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함피, 낯선 인도에서 찾은 우리

작성자 최서윤
인도 FSL-SPL-172 · HERI 2012. 08 인도 Hampi

Hamp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첫날. 미팅 포인트가 전날 밤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여유롭게 짐을 챙기고, 아침식사도 간단하게 마치고, 약속시간에 맞추어 미팅포인트로 향했다. 2주 동안 함께 하게 될 워크캠프 참가자들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품으면서 미팅포인트인 Virupaksha(비루팍샤) 사원으로 걸어가니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캠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10명 정도의 캠퍼들이 오는 걸로 기억했던 나는 내가 제일 늦어서 기다리는 중인 줄 알고 서둘러 달려 갔더니, 명단에는20명 정도의 캠퍼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 후 같이 앉아서 캠퍼들을 기다렸다. 약속시간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나고 인원이 어느 정도 모이자 다 같이 걸어서 우리가 묵게 될 곳으로 이동했다. Hampi(함피)에 도착한 첫 날에는 정부의 문화재 보호 정책으로 인해 함피 바자르의 대부분의 상점들과 게스트 하우스들이 무참히 철거되어 부서진 모습들이 가득해서 놀랐었는데, 리더를 따라 가보니 첫 날 보지 못했던 곳에 게스트 하우스들과 간간이 상점들이 있는 곳을 발견 할 수가 있었다. 큰 장소에 다같이 모여서 혹은 남,녀 정도로만 구분해서 먹고 자고 하면서 함께 지내게 될 줄 알았었는데, 게스트 하우스의 넓은 윗 층에 도착하니 여자들은 두 명씩, 남자들은 세 명씩 모여서 게스트 하우스의 각 방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면서 둘-셋씩 짝을 지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인도에 여행을 왔다는 프랑스인과 룸메이트가 되어 방에 내려가 간단히 짐을 풀면서 앞으로 2주간 잘 지내자며 능숙하지 않은 영어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 영어를 못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면서도 묻고 또 물어가면서 영어단어들을 던져가면서도 신기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짐을 대충 풀고 다같이 게스트하우스의 위층에 모여 돌아가면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금 늦게 프랑스인 남매가 도착하면서 2주간 함께하게 될 모든 캠퍼들이 모였다. 3명의 인도인 리더들과 19명의 캠퍼들 중 반 이상을 차지 하는 10명의 프랑스인들, 2명의 스페인인, 1명의 이탈리아인, 2명의 대만인 그리고 4명의 한국인까지.
첫 날은 간단하게 이름을 외우는 게임 정도로 어색함을 날리고 서로 조금 더 친밀해지는 시간과 앞으로 2주 동안의 일정과 생활하는 동안의 규칙들과 정해야 할 것들을 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식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정해진 시간에 제공되는 식사를 하고, 인도음식에 대해 체험해 보자는 의미로 하루에 두 명씩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서 음식준비를 돕기로 했다. 함피라는 지역이 육식과 음주를 하지 않는 도시라고 해서 2주 동안은 우리도 그 두 가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을 따르기로 했고, 복장도 놀러 온 일반 관광객이 아닌 만큼 너무 짧거나 노출이 심한 옷은 입지 않기로 했다. 2주 동안 우리가 하게 될 일정은 오전에는 함피에 있는 유적지중 관리가 되지 않은 곳의 환경개선 작업을,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에는 근처 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오전 일정은 캠퍼들이 모두 같이 한 장소에서 작업을 하고, 오후 일정은 학교 규모에 비해 캠퍼들의 수가 너무 많아 A,B 두 팀으로 나뉘어서 가게 되었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캠퍼들 개개인에게 축복의 의미인 띠카(이마에 붉은 점을 찍는 것)와 함께 꽃 목걸이를 걸어주며 작은 환영식을 치렀다. 