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꿈을 걷다, 나를 만나다 이탈리아 워크캠프,
Bizzarron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이다. 어느 대학생이 워크캠프에 다녀와 후기를 올린 블로그를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나는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며 대학생이 되면 꼭 참여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대학교3학년이 되고 휴학을 하고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떠나기 전부터 꼭 이번 기회에 워크캠프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워크캠프 신청을 앞두고 여러 테마를 가진 워크캠프 인포메이션들을 읽으며 어느 나라를 갈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나에겐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기간을 고려해 봤을 때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았다. 결국 시기상 적절한 6월 26일부터 7월 10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진행되는 Leg06를 선택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특히 방문하고 싶었던 나라였기 때문에 더 기분 좋게 참여준비를 할 수 있었다.
처음 이탈리아 밀라노 공항에 도착했을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영국에서 바로 넘어가서 그런지 유난히도 후덥지근한 날씨가 피부에 와 닿았다. 정말 이제 내가 낯선 곳에 혼자 서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워크캠프 시작 전 이틀은 혼자 밀라노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드디어 워크캠프 첫날. 너무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늘 어려워했고 그걸 고치려고 많이 노력도 했는데 그래도 전세계에서 온 여려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됐다. 미팅포인트였던 밀라노 외곽에 위치한 말나떼역… 기차를 타고 한참을 가도 역이 나오지 않아 혼자 잘못탄건 아닌지 지나친 것 아닌지 혼자 창문에 바짝 붙어 역에 설 때 마다 이정표를 찾았다. 꽤 긴 시간 끝에 도착한 말나떼역. 미팅 시간 보다 2시간은 일찍 장소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덥고 역은 휑하고..시간은 남아 돌고…마침 역 옆에 카페가 보여서 혼자 역에서 2시간 동안 쓴 커피를 마시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노란색 티를 입은 어느 이탈리아 아줌마와 아시아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바로 이번 워크캠프의 리더 벨라와 장기참가자인 필리핀소녀 리셸이었다. 난 너무 반가워 한걸음에 달려가 말을 걸었다. 그 동안 며칠 동안 이탈리아에 있으면서 이탈리아 사람들과 의사소통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고 외로웠는데, 일단은 내 어수룩한 영어로라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둘은 내가 첫번째로 만난 워크캠퍼라며 나를 환영해 주었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캠퍼들을 기다렸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른 워크캠퍼들도 하나 둘씩 도착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우리가 2주 동안 묵을 우리의 숙소로 이동했다. 우리가 묵을 곳은 큰 단체 텐트였다. 텐트는 총 세 개로 하나는 여성 참가자들 다른 하나는 남성참가자들 나머지 하나는 장기참가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짐을 풀고 다 함께 모여앉아 자기소개를 했다. 독일, 터키, 러시아, 스페인, 영국, 스코트랜드, 아일랜드, 필리핀, 이탈리아, 한국 총 10개 국에서 온 아이들이 각자 온 나라와 이름을 말했다. 특히 터키에서 온 에스라와 오즈게, 부락의 이름을 외우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된 워크캠프 아침 일찍 우리의 일터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오래된 물레방앗간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나눠지는 목장갑과 삽, 곡괭이 등의 여러 도구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이 오래된 물레방앗간 복구작업을 하게 되었다. 물레방아를 못 돌아가게 하는 어마어마한 흙더미들을 퍼내는 작업이었다. 열정적으로 삽질을 한 덕에 내 손엔 바로 물집이 잡혔다. 처음 2-3일 동안은 내가 테마로 환경을 선택한 것에 후회를 많이 했다. 날마다 하는 제초작업, 땅파기 숲에서 일하다 보면 산기들의 공격으로 매일매일 모기밥이 되었다. 장기참가자로 와있는 루퍼트, 케이트,리셸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분명히 힘들텐데 묵묵히 맡은 일을 열심히 짜증 한 번 안내고 하는 셋을 보니 참 대단하면서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처음엔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일도 익숙해지고 참가자들과도 친해지면서 나는 서서히 이 곳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열심히 일하고 오후에는 수영을 하거나 발리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유럽 애들은 운동을 꽤나 잘했다. 