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나바리, 잊지 못할 첫 워크캠프

작성자 안성용
일본 NICE/12-25 · ENVI 2012. 03 일본 Nabari

Nabari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벌써 워크캠프가 끝나고 10일이 지났지만, 첫 만남과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의 기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을 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게 가능한 것인지 그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려고 한다.

1) 일본으로 가기 위한 준비
말 그대로 표현하자면, 정말 바리바리 쌌다. 엄청 큰 배낭에 이것 저것 싸다 보니 ‘가방 끈이 버텨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여행을 해봤기 때문에 최대한 짐을 줄일 수 있었고 그 대신 다른 욕심이 생겼다. 그것은 일본에 가서 한국의 음식문화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것. 그 때문에 가방 속에는 내게 필요한 짐 보다 음식 재료들이 더 많았다. 스팸, 부침가루, 오징어짬뽕, 카레, 고추장, 각종 양념 등. 그리고 필수인 한국 소주까지 꽉꽉 채웠다. 비록 침낭은 가져가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일본으로 비행기가 아닌 배를 이용했다. 처음엔 비용을 맞추려는 심산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음에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진짜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일본 땅을 밟을 수 있을까? 그것도 혼자서 가는 건데… 하~~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2) 출발
3월 11일. 아침 9시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한다. 오후 3시 배이기 때문에 3시간의 부산까지의 거리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이른 시간도 아니다. 모두의 걱정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한걸음 가까워졌다. 사실, 일본으로 봉사활동 간다고 하니깐 주위에서 하는 말이 ‘방사는 관광 잘하고 와라, 먹는 거 조심해라, 일본 유명 개그맨이 후쿠시마 주변에 농산물이 안전하다는 광고방송 후에 결국 죽었다고 하더라..’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도 뒤로한 채 일본으로 갈 수 있었던 건 내 결정에 대한 확신과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고집스러움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군대에서 맺던 군장 보다 더 큰 가방을 짊어 지고 부산 여객 터미널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는다. 그것은 뭐 어렵지 않았다. 터미널 내에 큰 화물차들이 다니는 관계로 페리까지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셔틀로 데려다 준다. 큰 짐을 매고 있는 나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더라… 그저 무식하게 배낭을 매고 있는 내가 바보지!! 캐리어를 끌걸 그랬나;; 여튼 승선을 도중에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옮기는 한국인 여성을 도와주었다. 승선을 완료하고 보니 오호~~ 생각보다 훨씬 크고 내부는 완전 good이다. 깔끔하다. 사우나까지 완비되어 있는 점이 아주 좋았다. 와이파이만 됐더라면 하는 큰 아쉬움이 있지만… 내실에 들어가 짐을 풀고 갑판 위에 올라갔다. 이윽고 출항의 뱃고동 소리가 부산 앞바다에 찐하게 울려 퍼진다. 드디어 실감이 난다. 부산이여 2주 뒤에 보자! 안녕~
3)첫 만남
가까우면서도 너무 먼 나라, 일본에 드디어 도착했다. 3월 12일 10시에 가까워져 간다. 하선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면서 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다. 지난 밤에 배에서 만난 한국인과 같이 난바 역까지 같이 가기로 한다. 셔틀버스의 운행으로 코스모스퀘어 역에 내렸고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 속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지하철 표를 끊고 계단을 내려가 난바 역으로 향하는 차에 탔는데 이게 왠일?? 한국과 똑.같.다. 하긴 달라도 얼마나 다르겠냐만은 지하철의 분위기는 너무 비슷했다. 굳이 다른걸 찾자면 한국인과는 다르게 일본인들은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 사용을 안 한다는 것과 광고 포스터가 많다는 것. 어느덧, 난바 역에 도착했다. 이제 서로 갈 길대로 흩어져야 할 시간이다. 도움을 받은 이유도 있지만 낯선 땅에서 만난 한국인이라서 더욱 반가웠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 막상 헤어질 때 되니깐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전화번호랑 페이스북 아이들 건네 받고 다음 만남을 기약해본다. 킨테츠 열차로 갈아 타야 하는데 역이 크고 복잡하다. 태생이 시골인지라 서울만 가도 복잡함을 느끼는데 여긴 서울 보다 더 크다. 아흐~~ 물어 물어서 겨우 찾아갔다. 또 모든 간판에 한글로 표기 되어 있어서 도움이 되기도 했다. 킨테츠 열차에 올라 2시간을 달렸다. 달리는 동안 눈이 내리기도 했다. 날씨가 그다지 나를 반기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열차 안에 승무원의 친절함으로 아카메구치 역에서 무사히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내려서 꾸벅 인사를 하고 미팅 장소인 역 입구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기로 한다. 