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페인 시골, 정으로 물든 2주
ENCIS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Let’s PARKING
팍, 산쵸, 게이, 루져, 촌놈, 파키토…스페인에서의 2주동안 내가 불렸던 수많은 호칭들 중 몇이다. 5개국 12명의 사람들과 15박 16일의 추억을 돌이켜 보며 가장 떠오르는 단어들이 저 단어들이어서 참 행복 하다…’ 어떻게 해야 여기서 시간이 후딱 지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내가 마지막 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며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보지 못하겠지?’라는 생각에 몇 번이고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식당으로 내려가기까지… 그들과의 수많은 추억에,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나눠준 정에 너무나 감사하다.
처음 우리의 캠프 장소인 enciso에 도착하고 나서 조금은 실망감이 컸다. 정말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에서도 정말 시골스러운 이곳, 이 허름한 침대와 건물, 처음 먹었던 파스타 비슷했던 알 수 없던 음식. 정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첫 날 저녁, 다행히 나를 제외하고 한국인 동생 한 명이 더 왔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적응만 하면 그래도 살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본격적인 일은 둘째 날부터 시작 했는데, 공룡 발자국 근처 땅에 있는 틈들을 시멘트, 실리콘, 접착제를 이용해 메우는 몰딩 작업이었다. 솔직히 일을 했던 기억들은 지금 내 가슴속에 크게 남겨진 것이 없다. 그 외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그리고 지금 내가 너무나 아끼는 꼬레아노 동생과의 즐거웠던 추억들이 가슴속에 소중하게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나는 몇 가지가 있다.
위에 제목으로 적은 “parking” 이라는 단어는 영어에서 말하는 “주차”라는 의미와 다르다. 이 단어에는 2가지의 의미가 있다. 캠프 기간 동안 나는 주로 “pak”이라고 불렸고, 스페인 친구와의 첫 대면에서 내 이름 “pak”을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던 것이 시작이 되었다. 이후 이 캠프에서는 하이파이브를 할 때 “pak”을 외치는 것이 암묵적 룰이 되었다. 그것이 첫 번째 의미이다. 두 번째 의미는 “pak” 이라는 사람은 술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것을 본 친구들이 parking을 “술을 마시다.”라는 표현으로 사용을 했고 그것이 두 번째 의미가 되었다. 저녁이 되면 “Let’s parking”이라며 술을 마시러 나가곤 했었다. 요즈음 페이스북에 나를 태그하며 올린 사진들의 제목이 Let’s parking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굵직한 기억은 나의 생일이었다. 캠프 5일차가 나의 생일이었고, 일에 치여 시간개념, 날짜개념의 굴레 속에서 벗어난 내가 나의 생일이라는 것은 인지한 것이 오전 12시 정도였던 것 같다. 한국인 동생에게만 말을 했었고, 나의 이쁜 동생님께서 외국인 친구들과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 해 주었다. 한국어로 생일 축하 합니다 노래를 연습해 외워 나에게 불러 주었고 무려 2유로의 케이크에 흔히 쓰이는 손가락 두 개 굵기의 양초에 불을 붙여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그 날, 나는 생일축하 합니다 노래를 5개국어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 한 명은 천을 오리고 바느질을 해서 생일선물로 지갑을 만들어 주었다. 동전을 넣으면 다 빠지고, 지폐를 넣으면 지폐가 사라지는 신기한 지갑이지만, 평생 버리지 못하고 간직할 소중하고 고마운 선물이었다. 지금 생각 해도 너무나 기분 좋을 기억을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너무나 너무나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한국 노래 중 슈프림팀의 슈퍼매직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방금 스페인 친구로부터 온 페이스북 메시지에 이렇게 적혀있다. 너가 부르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나 슈퍼매직!” 이 그립다고… 또한 내가 만들어준 볶음밥과 치즈 계란말이에 “팍! 너 요리사야?”, “팍., 너무 너무 너무 맛있었다.” 등등 칭찬을 남발해주었던 것도 기억이 나고, 비록 40대 중, 후반이었지만 내 스페니쉬 여자친구도 그립다. 물 온도가 조절이 안되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던 기억, 밤만 되면 항상 ‘피에스타’를 외치며 술을 마시며 놀았던 기억, 내가 스페인 말을 따라 하면 너무나 재밌어 하던 친구들, 이해가 안갔던 수업, 비와 우박이 미친듯이 쏟아져 혹시나 오후작업이 취소가 되지 않을까 기도하던 기억, 마지막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며 아쉬워 했던 기억, 한국인 동생과 묵찌빠, 에이 비 씨, 참참참을 하던 기억, 한국인 동생과 접시 대신 치우기 가위바위보를 하니 친구들 모두가 따라 하던 기억, 어느새 살루드(스페인의 건배)보다 건배를 외치던 친구들의 기억, 25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여장을 했던 기억…등등등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 많고 즐거웠던 추억이 많아 여기에 다 적을 수가 없다.
