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어, 책에서 삶으로
Chancelad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제가 워크캠프에 지원하게 된 동기로는, 제가 불문학과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책이나 연극 속, 영화 속의 프랑스어 이외에는 제 의사를 자유로이 표현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굉장히 아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저희 학과에서도 학과생을 대상으로 프랑스로 어문화체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저는 한달 두달의 짧은 프로그램 기간동안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체험하기에는 워크캠프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점입니다. 워크캠프를 알아갈수록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선정 전에도 이미 지원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학과의 도움으로 경비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원했던 캠프는 프랑스의 아키텐Aquitaine지방의 페리그Perigueux지역이었습니다. 원래 목표로 했던 보르도로 가지 못했지만 보르도의 옆에 있는 곳이라 2차지망으로 가게 된 곳입니다. 출발일을 보름을 앞두고서도 인포싯이 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항공권과 기차패스를 구입해서 결국 인포싯을 받았을 때에는 조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전중으로 도착하거나 보통은 열두시 전후라는 대답을 듣고 그 시간에 맞춰 숙박을 포기하고 야간열차를 타고 아침 아홉시가량에 도착했지만, 미팅시간이 오후 여섯시라 도착한 첫날과 둘쨋날에 어쩔 수 없이 일정의 대부분을 공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인포싯이 일찍 올 수 없는 것은 아직도 아쉬운 점입니다. 유럽권의 친구들과는 달리 저는 언어적인 부분에서라도 조금 더 준비를 해가야하는데 준비비용 중 가장 큰 항공권과 기차패스 숙박 같은 것들에서 확정지을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파리의 리옹역도 안전하게 느껴졌고, 사람들은 배낭을 앞뒤로 맨 동양여자에게 도움이 필요하냐고 지도를 봐주기도 하고, 야간열차에서도 노부부를 만나는 등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인들과 함께 할 3주가 길게 느껴졌지만, 친구들을 역 앞에서 만나고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스페인 2명, 한국인 2명, 인도인 1명, 프랑스인 7명으로 시작했지만, 그 다음날 스페인 2명 더, 그리고 일주일 뒤 2명의 프랑스인이 참여해 총 16명으로 지냈습니다. 지낸 곳은 샹슬라드 chancelade 지역의 종합운동장이었는데, 첫 날에는 모두 텐트를 치고 잤지만, 밤에 너무 추워서 그 다음 날부터는 라커룸 옆의 실내에서 절반가량의 인원이 남녀가 섞여 잤습니다. 운동팀이 쓰는 곳이다보니 라커룸 옆에는 샤워실도 화장실도 잘 갖춰져 있었고, 청소년들이 모여 쓰는 건물에서 일상생활을 해 먹을 것도 많았고, 같이 지냈던 친구들도 겪어본 워크캠프 중에 가장 숙식이 잘 갖춰진 곳이라고 평가했었습니다.
저희가 맡은 임무는 그 지역의 빨래터를 복원시키고, 우물을 깔끔히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에는 빨래터라고는 생각도 못할 모습이어서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물에 떠 있는 부유물만 막대기로 치웠지만, 나중에는 깔끔해져서 지역시장님과 주민분들도 모두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래전에 그 곳에서 빨래를 했던 할머님께서 빨래도구와 빨랫감을 가져와 시연도 보여주셔서 모두가 뿌듯함음 느꼈습니다. 저희는 모두가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전날 돌을 재단했던 친구가 오늘은 벽을 쌓는다던지, 풀을 다듬거나, 시멘트를 타설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겪어볼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기술담당팀장이 만든 벽을 모두가 싫어해 회의를 통해 저희의 아이디어로 바꿔 다시 건설했는데 한참 어린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실행해 준 팀장에게도 고마웠습니다.