몇 번의 열차들이 오고 가는 도중에 누군가 출구를 나온다. 먼저 나에게 묻는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엥? 이게 웬일인가? 한국인이네? 같은 워크캠퍼라는 말에 한 동안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이 터졌다. 알고 보니 나 보다 한 살 형이고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는 중이라고 한다. 이 형의 존재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둘이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 명의 여자가 또 나온다. 일본인이다. 가볍게 통성명을 하고 보니 외국인 두 명이 멀리서 보인다. 우리가 워크캠퍼란 걸 알았는지 먼저 손을 흔든다. 어느덧 6명이 됐고 짧은 영어로 몇 마디씩 대화를 나눠간다. 나머지 3명이 약속 시간 내에 도착했고 이렇게 우리는 현재 9명이고 한 명은 연락이 되질 않는다. 서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아직은 어색한데도 불구하고 폰 카메라를 세우며 같이 사진을 찍어 본다. 숙소에 도착해서 이노상이라는 대장을 만난다. 여기서 우리는 국제워크캠프기구와 NICE라는 일본 봉사단체 그리고 지금 여기(아카메노모리 사토야마)와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 앞에 두 단체는 그저 봉사활동 지역으로 연결 시켜주는 중간 고리 역할을 할 뿐, 실질적 운영은 숙소를 마련해 준 아카메노모리가 담당한다. 이곳의 간략한 소개와 함께 이노상의 특별식으로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맛있는 저녁을 보내고 끝이 날 무렵 아까 미팅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던 나머지 한 명이 드디어 도착했다는 것이다.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 첫 만남의 여운과 함께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눈다.
4) 일
이번 워크캠프를 신청하면서부터 과연 현지에서는 어떤 봉사활동이 이뤄질까 많이 궁금했다. 환경봉사활동이라는 것만 알고 도착했는데 그래서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주구장창 삽질만 할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주간의 일정표를 보니 중간에 무슨 포럼도 있고 지역행사에도 참여하기도 하고 생각한 것보다는 좀 다르다고 했다. 우선, 우리 워크캠프의 주된 임무는 아카메노모리에 위치한 사토야마라는 산을 가꾸는 일이다. 쓰러진 나무를 옮기고 산책로를 정비하고 오래된 건물을 허무는 작업들이었다. 첫 날, 사토야마에서 하이킹을 시작으로 주변답사를 했다. 오후부터 당장 일이 시작되었다. 쓰러진 나무를 비탈진 경사에서 끌어 올리는 작업이었다. 처음이기도 하고 모두가 호흡이 안 맞아 일이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힘 빠질대로 힘이 빠진 우리들은 숟가락 들 힘도 없이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녹초가 돼버렸다. 앞으로 이런 일을 2주 동안 해야 한다니 마치 군대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어제와는 다른 일이 주어졌다. 오래된 숯 가마를 허물고 작업장을 재 배치하는 일이었다. 삽과 낫 그리고 톱과 같은 다소 위험한 장비들을 가지고 한다. 의아한 것은 날마다 주어지는 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주어질지 모르는 상태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5) 포럼&지역행사 참여
2주 동안 있으면서 우리는 두 번의 큰 행사에 참여했다. 우리가 워크캠프에 온 주된 이유라고 생각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먼저, 포럼은 사토야마에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타지에서 온 대학생들이 사토야마에 대한 정보와 자연생태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하며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행사에 일원이 되어서 진행을 보조하기도 하고 우리도 같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사토야마라는 것은 자연의 일부인 산이라는 것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으면 그 구실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에 가지던 자연에 대한 인식을 뒤엎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런 포럼이 열리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잘못된 의식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그리고 사람의 손으로 제 구실을 찾아가는 산을 가리켜 사토야마라고 한다. 일부러 베어내는 나무를 석유난로나 가스난로를 대신할 수 있는 연료로 재탄생 되고 이는 대체에너지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더 나아가 살기 좋은 도시와 농촌 그리고 그 속에 산이 위치하는 새로운 미래상을 구상하게 한다. 이에 대해서 2박 3일 동안 50여명의 대학생들과 하나가 되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느낀 점이라면, 나도 대학생이지만 이들은 겨우 1학년이나 2,3학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18살에 대학교에 입학하는 걸 감안하면 무지 어린 나이다. 그런데 강의를 청취할 땐 진지함이 묻어나고 토론을 하는 경우엔 능숙한 발표력이 돋보였다. 정말 말 잘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들을 수 있었냐고? 아까 말했던 한국인 형이 모든 통역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당차고 요목조목 발표하는 모습은 부럽기까지 했다. 