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페루, 낯선 곳에서 나를 찾다 피우라, 봉사로 시작된
Making a Better School VI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휴학을 하고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남미여행을 가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가는 것은 저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란 것을 알기에 남미 여행을 하기전에 봉사활동을을 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또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워크캠프가 제가 하고싶던 그런 것에 맞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체없이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가는 것은 저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란 것을 알기에 남미 여행을 하기전에 봉사활동을을 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또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워크캠프가 제가 하고싶던 그런 것에 맞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체없이 지원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저희는 멕시코 남자 1명, 프랑스 여자 1명,한국인 여자1명 남자1명으로 4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저희는 영어로 대화했고 상당히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멕시코, 프랑스 친구들 때문에 처음에 스트레스 받았고 나중에는 괜찮아졌습니다.
봉사활동으로 아침에는 학교에 가서 책상,의자,벽 들을 사포질하고 페인트 질하는 작업을 하였고 점심후에는 아이들에게 영어,프랑스어,한국어 등을 가르치고 여러가지 게임을 하였습니다.
오전 페인트칠은 사실 이걸 왜하나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사포질로 책상,의자,벽에 더러운 것을 벗겨내고 페인트칠을 하는 것인데 정부 지원이 없기에 답답하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같았습니다. 힘들기도하고 잡생각도 많았지만 여러 교실을 깨끗하게 페인트칠하고 보니 이 교실에서 공부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겠구나 생각도 들었고 마지막날 교사분들이 페인트칠된 교실을 보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오후 아이들의 수업의 취지는 좋았으나 저에겐 조금 힘든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랑 한국여자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멕시코얘가 수업을 주로했고 그나마 스페인어 조금하는 프랑스얘가 수업 보조를 했습니다.
결국 저와 한국여자얘는 수업할 때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게임하는 시간에 나가서 얘들이랑 놀아주는게 다였습니다.
물론 다행히 한국어 수업도 하루 하게되어서 그날은 참 보람찼으나 그날 빼고는 거의 영어 수업을 했기에 대부분 수업시간에 멍하니있었고 한국 여자얘는 졸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아이들은 통하고 있었습니다. 봉사활동이 저의 만족감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수업시간에 참여하지못해 아쉬운 부분은 내려놓고 페인트칠하는 시간과 아이들과 게임하는 시간에 더욱 집중하였습니다. 마지막날 아이들이 편지와 선물을 줬을 때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정부지원이 없어서 페인트칠로 열약한 학교에 도움을 주었고 한국어,한국동요,태권도 등을 가르침으로써 한국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리고 아이들과 함께 여러 게임을 하며 신나게 뛰놀았기에 보람차고 의미있는 시간 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과 이외의 생활에 대해 적겠습니다. 어쩌면 이 부분을 읽고 많이 실망하실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다른 어떤 캠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캠프 리더와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많은 갈등을 겼었습니다.
그중 몇가지에 대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저희 봉사자들과 캠프리더는 같은 집에서 잠을 잤습니다. 처음 저희가 묶었던 곳은 1층 시멘트 바닥으로 최악이었지만 샤워하는 곳과 부엌이 가까워서 그나마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더가 복귀한 위에 방을 2층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점심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 서로 왔다갔다 신경 쓰이기 때문에 저희에게 2층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2층부억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캠프리더는 저희에게 가스(불키기위한),싱크대,수저 그리고 의자 등을 사야된다고했고 저희는 저희 예산으로 샀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부분이었지만 그냥 넘어갔습니다.또한 물건을 파손시키면 새 물건을 사서 보상하는 부분, 참가비 150 유로를 리더가 걷어서 예산을 짜서 관리하고 저희가 맘대로 쓸수없는 부분도 갈등을 낳았습니다.
식사는 시장에서 일주일치를 장을 봐와서 요리를 해서 먹었고 저희는 네명이어서 한명이 하루 식사를 다 요리하는 식으로 돌아가며 요리했습니다. 주말에는 근처 여행다녀오기도하고 모토바이크 타고 10분거리의 다운타운에 가서 식사를 하고 쉬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영어로 대화했고 상당히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멕시코, 프랑스 친구들 때문에 처음에 스트레스 받았고 나중에는 괜찮아졌습니다.
봉사활동으로 아침에는 학교에 가서 책상,의자,벽 들을 사포질하고 페인트 질하는 작업을 하였고 점심후에는 아이들에게 영어,프랑스어,한국어 등을 가르치고 여러가지 게임을 하였습니다.
오전 페인트칠은 사실 이걸 왜하나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사포질로 책상,의자,벽에 더러운 것을 벗겨내고 페인트칠을 하는 것인데 정부 지원이 없기에 답답하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같았습니다. 힘들기도하고 잡생각도 많았지만 여러 교실을 깨끗하게 페인트칠하고 보니 이 교실에서 공부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겠구나 생각도 들었고 마지막날 교사분들이 페인트칠된 교실을 보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오후 아이들의 수업의 취지는 좋았으나 저에겐 조금 힘든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랑 한국여자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멕시코얘가 수업을 주로했고 그나마 스페인어 조금하는 프랑스얘가 수업 보조를 했습니다.
결국 저와 한국여자얘는 수업할 때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게임하는 시간에 나가서 얘들이랑 놀아주는게 다였습니다.
