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소통을 찾아 떠난 인도네시아
GUNUNGPATI PROJEC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사람들이 나에게 가치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소통을 하면서 어울려 살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영화나 연극과 같이 사람들과 소통 할 수 있는 장이 있는 곳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무엇보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잊을 수 가 없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나에게 아주 뜻깊다. 꼭 멀리 떠나서 하는 소통만 얘기 하는 것은 아니다. 멀리 떠나는것이 늘 허락되지 않기에 타국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조금 더 뜻 깊게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를 졸업 하기 전에 꼭 해외로 나아가서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이번 해 2013년 1월에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국가 중에서 인도네시아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학교에서 만나 보았던 인도네시아 친구들 덕 분이였다.
그들과 몇번의 대화를 하면서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도 무척 궁금해 졌기 때문이다. 종교, 음식, 문화, 계절도 다른 그 나라를 체험하고 싶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이렇게 나는 궁금증과 셀레임을 안고 2013년 1월 25일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아주 사뿐하게 몸을 싣게 되었다.
영화나 연극과 같이 사람들과 소통 할 수 있는 장이 있는 곳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무엇보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잊을 수 가 없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나에게 아주 뜻깊다. 꼭 멀리 떠나서 하는 소통만 얘기 하는 것은 아니다. 멀리 떠나는것이 늘 허락되지 않기에 타국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조금 더 뜻 깊게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를 졸업 하기 전에 꼭 해외로 나아가서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이번 해 2013년 1월에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국가 중에서 인도네시아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학교에서 만나 보았던 인도네시아 친구들 덕 분이였다.
그들과 몇번의 대화를 하면서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도 무척 궁금해 졌기 때문이다. 종교, 음식, 문화, 계절도 다른 그 나라를 체험하고 싶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이렇게 나는 궁금증과 셀레임을 안고 2013년 1월 25일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아주 사뿐하게 몸을 싣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부산에서 살고 있던 나는 김해국제공항에서 출발하여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자카르타에서 세마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세마랑에 도착해서 나는 비로소 안도감에 들었다. 처음 방문하게 되는 아시아 국가 였기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마랑에서 "블루버드" 모두가 안전하다고 하는 택시에 몸을 싣고 바로 숙소로 가게되었다, 원래 그 전에 미팅 포인트에서 만나는 것이 맞지만 비행기 시간이 늦은 관계로 나는 리더의 연락을 받고 바로 숙소로 가게되었다. 험난함 길이 였지만 아주 안전하게 도착했다. 이제 2주일 동안 지내게 될 숙소는 학교 안에 있는 도서관이라는 곳 이였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나는 참가자들이 아주 반갑게 나를 반겨 주었다 미리 도착한 참가자들 중에서는 물론 한국인들이 5명이나 되었고 나를 포함해서 여자 셋 남자 셋이였다. 그리고 먼저 눈에 보인 참가자는 독일에서 온 19세 여자참가자인 리온니와 대만에서 온 19세의 여자 참가자 에밀리와 키키 두명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절대 참가자 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70세 폴란드 신사 노인 분이 계셨다 그분도 참가자라는 얘길 듣고 아주 놀랐다, 사실 시설이 다 갖추어진 곳이 아니였기 때문에 할아버지께서? 라는 의문과 놀라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인도네시아 언어까지 완벽한 준비된 참가자였다. 할아버지는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아주 좋아하고 즐기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대학생인 어여뿐 두명의 참가자와 뒤늦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이차와 퓌퓌는 아주 똑똑한 인도네시아 대학생이였다. 이렇게 아주 많은 우리 참가자들과 대면을 하고 우리는 첫 하룻밤을 시작했다.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또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했다 두둥!
아주 이쁜 금발에 코가 오똑한 인형같이 생긴 프랑스 친구였다! 모든 한국인 남자들의 시선은 마리에를 향했고 그때 부터 그녀의 이름은 인형이되었다.