시간은 많이 늦었지만, 각자 손에 랜턴을 하나씩 들고 미팅 장소였던 비루팍샤사원에도 다시 가서 함피 저녁 공기를 느끼며 속으로 짧게 나마 앞으로 2주를 지내게 될 캠퍼들과의 추억이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기를 빌었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오전 일정은 생각보다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발생했다. 함피가 그냥 그 지역 자체가 유적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널린 것이 모두 유적지라 몇몇 입장료를 받고 관리되고 있는 곳들이나 유명한 몇 곳들을 제외 하고는 그냥 사람들의 삶에 녹아 있어서 아예 관리가 되고 있지 않은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유적지 환경개선 작업이라고 해서 단순히 유적지에 있는 잡초를 뽑거나, 쓰레기를 줍거나 흙먼지 등을 털어내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환경개선을 해야 하는 유적지도 유적지라는 것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울창한 나무와 풀들에 뒤덮여 있었다. 풀들이 너무 우거져서 풀들을 낫으로 쳐서 베어내거나 나무들을 도끼로 찍어 쓰러뜨릴 때 마다 벌레들이 달려 들어서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운동화와 긴 팔, 긴 바지를 챙겨 입고 벌레 퇴치 약들을 몸에 뿌려야 했고,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연장질이 서툴렀던 우리들은 손에 물집들이 가득 잡히고, 여기저기 긁혀서 상처가 났다. 연장들도 날이 휘어지고, 무뎌지고, 부러지고, 빠지고 중간중간 수리도 하고 갈기도 하면서 일을 했다. 어느 정도 무성했던 풀들이 거치고 나니 우리를 기다리는 건 붉은 개미떼들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곳으로 도망가던 개미들이 점점 갈 곳이 없어지자 캠퍼들의 몸을 타고 올라와 물어 대기 시작해서 일하는 중간 중간 서로의 몸을 살펴주고 개미들을 털어 주면서 그렇게 일을 계속 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에 일을 중단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야 했고, 원숭이 떼들이 무리 지어 나무를 타고 다니는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바람에 원숭이 들이 갈 때 까지 피신해 있기도 했다. 어찌나 열심히 일을 했던지 점심시간이 되어 돌아오는 우리들은 배고픔도 잊을 정도로 항상 녹초가 되어 돌아 오곤 했다. 하지만, 힘을 내어 모두 열심히 한 덕분에 마지막에는 처음과 전혀 다른 모습의 유적지를 보며서 서로 뿌듯해 하고, 지역신문에 조그맣게 실린 우리들의 기사를 보면서 기뻐할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오후에 가게 될 학교 수업 준비로 우리들은 다시 바빠졌다. 저학년생들의 학교와 고학년생들이 있는 학교, 각 두 팀으로 나뉜 우리는 각 연령대별에 맞게 수업을 준비했다. 저학년생들의 학교에 가게 된 팀은 주로 야외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할동적인 게임들을 준비했고, 고학년생들의 학교에 가게 된 우리 팀은 다시 각 6,7,8학년별로 세 조로 나뉘어 학교에서 요구한대로 영어 수업을 위주로 준비를 하게 되었다. 나는 프랑스친구와 대만인 친구와 함께 7학년들을 맞게 되었는데, 책상이 없어서 모두 바닥에 앉아 공부를 하는 분위기라서 일방적인 공부들 보다는 몸을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첫 수업에는 준비할 시간도 없고 급하게 가르치게 되어서 간단히 각자의 소개를 하고 간단한 영어 동요들과 함께 율동을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기쁘게 받아 주어서 고마울 정도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덕분에 나도 다른 나라의 영어 동요들과 율동들도 익힐 수 있었다. 그 이후의 수업들은 아이들이 아직은 영어를 능숙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서 간단한 동사들을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고, 각 동사에 맞는 행동들을 원하는 대로 표현해 보고, 그 동사들을 활용해서 빙고 게임이나 단어를 말하면 정해진 행동을 하는 게임을 해가면서 동사를 익히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마지막 날에는 색지에 알파벳을 적어 카드들을 만들고, 두 팀으로 나누어 그동안 배웠던 단어들을 빨리 만드는 게임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결국 수업을 지켜 보시던 현지 선생님께서 조용히 다가와 칭찬을 가득 해주시면서 단어 카드를 두고 가달라고 하실 정도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가르쳤던 노래들도 원하셔서 가사까지 다 적어주고 가르쳐드리고 왔다. 