아침 8시에 10명에서 11명 정도만 일을 하러 가고 1시쯤에는 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워킹팀이 일을 하는 동안 쿠킹팀들은 숙소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일주일에 2번은 쿠킹팀으로 참여했는데 한국음식은 호떡, 불고기, 참치전 등을 했었고, 이보다 다른 나라의 음식을 만드는 것도 도와 재밋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워킹/쿠킹의 개념이 뚜렷해서 일하고 온 뒤엔 쿠킹팀을 절대 돕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일하고 와서도 계속 도와주며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일을 마친 뒤에는 주변의 호수에 놀러가서 카누를 하거나, 강가에서 수영, 자전거 타고 옆 도시 놀러가기, 주변의 다른 워크캠프 방문, 기술팀장의 도시 축제 방문 등 다양한 활동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음식을 자주 많이 사 쇼핑을 하러 간게 참…많았던 것 같네요. 나중에는 생활팀장이 과일을 두 가지로 줄여야겠다고(원래는 항상 네다섯가지의 과일이 있었습니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예산이 이제 없다고…..회의를 진지하게 했었습니다. 미성년자가 있었기 때문에 술을 살 때는 예산 외에 돈을 모아 함께 샀고, 이 외에는 돈을 따로 지출하지 않았습니다.
쓰다보니 한장이 넘어갈 정도로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은데 다 못쓰게 됬습니다. 축구장에 매트리스깔고 친구들과 침낭덮고 누워 다같이 별똥별을 기다리던 것, 벼룩시장에서 서로 선물 사준 것, 야외에서 땅바닥에 앉아 영화 본 것, 마지막 날 서로에게 편지를 써주고 울던 것, 등등. 지구 반대편이라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참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도 페이스북이나 왔섭으로 인사를 나누지만, 서로의 생활이 시작되서 연락하기가 쉽지는 않아 아쉽습니다.
워크캠프에서 돌아온 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저희가 하는 일이 진짜로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완성된 뒤 누가 사용할 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던 점이었습니다. 저희팀에서는 캠프 중간쯤에 회의를 통해 서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나눠 조금 해소된 면이 있지만, 만났던 다른 캠프 안에서도 불만이 있었던 것을 보면 앞으로 인포싯이 조금더 자세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점은 저렴한 가격에 3주를 머무를 수 있었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둘 다 쓸 수 있었던 점, 정말로 그 문화를 느낄 수 있었던 점입니다. 다시 돌아가고픈 시간들이고, 앞으로도 한참을 못 잊을 추억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지원했던 캠프는 프랑스의 아키텐Aquitaine지방의 페리그Perigueux지역이었습니다. 원래 목표로 했던 보르도로 가지 못했지만 보르도의 옆에 있는 곳이라 2차지망으로 가게 된 곳입니다. 출발일을 보름을 앞두고서도 인포싯이 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항공권과 기차패스를 구입해서 결국 인포싯을 받았을 때에는 조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전중으로 도착하거나 보통은 열두시 전후라는 대답을 듣고 그 시간에 맞춰 숙박을 포기하고 야간열차를 타고 아침 아홉시가량에 도착했지만, 미팅시간이 오후 여섯시라 도착한 첫날과 둘쨋날에 어쩔 수 없이 일정의 대부분을 공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인포싯이 일찍 올 수 없는 것은 아직도 아쉬운 점입니다. 유럽권의 친구들과는 달리 저는 언어적인 부분에서라도 조금 더 준비를 해가야하는데 준비비용 중 가장 큰 항공권과 기차패스 숙박 같은 것들에서 확정지을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파리의 리옹역도 안전하게 느껴졌고, 사람들은 배낭을 앞뒤로 맨 동양여자에게 도움이 필요하냐고 지도를 봐주기도 하고, 야간열차에서도 노부부를 만나는 등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인들과 함께 할 3주가 길게 느껴졌지만, 친구들을 역 앞에서 만나고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스페인 2명, 한국인 2명, 인도인 1명, 프랑스인 7명으로 시작했지만, 그 다음날 스페인 2명 더, 그리고 일주일 뒤 2명의 프랑스인이 참여해 총 16명으로 지냈습니다. 지낸 곳은 샹슬라드 chancelade 지역의 종합운동장이었는데, 첫 날에는 모두 텐트를 치고 잤지만, 밤에 너무 추워서 그 다음 날부터는 라커룸 옆의 실내에서 절반가량의 인원이 남녀가 섞여 잤습니다. 운동팀이 쓰는 곳이다보니 라커룸 옆에는 샤워실도 화장실도 잘 갖춰져 있었고, 청소년들이 모여 쓰는 건물에서 일상생활을 해 먹을 것도 많았고, 같이 지냈던 친구들도 겪어본 워크캠프 중에 가장 숙식이 잘 갖춰진 곳이라고 평가했었습니다.
