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무모한 용기가 준 뜻밖의 선물
Festival Au fond du jardin du Miche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 때 무엇을 믿고 그렇게 무작정 떠났는지 이해가 안 간다. 생각이 길어지면 용기가 없어진다는, 어떻게 보면 조금 무책임한 말 한 마디를 신조로 삼고 행동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대학교 4학년이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망설일 시간들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전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난생처음 혼자 가는 첫 유럽 여행의 길에 올랐고, 그 도전은 나에게 뜻 밖의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워크캠프를 경험하기 전에, 나에게 있어서의 워크캠프란 그저 유럽 여행의 일부분 정도였다. 남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부모님께 유럽 여행을 간다고 말씀 드리기가 죄송스러웠던 점에 있어서 ‘해외 봉사활동’이라는 멋진 구실을 대줄 수 있는 그런 핑계거리였다. 그렇게 아무런 기대도 욕심도 없이 시작하게 된 워크캠프는 처음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우선 ‘U01 Festival Au Fond du Jardin de Michel’이라는 주제의 워크캠프는 우리가 1기여서 알 수 있는 정보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분명 인포싯에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알면 된다고 써져 있었지만, 분명히 프랑스어가 뒷받침 되야 하는 요소가 존재 했다. 참가자들 6명 중에 나와 또 다른 여자 아이만 아시아인이었는데, 우리 둘을 빼놓고는 모두가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또한 그 페스티발이 개최되는 도시는 프랑스 북동부의 굉장히 작은 시골 도시여서 그런지 그 마을 전체를 통틀어서 아시아인이 단 둘 뿐이었다. 어딜가든 시선이 집중되는 그런 느낌도 난생처음 겪는 일이어서 당황스러움에 한 몫을 톡톡히 보탰다. 그러나 그렇게 당황스러운 것도 3일 정도면 충분했다. 3일 동안에는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오고 가는 친절 속에 서로를 ‘외국인’이라고 느끼는 말로 표현 못할 느낌이 있었지만, 딱 3일정도가 지나니 서로를 그저 문화가 약간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기본적인 모든 것이 똑같았다. 아무리 서양 문화가 개인적이라고는 하지만 우산이 없는 상태에서 비가 오면 옷을 벗어 건네주는 따듯함, 아프면 말이 안 통해도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온정, 정이 들어 떠나갈 땐 아무 말없이 서로를 꼭 안아주는 애틋함까지.
아마 내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나를 제외한 5명은 모두 이번 워크캠프가 처음이 아니고 예전에도 다른 워크캠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모두 이번 워크캠프처럼 재미있고 좋은 워크캠프는 처음이라고 칭찬을 했다. 주제가 페스티발이여서 그런지 우린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음악을 틀어놓고 즐기는 형식으로 봉사활동 아닌 봉사활동을 했다. 3주 간의 워크캠프를 크게 나누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페스티발을 준비하는 시기 2주일, 페스티발 2박 3일, 페스티발이 끝나고 현장을 치우는 시기 5일 정도. 페스티발을 준비하는 시기에는 화장실에 페인트 칠을 한다던지, 아티스트들이 머무를 공간을 꾸민다던지, 쇼파를 재배치 한다던지 등의 일을 했고, 페스티발 동안에는 손님들을 위한 요리를 하고 음료를 파는 일을 했다. 그러니 페스티발 기간동안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불어가 필수적일 수 밖에 없었는데, 다들 내가 아시아인여서 그런지 불어를 구사하지 못해도 불평 한마디 없이 바디랭귀지로 의사를 전달하려고 애써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페스티발이 끝나고 현장을 치울 때에는 워크캠프 참가자들 뿐만이 아니라 현장 관계자들까지 다들 너무도 친해져 있어서 거의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계속 축제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3주 간의 워크캠프에 대해서 일일이 이야기를 하자면 책을 한 권을 써도 모자랄 것 같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자 유일한 단점이었던 부분 한 가지만을 이야기 하자면 숙소다. 우린 마을 사람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형식으로 숙박을 했다. 그 마을은 페스티발이 매년 개최되는 시골마을이라서 그런지 집이 200평 이하의 사이즈는 없어 보였고, 모두 손님 전용방이 있었다. 매번 다른 집을 갈 때마다 사이즈에 한 번 놀라고, 손님 전용방이 있다는 한 번 더 놀랐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 현지인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다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다. 프랑스 전통, 문화, 생활 습관, 의식주, 모두를 체험 할 수 있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특히 집주인 가족들과 소통을 하고 같이 생활 한다는 것이 그렇게 서로를 정들게 하는 일일 줄은 몰랐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도 마음에 들기도 했고, 꼭 다시 그 장소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 부분이 유일한 단점이기도 하나면, 우리가 이 주제 워크캠프의 1기라서 많은 것들이 정립이 안되 있어서 그랬는지, 한 집에서 5일정도 생활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엔 어디서 자야 될지를 미쳐 알 수가 없었다. 매번 20키로가 넘는 캐리어를 끌고 다닐 수도 없어서 갈아입을 옷이나 화장품 등을 싸들고 다니기가 일수였다. 하지만 나의 또 다른 프랑스 가족이 생긴 것에 비하면 이 부분은 아주 작은 단점이고, 내년에 다른 참가자들이 그 작은 시골 도시 Bulligny로 간다면 이 부분은 다 개선되어 있으리라고 믿는다.