물론 다행히 한국어 수업도 하루 하게되어서 그날은 참 보람찼으나 그날 빼고는 거의 영어 수업을 했기에 대부분 수업시간에 멍하니있었고 한국 여자얘는 졸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아이들은 통하고 있었습니다. 봉사활동이 저의 만족감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수업시간에 참여하지못해 아쉬운 부분은 내려놓고 페인트칠하는 시간과 아이들과 게임하는 시간에 더욱 집중하였습니다. 마지막날 아이들이 편지와 선물을 줬을 때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정부지원이 없어서 페인트칠로 열약한 학교에 도움을 주었고 한국어,한국동요,태권도 등을 가르침으로써 한국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리고 아이들과 함께 여러 게임을 하며 신나게 뛰놀았기에 보람차고 의미있는 시간 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과 이외의 생활에 대해 적겠습니다. 어쩌면 이 부분을 읽고 많이 실망하실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다른 어떤 캠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캠프 리더와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많은 갈등을 겼었습니다.
그중 몇가지에 대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저희 봉사자들과 캠프리더는 같은 집에서 잠을 잤습니다. 처음 저희가 묶었던 곳은 1층 시멘트 바닥으로 최악이었지만 샤워하는 곳과 부엌이 가까워서 그나마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더가 복귀한 위에 방을 2층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점심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 서로 왔다갔다 신경 쓰이기 때문에 저희에게 2층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2층부억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캠프리더는 저희에게 가스(불키기위한),싱크대,수저 그리고 의자 등을 사야된다고했고 저희는 저희 예산으로 샀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부분이었지만 그냥 넘어갔습니다.또한 물건을 파손시키면 새 물건을 사서 보상하는 부분, 참가비 150 유로를 리더가 걷어서 예산을 짜서 관리하고 저희가 맘대로 쓸수없는 부분도 갈등을 낳았습니다.
식사는 시장에서 일주일치를 장을 봐와서 요리를 해서 먹었고 저희는 네명이어서 한명이 하루 식사를 다 요리하는 식으로 돌아가며 요리했습니다. 주말에는 근처 여행다녀오기도하고 모토바이크 타고 10분거리의 다운타운에 가서 식사를 하고 쉬기도 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아이들이 수업 내용에 따라 지루해하기도 하고 재밌어하기도 하지만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저희가 진행하는 수업을 듣기위해 학교에 온다는 것은 그만큼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어를 가르쳐주러 온 봉사자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즐거워하고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우라는 가난한 마을이고 정부가 부패해서 수도에 있는 학교만 지원하고 그외의 학교에는 지원이 없기 때문에 피우라에 있는 학교는 여러모로 참 열악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의자,책상,벽을 페인트칠하는 것을 도와야하고 제 2외국어 선생님이 없기때문에 누군가 영어 그리고 영어 외의 언어를 가르쳐주어야합니다. 특히 열악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외국인 청년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외국어를 배우고 그들과 외국 게임을 하며 어울린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입니다. 그 아이들이 앞으로 성장하며 인생설계하는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정말 가치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또한 다른 국적의 봉사자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는 20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나름대로 외국인 친구들 좀 사귀고 연락하며 지냈고 또한 유럽여행도 다녀온터라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일동안 24시간내내 함께 공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행동하면 저 친구는 무례하다고 생각할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많았고 그럼에도 통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양보와 협동 였습니다. 저는 프로젝트동안 참 이기적이었습니다. 반면 멕시코 친구는 참 이타적이어서 남들이 피곤하고 지치고 움직이기 싫어할 때 조금 더 움직이곤 했고 그럴 때마다 고맙고 멋있다고 생각 되었습니다.
봉사자들에게 있어 여러환경이 열악하고 캠프리더도 문제가 많지만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의미있는 프로젝트임에 틀림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있습니다. 정말 꿈만 같은 20일이었고 기회가 되면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마지막날 아이들에게 3년안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물론 갈수없지만 언제 다시올꺼냐고 계속 물어봐서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피우라는 가난한 마을이고 정부가 부패해서 수도에 있는 학교만 지원하고 그외의 학교에는 지원이 없기 때문에 피우라에 있는 학교는 여러모로 참 열악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의자,책상,벽을 페인트칠하는 것을 도와야하고 제 2외국어 선생님이 없기때문에 누군가 영어 그리고 영어 외의 언어를 가르쳐주어야합니다. 특히 열악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외국인 청년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외국어를 배우고 그들과 외국 게임을 하며 어울린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입니다. 그 아이들이 앞으로 성장하며 인생설계하는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정말 가치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또한 다른 국적의 봉사자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는 20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나름대로 외국인 친구들 좀 사귀고 연락하며 지냈고 또한 유럽여행도 다녀온터라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일동안 24시간내내 함께 공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행동하면 저 친구는 무례하다고 생각할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많았고 그럼에도 통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양보와 협동 였습니다. 저는 프로젝트동안 참 이기적이었습니다. 반면 멕시코 친구는 참 이타적이어서 남들이 피곤하고 지치고 움직이기 싫어할 때 조금 더 움직이곤 했고 그럴 때마다 고맙고 멋있다고 생각 되었습니다.
봉사자들에게 있어 여러환경이 열악하고 캠프리더도 문제가 많지만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의미있는 프로젝트임에 틀림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있습니다. 정말 꿈만 같은 20일이었고 기회가 되면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마지막날 아이들에게 3년안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물론 갈수없지만 언제 다시올꺼냐고 계속 물어봐서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