처음에는 수업시간이 너무 길어서 어떻게 채우나 걱정했는데, 나중에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행복하게 보낸 시간이었다. 셋 다 영어를 잘 못하는 부족한 영어 선생님들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준 아이들 덕분에 간단한 단어들과 문장들로도 즐거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 너무 뿌듯했다. 오후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난 뒤에는 저녁식사 전에 매일을 정리하는 회의를 하면서 그날 하루 동안 느낀 것들 이나 개선했으면 좋겠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정리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다같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거나 게임을 하면서 어울리는 시간을 가지다가 잠자리로 하나 둘 향했다. 매일 매일 조금씩은 같은 듯 다른 하루들이 펼쳐졌다. 저녁때 각 나라별로 돌아가면서 나라와 문화등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는 발표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중간에 학교가 쉬는 날이 있어서 저학년학생들의 학교에 가서 교실 내부의 페인트 칠도 하고, 독립기념일에는 학교와 마을을 오가며 행사를 진행하는 학생들과 함께 따라다니면서 구경하고, 저녁식사 중 하루는 특별히 나라별로 각자 음식들을 만들어 소개하고 먹어 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아무 일정이 없는 주말에는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보낼 수 있어서 그동안은 일정을 따르느라 그냥 생각 없이 지나다니던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며 보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들과 신기함들과 새로움들과 만나기도 하고, 현지인들만 안다는 이쁜 폭포를 찾아 나섰다가 물이 적어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는 보지 못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너무 걸어 지친 몸을 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바람에 피로를 다 날려 버리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빌리고 지도를 뒤져가며 함피의 유적지들을 구석구석 찾아 다니며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며 그렇게 캠퍼들과 함께 걷고, 웃고, 떠들어 가며 하루를 하나하나 특별한 경험들로 채워나갔다.
언젠가는 찾아오게 되는 헤어짐의 시간. 나이도 많고 영어도 서툴러서 많이 친해지지 못해 아쉬웠던 프랑스 남매, 연인 사이 같다며 놀려 댔지만 그냥 친한 대학동기생이었던 대만 친구 둘, 정말 친구라는 게 믿어 지질 않을 정도로 상반된 성격과 매력을 보여준 프랑스 친구 둘,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던 순수한 프랑스의 어린 커플, 활발하면서도 진지한 성격이 그대로 닮아있던 또 다른 프랑스 친구들, 너무 예뻤던 이탈리아 친구, 조용하지만 똑 부러지는 매력이 있던 스페인의 공대녀. 유난히도 한국인들과 격 없이 친하게 어울려 주었던 스페인 친구, 동양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질문을 많이 해대던 내 룸메와 룸메 친구,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났을 함께여서 너무나 고맙고 소중했던 한국인 친구들, 그리고 19명의 많은 워크캠퍼들을 잘 이끌어 주고 유난히도 한국을 좋아해주고 한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며 한국말을 툭툭 던져대서 우리를 놀래 키던 우리의 세 명의 리더들. 마지막으로 2주간의 시간 동안 숙소와 식사 외의 모든 것들을 챙겨주고 언제나 곁에서 항상 함께 해 주었던 게스트 하우스의 가족들과, 2주 내내 우리와 함께 해준 인도인 청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머릿속에 기억으로 새겨 넣고, 무더웠지만 행복했던 함피의 그 때 그 공기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의 포장지로 곱게 싸서 가슴에 넣고, 아쉬운 마음들은 모두 훌훌 길에 버리고 함피를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