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캐나다, 몬트리올행 우정과 낭만 버스
Sainte- Therese 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학창시절의 여행을 위해서 어디를 갈까 하던 중 절친한 친구의 결혼이 있어서 너무나 좋아하는 뉴욕을 다시 가기로 했다. 또 그냥 뉴욕을 가기도 뭐해서 가까운 캐나다에서 강추 받은 워크캠프 프로그램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왕이면 긴 삼 주 프로그램을 하기로 했다. 친구 집에 먼저 가서 몇 일 지내고 그레이하운드를 구매해 캐나다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터미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바람에 기차터미널로 갔고 다행히 조금 일찍 출발해서 바로 버스터미널로 날라갔다. 마음이 무척 초조하고 걱정되었는데 무사히 나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고 버스는 검문 때문에 딜레이가 되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옆에 있던 여자와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방금 몬트리올에서 도착했고 마중 나오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의 행선지도 몬트리올이라고 했더니 버스에 내려서 어찌 가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덕분에 몬트리올에 내려서 많이 헤매며 길을 묻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오버나잇 버스라 한밤중에 국경을 넘었는데 워크퍼밋 때문에 나 혼자만 반대편 건물에서 출입국심사를 받았다. 무척이나 떨렸다. 무사히 통과하고 기다리던 버스에 마지막으로 올라탔다. 몬트리올에 도착해서 놀란 것은 생각보다 영어의 사용이 매우 적다는 것이었다. 바이랭규얼 지역이라 프랑스어의 사용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영어와 프랑스어가 함께 사용될 줄 알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안내판이나 주요 언어는 프랑스어가 먼저였다. 특히 캠프를 위해 머물렀던 St Therese 도시는 더욱 프랑스어의 사용이 훨씬 많았고 아이들 같은 경우는 영어를 잘 못하는, 우리 정도의 수준으로 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서 프랑스어 책을 가져갔더라면 하고 아쉬워했다. 첫날은 휴식이었고, 다음날은 캐나다데이여서 함께 몬트리올로 나가 구경을 했다. 생각 외로 많은 캠퍼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기관에서 요구한 워크퍼밋 때문이었다. 결국 12명의 캠퍼들 중 한국에서는 나, 우크라이나 친구 한 명, 멕시코에서 2주뒤에 한 명, 스페인에서 두 명이 와서 함께 했다. 캐나다에서 참가한 중국계 캐나다인 친구는 자신과 맞지 않는다며 일을 시작한 첫날 캠프를 떠났다. 두 명의 리더를 포함 총 7명이서 함께 했다. 너무 아쉬웠다. 다른 캠프들과는 달리 매일 일과 식사준비를 병행해야 했고, 적은 수의 인원이라 아쉬운 면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주말에 함께 캠핑을 간다던가 몬트리올을 간다던가 카시네마에 간다던가 등 여가생활을 함께하는데 용이했다. 물론 넉넉해진 예산 덕에 음식도 충분히, 여가생활의 비용도 어느 정도 함께 커버가 가능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정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일을 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날씨도 이례적으로 너무 더워서 햇빛에서 많은 벌레들과 공원에서 일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 그리고 다른 캠프들과는 다른 삼 주 프로그램이라 더 기간이 길고 고되게 느껴졌다. 중간에 힘들면 쉬는 것도 가능했지만 캠프 인원이 워낙 적고, 함께 일하는 십대 아이들(기관에서 13-16살 정도의 지역 십대들에게 여름 일자리를 제공하는 소셜 활동이 있어 십대들과 함께 일한다.)은 아무렇지 않은데 늘 나만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눈치가 좀 보이기도 했다. 캠프가 하는 일의 종류와 성격을 정확하게 알고 갔고(매우 중요!!!) 예상은 했지만 막상 경험하게 되니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워크캠프를 하게 될 사람들에게도 정말 자신과 잘 맞는 일을 찾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또 한가지 이야기해주고 싶은 아쉬웠던 점은 컴퓨터와 공유기도 가져갔지만 숙소 내에서 인터넷을 못쓴다는 함.정. 옆 건물에 있는 컴퓨터실에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거기 있는 컴퓨터는 한글을 못 읽는다는 것이 또 다른 함.정. 이었다. 