저희가 맡은 임무는 그 지역의 빨래터를 복원시키고, 우물을 깔끔히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에는 빨래터라고는 생각도 못할 모습이어서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물에 떠 있는 부유물만 막대기로 치웠지만, 나중에는 깔끔해져서 지역시장님과 주민분들도 모두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래전에 그 곳에서 빨래를 했던 할머님께서 빨래도구와 빨랫감을 가져와 시연도 보여주셔서 모두가 뿌듯함음 느꼈습니다. 저희는 모두가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전날 돌을 재단했던 친구가 오늘은 벽을 쌓는다던지, 풀을 다듬거나, 시멘트를 타설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겪어볼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기술담당팀장이 만든 벽을 모두가 싫어해 회의를 통해 저희의 아이디어로 바꿔 다시 건설했는데 한참 어린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실행해 준 팀장에게도 고마웠습니다.
아침 8시에 10명에서 11명 정도만 일을 하러 가고 1시쯤에는 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워킹팀이 일을 하는 동안 쿠킹팀들은 숙소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일주일에 2번은 쿠킹팀으로 참여했는데 한국음식은 호떡, 불고기, 참치전 등을 했었고, 이보다 다른 나라의 음식을 만드는 것도 도와 재밋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워킹/쿠킹의 개념이 뚜렷해서 일하고 온 뒤엔 쿠킹팀을 절대 돕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일하고 와서도 계속 도와주며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일을 마친 뒤에는 주변의 호수에 놀러가서 카누를 하거나, 강가에서 수영, 자전거 타고 옆 도시 놀러가기, 주변의 다른 워크캠프 방문, 기술팀장의 도시 축제 방문 등 다양한 활동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음식을 자주 많이 사 쇼핑을 하러 간게 참…많았던 것 같네요. 나중에는 생활팀장이 과일을 두 가지로 줄여야겠다고(원래는 항상 네다섯가지의 과일이 있었습니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예산이 이제 없다고…..회의를 진지하게 했었습니다. 미성년자가 있었기 때문에 술을 살 때는 예산 외에 돈을 모아 함께 샀고, 이 외에는 돈을 따로 지출하지 않았습니다.
쓰다보니 한장이 넘어갈 정도로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은데 다 못쓰게 됬습니다. 축구장에 매트리스깔고 친구들과 침낭덮고 누워 다같이 별똥별을 기다리던 것, 벼룩시장에서 서로 선물 사준 것, 야외에서 땅바닥에 앉아 영화 본 것, 마지막 날 서로에게 편지를 써주고 울던 것, 등등. 지구 반대편이라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참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도 페이스북이나 왔섭으로 인사를 나누지만, 서로의 생활이 시작되서 연락하기가 쉽지는 않아 아쉽습니다.
워크캠프에서 돌아온 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저희가 하는 일이 진짜로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완성된 뒤 누가 사용할 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던 점이었습니다. 저희팀에서는 캠프 중간쯤에 회의를 통해 서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나눠 조금 해소된 면이 있지만, 만났던 다른 캠프 안에서도 불만이 있었던 것을 보면 앞으로 인포싯이 조금더 자세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점은 저렴한 가격에 3주를 머무를 수 있었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둘 다 쓸 수 있었던 점, 정말로 그 문화를 느낄 수 있었던 점입니다. 다시 돌아가고픈 시간들이고, 앞으로도 한참을 못 잊을 추억이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