서 타는지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Erba에 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시각과 같은 열차가 한 대 있었는데 나는 내 직감을 믿고 둘 중에 한대에 탔다. 다행히도 그 열차가 Erba에 가는 열차고 무사히 미팅포인트에 갈 수 있었다. 나름의 고생 끝에 Erba역에 도착해서 내리는데 같은 열차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여자가 한 명 내렸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우선 리더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역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탈리아 남자 2명이 그 동양인을 향해 다가갔다. 혹시나 하고 기다리는데 역시나 동양여성은 한국인이었고 나랑 동갑인 한국인 워크캠프 참가자 민정이었다. 영어가 많이 부족한 터라 한국인 없이 어떻게 생활하나 걱정도 많이 했는데 나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우리의 숙소인 캠핑장에 도착하니 참가자들이 몇몇 도착해 있었다. 숙소는 캠핑장에 있는 Bungalow였는데 참가자들은 3개의 bungalow에 나눠서 생활했다. 나와 민정이는 가운데에 있는 bungalow를 선택했는데 운 좋게도 우리끼리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편하고 좋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우리 bungalow가 가스가 들어오는 곳이라 매 식사 때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며 심지어 가스 냄새가 심하게 나고 정전이 자주 되었으며 우리 bungalow만 2층 침대였다.
첫 날은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휴식을 취하며 지나갔다.
우리는 8시에 기상을 해서 아침을 먹고 9시부터 일을 했다. 9시~12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 12시~3시까지는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했으며 3시~5시까지 2시간 동안 다시 일을 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하루에 5시간이라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지 1시간 만에 왜 하루에 5시간 밖에 안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첫 작업으로 풀 베기를 했는데 일반 잡초가 아닌 장미 넝쿨 같은 풀을 베는 작업을 했다. 낫도 너무 오래돼서 무뎠고 줄기는 두껍고 가시가 많아서 팔에 상처가 심하게 나서 샤워를 못 할 정도였다. 연고를 발아야 하는데 너무 많이 긁혀서 어떻게 발라야 할지 막막해서 못 바를 정도였으며 내가 왜 이탈리아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하며 워크캠프에 대한 후회도 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 고된 일에 불만이 폭주하고 있었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건 그뿐만이 아니였다. 숙소주변에 호수와 숲이 있다 보니 모기가 상상초월로 많이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모기가 많은 곳은 처음 가 봤는데 이러다 미칠 수도 있겠구나 싶게 많았다. 밥을 먹을 때 모기향과 모기 초를 피고 먹었는데도 모기가 너무 많아서 밥을 못 먹고 사람이 도망갈 정도였고 2~3일 정도 만에 100방이 넘게 물렸으니 말은 다 한 것 같다.
시작한지 이틀 만에 우리는 끝나는 날까지의 디데이를 세고 있었다. 태어나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엄마와 통화를 할 때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오죽하면 엄마가 중도포기를 권유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워크캠프를 중도포기 할 순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일부러 처음에 제일 힘든 일을 시켰던 것 같다. 풀을 베는 일이 가장 힘들었고 나중에 했던 Bird Ringing이나 crawfish 잡기, 나무 베기 등은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다. 일이 익숙해 진 것도 있겠지만 강도가 줄었던 것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을 견디면서 큰 위안이 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주말에 꿀 같은 휴식시간 이었다. 토요일에는 다 같이 베르가모에 놀러 가서 처음으로 레스토랑에서 음식도 사먹었고 날씨는 엄청 더웠지만 일을 안하고 놀러 왔다는 생각에 당시에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일요일에는 팀을 나눠서 놀러 갔는데 피로가 쌓여서 놀 힘도 없었던 나와 민정이, 러시아 참가자 Margarita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참가자들의 불만을 항상 묵묵히 들어주고 의견을 조율해 주던 캠프리더 Achim은 한국어를 정말 잘 습득한다. 일화를 몇 개 소개하자면 Achim이 일을 하다가 갑자기 Mosquito가 한국말로 뭐냐고 물어봐서 모기라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Achim 하는 말.. “씨x모기” 순간 너무 당황하고 웃겨서 막 웃었다. Achim이 말하기를 예전에 워크캠프 했을 때 한국인 안영x라는 분이 욕을 알려줬다고 한다. 두 번째 일화! 모기가 너무 많아 힘들어 하는 우리를 위해 Achim이 장을 보러 갔다가 연고를 하나 사다 줬다. 무슨 연고인지 몰라 이게 뭐냐고 물어 봤더니 Achim 왈 ”안간지러크림~” 그 전날 우리가 간지럽고 안 간지럽고의 개념을 알려줬더니 바로 활용하는 언어 천재 Achim@.@