드디어 한국,대만,독일,프랑스,폴란드,인도네시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본격적인 세마랑의 생활을 시작 했다. 우리들의 의무는 "Al-madani islamic boarding shool"에서 하루에 80분씩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physicalwork를 시작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상 시간은 무려 새벽6시 처음에는 그들이 왜 그렇게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차츰 차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건 아주 더운 날씨 덕분에 현지인들은 새벽 4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물론 첫 시작은 기도로 상쾌하게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무슬림의 종교를 가진 그들에게 아주 보편적인 하루 였고 우리는 그곳에서 지내면서 그들의 기도와 그들의 종교활동을 매일매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기도 소리와 노랫 소리가 아침마다 힘들었지만 우린 아주 쉽게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저절로 우리의 기상시간도 빨라졌다. 매번 수업을 하는 학년과 같이 수업을 하는 조별이 달랐다. 조별은 3일 동안은 같이 하고 다시 조별을 만들어 다른 조원들과 수업을 준비하여 3일을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첫 주는 우리가 온 각자의 국가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문화든지, 노래든지 학교 아이들은 k-pop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물론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그곳에서도 대세였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면서 그들에게 세계지도로 우리나라의 위치도 알려 주고 한글도 조금씩 알려주었다, 그들은 한글로 쓰는 그들의 이름을 너무 좋아 했다. 수업이 끝나면 늘 아들에게 이름을 적어주고 사진 찍기를 했다 아이들은 아주 순수 해서 일까 사진 찍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여자를 부를때는 "미스~" 라고 불러 준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그들은 쉬는 시간에 "미스 미스 ~!~"하며 따라왔다 그리고 사진을 같이 찍고 손짓과 발짓 그리고 간단한 영어로 서로의 마음을 얘기했다.
그리고 두번째 주는 영어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리더는 우리게 인도네시아 아이들에게는 아주 영어가 중요한 학업이라고 일러주고는 영어 수업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각 조별로 영어 수업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 수업에 열중했다. 사실 영어 전공의 학생들이 아니라 더 어렵고 신중한 집중을 요구하는 수업 준비였다. 우리는 사소한 것도 아이들에게 집중 시키기 위해 색다른 아이디어를 만들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우리는 평소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physicalwork로 신발장과 책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은 일이지만 톱질 하는 것 부터 사포질 하는 것까지 우리는 돌아가면서 한번씩 다 경험 하면서 그렇게 2주동안 하나를 완성했다.
처음에는 주는 음식을 그냥 계속 받아 먹었다 어디서 어떻게 누가 만드는지도 영문도 모르는채 주는 밥을 하루 세끼를 꼬박 받아 먹었다.
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알게되었다. 여자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모든 사람들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깜짝 놀라 부엌으로 달려가보았다 정말 아주 작은 어린 여자 아이들이 음식을 만들고 다음 날 재료 손질까지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일을 도와주면서 또 손짓 발짓으로 얘기도 했다. 학교에 있는 아이들에게 공짜로 얻어 지는 것은 없었다. 족히 100명은 넘어 보이는 학교 학생들은 그 곳에서 기숙생활을 하면서 돌아가면서 당번들이 밥도 하고 각자의 발랫감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하면서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물론 한국 보다 열악한 환경이였지만 그들에게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들은 항상 밝았고 천진난만했다. 우리들의 눈에는 힘들어보이는 새벽 기도도 그들에게는 아주 감사하고 행복한 일의 일부분이였다.
한국 아이들보다 10센치는 작아 보이는 키였지만 그들은 아주 강한 아이들로 자라고 있었다, 그런 그들과 2주동안 지내면서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그동안 있으면서 각자 친한 학생들도 생기고 유난히 그 학생을 챙기기도 하고 그 학생 덕분에 다른 아이들과도 친해지고 장난도 치고 놀이도 했다.
학생들에게 듣는 그들의 종교생활 이야기 나는 나에게 아주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였다 ,왜냐면 아주 짧은 영어를 구사하는 서로가 깊고 무거운 주제로 소통 할 때는 조심스러우면서 서스름없이 얘기를 주고 받기 때문이다.
물론 우린 참가자들 속에서도 다른 국가였기 때문에 13명끼리도 아주 할 말이 많았다. 유난히 폴란드 할아버지 한스는 늘 우리에게 재미난 이야기 꺼리고 주목시켜주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다른 나라에 대한 질문이 이어져 나갔다 "독일은 어때? 프랑스는 어때? 대만은? 아~~ 나도 그거 K POP알아" 하면서 우리는 참가자들고 점점 친해지고 있을 때 헤어질 시간도 다가 오고 있었다.
우리는 2주동안 생활하면서 서로의 추억을 기억하기위해서 사진도 많이 찍고 많은 대화도 나누었다, 물론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기에 원활한 의사소통은아니였지만 그것 마져도 우리에게는 재밋거리로 하나 추억이 되었다.
