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서툰 영어도 괜찮아
Campiglia Cervo – S. Paolo Cerv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저는 영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닙니다. 토익점수조차 600을 넘기 힘들고, 리스닝이나 스피킹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말이 잘 안통한다고 해서 친해지지 못한다는 생각이 편견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왔습니다. 또한 제가 처음 워크캠프를 지원했던 것은 다른 나라의 문화와 외국인친구들과의 교류를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주식은 쌀이지만, 이탈리아의 식문화는 우리가 알고있는 빵, 스파게티, 파스타였습니다. 그 점 때문에 처음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지만 다양한 종류의 식문화를 맛보고, 또한 외국인 친구들의 문화도 알 수 있어서 너무나 좋은 기회였습니다. 서로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정이 쌓이고, 헤어지는 날에는 군대훈련소에서 훈련소동기들을 떠나보내는 심정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다시 되돌아가고 싶고 더 잘하지 못한 제 자신이 후회가 되었었습니다. 모든 것을 추억으로 남기기에 너무나 아까운 시간들이여서 언젠가 다시 만나자 라는 기약없는 약속을 남긴채 떠나 온 것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사람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생소하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딨는 지도 잘 모르고, 단지 Samsung을 ‘삼송’이라고 표현을 하며 제 이름조차 발음하기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대해 알리기 위해 워크캠프를 떠나기 전, ‘반크’사이트에 들어가 독도알리기 홍보용 우편과 스티커를 배송받은 후 마지막 날에게 선물로 편지와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동양의 작은나라 한국에 대해,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었을 때, 신기하다고 하며 모두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심지어 종이가 없어 휴지에다 써주었는데, 그 휴지를 기념품으로 집으로 가져간 친구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문화를 소개했을 때 꼭 한번 와보고 싶은 나라라 하며 저에게 호의적으로 보여준 그들의 모든 행동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동양인이 저 혼자였습니다. 그 누구랑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영어실력이 되지않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낸 것은 사실입니다.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트러블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외국친구들은 자신들의 일에 대해 확고합니다. 우리나라의 같은 경우,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쉬지만, 외국의 문화는 자신에게 할당된 일을 마치면 자신의 자유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저는 그런 문화도 신기했지만 제가 그것에 적응하려하지않고 남들을 먼저 도와주곤 했습니다. 말을 잘 못하니 행동으로라도 그들에게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보고 Gentleman이라 표현하며 한국인들은 다 이렇게 착한지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하였습니다. 말이 잘 안통하지만 같이 있으면 즐겁고 조금씩 조금씩 서로 신뢰를 쌓아가며 같이 추억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제 기억에는 아직도 야밤에 와인파티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가 잤던 곳은 워크캠프 참가자를 위한 마련된 3층짜리 집이였는데, 1층에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아침을 제외하고는 항상 와인이 나왔기 때문에, 그 창고에는 와인이 쌓여있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새벽2시에 몰래 와인을 훔치고 나와 계곡이 흐르는 곳으로 찾아가 진실게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을 마셨었습니다.
제가 참가했던 워크캠프는 봉사활동 후 짜여진 스케줄이 다양했었습니다. 암벽등반, 등산, 계곡물놀이, 자유여행, 테이블 축구, 마을 파티 등등.. 그 중에서도 저는 등산이 너무나 좋았었습니다. 제가 봤던 산들중에서 정말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힘들었지만, 그 산을 정화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헤어지기 전 날, 저도 선물을 받았습니다. 멕시코 친구에게서 카톨릭 십자가 목걸이, 그리고 프랑스친구에게서 편지와 제가 그려진 그림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포옹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한숨을 푹푹 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것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워크캠프가 끝난 후 여행을 하면서 그 선물들을 몇번이나 봤는 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추억을 쌓았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다같이 보는 날은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추억을 최대한 많이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아마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추억은 제 인생에서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한번 더 가보고 싶은 워크캠프였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생소하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딨는 지도 잘 모르고, 단지 Samsung을 ‘삼송’이라고 표현을 하며 제 이름조차 발음하기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대해 알리기 위해 워크캠프를 떠나기 전, ‘반크’사이트에 들어가 독도알리기 홍보용 우편과 스티커를 배송받은 후 마지막 날에게 선물로 편지와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동양의 작은나라 한국에 대해,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었을 때, 신기하다고 하며 모두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심지어 종이가 없어 휴지에다 써주었는데, 그 휴지를 기념품으로 집으로 가져간 친구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문화를 소개했을 때 꼭 한번 와보고 싶은 나라라 하며 저에게 호의적으로 보여준 그들의 모든 행동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동양인이 저 혼자였습니다. 그 누구랑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영어실력이 되지않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낸 것은 사실입니다.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트러블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외국친구들은 자신들의 일에 대해 확고합니다. 우리나라의 같은 경우,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쉬지만, 외국의 문화는 자신에게 할당된 일을 마치면 자신의 자유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저는 그런 문화도 신기했지만 제가 그것에 적응하려하지않고 남들을 먼저 도와주곤 했습니다. 말을 잘 못하니 행동으로라도 그들에게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보고 Gentleman이라 표현하며 한국인들은 다 이렇게 착한지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하였습니다. 말이 잘 안통하지만 같이 있으면 즐겁고 조금씩 조금씩 서로 신뢰를 쌓아가며 같이 추억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제 기억에는 아직도 야밤에 와인파티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가 잤던 곳은 워크캠프 참가자를 위한 마련된 3층짜리 집이였는데, 1층에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아침을 제외하고는 항상 와인이 나왔기 때문에, 그 창고에는 와인이 쌓여있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새벽2시에 몰래 와인을 훔치고 나와 계곡이 흐르는 곳으로 찾아가 진실게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을 마셨었습니다.
제가 참가했던 워크캠프는 봉사활동 후 짜여진 스케줄이 다양했었습니다. 암벽등반, 등산, 계곡물놀이, 자유여행, 테이블 축구, 마을 파티 등등.. 그 중에서도 저는 등산이 너무나 좋았었습니다. 제가 봤던 산들중에서 정말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힘들었지만, 그 산을 정화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헤어지기 전 날, 저도 선물을 받았습니다. 멕시코 친구에게서 카톨릭 십자가 목걸이, 그리고 프랑스친구에게서 편지와 제가 그려진 그림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포옹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한숨을 푹푹 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것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워크캠프가 끝난 후 여행을 하면서 그 선물들을 몇번이나 봤는 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추억을 쌓았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다같이 보는 날은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추억을 최대한 많이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아마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추억은 제 인생에서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한번 더 가보고 싶은 워크캠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