며칠 전까지는 우중충한 계절의 영국에서 우울하게 보냈는데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이탈리아 시골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배구를 하고 있으니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불과 3일만에 평균적인 한국인의 피부색을 가졌던 나는 태국인이나 필리피노 못지않은 피부색을 갖게 되었다. 난 까매진 내 피부가 싫었으나 친구들은 유럽에서는 브라운스킨이 인기라며 내 피부를 부러워했다. 대부분 참가자들이 유럽 국가에서 온 만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TVShow나 음악, 축구 리그 등에서 서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많이 보지만 TV나 음악 쪽은 관심이 크지 않던 나는 그저 듣기만 해야 했다. 캠퍼들 중 유일하게 스페인에서 온 알버트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해운대라는 영화를 봤다고도 하고 한글을 혼자 공부한 적이 있어 뜻은 몰라도 한글을 읽을 줄은 알았다. 심지어 유창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이탈리아어도 조금은 할 줄 아는 알버트를 보면 입이 딱 벌어졌다. 겨우 한국나이로 19살. 고3 이었는데 말이다. 한번은 나를 불러 앉혀놓고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한국어 레슨이 열린 날도 있다. 한국을 아는 알버트가 있어 가끔씩 기분이 좋았다. 워크캠프에 가기 전에 음식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있었다. 음식도 안 가리고 아무거나 잘 먹는 나지만 2주 동안이나 이탈리아식 식사를 할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됐다. 하지만 난 정말 잘 먹었다. 빵이며 리조또, 샐러드, 파스타 등등…특히나 이탈리아는 음식문화가 발달된 나라이니 만큼 식사를 한 번해도 오랫동안 거대하게 했다. 간단히 먹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마을 어르신 분들이 오셔서 고기도 구워주시고 식사 후에는 꼭 커피와 와인까지 챙겨주셨다. 워크캠프 가기 전엔 일이나 열심히 하며 2주 동안 살이나 빼자는 생각이었는데, 난 식사 때 마다 아주 맛있게 음식을 다 비워내었다. 우리 베이스캠프에는 우리를 위한 자전거들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끔은 마을 구석에 위치한 젤라또 가게를 자전거를 타고 가서 먹고 오곤 했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경치와 맛있는 음식으로 입과 눈이 정말 호강했던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첫날의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떠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움만 자꾸 커져갔다. 하루하루 함께 했던 일들과 이야기들을 모두 다 기억하고 싶어서 매일 저녁 다이어리를 썼다. 각 나라의 tongue twist를 한 일, 내가 손금을 봐준 일, 식탁 위에 올라가 소녀시대 노래를 부른 일… 정말 하나, 하나 비디오로 찍어서 보관하고 싶었다. 그 당시의 기분, 분위기 말로도 사진으로도 설명 안되는 그 무언가를 평생 마음 속에라도 간직하고 싶었다. 마지막 날 밤에는 모두가 마지막이라는 점이 서운했는지 술을 거하게 마셨다. 아일랜드에서 온 막내들 중 한명인 코넬은 펍에 오바이트를 하며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시간은 처음엔 느렸지만 정말 빠르게 흘렀다. 마지막 날 모두 떠날 준비를 했다. 시원섭섭했다.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다시 얘네들을 만날 수 있을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오고 가는 인사와 포옹 속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나도 정말 많이 아쉬웠다. 후회도 많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만남일 수도 있는데 더 많이 다가가고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앞으로의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지금도 우리는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솔직히 막 워크캠프를 끝냈을 때가 가장 활발했지만 페이스북에 Bezzarone Workcamp 2012라는 비밀 그룹을 만들어 서로 워크캠프 기간에 찍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안부도 묻는다. 언제 또 유럽을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게 된다면 꼭 다시 만나고 싶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르바이트에 학교 과제에 치여 살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잠시 동안 이탈리아 Bizzarone에 다녀온 기분이다. 여러모로 배운 점도 느낀 점도 많은 내 첫 번째 워크캠프였다. 다음에 또 참여하게 된다면 그 땐 더 나은 마인드로 그리고 이왕이면 더 향상된 영어실력으로 두 번째 워크캠프를 참여할 것이다.