워크캠프를 경험하기 전에, 나에게 있어서의 워크캠프란 그저 유럽 여행의 일부분 정도였다. 남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부모님께 유럽 여행을 간다고 말씀 드리기가 죄송스러웠던 점에 있어서 ‘해외 봉사활동’이라는 멋진 구실을 대줄 수 있는 그런 핑계거리였다. 그렇게 아무런 기대도 욕심도 없이 시작하게 된 워크캠프는 처음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우선 ‘U01 Festival Au Fond du Jardin de Michel’이라는 주제의 워크캠프는 우리가 1기여서 알 수 있는 정보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분명 인포싯에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알면 된다고 써져 있었지만, 분명히 프랑스어가 뒷받침 되야 하는 요소가 존재 했다. 참가자들 6명 중에 나와 또 다른 여자 아이만 아시아인이었는데, 우리 둘을 빼놓고는 모두가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또한 그 페스티발이 개최되는 도시는 프랑스 북동부의 굉장히 작은 시골 도시여서 그런지 그 마을 전체를 통틀어서 아시아인이 단 둘 뿐이었다. 어딜가든 시선이 집중되는 그런 느낌도 난생처음 겪는 일이어서 당황스러움에 한 몫을 톡톡히 보탰다. 그러나 그렇게 당황스러운 것도 3일 정도면 충분했다. 3일 동안에는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오고 가는 친절 속에 서로를 ‘외국인’이라고 느끼는 말로 표현 못할 느낌이 있었지만, 딱 3일정도가 지나니 서로를 그저 문화가 약간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기본적인 모든 것이 똑같았다. 아무리 서양 문화가 개인적이라고는 하지만 우산이 없는 상태에서 비가 오면 옷을 벗어 건네주는 따듯함, 아프면 말이 안 통해도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온정, 정이 들어 떠나갈 땐 아무 말없이 서로를 꼭 안아주는 애틋함까지.
아마 내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나를 제외한 5명은 모두 이번 워크캠프가 처음이 아니고 예전에도 다른 워크캠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모두 이번 워크캠프처럼 재미있고 좋은 워크캠프는 처음이라고 칭찬을 했다. 주제가 페스티발이여서 그런지 우린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음악을 틀어놓고 즐기는 형식으로 봉사활동 아닌 봉사활동을 했다. 3주 간의 워크캠프를 크게 나누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페스티발을 준비하는 시기 2주일, 페스티발 2박 3일, 페스티발이 끝나고 현장을 치우는 시기 5일 정도. 페스티발을 준비하는 시기에는 화장실에 페인트 칠을 한다던지, 아티스트들이 머무를 공간을 꾸민다던지, 쇼파를 재배치 한다던지 등의 일을 했고, 페스티발 동안에는 손님들을 위한 요리를 하고 음료를 파는 일을 했다. 그러니 페스티발 기간동안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불어가 필수적일 수 밖에 없었는데, 다들 내가 아시아인여서 그런지 불어를 구사하지 못해도 불평 한마디 없이 바디랭귀지로 의사를 전달하려고 애써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페스티발이 끝나고 현장을 치울 때에는 워크캠프 참가자들 뿐만이 아니라 현장 관계자들까지 다들 너무도 친해져 있어서 거의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계속 축제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3주 간의 워크캠프에 대해서 일일이 이야기를 하자면 책을 한 권을 써도 모자랄 것 같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자 유일한 단점이었던 부분 한 가지만을 이야기 하자면 숙소다. 우린 마을 사람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형식으로 숙박을 했다. 그 마을은 페스티발이 매년 개최되는 시골마을이라서 그런지 집이 200평 이하의 사이즈는 없어 보였고, 모두 손님 전용방이 있었다. 매번 다른 집을 갈 때마다 사이즈에 한 번 놀라고, 손님 전용방이 있다는 한 번 더 놀랐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 현지인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다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다. 프랑스 전통, 문화, 생활 습관, 의식주, 모두를 체험 할 수 있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특히 집주인 가족들과 소통을 하고 같이 생활 한다는 것이 그렇게 서로를 정들게 하는 일일 줄은 몰랐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도 마음에 들기도 했고, 꼭 다시 그 장소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 부분이 유일한 단점이기도 하나면, 우리가 이 주제 워크캠프의 1기라서 많은 것들이 정립이 안되 있어서 그랬는지, 한 집에서 5일정도 생활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엔 어디서 자야 될지를 미쳐 알 수가 없었다. 매번 20키로가 넘는 캐리어를 끌고 다닐 수도 없어서 갈아입을 옷이나 화장품 등을 싸들고 다니기가 일수였다. 하지만 나의 또 다른 프랑스 가족이 생긴 것에 비하면 이 부분은 아주 작은 단점이고, 내년에 다른 참가자들이 그 작은 시골 도시 Bulligny로 간다면 이 부분은 다 개선되어 있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