해서 충전해간 노트북에 랜선을 이어서 인터넷옵션서 설정을 하고 이용했다. 그리고 지역이 몬트리올과 가깝지만(차로 30분 정도의 거리-교통수단은 버스와 지하철, 두 번 요금을 내야하며 24시간 운행하지 않는다.) 몬트리올은 아니라는 것도 앞으로 신청할 캠퍼들이 잘 알고 갔으면 한다. 식사당번을 돌아가며 맡았는데 이때 각국의 음식을 요리해 소개하는 장이 되었다. 채식주의자가 있어서 생각 외로 음식 선정과 요리에 고민이 많이 되었다. 비빔밥과 불고기를 했었는데 둘 다 너무 좋아했고 특히 비빔밥은 특별히 채식주의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서로 좋았다. 이 워크캠프를 뒤돌아 생각하면 기억나는 것이 워크퍼밋, 일,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 지지 않기, 날씨, 중간중간 함께한 여행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지만 추가적으로 드는 워크퍼밋 신청 비용(약20만원)이며 어려운 절차와 오래 걸리는 시간(아무 문제 없을 시 최소 1달) 등은 결코 좋지 못하였다. 이것 때문에 많은 한국참가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참가자들도 참가비용을 내놓고도 오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다. 감내할 자신이 없다면 신청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만큼 또 와서 더욱 값진 시간을 보내려고 모든 캠퍼들이 노력했던 것 같다. 두 번의 주말에 퀘벡으로 놀러 가서 관광을 하고 태양의 서커스단의 무료 공연을 보고 밤에는 캠핑을 하며 놀고 돌아오는 길에 유명한 폭포를 구경하고, 또 다른 지역으로 캠핑을 가서 맛있는 것도 해먹고. 함께한 여행들이 정말 재미있었고 기억에 남으며 캠핑을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영어 때문에 고민하는 예비참가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너무 유창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설명하는 일과 룰을 이해할 정도의 리스닝 실력과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정도의 스피킹 실력을 갖추시라고 말하고 싶다. 워크캠프에 반드시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좋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모여 다소 생소한 일들을 하는데 불만과 갈등이 안 생길 수가 없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부당함과 불쾌함에 대해 당당하게 따지고 들고 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한 예로 나는 나의 한글 이름을 외국친구들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영어이름을 사용한다. 캠프친구들은 한글이름을 불러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왜 그런지 설명하며 영어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어느 날 공원에서 일하고 쉬던 중 기관 쪽 직원이 다소 내가 예의 없는 말투로 "왜 한울이 아니라 엠마야?"라고 말했다. 기분이 나빴던 나도 불쾌해하며 퉁명스럽게 "아무도 제대로 발음 못하니까"하고 대답했다. 그날 오후 저녁을 먹은 뒤 다른 캠프친구가 그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도 기분이 좀 그랬다고 잘했다고 했다. 내가 어려 보이고 해서 공원에서 같이 일하는 십대 애들과 똑같이 대하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더니 모두 동의했다. 그 후로는 그 직원은 시답잖게 별로 기분이 좋지만은 않던 장난도 하지 않았다. 캠프 마지막 날에는 친구들도 초대해서 조촐하게 저녁을 함께했다. 저녁을 먹고 아쉬운 마음에 함께 담소를 나눴다. 그때 캐나다인 캠프리더가 캠프 중 매일매일 나 때문에 놀랐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기관 담당자에게 듣기로 한국인들은 조용하고 차분하고 말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기쁘면 크게 웃고, 몸이 안 좋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표현하고, 불만이나 부당한 것이 있으면 다 이야기하고 표현해서 놀랐다고 했다. 나는 이른바 ‘웃펐다’. 작은 아시아 여자라 너무 어려 보여서 무시당하지 않으려 일부러 강하게 표현한 것도 있어서 한편으론 웃겼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얘기했다. 한국사람들이 조용하고 차분한 건 아마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이고 아마 나도 2년 전에 왔더라면 네가 말한 사람 그대로였을 것이라고. 이 장면도 워크캠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에 하나다.
