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영어 바보, 독일에서 용기를 얻다
Wolframs-Eschenbach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영어를 못하는 나에게는 픽업하러 온 캠프리더를 만난 첫 순간부터 좌절의 연속이었다. 유창한 영어실력의 미국인 캠프리더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 순간 ‘난 도대체 무슨 용기로 이곳을 혼자왔을까’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나는 다국적 외국인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며 질문하자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말도 안 되는 영어들을 쏟아냈다. 중요한 첫인상을 말도 못하는 바보로 장식한 것이다. 그날 밤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잠들었다.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옛 성터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온갖 잡초와 흙더미들을 제거하고, 땅 속에 파묻힌 도자기를 찾아내야 했는데 만만치 않았다.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호미와 삽을 이용해 흙을 파내는 중노동이었다. 하지만 영어 공포증에 휩싸인 나에게는 고된 봉사시간이 행복하기만 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일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가서는 저녁 식사 당번을 결정했다. 제비뽑기로 결정했는데, 첫 저녁당번으로 대만친구와 함께 당첨되고 말았다. 한식을 외국인 친구들에게 선보인다는 설렘과 불안감을 가지고 미리 준비해간 불고기 소스로 불고기를 요리했다. 다행히도 친구들은 맛있게 먹어주었고 고맙다는 인사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첫날보다는 긴장감이 덜했지만 두번째 날도 친구들 틈에 끼지 못한 채 저물어갔다.
첫날의 어색함을 버리고 금새 친해진 서양인 친구들과 달리 대만에서 온 두 친구와 나는 쉽사리 친해지지 못했다. 같은 동양인이라는 무기로 함께 일을 하며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고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을 주제로 대화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진 두 친구와 비교해 내 영어는 형편없었지만 신기하게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놀라며 점차 자신감이 자라났다. 그날 저녁부터는 이대로는 캠프에 참가한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가지고 외국인 친구들 틈에 껴서 말도 걸어보고 게임에도 참여했다. 영어와 문화차이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자 신기하게도 캠프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무시하거나 답답해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날 밤은 더 이상 우울함과 후회가 아닌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용기를 가진 이후부터는 급속도로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대만 친구 하나와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외국 친구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을 때 그 친구들이 내 발음을 못 알아들을 때는 신기하게도 대만친구가 통역을 해주었다. 나에겐 정말 든든한 친구였다.
워크캠프 초기에 생겼던 외국인들과 함께 먹고 자며 대화를 한다는 부담감과 긴장감이 점점 사라지면서 어느새 외국 친구들과 어울리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고 전날 영어사전을 찾아놓았던 단어들을 열심히 써가며 농담도 하기 시작했다. 내 농담에 친구들이 웃기 시작하자 가슴이 벅차기 시작했다. 첫날 바보같이 겁에 질려 더듬거리던 때와는 다른 큰 발전이었다. 친구들과 친해지자 매일 밤 잠드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저녁 밥을 먹은 뒤에는 늘 함께 대화를 나누거나, 게임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호수에 가거나, 학교 체육관에 가 배트민턴을 치거나 배구를 했다. 하루는 밖에 나가 산책을 했는데 그날 밤에 친구들과 함께 봤던 저녁 노을과 주황색 구름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주말에는 주로 여행을 함께 했다. 뮌헨, 뉘른베르크, 로텐부르크 등 많은 도시들을 여행했다. 함께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함께 명소들을 구경하고, 함께 지역특산 음식들을 먹고.. 값진 추억이었다. 여행을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외국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특히 뉘른베르크의 한 식당 야외석에서 함께 소시지를 먹을 때는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워크캠프를 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타 지역의 워크캠퍼들과의 교류도 많았다. 작은 마을이어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 거의 모두가 우리를 알고 있었다. 우리를 많이 챙겨주셨었는데, 정원에서의 바비큐 파티에도 초대해주시고, 마을 회관 같은 곳에서의 저녁 식사에도 초대해 주셨다. 함께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는게 전혀 낯설지 않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말이지 정감 넘치는 마을이었다. 다른 워크캠프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자전거로 40분을 달려 다른 마을로 가 친구들을 만났었다. 그곳에도 체코, 러시아, 이탈리아, 독일 등 여러 인종의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게임도 함께하고, 배구 시합도 함께하며 친해질 수 있었다. 