처음 이탈리아 밀라노 공항에 도착했을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영국에서 바로 넘어가서 그런지 유난히도 후덥지근한 날씨가 피부에 와 닿았다. 정말 이제 내가 낯선 곳에 혼자 서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워크캠프 시작 전 이틀은 혼자 밀라노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드디어 워크캠프 첫날. 너무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늘 어려워했고 그걸 고치려고 많이 노력도 했는데 그래도 전세계에서 온 여려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됐다. 미팅포인트였던 밀라노 외곽에 위치한 말나떼역… 기차를 타고 한참을 가도 역이 나오지 않아 혼자 잘못탄건 아닌지 지나친 것 아닌지 혼자 창문에 바짝 붙어 역에 설 때 마다 이정표를 찾았다. 꽤 긴 시간 끝에 도착한 말나떼역. 미팅 시간 보다 2시간은 일찍 장소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덥고 역은 휑하고..시간은 남아 돌고…마침 역 옆에 카페가 보여서 혼자 역에서 2시간 동안 쓴 커피를 마시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노란색 티를 입은 어느 이탈리아 아줌마와 아시아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바로 이번 워크캠프의 리더 벨라와 장기참가자인 필리핀소녀 리셸이었다. 난 너무 반가워 한걸음에 달려가 말을 걸었다. 그 동안 며칠 동안 이탈리아에 있으면서 이탈리아 사람들과 의사소통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고 외로웠는데, 일단은 내 어수룩한 영어로라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둘은 내가 첫번째로 만난 워크캠퍼라며 나를 환영해 주었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캠퍼들을 기다렸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른 워크캠퍼들도 하나 둘씩 도착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우리가 2주 동안 묵을 우리의 숙소로 이동했다. 우리가 묵을 곳은 큰 단체 텐트였다. 텐트는 총 세 개로 하나는 여성 참가자들 다른 하나는 남성참가자들 나머지 하나는 장기참가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짐을 풀고 다 함께 모여앉아 자기소개를 했다. 독일, 터키, 러시아, 스페인, 영국, 스코트랜드, 아일랜드, 필리핀, 이탈리아, 한국 총 10개 국에서 온 아이들이 각자 온 나라와 이름을 말했다. 특히 터키에서 온 에스라와 오즈게, 부락의 이름을 외우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된 워크캠프 아침 일찍 우리의 일터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오래된 물레방앗간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나눠지는 목장갑과 삽, 곡괭이 등의 여러 도구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이 오래된 물레방앗간 복구작업을 하게 되었다. 물레방아를 못 돌아가게 하는 어마어마한 흙더미들을 퍼내는 작업이었다. 열정적으로 삽질을 한 덕에 내 손엔 바로 물집이 잡혔다. 처음 2-3일 동안은 내가 테마로 환경을 선택한 것에 후회를 많이 했다. 날마다 하는 제초작업, 땅파기 숲에서 일하다 보면 산기들의 공격으로 매일매일 모기밥이 되었다. 장기참가자로 와있는 루퍼트, 케이트,리셸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분명히 힘들텐데 묵묵히 맡은 일을 열심히 짜증 한 번 안내고 하는 셋을 보니 참 대단하면서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처음엔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일도 익숙해지고 참가자들과도 친해지면서 나는 서서히 이 곳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열심히 일하고 오후에는 수영을 하거나 발리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유럽 애들은 운동을 꽤나 잘했다. 며칠 전까지는 우중충한 계절의 영국에서 우울하게 보냈는데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이탈리아 시골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배구를 하고 있으니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불과 3일만에 평균적인 한국인의 피부색을 가졌던 나는 태국인이나 필리피노 못지않은 피부색을 갖게 되었다. 난 까매진 내 피부가 싫었으나 친구들은 유럽에서는 브라운스킨이 인기라며 내 피부를 부러워했다. 