또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은 큰 범주로 봤을 때, 아시아인과 유럽인의 차이를 찾을 수 있었다. 토론 시간에 우리 조에 프랑스 친구는 말 보다 펜을 먼저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다양한 색을 이용해 화려한 하나의 포스터를 만들어 낸다.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머지 아시아 친구들은 토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내 생각을 말하며 서로의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그리기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프랑스 친구를 보면서 프랑스에 예술이 유명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역시 하나의 작품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자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인다. 두 번째 행사였던 지역주민들과의 만남은 훨씬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바리시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연로하신 지역주민들과 지난 포럼과 같은 주제로 토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할머니로부터 1년 전 동일본에서 발생했던 대 지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희망의 메시지와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것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이슈였던 그 사건을 불과 1년이 지난 지금, 꺼져가는 불씨처럼 기억에서도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여전히 위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보전하려고 노력하며 일본을 사랑하는 어른들을 보며 그 동안 그저 위험한 나라라고만 생각한 나의 모습이 창피하기도 했다.
6) Excursion
포럼이 끝나는 날과 함께 우리 워크캠프는 또 다른 사토야마로 여행을 간다. 이 또한 수업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 사토야마 보다 더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포럼을 진행하던 운영진들과 함께한 이번 여행은 출발하는 순간부터 다음날 숙소로 도착하는 순간까지 손에서 술을 놓지 않았다. 이 것은 이노상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라고 한다. 흔히 우리나라는 폭음으로 먼저 지쳐서 쓰러지거나 만취하기 마련이지만 일본인들은 그보다 오래오래 마시며 그 시간을 즐기려고 한다. 내가 가지는 특유의 입담으로 이노상에게 신임(?)을 얻게 되면서 이노상의 옆자리엔 언제나 슈퍼 코리안 두 명이었다. 나와 주영이 형. 통나무 집에서 하루 머무는데 그날 밤은 한국에서 술 먹을 때 하는 게임들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결국, 일본 친구 한 명은 너무 재미있어 한 나머지 화장실에서 뻗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등산을 시작하고 눈이 녹지 않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며 계곡 물이 흐르는 소리와 나무와 바람이 연주하는 자연의 소리는 숙취마저 날려보내 주었고 어릴 때 시골에서 살며 가재 잡으러 가던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이 되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각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본인들은 무슨 일을 하던지 결과 보고하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사소한 일이라도 꼭 소감을 발표하는 것을 보며 회사 생활이 어떨지 불 보듯 뻔해 보였다. 또한 자연이 주는 큰 재앙을 포용하고 더 큰 의미로 자연을 보호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꼭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7) 음식
3월 13일 아침 밥부터 마지막 날 아침 밥까지 식사당번을 정했다. 주방은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라서 옆에는 예초기, 전기톱과 같은 여러 장비들이 있다. 비록 열악했지만 모두가 각자의 레시피를 선보이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원하는 음식의 재료는 하루에 한 번 시내에 있는 큰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나처럼 직접 가지고 온 음식재료를 이용하기도 한다. 일본 역시 항상 국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음식을 할 때면 미소 스프라는 것을 끓인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사시간 마다 미소 스프는 빠지지 않고 나왔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된장국과 같다. 한 번은 우크라이나 친구가 직접 가지고 온 재료로 ‘그레이치캉’이라는 요리를 보여주었고 프랑스 친구는 팬 케익과 피자, 일본인 친구는 볶음밥과 비슷한 것을 그리고 나는 비빔밥과 미리 준비해 간 육개장으로 국을 만들어서 대접했다. 매운 고추장 양념과 육개장을 맛 본 외국인 친구들은 맵다고 하면서도 맛있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farewell party에서는 그 동안 숨겨두었던 각국의 모든 레시피가 총 동원 되었다. 한국팀은 부침개와 호박전 그리고 돼지불고기, 프랑스팀은 커피&초콜렛 파이로 디저트를, 일본팀은 일본식 스튜와 두부 탕수육, 국수를 준비했다. (우크라이나 친구들은 워캠 중반에 귀국했다.) 이노상과 다른 스태프들도 함께한 자리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우리들의 요리는 빛을 발휘했다.