토를 해서 동생과 내가 토마산xx라고 부르던 나의 터키쉬 베스트프렌드 라마산
목소리가 항상 3옥 이하로 내려오질 않던 그의 여자친구 줄라이
옥솨나~라며 내가 불렀던, 그리고 살짝 철이 없었던 러시안 막내 옥사나
너의 귀염둥이, 나의 귀염둥이, 우리의 귀염둥이 카를리또
처음에 너무 이뻐 한국인 동생과 미녀라고 불렀던, 그리고 나를 참 잘 챙겨줬던 둘체
내가 마지막날 여장을 하는데 전적으로 도움을 주신, 그리고 나보다 어리지만 내 머리를 자연스레 쓰담쓰담 하던 로레나
얼굴은 30살, 목소리는 40살, 나이는 20살 로레나의 남자친구 세르지오
내가 전형적인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열정의 스페니쉬!! 잉마
너무나 착했던, 친하진 못했지만 마지막 날 달려가 둘이서 베프인척 사진 한방 박았던…. 산드라
내가 스페니쉬 찍새, 내가 스페니쉬 전문가!! 길레르모
스페인에서 처음 만났지만 항상 “둘이 사귀어?”, “둘이 서울에서 알던 사이야?”라는 말을 항상 들을 정도로 너무나 친했던 아끼는 동생 지원이
나의 스페니쉬 여자친구이자 관리자였던 베고냐
나의 생일날 나에게 생일선물로 지갑을 선물해 주었던 나의 사랑 사라
영어 통역 담당이자 현장 관리자였던, 나의 요리를 특히나 좋아해 주었던 뻬빠
등등등
낯선 땅, 더운 여름, 나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쉬운 점은 나를 좋아해주고 나에게 너무나 큰 정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에게, 역으로 내가 그만큼의 정을 나누어 주지 못했고,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표현을 못했음이 너무나 미안하다. 분명 2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뜨거운 나라의 열정적인 그들이, 내 마음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헤어지고 세비야를 가는 버스에서 살짝 눈가에 눈물이 고였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그들과의 추억은 사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 가 그들을 만날 것이기에 아쉬움은 잠시만 간직 하는 것으로.
팍, 산쵸, 게이, 루져, 촌놈, 파키토…스페인에서의 2주동안 내가 불렸던 수많은 호칭들 중 몇이다. 5개국 12명의 사람들과 15박 16일의 추억을 돌이켜 보며 가장 떠오르는 단어들이 저 단어들이어서 참 행복 하다…’ 어떻게 해야 여기서 시간이 후딱 지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내가 마지막 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며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보지 못하겠지?’라는 생각에 몇 번이고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식당으로 내려가기까지… 그들과의 수많은 추억에,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나눠준 정에 너무나 감사하다.
처음 우리의 캠프 장소인 enciso에 도착하고 나서 조금은 실망감이 컸다. 정말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에서도 정말 시골스러운 이곳, 이 허름한 침대와 건물, 처음 먹었던 파스타 비슷했던 알 수 없던 음식. 정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첫 날 저녁, 다행히 나를 제외하고 한국인 동생 한 명이 더 왔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적응만 하면 그래도 살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본격적인 일은 둘째 날부터 시작 했는데, 공룡 발자국 근처 땅에 있는 틈들을 시멘트, 실리콘, 접착제를 이용해 메우는 몰딩 작업이었다. 솔직히 일을 했던 기억들은 지금 내 가슴속에 크게 남겨진 것이 없다. 그 외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그리고 지금 내가 너무나 아끼는 꼬레아노 동생과의 즐거웠던 추억들이 가슴속에 소중하게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나는 몇 가지가 있다.