대부분 참가자들이 유럽 국가에서 온 만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TVShow나 음악, 축구 리그 등에서 서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많이 보지만 TV나 음악 쪽은 관심이 크지 않던 나는 그저 듣기만 해야 했다. 캠퍼들 중 유일하게 스페인에서 온 알버트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해운대라는 영화를 봤다고도 하고 한글을 혼자 공부한 적이 있어 뜻은 몰라도 한글을 읽을 줄은 알았다. 심지어 유창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이탈리아어도 조금은 할 줄 아는 알버트를 보면 입이 딱 벌어졌다. 겨우 한국나이로 19살. 고3 이었는데 말이다. 한번은 나를 불러 앉혀놓고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한국어 레슨이 열린 날도 있다. 한국을 아는 알버트가 있어 가끔씩 기분이 좋았다. 워크캠프에 가기 전에 음식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있었다. 음식도 안 가리고 아무거나 잘 먹는 나지만 2주 동안이나 이탈리아식 식사를 할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됐다. 하지만 난 정말 잘 먹었다. 빵이며 리조또, 샐러드, 파스타 등등…특히나 이탈리아는 음식문화가 발달된 나라이니 만큼 식사를 한 번해도 오랫동안 거대하게 했다. 간단히 먹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마을 어르신 분들이 오셔서 고기도 구워주시고 식사 후에는 꼭 커피와 와인까지 챙겨주셨다. 워크캠프 가기 전엔 일이나 열심히 하며 2주 동안 살이나 빼자는 생각이었는데, 난 식사 때 마다 아주 맛있게 음식을 다 비워내었다. 우리 베이스캠프에는 우리를 위한 자전거들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끔은 마을 구석에 위치한 젤라또 가게를 자전거를 타고 가서 먹고 오곤 했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경치와 맛있는 음식으로 입과 눈이 정말 호강했던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첫날의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떠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움만 자꾸 커져갔다. 하루하루 함께 했던 일들과 이야기들을 모두 다 기억하고 싶어서 매일 저녁 다이어리를 썼다. 각 나라의 tongue twist를 한 일, 내가 손금을 봐준 일, 식탁 위에 올라가 소녀시대 노래를 부른 일… 정말 하나, 하나 비디오로 찍어서 보관하고 싶었다. 그 당시의 기분, 분위기 말로도 사진으로도 설명 안되는 그 무언가를 평생 마음 속에라도 간직하고 싶었다. 마지막 날 밤에는 모두가 마지막이라는 점이 서운했는지 술을 거하게 마셨다. 아일랜드에서 온 막내들 중 한명인 코넬은 펍에 오바이트를 하며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시간은 처음엔 느렸지만 정말 빠르게 흘렀다. 마지막 날 모두 떠날 준비를 했다. 시원섭섭했다.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다시 얘네들을 만날 수 있을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오고 가는 인사와 포옹 속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나도 정말 많이 아쉬웠다. 후회도 많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만남일 수도 있는데 더 많이 다가가고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앞으로의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지금도 우리는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솔직히 막 워크캠프를 끝냈을 때가 가장 활발했지만 페이스북에 Bezzarone Workcamp 2012라는 비밀 그룹을 만들어 서로 워크캠프 기간에 찍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안부도 묻는다. 언제 또 유럽을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게 된다면 꼭 다시 만나고 싶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르바이트에 학교 과제에 치여 살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잠시 동안 이탈리아 Bizzarone에 다녀온 기분이다. 여러모로 배운 점도 느낀 점도 많은 내 첫 번째 워크캠프였다. 다음에 또 참여하게 된다면 그 땐 더 나은 마인드로 그리고 이왕이면 더 향상된 영어실력으로 두 번째 워크캠프를 참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