나중에는 함께 호수에 배를 타러 가기도 하고, 그 친구들 지역의 축제에 함께 참가해 퍼레이드에도 참여했다. ‘Wolframs-Eschenbach’ 피켓을 들고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있으니 부끄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겨우 3주 있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지역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워크캠프 종료 하루 전에는 시청 지하 강당에서 마지막 파티를 열었다. 스크린으로 그 동안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우리의 단골 식당에서 배달시킨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이제 이 곳을 떠나 헤어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시장님과 우리와 함께 일했던 고고학자분이 오셔서 마을에 관한 책과 우리의 사진을 담은 CD를 선물로 나눠 주셨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우리 모두가 기뻐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강당의 불을 끄고 음악을 틀고 즉석 클럽을 만들었다. 대만 친구와 나는 처음 접해본 경험이라 쑥쓰러워 몸 둘 바를 몰랐지만 다른 외국 친구들이 손을 끌어 당겨 함께 춤을 췄다. 그렇게 떠들썩 하게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은 눈물과 이별의 연속이었다. 기차 시간에 맞춰 친구들이 하나하나 떠나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운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나는 영어와 한글로 쓴 편지를 나눠주고 모두와 포옹을 한 뒤에 숙소를 나왔는데, 그러는 내내 눈물이 쏟아져서 친구들까지 눈물 흘리게 했다. 첫 날에 내가 느꼈던 후회와 외로움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마지막 날이었다. 하루라도 더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었고, 언젠가 꼭 다시 만날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 안에서도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끊임없는 눈물을 흘렸다.
어쩌면 여름날 독일에서 보낸 3주라는 시간이 나의 20대를 가장 빛나게 해주었을지 모른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특히 소중한 친구들을 얻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도 워크캠프 때 일을 회상하고 사진을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면서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언젠가 친구들을 꼭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며 살고 있다. 워크캠프를 다녀온 후 변화된 게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주어질 때마다 ‘워크 캠프도 했는데 뭐!’라는 생각을 하며 그 일을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워크캠프는 나를 성장시켜주었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30대, 50대, 80대가 되어서도 워크캠프를 통해 쌓은 추억은 나에게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옛 성터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온갖 잡초와 흙더미들을 제거하고, 땅 속에 파묻힌 도자기를 찾아내야 했는데 만만치 않았다.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호미와 삽을 이용해 흙을 파내는 중노동이었다. 하지만 영어 공포증에 휩싸인 나에게는 고된 봉사시간이 행복하기만 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일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가서는 저녁 식사 당번을 결정했다. 제비뽑기로 결정했는데, 첫 저녁당번으로 대만친구와 함께 당첨되고 말았다. 한식을 외국인 친구들에게 선보인다는 설렘과 불안감을 가지고 미리 준비해간 불고기 소스로 불고기를 요리했다. 다행히도 친구들은 맛있게 먹어주었고 고맙다는 인사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첫날보다는 긴장감이 덜했지만 두번째 날도 친구들 틈에 끼지 못한 채 저물어갔다.
첫날의 어색함을 버리고 금새 친해진 서양인 친구들과 달리 대만에서 온 두 친구와 나는 쉽사리 친해지지 못했다. 같은 동양인이라는 무기로 함께 일을 하며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고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을 주제로 대화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진 두 친구와 비교해 내 영어는 형편없었지만 신기하게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놀라며 점차 자신감이 자라났다. 그날 저녁부터는 이대로는 캠프에 참가한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가지고 외국인 친구들 틈에 껴서 말도 걸어보고 게임에도 참여했다. 영어와 문화차이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자 신기하게도 캠프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무시하거나 답답해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날 밤은 더 이상 우울함과 후회가 아닌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용기를 가진 이후부터는 급속도로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대만 친구 하나와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외국 친구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을 때 그 친구들이 내 발음을 못 알아들을 때는 신기하게도 대만친구가 통역을 해주었다. 나에겐 정말 든든한 친구였다.