세마랑에 도착해서 나는 비로소 안도감에 들었다. 처음 방문하게 되는 아시아 국가 였기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마랑에서 "블루버드" 모두가 안전하다고 하는 택시에 몸을 싣고 바로 숙소로 가게되었다, 원래 그 전에 미팅 포인트에서 만나는 것이 맞지만 비행기 시간이 늦은 관계로 나는 리더의 연락을 받고 바로 숙소로 가게되었다. 험난함 길이 였지만 아주 안전하게 도착했다. 이제 2주일 동안 지내게 될 숙소는 학교 안에 있는 도서관이라는 곳 이였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나는 참가자들이 아주 반갑게 나를 반겨 주었다 미리 도착한 참가자들 중에서는 물론 한국인들이 5명이나 되었고 나를 포함해서 여자 셋 남자 셋이였다. 그리고 먼저 눈에 보인 참가자는 독일에서 온 19세 여자참가자인 리온니와 대만에서 온 19세의 여자 참가자 에밀리와 키키 두명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절대 참가자 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70세 폴란드 신사 노인 분이 계셨다 그분도 참가자라는 얘길 듣고 아주 놀랐다, 사실 시설이 다 갖추어진 곳이 아니였기 때문에 할아버지께서? 라는 의문과 놀라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인도네시아 언어까지 완벽한 준비된 참가자였다. 할아버지는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아주 좋아하고 즐기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대학생인 어여뿐 두명의 참가자와 뒤늦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이차와 퓌퓌는 아주 똑똑한 인도네시아 대학생이였다. 이렇게 아주 많은 우리 참가자들과 대면을 하고 우리는 첫 하룻밤을 시작했다.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또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했다 두둥!
아주 이쁜 금발에 코가 오똑한 인형같이 생긴 프랑스 친구였다! 모든 한국인 남자들의 시선은 마리에를 향했고 그때 부터 그녀의 이름은 인형이되었다.
드디어 한국,대만,독일,프랑스,폴란드,인도네시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본격적인 세마랑의 생활을 시작 했다. 우리들의 의무는 "Al-madani islamic boarding shool"에서 하루에 80분씩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physicalwork를 시작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상 시간은 무려 새벽6시 처음에는 그들이 왜 그렇게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차츰 차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건 아주 더운 날씨 덕분에 현지인들은 새벽 4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물론 첫 시작은 기도로 상쾌하게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무슬림의 종교를 가진 그들에게 아주 보편적인 하루 였고 우리는 그곳에서 지내면서 그들의 기도와 그들의 종교활동을 매일매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기도 소리와 노랫 소리가 아침마다 힘들었지만 우린 아주 쉽게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저절로 우리의 기상시간도 빨라졌다. 매번 수업을 하는 학년과 같이 수업을 하는 조별이 달랐다. 조별은 3일 동안은 같이 하고 다시 조별을 만들어 다른 조원들과 수업을 준비하여 3일을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첫 주는 우리가 온 각자의 국가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문화든지, 노래든지 학교 아이들은 k-pop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물론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그곳에서도 대세였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면서 그들에게 세계지도로 우리나라의 위치도 알려 주고 한글도 조금씩 알려주었다, 그들은 한글로 쓰는 그들의 이름을 너무 좋아 했다. 수업이 끝나면 늘 아들에게 이름을 적어주고 사진 찍기를 했다 아이들은 아주 순수 해서 일까 사진 찍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여자를 부를때는 "미스~" 라고 불러 준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그들은 쉬는 시간에 "미스 미스 ~!~"하며 따라왔다 그리고 사진을 같이 찍고 손짓과 발짓 그리고 간단한 영어로 서로의 마음을 얘기했다.
그리고 두번째 주는 영어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리더는 우리게 인도네시아 아이들에게는 아주 영어가 중요한 학업이라고 일러주고는 영어 수업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각 조별로 영어 수업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 수업에 열중했다. 사실 영어 전공의 학생들이 아니라 더 어렵고 신중한 집중을 요구하는 수업 준비였다. 우리는 사소한 것도 아이들에게 집중 시키기 위해 색다른 아이디어를 만들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우리는 평소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physicalwork로 신발장과 책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은 일이지만 톱질 하는 것 부터 사포질 하는 것까지 우리는 돌아가면서 한번씩 다 경험 하면서 그렇게 2주동안 하나를 완성했다.
처음에는 주는 음식을 그냥 계속 받아 먹었다 어디서 어떻게 누가 만드는지도 영문도 모르는채 주는 밥을 하루 세끼를 꼬박 받아 먹었다.