워크캠프에 참여하며 여러 나라의 사람이 모이는 것도 기대됐지만 그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우리 팀은 아쉽게도 각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교류하는 시간이 없었다. 아무도 준비를 안 해왔기 때문이다. 민정이가 가져온 윷놀이와 공기를 휴식시간에 알려준 게 문화 교류의 전부였으며 마지막 저녁에 내가 준비해 갔던 음식을 먹었던 것이 음식 교류의 전부였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한국음식으로 멋지게 마무리를 해서 기분이 좋았다. 불고기, 고추장 불고기, 해물부침개, 유자차 등 우리가 준비한 음식을 다들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으며 처음으로 음식이 부족한 사태를 빚었기 때문이다. 레시피를 알려달라며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당시에는 힘들기도 짜증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워크캠프에 참여했던 자체가 나에게는 큰 경험이 되었고 그립기까지 하다. 이탈리아 참가자인 캠프리더 Achim과 땀을 많이 흘리던 Mirco, 꽃돌이 Carlo, 크로아티아에서 온 부부 Sasa와 Danijela, 러시아에서 온 조각미남 Ivan, 조각미녀 Margarita, 멕시코에서 온 사촌형제 Eduardo, Arnulfo, 미국에서 온 절대 동안 Brian, 18살 동갑내기 체코인 Ivana와 터키인 Zeynep,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온 민정이와 나까지 총 14명의 캠프 참가자들. 기약 없는 헤어짐을 앞두고 창피하게 울음이 터진 것도 힘든 만큼 추억도 많이 남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냉정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자 참가자에게 추천해 줄 만한 캠프는 아니지만 고생을 한 번 해보고 싶고 추억을 쌓고 싶다면 이 캠프에 참여해 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
캠프의 시작은 미팅포인트에서 부터였다. 나는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미팅포인트를 찾아가기가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미팅포인트인 Erba역에 가기 위해서 인포싯에 나와있던 방법 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했는데 나는 밀라노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밀라노에서 Erba역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는데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하는 코스였다. 열차를 갈아타기까지는 7분의 텀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기차의 고질적인 문제인 연착 때문에 다음 열차를 놓칠뻔한 아찔한 경험을 하였다. 더군다나 Erba역은 시골의 작은 역이라 Erba행 열차를 어디서 타는지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Erba에 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시각과 같은 열차가 한 대 있었는데 나는 내 직감을 믿고 둘 중에 한대에 탔다. 다행히도 그 열차가 Erba에 가는 열차고 무사히 미팅포인트에 갈 수 있었다. 나름의 고생 끝에 Erba역에 도착해서 내리는데 같은 열차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여자가 한 명 내렸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우선 리더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역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탈리아 남자 2명이 그 동양인을 향해 다가갔다. 혹시나 하고 기다리는데 역시나 동양여성은 한국인이었고 나랑 동갑인 한국인 워크캠프 참가자 민정이었다. 영어가 많이 부족한 터라 한국인 없이 어떻게 생활하나 걱정도 많이 했는데 나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우리의 숙소인 캠핑장에 도착하니 참가자들이 몇몇 도착해 있었다. 숙소는 캠핑장에 있는 Bungalow였는데 참가자들은 3개의 bungalow에 나눠서 생활했다. 나와 민정이는 가운데에 있는 bungalow를 선택했는데 운 좋게도 우리끼리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편하고 좋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우리 bungalow가 가스가 들어오는 곳이라 매 식사 때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며 심지어 가스 냄새가 심하게 나고 정전이 자주 되었으며 우리 bungalow만 2층 침대였다.
첫 날은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휴식을 취하며 지나갔다.
