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맴 알러뷰, 인도에서 배운 사랑

작성자 안다인
인도 FSL-SPL-191 · SOCI/KIDS 2013. 02 - 2013. 03 인도, 자이푸르 (India, Jaipur)

Jaipur - Rajastha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 입학 전부터 외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국제워크캠프라는 단체를 알게되었고 약 3년간 꾸준히 뉴스레터를 받아왔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워크캠프라는 말이 너무 생소하고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어 외국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뉴스레터를 확인만 하고 신청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약 6개월간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워크캠프에 참가했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들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꼭 신청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인도 여행을 계획하던 중 홈페이지에서 인도 워크캠프 프로그램을 찾게되어 자이푸르 지역 프로그램을 바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사실 국제워크캠프기구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라 외국인들과 같이하는 활동을 기대하고 간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사전교육 때 받았던 책자 사진만 봐도 그렇고 외국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을 줄 알았습니다. 물론 이 때 제가 생각한 것은 유럽이나 영어권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프로그램 첫 날 미팅 포인트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 포함 한국인 네 명과 디팍이라는 현지 인도인 리더 한 명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참가자가 적고 영어권 학생들은 없나 물어보니 유럽이나 미국은 우리나라와 학기 제도가 달라 겨울 방학이 없기 때문에 겨울에는 거의 아시아권 친구들만 참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전에 이 사실을 모르고 신청한 참가자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워크캠프의 목적이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그 자체는 아니지만 왠지 모를 실망감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워크캠프가 끝나고 생각해보니 이 점이 프로그램을 원활히 진행하는 데에는 굉장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인끼리 모여서 생활하다 보니 참가자 간에 문화차이를 극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실천해나갈 때 의사소통이 정확하고 빠르게 되었기 때문에 워크캠프 진행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또 한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함으로서 한국을 집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참가한 자이푸르 지역의 아동 교육 봉사활동은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초등학교, 중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인도가 영어를 공용어로서 인정하고 있다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이 이유로 인도로 워크캠프를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힌디어를 사용합니다.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간단한 힌디어 정도 사용하고 나머지는 거의 몸짓으로 대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프로그램의 목적 자체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장벽은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이틀은 아이들 영어수준을 알아보는 데 치중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통해 간단한 힌디 표현를 외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업 수준에 따라 반을 나누려고 했는데 이것도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기존에 마땅히 반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아이들 나이, 영어 수준이 각각 달랐기 때문에 어떤 기준에 맞춰 아이들을 가르고,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장소의 한계를 고려해서 아이들을 한 데 모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인도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한 얘기는 인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학업 수준에 있어 하나하나 너무 다른 아이들을 한꺼번에 가르치면 수업이 되기는 할까 의심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반쯤은 포기한 상태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날 수업을 하고 나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수업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워낙 학교가 작아서 그런지 아이들은 서로의 학업 수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어를 할 줄 아는 고학년들이 저학년 아이들을 이끄는 식으로 수업의 형태가 잡혔습니다. 이런 수업의 과정에서 장소의 한계, 시설의 낙후는 아이들의 배움에 크나큰 장애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할 줄 아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제대로 된 책걸상이 없어 무릎에 대고 필기를 하는 아이들 앞에서 가끔은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한국의 초등학교처럼 정규수업을 진행할만한 여건이 아니었기에 사실 예체능과 생활태도 교육을 병행했습니다. 특히 인도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손 씻기 교육에 굉장히 신경 썼습니다. 인사하는 태도, 친구를 때리지 않기 등 원칙을 세워 봉사하는 기간 동안이라도 그 원칙에 따르도록 지도했습니다. 또 예체능 시간에는 종이접기, 몸, 얼굴 그리기를 통한 신체 명칭 교육, body parts song, 체육대회 등을 계획했습니다. 종이접기는 비행기와 배 접기를 알려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종이를 접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낯선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놀이로 바꿔 누가 제일 멀리 날리는지 경합을 하기도 했습니다. 