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알게되었다. 여자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모든 사람들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깜짝 놀라 부엌으로 달려가보았다 정말 아주 작은 어린 여자 아이들이 음식을 만들고 다음 날 재료 손질까지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일을 도와주면서 또 손짓 발짓으로 얘기도 했다. 학교에 있는 아이들에게 공짜로 얻어 지는 것은 없었다. 족히 100명은 넘어 보이는 학교 학생들은 그 곳에서 기숙생활을 하면서 돌아가면서 당번들이 밥도 하고 각자의 발랫감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하면서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물론 한국 보다 열악한 환경이였지만 그들에게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들은 항상 밝았고 천진난만했다. 우리들의 눈에는 힘들어보이는 새벽 기도도 그들에게는 아주 감사하고 행복한 일의 일부분이였다.
한국 아이들보다 10센치는 작아 보이는 키였지만 그들은 아주 강한 아이들로 자라고 있었다, 그런 그들과 2주동안 지내면서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그동안 있으면서 각자 친한 학생들도 생기고 유난히 그 학생을 챙기기도 하고 그 학생 덕분에 다른 아이들과도 친해지고 장난도 치고 놀이도 했다.
학생들에게 듣는 그들의 종교생활 이야기 나는 나에게 아주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였다 ,왜냐면 아주 짧은 영어를 구사하는 서로가 깊고 무거운 주제로 소통 할 때는 조심스러우면서 서스름없이 얘기를 주고 받기 때문이다.
물론 우린 참가자들 속에서도 다른 국가였기 때문에 13명끼리도 아주 할 말이 많았다. 유난히 폴란드 할아버지 한스는 늘 우리에게 재미난 이야기 꺼리고 주목시켜주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다른 나라에 대한 질문이 이어져 나갔다 "독일은 어때? 프랑스는 어때? 대만은? 아~~ 나도 그거 K POP알아" 하면서 우리는 참가자들고 점점 친해지고 있을 때 헤어질 시간도 다가 오고 있었다.
우리는 2주동안 생활하면서 서로의 추억을 기억하기위해서 사진도 많이 찍고 많은 대화도 나누었다, 물론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기에 원활한 의사소통은아니였지만 그것 마져도 우리에게는 재밋거리로 하나 추억이 되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13명의 참가자들이 떠나기 전에 학교측에서는 우리에게 작별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커다란 강당에 가서 그들이 마련해준 귀한 음식도 먹고 그들이 준비한 음악을 듣고 그날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때 여러명의 여자 아이들이 상황극을 준비 한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없는 인도네시아 언어로 계속 상황극을 준비했다. 그들의 말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우린 쉽게 눈치채게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처음 도착하여 그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그들에게 알려주었던 한국 동요 "개나리" 노래를 똑같이 따라하고 있던 것이였다.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이벤트를 보면서 눈물을 참았고 그들이 우리에게 신경써준것에 대해 아주 감사함을 느꼈다. 그냥 어린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우리를 너무너무 좋아해주고 계속해서 우리를 기억하려고 애썼던 것이였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에게 아주 값진 선물을 주었고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내었다.
참가 후 나는 다른 나라와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드려 배워 나가는 것을 깨우쳤다. 그냥 단순한 여행은 그 나라에서 좋은거 먹고 좋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이라면, 워크캠프는 2주동안의 짧으면서 긴 그 기간동안 그 나라에서 문화를 정확히 체험하고 느끼고 또 우리나라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소통의 장이였고 기회였다.
아주 새롭고 색다른 경험과 값진 추억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20대에서 빼먹 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고 자리 잡을 것이다.
커다란 강당에 가서 그들이 마련해준 귀한 음식도 먹고 그들이 준비한 음악을 듣고 그날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때 여러명의 여자 아이들이 상황극을 준비 한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없는 인도네시아 언어로 계속 상황극을 준비했다. 그들의 말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우린 쉽게 눈치채게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처음 도착하여 그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그들에게 알려주었던 한국 동요 "개나리" 노래를 똑같이 따라하고 있던 것이였다.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이벤트를 보면서 눈물을 참았고 그들이 우리에게 신경써준것에 대해 아주 감사함을 느꼈다. 그냥 어린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우리를 너무너무 좋아해주고 계속해서 우리를 기억하려고 애썼던 것이였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에게 아주 값진 선물을 주었고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내었다.
참가 후 나는 다른 나라와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드려 배워 나가는 것을 깨우쳤다. 그냥 단순한 여행은 그 나라에서 좋은거 먹고 좋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이라면, 워크캠프는 2주동안의 짧으면서 긴 그 기간동안 그 나라에서 문화를 정확히 체험하고 느끼고 또 우리나라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소통의 장이였고 기회였다.
아주 새롭고 색다른 경험과 값진 추억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20대에서 빼먹 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고 자리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