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에스토니아, 낯선 설렘과의 만남 나를 찾아 떠난 2주간
SANNA CULTURE MANOR 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에스토니아. 나에겐 사뭇 생소한 나라였다. 발틱3국에 속하며 유럽에서 비교적 덜 발전된 곳이라는 이야기를 짧게 들었을 뿐 생전 보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던 곳. 그곳에서 2주의 시간을 지내야 한다는 것. 설랬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누군가에겐 굉장한 스트레스일지 모르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는 일탈을 꿈꿔왔던 나로서는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모스크바로 다시 탈린으로 이동하는 내내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이 떠돌았다. ‘아름다운 외국인 여성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저기 저 스튜어디스 누님만큼만 아름답다면 내 청춘을 그녀에게 바치리라.’ 물론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하겠다는 사명감 또한 있었으나 나 또한 사내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이십대 청춘인지라 찐한 땀방울 속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꾸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는 자연스러운 섭리였으리라. 열다섯시간의 비행, 6시간의 버스 탐승 후 도착한 워크캠프 장소는 매우 아름다웠다. sanna라 불리는 작은 마을은 동화책 속에나 나올법한 곳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푸른 언덕. 뒷마당을 뛰노는 염소와 양들.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장원. 그 속에 노란 저택하나가 우뚝 서있었다. 우리가 2주간 머물 80명 남짓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마을회관 같은 역할을 하는 저택이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스페인 출신 오스카와 인사를 나누고 마을회관을 관리하며 살아가는 헨드릭 가족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겠냐는 오스카의 제안에 선뜻 따라나섰다. 그는 스페인사람답게 쾌활하고 호남형의 사내였다. 자신은 아침에 도착했다며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여자라고 말하며 빙긋 웃는 그를 보니 진한 동지애가 솟아났다. 곧 나머지 워크캠프 참가자들도 모두 도착하고 우리는 함께 인사를 나눌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온 카르티아와 나스티아. 체코에서 온 루치카와 에바 그리고 일본에서 온 토모요까지. 나와 순호 오스카를 합하면 모두 여덟 명이 2주간 동거동락할 동료들이었다.
하루의 휴식을 가진 후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최종목표는 sanna에서 야심차게 개최하는 ‘astro festival’의 준비. 하지만 내게 처음 주어진 임무는 장작패기였다. 거대한 도끼와 함께하는 진짜 장작패기. ‘이게 어찌하여 축제 준비인거지? 월동준비는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라는 의문은 잠시 묻어두고 열심히 장작을 패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장작 패는 모습을 본 헨드릭은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장작패기에 프로패셔널이라며 극찬했다. 그리고 나는 4일 내내 장작을 패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의 사정도 마찬가지 였다. 내가 팰 장작을 옮기는 친구들. 길을 새로 만드는 친구들. 아무리 생각해도 축제준비와는 거리가 있는 일들의 연속에 의구심이 깊어갔다. 그 이후에도 축제 준비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일들은 계속해서 주어졌다. 불에 타버린 집에서 장작으로 쓸 부분을 잘라오는 일, 언덕을 오를 계단을 만드는 일, 주변 잡목을 정리하는 일등 처음 인포싯에서는 언급조차 없던 농장 일들이 계속되었다. 또한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샤워시설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위 에콜로지컬 샤워라는 주장을 펴며 헨드릭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빗물을 담는 통과 연결된 호스와 샤워기 하나. 2주간 우리는 비가오지 않으면 샤워를 할 수 없었다. 나와 순호 오스카는 그나마 강으로 수영하러 가며 샤워를 동시에 해결했지만 여성 참가자들은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참을 만 했다. 힘든 일은 하며 보람을 찾을 수 있었고 열악한 시설도 농담 삼아 웃어넘길 수 없었지만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일을 시키는 현장 리더의 태도였다. 우리는 자원봉사자였지만 그는 부하를 다루듯 우리에게 일을 지시했으며 일이 끝난 후에도 감사의 한마디조차 들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우리가 떠나는 날 아침에도 우리에게 작별 인사하러 나오지 않았으며 우리 모두를 분노케 하였다. 결국 2주차 중반쯤 되었을 때 체코에서 온 2명은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큰 회의에 빠지고 말았다. 대단원의 마지막 축제 당일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판매할 피자를 만들고 푸세식 화장실을 비우며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식사는 제공되지 않았고 우리는 새벽한시까지 빈속으로 일을 해야했다. 축제 다음날 우리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sanna를 떠났고 한마디 감사의 말도 듣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찐한 땀방울은 있었으나 감사와 보람대신 회의를 품어야 했고, 로맨스 대신 동료들과의 전우애를 얻었으니 사실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으리라. 