체육시간에는 아이들이 준비체조나 PT체조 같은 동작을 전혀 몰라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굉장히 즐거워했고 체육대회는 진행했던 수업 중에 아이들의 호응이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이들 수업이 끝나면 벽화 그리기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럽고 보람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설이 굉장히 낙후되어있었기 때문에 초반에 벽을 다듬는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가로길이 6~7m쯤 되는 벽의 이전 페인트를 벗겨내고 사포질 하는데 3~4일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워크캠프 마지막 날 까지 도안, 밑그림, 채색 작업을 했습니다. 제 역할은 벽화 디자인과 밑그림이었는데 미리 생각해 둔 도안이 있어 수월하게 마쳤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신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생활 면에서 보자면 개인적으로 워크캠프 이전에 약 3주간 인도 북부여행을 했던 터라 인도 생활에 약간은 기대를 버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캠프에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은 인도에는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열차의 잦은 연착, 취소로 인도의 시간 관념에는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2주를 머무르며 똑 같은 생각을 하게 되니 짜증도 나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시간을 항상 30~1시간, 심하게는 그 이상도 늦게 제공하는 숙소 때문에 하루 일정이 뒤죽박죽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워크캠프 일정에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자유시간이 적은 편이였다는 것입니다. 보통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일정을 소화해야 했는데 보통 벽화 그리기가 늦어져 자유시간이 2시간 많게는 3시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놀기 위해 워크캠프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지역을 둘러보기에는 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2주 사이에 낀 주말에는 같이 봉사하는 사람들과 함께 주변 도시인 푸쉬카르를 1박으로 짧게나마 둘러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맴~ 알러뷰, 유 럽미?"
워크캠프가 끝나고 한 달이 넘도록 계속 떠오르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도 너무나 그리운 말입니다. 워크캠프 첫날부터 유난히 예쁜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는 남자아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아이 이름은 Harsh입니다. 학교에서 인기가 꽤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여자애들이 하쉬는 여자친구가 많다면서 가까이 하지 말하는 귀여운 경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아이를 더욱 기억하게 되는 이유는 항상 선생님들을 “맴~”이라고 다정하게 불렀기 때문입니다. 큰 눈을 요리조리 굴려가며 매일 아침마다 제일 먼저 다가와서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적극적이라며 선생님들 사이에서 일명 하쉬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항상 선생님이 가는 곳에 따라가 무엇이든 도와주고 모든 것을 같이하려는 게 처음 며칠 동안은 선생님들에게는 부담스럽긴 했습니다. 하지만 부딪힐수록 정든다는 말이 있듯 하쉬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귀염둥이였습니다. 능글맞은 말투로 항상 자기를 사랑하냐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시달려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으면 와서 “맴!~ 알러뷰, 유 럽미?” 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지쳐있다가도 개구쟁이가 이렇게 물어보면 어이가 없기도 하고 너무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해서 웃게 됐습니다. 하쉬의 고백에 안 넘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Kiss me!~"하며 볼에 뽀뽀를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습니다.
워크캠프 마지막 날,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이 떠나야 된다는 상황을 깨달아 가고 있을 때 다들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하쉬만 울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따랐던 아이였는데 좀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상황이 정리되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안아주니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하쉬를 보고 선생님들도 다시 눈물이 터졌습니다. 이제는 이 아이의 고백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다니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귀염둥이 하쉬 말고도 제가 너무나 아꼈던 똑똑이 비크람, 상냥한 마음이 너무 예뻤던 시와니, 선생님을 보기만 하면 안겼던 하니. 나머지 아이들을 다 옮길 수는 없지만 모두 저에게 보석같이 남았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었지만 오히려 배운 게 많았습니다. 물론 애정이 넘쳤던 아이들 사이에서 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보면 항상 꼭 안아주던 아이들 품에서 가끔은 감동해서 울컥하곤 했습니다. 한국에서 항상 대인관계에서 주고 받는 것에 집착하고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제게 아이들과 함께한 2주는 힐링캠프였습니다. 다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다를 뿐이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얼마나 나를 사랑해주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진실한 마음이 주는 감동, 이것이 캠프 속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집에가는 하쉬를 만났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아까 왜그렇게 울었냐며 물어보니 하쉬가 그러더군요. "낫 크라이,아임 퍼니맨! not cry, I am funny man!" 언제 또 이런 귀여운 애를 만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