워크캠프 초기에 생겼던 외국인들과 함께 먹고 자며 대화를 한다는 부담감과 긴장감이 점점 사라지면서 어느새 외국 친구들과 어울리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고 전날 영어사전을 찾아놓았던 단어들을 열심히 써가며 농담도 하기 시작했다. 내 농담에 친구들이 웃기 시작하자 가슴이 벅차기 시작했다. 첫날 바보같이 겁에 질려 더듬거리던 때와는 다른 큰 발전이었다. 친구들과 친해지자 매일 밤 잠드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저녁 밥을 먹은 뒤에는 늘 함께 대화를 나누거나, 게임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호수에 가거나, 학교 체육관에 가 배트민턴을 치거나 배구를 했다. 하루는 밖에 나가 산책을 했는데 그날 밤에 친구들과 함께 봤던 저녁 노을과 주황색 구름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주말에는 주로 여행을 함께 했다. 뮌헨, 뉘른베르크, 로텐부르크 등 많은 도시들을 여행했다. 함께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함께 명소들을 구경하고, 함께 지역특산 음식들을 먹고.. 값진 추억이었다. 여행을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외국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특히 뉘른베르크의 한 식당 야외석에서 함께 소시지를 먹을 때는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워크캠프를 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타 지역의 워크캠퍼들과의 교류도 많았다. 작은 마을이어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 거의 모두가 우리를 알고 있었다. 우리를 많이 챙겨주셨었는데, 정원에서의 바비큐 파티에도 초대해주시고, 마을 회관 같은 곳에서의 저녁 식사에도 초대해 주셨다. 함께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는게 전혀 낯설지 않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말이지 정감 넘치는 마을이었다. 다른 워크캠프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자전거로 40분을 달려 다른 마을로 가 친구들을 만났었다. 그곳에도 체코, 러시아, 이탈리아, 독일 등 여러 인종의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게임도 함께하고, 배구 시합도 함께하며 친해질 수 있었다. 나중에는 함께 호수에 배를 타러 가기도 하고, 그 친구들 지역의 축제에 함께 참가해 퍼레이드에도 참여했다. ‘Wolframs-Eschenbach’ 피켓을 들고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있으니 부끄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겨우 3주 있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지역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워크캠프 종료 하루 전에는 시청 지하 강당에서 마지막 파티를 열었다. 스크린으로 그 동안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우리의 단골 식당에서 배달시킨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이제 이 곳을 떠나 헤어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시장님과 우리와 함께 일했던 고고학자분이 오셔서 마을에 관한 책과 우리의 사진을 담은 CD를 선물로 나눠 주셨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우리 모두가 기뻐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강당의 불을 끄고 음악을 틀고 즉석 클럽을 만들었다. 대만 친구와 나는 처음 접해본 경험이라 쑥쓰러워 몸 둘 바를 몰랐지만 다른 외국 친구들이 손을 끌어 당겨 함께 춤을 췄다. 그렇게 떠들썩 하게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은 눈물과 이별의 연속이었다. 기차 시간에 맞춰 친구들이 하나하나 떠나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운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나는 영어와 한글로 쓴 편지를 나눠주고 모두와 포옹을 한 뒤에 숙소를 나왔는데, 그러는 내내 눈물이 쏟아져서 친구들까지 눈물 흘리게 했다. 첫 날에 내가 느꼈던 후회와 외로움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마지막 날이었다. 하루라도 더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었고, 언젠가 꼭 다시 만날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 안에서도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끊임없는 눈물을 흘렸다.
어쩌면 여름날 독일에서 보낸 3주라는 시간이 나의 20대를 가장 빛나게 해주었을지 모른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특히 소중한 친구들을 얻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도 워크캠프 때 일을 회상하고 사진을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면서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언젠가 친구들을 꼭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며 살고 있다. 워크캠프를 다녀온 후 변화된 게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주어질 때마다 ‘워크 캠프도 했는데 뭐!’라는 생각을 하며 그 일을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워크캠프는 나를 성장시켜주었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30대, 50대, 80대가 되어서도 워크캠프를 통해 쌓은 추억은 나에게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