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페인, 로마 유적지에서 만난 하비에르

작성자 최지은
스페인 SVIVA051 · ARCH 2011. 08 스페인

VILLA ROMANA L´ALBI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초등학생 때부터 꿈꾸던 유럽배낭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무렵이었어요:) 유럽여행에 대한 정보를 찾던 중 한 친구가 워크캠프를 간다는 얘기를 해서 그 때 처음 워크캠프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귀가 얇았던 저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별로 고민해 보지도 않고 워크캠프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 결정은 신의 한수였던 것 같아요.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봉사활동 워크캠퍼들의 임무는 Villa Romana de L'Albir에 남아있는 로마 유적지 발굴 작업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Villa Romana de L'Albir라는 지명 스페인어로 “L'Albir라고 하는 로마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만큼, L'lbir에는 과거 로마의 대저택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로마 대저택 유적지는 한창 발굴 작업 중이었는데, 저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작업이 꽤 진행되어서 전체적인 저택의 구조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발굴 작업이라고해서 디스커버리채널에 등장하는 고고학자들처럼 미세 붓으로 유물에서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내는 작업을 떠올렸지만, 막상 유적지에 도착하니 담당자 분들이 손에 삽을 들려 주셨습니다. 작업 시간은 아침 8:30부터 오후 1시까지였고, 중간에 쉬는 시간이 11:00-11:30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일한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여름 스페인의 땡볕 아래서 삽질하는 작업은 꽤나 고됐던 것 같아요. 터키에서 온 에스라는 뙤약볕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체력이 좋아서 끄떡없었지만요^0^ 1시에 작업이 끝나면 작업장 1분 거리에 해변이 있어서 다 같이 매일 해수욕을 하러 갔어요. 그래서 모두들 작업복 아래 항상 수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생활 워크캠프에서의 생활은 꽤 규칙적이었습니다. 주중에는 7:30에 기상을 해서 1시간 동안 아침식사를 하고 작업장에 갈 준비를 했어요. 우리 워크캠프에는 주방장 토마스가 있었기 때문에 요리할 걱정이 없었답니다. 아침식사로는 작은 머핀과 비스킷, 따뜻한 우유, 커피가 서빙 되었어요. 아침식사 때 아주 커다란 누텔라 통이 나왔는데... 2주 만에 혼자 다 먹을 뻔ㅠ;; 8:20 쯔음 작업장으로 출발하면 30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워크캠퍼들을 두 팀으로 나눠 격일로 일을 교대했는데, 한 번은 그늘 아래서 삽질하다 발굴 된 유물을 닦는 일을 했고, 다른 날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삽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삽질하다 해골이 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며칠 지나니 해골을 발견해도 틀니라면서 농담하며 놀았어요. 11시는 짧은 휴식시간이었는데, 스페인은 기본적으로 5식 문화이기 때문에 엄청 큰 샌드위치가 간식으로 나왔어요. 그늘아래서 물과 샌드위치를 먹어치우고 나면 다시 작업을 재개했고 오후 1시에 작업을 마치면 바다로 달려가 몸을 식히고 2시에 점심식사를 하러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점심 메뉴는 토마스의 재량에 따라 매일 바뀌었는데 하나같이 다 맛있었어요. 점심식사 이후 5시까지는 자유시간이었어요. 보통 시에스타를 즐기거나 바다에 놀러 나갔습니다. 5시가 되면 다시 식당에 모여 간단한 간식을 먹고 캠프 리더들이 준비한 게임이나 활동을 했어요. 게임 프로그램은 매일 바뀌었는데 지극히 스페인스러워서 가끔씩은 컬쳐쇼크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8시가 되면 저녁식사를 했고, 그 이후에 다시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10시가 되면 다들 둥그렇게 모여 앉아 하루를 정리하고 마련해둔 편지함에 들어있는 메시지를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말에는 L'Albir 근교로 여행을 갔어요!
함께한 사람들 프랑스 2명, 이탈리아 1명, 아르메니아 2명, 터키 2명, 한국 1명, 일본 1명, 스페인 11명(리더 3명 포함), 아르헨티나(주방장) 1명이 다 함께 워크캠프를 꾸려나갔습니다. 한 명 한 명 개성이 뚜렷하고, 나름 자신의 인생에 대해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함께 한 시간들이 너무 뜻 깊고 즐거웠습니다. 저랑 특히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은 프랑스인 클레어, 아르메니아인 나소얀과 마리암, 스페인의 디에고, 이녜스, 하비에르 였습니다. 전반적으로 다들 친해져서 워크캠프를 마치고 나소얀, 마리암, 클레어와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함께 떠나기도 했습니다. 디에고와 일본인 켄타는 2012년 여름방학에 한국을 방문했답니다:D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특별한 에피소드 워크캠프에 대해서라면 특별한 에피소드보다도 사소했던 일상의 기억들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지만,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를 꼽아 보라면 “하비에르 게이설”을 얘기하고 싶네요. 하비는 플레이보이 모델이 튀어나온 것처럼 몸도 좋고, 무척 잘생겨서 캠프 여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그런데 하비에르가 캠프 안의 그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캠프 8일차 즈음 “하비에르 게이설”이 떠돌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여자애들끼리는 작은 게임을 하나 했는데, 하비에르가 게이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하비를 꼬셔 키스를 받아내는 게임이었어요. 그런데 다들 실ㅋ패ㅋ. 결국 하비가 게이인지 아닌지는 끝까지 알아낼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지막 작별의 순간 하비가 켄타(男)에게 작별 키스가 아닌 작별 포옹을 하는 걸 보고 하비는 게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어요. 잘생겼는데 여자에 관심없는 사람이 게이설에 휩싸이는 건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잘생긴 것도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0^;;
참가 후 변화 그렇게 가시적인 변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여름을 뒤로하고 개학을 맞아 다시 학교 생활에 열심히 적응해 나갔지요. 페이스북에 외국인 친구들이 추가되었다거나, 생일이 오면 담벼락에 영어나 스페인어로 축하의 메시지가 올라온다는 소소한 차이가 있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워크캠프에서의 기억이 힘들 때면 무척 큰 위안이 되어주고, 삶의 여유나 휴식,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스페인에서의 추억이 너무나 좋아서 저는 지금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서어서문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다고 해야겠죠:) 그때 피부도 엄청 타서 아직까지 까만 아이로 지내고 있습니다.ㅠㅠ
하고 싶은 말 시간이나 비용, 그 어떤 이유에서든 워크캠프 참가를 고민하고 계시다면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일단 한 번 해보기시 바라요. 꼭 큰 뜻을 품었다거나 마음의 준비가 없었다고 해도,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 생판 처음보는 사람들과 24시간을 보내게 되는 경험을 살면서 몇 번이나 해 볼 수 있을까요. 벌써 2년 전의 경험이지만 아직도 에피소드 하나하나,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들이 선명하게 기억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