주로 몸은 안 쓰고 머리만 쓰던 일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힘들고 날도 더워 내가 왜 남의 나라까지 와서 이 고생인가 하는 허탈한 생각도 잠시 잠시 들었지만, 그만큼 얻은 것이 더 많았던 재미있고 유익했던 경험이었다. 아마도 다시는 이렇게 몸 쓰는 캠프로는 안 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로 워크캠프를 또 가고 싶어졌다. 워크캠프 이전이나 이후에 여행을 겸해서 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원하는 국가와 일이 다르기 때문에 꼭 이 캠프를 추천하기는 주저되지만, 워크캠프라는 것 자체는 너무나 추천하고 싶은 세상을 경험하고 넓힐 수 있는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워크캠프를 해본 적이 없고 참가할까 고민 중이라면 젊음을 무기삼고 어서 당장 신청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어서 바쁜 일이 지나고, 워크캠프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포토북을 만들며 추억을 곱씹고 싶어야겠다.
또한 영어 때문에 고민하는 예비참가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너무 유창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설명하는 일과 룰을 이해할 정도의 리스닝 실력과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정도의 스피킹 실력을 갖추시라고 말하고 싶다. 워크캠프에 반드시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좋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모여 다소 생소한 일들을 하는데 불만과 갈등이 안 생길 수가 없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부당함과 불쾌함에 대해 당당하게 따지고 들고 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한 예로 나는 나의 한글 이름을 외국친구들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영어이름을 사용한다. 캠프친구들은 한글이름을 불러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왜 그런지 설명하며 영어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어느 날 공원에서 일하고 쉬던 중 기관 쪽 직원이 다소 내가 예의 없는 말투로 "왜 한울이 아니라 엠마야?"라고 말했다. 기분이 나빴던 나도 불쾌해하며 퉁명스럽게 "아무도 제대로 발음 못하니까"하고 대답했다. 그날 오후 저녁을 먹은 뒤 다른 캠프친구가 그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도 기분이 좀 그랬다고 잘했다고 했다. 내가 어려 보이고 해서 공원에서 같이 일하는 십대 애들과 똑같이 대하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더니 모두 동의했다. 그 후로는 그 직원은 시답잖게 별로 기분이 좋지만은 않던 장난도 하지 않았다. 캠프 마지막 날에는 친구들도 초대해서 조촐하게 저녁을 함께했다. 저녁을 먹고 아쉬운 마음에 함께 담소를 나눴다. 그때 캐나다인 캠프리더가 캠프 중 매일매일 나 때문에 놀랐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기관 담당자에게 듣기로 한국인들은 조용하고 차분하고 말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기쁘면 크게 웃고, 몸이 안 좋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표현하고, 불만이나 부당한 것이 있으면 다 이야기하고 표현해서 놀랐다고 했다. 나는 이른바 ‘웃펐다’. 작은 아시아 여자라 너무 어려 보여서 무시당하지 않으려 일부러 강하게 표현한 것도 있어서 한편으론 웃겼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얘기했다. 한국사람들이 조용하고 차분한 건 아마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이고 아마 나도 2년 전에 왔더라면 네가 말한 사람 그대로였을 것이라고. 이 장면도 워크캠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에 하나다.
주로 몸은 안 쓰고 머리만 쓰던 일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힘들고 날도 더워 내가 왜 남의 나라까지 와서 이 고생인가 하는 허탈한 생각도 잠시 잠시 들었지만, 그만큼 얻은 것이 더 많았던 재미있고 유익했던 경험이었다. 아마도 다시는 이렇게 몸 쓰는 캠프로는 안 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로 워크캠프를 또 가고 싶어졌다. 워크캠프 이전이나 이후에 여행을 겸해서 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원하는 국가와 일이 다르기 때문에 꼭 이 캠프를 추천하기는 주저되지만, 워크캠프라는 것 자체는 너무나 추천하고 싶은 세상을 경험하고 넓힐 수 있는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워크캠프를 해본 적이 없고 참가할까 고민 중이라면 젊음을 무기삼고 어서 당장 신청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어서 바쁜 일이 지나고, 워크캠프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포토북을 만들며 추억을 곱씹고 싶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