8) 갈등
4개국이 모인 조직 안에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었다. 아시아인 7명과 유럽인 3명과의 문화차이는 워크캠프가 시작이 되어서도 좀처럼 좁혀지질 않았다. 특히, 프랑스 친구는 라틴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것을 좋아하며 성에 차지 않으면 이의를 제기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흐렸다. 순간, 이 친구 자기중심적이고 때로는 너무 이기적이구나 라고 생각했고 모든 프랑스 사람들이 이럴까 라는 의문도 가졌었다. 그런 나에게 형이 말했다. 어쩌면 일 처리에 있어서 궁금한 점을 침묵하고 그냥 시키는대로만 하는 우리에게 이런 모습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갈등요인은 언어장벽이었다. 물론 나도 그렇고 유럽친구들도 그렇고 일본어를 모르는 상태인데 일본친구들은 영어를 할 줄 모른다. 그나마 그 중에 한 명이 영어가 유창한지라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 외에 다른 캠퍼들과 언어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분은 매우 심각한 부분이었다. 리더마저도 영어가 부족해서 제대로 된 이해가 전달이 되지 않아서 유럽친구들의 갈등을 빚어 내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부족한 영어로 애써 통역에 노력하면서 갈등을 해소하고 나의 영어실력 향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이러한 갈등이 주는 이면이라고 생각했다.
9) 이별
2주라는 시간 동안 짧은 포럼에서 만난 인연과 헤어지고 워크캠프 멤버 중에 우크라이나 친구 2명이 도중에 그만두는 바람에 예상보다 빨리 헤어지게 됐고 나바리시에서 있었던 지역행사에서 만난 지역주민들과 헤어지고 마지막으로 2주의 시간 동안 함께했던 7명과의 헤어짐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게 했다. 같이 힘을 모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내고 성취감을 만끽하던 전우 같은 친구들이 소중하고 잊고 싶지 않은 까닭에 많은 사진을 남기려고 애썼다. 그 이유는 좋은 사람들 좋은 환경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새겨 오려고 했지만 1주년을 맞은 동일본 지진조차도 내 기억에서 점점 흐려지는 것처럼 소중한 인연을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워크캠퍼들과 헤어지는 순간 나를 보고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일본인들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 나라 안에서 헤어지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국가별로 헤어지는 것이라서 그 아쉬움은 표현 할 길이 없었다. 이렇듯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헤어짐을 예고한다, 난 그 속에서 점점 만남과 헤어짐에 성숙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과 약속을 만들어 간다. 인생을 함께할 친구들이 많아져 가는 것에 대해 큰 뿌듯함과 워크캠프에 대해 찬양을 표한다.
10) 소감
처음엔 단순하게 대학생활 마지막을 의미 일로 마무리 짓고 싶어 이번 워크캠프를 지원했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만약 이번에 워크캠프를 다녀오지 않으면 훗날에 후회 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나 둘 셋 조차도 일본어로 알지 못하는데 왠지 나에겐 자신이 있었다. 속된 말로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라고 하겠지만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막상 일본에 도착해서 내 눈으로 바라본 일본과 일본인은 검소하고 체구도 작고 차도 작고 건물도 화려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외제차 보기가 힘들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역사적으로 일본인들이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사는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겸손함이 몸에 베어 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겸손하고 생활양식도 소박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우리는 단지 왜놈으로만 알고 있지만 오사카 성을 둘러보며 그에 대해서 자세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본은 섬나라이며 굉장히 소극적인데 반해 그 속에서 외국으로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인물인 걸 알고서 객관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일본의 안전은 기대 이상이었다.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하는 정보가 오히려 더 큰 오해를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환경봉사활동이라는 성격으로 가서 삽이나 낫과 같은 기구들로 눈에 보이는 뭔가 변화를 만드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 지역주민들과 일본 대학생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깨우쳐 주었고 현지에서 직접 배울 수 있었던 기회는 워크캠프만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한국에서 리더로서 활동하고 싶은 동기를 심어주었다. 이번 워크캠프에서 정주영이 형은 나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에 통역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일본을 다시 그리워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핑계 삼아 다음 워크캠프를 마다하고 싶지 않다. 도전과 열정을 가진 나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워크캠프에 리더로서 발을 내딛는 그날을 위하여!!!!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