우리는 8시에 기상을 해서 아침을 먹고 9시부터 일을 했다. 9시~12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 12시~3시까지는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했으며 3시~5시까지 2시간 동안 다시 일을 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하루에 5시간이라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지 1시간 만에 왜 하루에 5시간 밖에 안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첫 작업으로 풀 베기를 했는데 일반 잡초가 아닌 장미 넝쿨 같은 풀을 베는 작업을 했다. 낫도 너무 오래돼서 무뎠고 줄기는 두껍고 가시가 많아서 팔에 상처가 심하게 나서 샤워를 못 할 정도였다. 연고를 발아야 하는데 너무 많이 긁혀서 어떻게 발라야 할지 막막해서 못 바를 정도였으며 내가 왜 이탈리아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하며 워크캠프에 대한 후회도 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 고된 일에 불만이 폭주하고 있었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건 그뿐만이 아니였다. 숙소주변에 호수와 숲이 있다 보니 모기가 상상초월로 많이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모기가 많은 곳은 처음 가 봤는데 이러다 미칠 수도 있겠구나 싶게 많았다. 밥을 먹을 때 모기향과 모기 초를 피고 먹었는데도 모기가 너무 많아서 밥을 못 먹고 사람이 도망갈 정도였고 2~3일 정도 만에 100방이 넘게 물렸으니 말은 다 한 것 같다.
시작한지 이틀 만에 우리는 끝나는 날까지의 디데이를 세고 있었다. 태어나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엄마와 통화를 할 때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오죽하면 엄마가 중도포기를 권유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워크캠프를 중도포기 할 순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일부러 처음에 제일 힘든 일을 시켰던 것 같다. 풀을 베는 일이 가장 힘들었고 나중에 했던 Bird Ringing이나 crawfish 잡기, 나무 베기 등은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다. 일이 익숙해 진 것도 있겠지만 강도가 줄었던 것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을 견디면서 큰 위안이 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주말에 꿀 같은 휴식시간 이었다. 토요일에는 다 같이 베르가모에 놀러 가서 처음으로 레스토랑에서 음식도 사먹었고 날씨는 엄청 더웠지만 일을 안하고 놀러 왔다는 생각에 당시에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일요일에는 팀을 나눠서 놀러 갔는데 피로가 쌓여서 놀 힘도 없었던 나와 민정이, 러시아 참가자 Margarita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참가자들의 불만을 항상 묵묵히 들어주고 의견을 조율해 주던 캠프리더 Achim은 한국어를 정말 잘 습득한다. 일화를 몇 개 소개하자면 Achim이 일을 하다가 갑자기 Mosquito가 한국말로 뭐냐고 물어봐서 모기라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Achim 하는 말.. “씨x모기” 순간 너무 당황하고 웃겨서 막 웃었다. Achim이 말하기를 예전에 워크캠프 했을 때 한국인 안영x라는 분이 욕을 알려줬다고 한다. 두 번째 일화! 모기가 너무 많아 힘들어 하는 우리를 위해 Achim이 장을 보러 갔다가 연고를 하나 사다 줬다. 무슨 연고인지 몰라 이게 뭐냐고 물어 봤더니 Achim 왈 ”안간지러크림~” 그 전날 우리가 간지럽고 안 간지럽고의 개념을 알려줬더니 바로 활용하는 언어 천재 Achim@.@
워크캠프에 참여하며 여러 나라의 사람이 모이는 것도 기대됐지만 그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우리 팀은 아쉽게도 각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교류하는 시간이 없었다. 아무도 준비를 안 해왔기 때문이다. 민정이가 가져온 윷놀이와 공기를 휴식시간에 알려준 게 문화 교류의 전부였으며 마지막 저녁에 내가 준비해 갔던 음식을 먹었던 것이 음식 교류의 전부였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한국음식으로 멋지게 마무리를 해서 기분이 좋았다. 불고기, 고추장 불고기, 해물부침개, 유자차 등 우리가 준비한 음식을 다들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으며 처음으로 음식이 부족한 사태를 빚었기 때문이다. 레시피를 알려달라며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당시에는 힘들기도 짜증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워크캠프에 참여했던 자체가 나에게는 큰 경험이 되었고 그립기까지 하다. 이탈리아 참가자인 캠프리더 Achim과 땀을 많이 흘리던 Mirco, 꽃돌이 Carlo, 크로아티아에서 온 부부 Sasa와 Danijela, 러시아에서 온 조각미남 Ivan, 조각미녀 Margarita, 멕시코에서 온 사촌형제 Eduardo, Arnulfo, 미국에서 온 절대 동안 Brian, 18살 동갑내기 체코인 Ivana와 터키인 Zeynep,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온 민정이와 나까지 총 14명의 캠프 참가자들. 기약 없는 헤어짐을 앞두고 창피하게 울음이 터진 것도 힘든 만큼 추억도 많이 남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냉정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자 참가자에게 추천해 줄 만한 캠프는 아니지만 고생을 한 번 해보고 싶고 추억을 쌓고 싶다면 이 캠프에 참여해 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