위에 제목으로 적은 “parking” 이라는 단어는 영어에서 말하는 “주차”라는 의미와 다르다. 이 단어에는 2가지의 의미가 있다. 캠프 기간 동안 나는 주로 “pak”이라고 불렸고, 스페인 친구와의 첫 대면에서 내 이름 “pak”을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던 것이 시작이 되었다. 이후 이 캠프에서는 하이파이브를 할 때 “pak”을 외치는 것이 암묵적 룰이 되었다. 그것이 첫 번째 의미이다. 두 번째 의미는 “pak” 이라는 사람은 술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것을 본 친구들이 parking을 “술을 마시다.”라는 표현으로 사용을 했고 그것이 두 번째 의미가 되었다. 저녁이 되면 “Let’s parking”이라며 술을 마시러 나가곤 했었다. 요즈음 페이스북에 나를 태그하며 올린 사진들의 제목이 Let’s parking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굵직한 기억은 나의 생일이었다. 캠프 5일차가 나의 생일이었고, 일에 치여 시간개념, 날짜개념의 굴레 속에서 벗어난 내가 나의 생일이라는 것은 인지한 것이 오전 12시 정도였던 것 같다. 한국인 동생에게만 말을 했었고, 나의 이쁜 동생님께서 외국인 친구들과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 해 주었다. 한국어로 생일 축하 합니다 노래를 연습해 외워 나에게 불러 주었고 무려 2유로의 케이크에 흔히 쓰이는 손가락 두 개 굵기의 양초에 불을 붙여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그 날, 나는 생일축하 합니다 노래를 5개국어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 한 명은 천을 오리고 바느질을 해서 생일선물로 지갑을 만들어 주었다. 동전을 넣으면 다 빠지고, 지폐를 넣으면 지폐가 사라지는 신기한 지갑이지만, 평생 버리지 못하고 간직할 소중하고 고마운 선물이었다. 지금 생각 해도 너무나 기분 좋을 기억을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너무나 너무나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한국 노래 중 슈프림팀의 슈퍼매직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방금 스페인 친구로부터 온 페이스북 메시지에 이렇게 적혀있다. 너가 부르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나 슈퍼매직!” 이 그립다고… 또한 내가 만들어준 볶음밥과 치즈 계란말이에 “팍! 너 요리사야?”, “팍., 너무 너무 너무 맛있었다.” 등등 칭찬을 남발해주었던 것도 기억이 나고, 비록 40대 중, 후반이었지만 내 스페니쉬 여자친구도 그립다. 물 온도가 조절이 안되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던 기억, 밤만 되면 항상 ‘피에스타’를 외치며 술을 마시며 놀았던 기억, 내가 스페인 말을 따라 하면 너무나 재밌어 하던 친구들, 이해가 안갔던 수업, 비와 우박이 미친듯이 쏟아져 혹시나 오후작업이 취소가 되지 않을까 기도하던 기억, 마지막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며 아쉬워 했던 기억, 한국인 동생과 묵찌빠, 에이 비 씨, 참참참을 하던 기억, 한국인 동생과 접시 대신 치우기 가위바위보를 하니 친구들 모두가 따라 하던 기억, 어느새 살루드(스페인의 건배)보다 건배를 외치던 친구들의 기억, 25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여장을 했던 기억…등등등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 많고 즐거웠던 추억이 많아 여기에 다 적을 수가 없다.
토를 해서 동생과 내가 토마산xx라고 부르던 나의 터키쉬 베스트프렌드 라마산
목소리가 항상 3옥 이하로 내려오질 않던 그의 여자친구 줄라이
옥솨나~라며 내가 불렀던, 그리고 살짝 철이 없었던 러시안 막내 옥사나
너의 귀염둥이, 나의 귀염둥이, 우리의 귀염둥이 카를리또
처음에 너무 이뻐 한국인 동생과 미녀라고 불렀던, 그리고 나를 참 잘 챙겨줬던 둘체
내가 마지막날 여장을 하는데 전적으로 도움을 주신, 그리고 나보다 어리지만 내 머리를 자연스레 쓰담쓰담 하던 로레나
얼굴은 30살, 목소리는 40살, 나이는 20살 로레나의 남자친구 세르지오
내가 전형적인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열정의 스페니쉬!! 잉마
너무나 착했던, 친하진 못했지만 마지막 날 달려가 둘이서 베프인척 사진 한방 박았던…. 산드라
내가 스페니쉬 찍새, 내가 스페니쉬 전문가!! 길레르모
스페인에서 처음 만났지만 항상 “둘이 사귀어?”, “둘이 서울에서 알던 사이야?”라는 말을 항상 들을 정도로 너무나 친했던 아끼는 동생 지원이
나의 스페니쉬 여자친구이자 관리자였던 베고냐
나의 생일날 나에게 생일선물로 지갑을 선물해 주었던 나의 사랑 사라
영어 통역 담당이자 현장 관리자였던, 나의 요리를 특히나 좋아해 주었던 뻬빠
등등등
낯선 땅, 더운 여름, 나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쉬운 점은 나를 좋아해주고 나에게 너무나 큰 정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에게, 역으로 내가 그만큼의 정을 나누어 주지 못했고,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표현을 못했음이 너무나 미안하다. 분명 2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뜨거운 나라의 열정적인 그들이, 내 마음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헤어지고 세비야를 가는 버스에서 살짝 눈가에 눈물이 고였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그들과의 추억은 사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 가 그들을 만날 것이기에 아쉬움은 잠시만 간직 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