함께 일하며 외국각지에서 온 친구들과의 우정은 얻었으나 2주간 머물렀던 sanna에 대한 애정은 식어버렸고 나에 남은 것은 후배들에게 절대 estonia workcamp를 권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후기를 이렇게 비판적으로 쓰는 것은 사실 지원해준 학교와 워크캠프 관계자 분들께 굉장히 죄송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전에 제공된 정보와는 너무도 달랐던 시설, 또한 함께 워크캠프에 참가하여 열심히 일한 동료들의 순수한 마음조차 회의로 바꿔버린 현지 리더의 자세에는 격분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일들을 알리는 것 또한 의미있다 여겨진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모스크바로 다시 탈린으로 이동하는 내내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이 떠돌았다. ‘아름다운 외국인 여성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저기 저 스튜어디스 누님만큼만 아름답다면 내 청춘을 그녀에게 바치리라.’ 물론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하겠다는 사명감 또한 있었으나 나 또한 사내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이십대 청춘인지라 찐한 땀방울 속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꾸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는 자연스러운 섭리였으리라. 열다섯시간의 비행, 6시간의 버스 탐승 후 도착한 워크캠프 장소는 매우 아름다웠다. sanna라 불리는 작은 마을은 동화책 속에나 나올법한 곳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푸른 언덕. 뒷마당을 뛰노는 염소와 양들.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장원. 그 속에 노란 저택하나가 우뚝 서있었다. 우리가 2주간 머물 80명 남짓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마을회관 같은 역할을 하는 저택이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스페인 출신 오스카와 인사를 나누고 마을회관을 관리하며 살아가는 헨드릭 가족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겠냐는 오스카의 제안에 선뜻 따라나섰다. 그는 스페인사람답게 쾌활하고 호남형의 사내였다. 자신은 아침에 도착했다며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여자라고 말하며 빙긋 웃는 그를 보니 진한 동지애가 솟아났다. 곧 나머지 워크캠프 참가자들도 모두 도착하고 우리는 함께 인사를 나눌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온 카르티아와 나스티아. 체코에서 온 루치카와 에바 그리고 일본에서 온 토모요까지. 나와 순호 오스카를 합하면 모두 여덟 명이 2주간 동거동락할 동료들이었다.
하루의 휴식을 가진 후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최종목표는 sanna에서 야심차게 개최하는 ‘astro festival’의 준비. 하지만 내게 처음 주어진 임무는 장작패기였다. 거대한 도끼와 함께하는 진짜 장작패기. ‘이게 어찌하여 축제 준비인거지? 월동준비는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라는 의문은 잠시 묻어두고 열심히 장작을 패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장작 패는 모습을 본 헨드릭은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장작패기에 프로패셔널이라며 극찬했다. 그리고 나는 4일 내내 장작을 패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의 사정도 마찬가지 였다. 내가 팰 장작을 옮기는 친구들. 길을 새로 만드는 친구들. 아무리 생각해도 축제준비와는 거리가 있는 일들의 연속에 의구심이 깊어갔다. 그 이후에도 축제 준비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일들은 계속해서 주어졌다. 불에 타버린 집에서 장작으로 쓸 부분을 잘라오는 일, 언덕을 오를 계단을 만드는 일, 주변 잡목을 정리하는 일등 처음 인포싯에서는 언급조차 없던 농장 일들이 계속되었다. 또한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샤워시설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위 에콜로지컬 샤워라는 주장을 펴며 헨드릭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빗물을 담는 통과 연결된 호스와 샤워기 하나. 2주간 우리는 비가오지 않으면 샤워를 할 수 없었다. 나와 순호 오스카는 그나마 강으로 수영하러 가며 샤워를 동시에 해결했지만 여성 참가자들은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참을 만 했다. 힘든 일은 하며 보람을 찾을 수 있었고 열악한 시설도 농담 삼아 웃어넘길 수 없었지만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일을 시키는 현장 리더의 태도였다. 우리는 자원봉사자였지만 그는 부하를 다루듯 우리에게 일을 지시했으며 일이 끝난 후에도 감사의 한마디조차 들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우리가 떠나는 날 아침에도 우리에게 작별 인사하러 나오지 않았으며 우리 모두를 분노케 하였다. 결국 2주차 중반쯤 되었을 때 체코에서 온 2명은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큰 회의에 빠지고 말았다. 대단원의 마지막 축제 당일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판매할 피자를 만들고 푸세식 화장실을 비우며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식사는 제공되지 않았고 우리는 새벽한시까지 빈속으로 일을 해야했다. 축제 다음날 우리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sanna를 떠났고 한마디 감사의 말도 듣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찐한 땀방울은 있었으나 감사와 보람대신 회의를 품어야 했고, 로맨스 대신 동료들과의 전우애를 얻었으니 사실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으리라. 함께 일하며 외국각지에서 온 친구들과의 우정은 얻었으나 2주간 머물렀던 sanna에 대한 애정은 식어버렸고 나에 남은 것은 후배들에게 절대 estonia workcamp를 권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후기를 이렇게 비판적으로 쓰는 것은 사실 지원해준 학교와 워크캠프 관계자 분들께 굉장히 죄송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전에 제공된 정보와는 너무도 달랐던 시설, 또한 함께 워크캠프에 참가하여 열심히 일한 동료들의 순수한 마음조차 회의로 바꿔버린 현지 리더의 자세에는 격분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일들을 알리는 것 또한 의미있다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