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킬리만자로,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을 만나다
Children’s right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1년간 부모님과 의견이 맞아 영국에서 생활 하며 영어를 직접적으로 배우게 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전 까지는 국제캠프나 해외봉사 등 활동에 언어적 자신감이 없어서 참가 신청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고, 영국을 포함하여 너무 선진문화를 가지고 있는 유럽에 조금 질려 할때 쯤, 어렸을 적 부터의 꿈이었던 아프리카 대륙으로 눈길이 가기 시작 하였습니다. 여행으로 할까 다른 방법이 있나 찾아보다가, 아무 의미 없이 비싼 가이드를 고용하여 직접 그들의 삶이 아니라, 포장되고 다른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한 아프리카 대륙을 보기 보다는 그들의 실생활을 알고,그들보다 더 선진국에서,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이렇게 누리고 살수 있게 된 배경과 그 원천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탄자니아 워크캠프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찾던 중 탄자니아에서 진행하는 캠프의 주제가 어린이의 인권이었고, 내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면 작은 어린이들 밖에 가르쳐 줄 실력이 되지 않으며, 모든 어린이들은 모든 세상의 기회이자 핵심입니다. 그 작은 어린이들에게, 전쟁 직후의 황폐화된 나라에서 OECD 회원국이 된 작지만 매운, 강한 나라에서 온 동양인 소녀가 가르쳐 줄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지식이든, 꿈이든, 그저 작은 노래이든 그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언어라는 장벽이 허물어진 다음에 나는 망설일 것이 없었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자 탄자니아 워크 캠프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탄자니아에 도착했을 때, 조금은 걱정 했습니다. 상상도 가지 않는 낯설은 나라. 게다가 폭동 시위 때문에 캠프 장소도 한번 바뀌었고 최종적으로 받은 팀 명단에 한국인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 다른나라에서 온, 같은 목표를 가진 친구들과 쉽게 어울릴수 있었고 영어 실력도 훨씬 향상 시킬수 있었습니다. 봉사활동 같은 경우에, 우리의 프로젝트는 유치원생 정도 되는 탄자니아 어린이들에게 노래, 춤, 운동 등을 가르쳐 주고 가장 핵심적인 위생 교육을 같이 진행 하였습니다, 양치하는법, 깨끗하게 손씻는법, 코나 귀 깨끗이 정리하는 법 등 아주 기초적이지만 꼭 필요한 교육을 해주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스와힐리를 사용하는 탄자니아 어린이들에게 언어적으로 조금 힘들었지만 네명이나 되는 탄지니안 봉사자들이 도움을 주었고 그 이외에 같이 춤추고 아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배우고 서로 가르쳐 주고, 상대적으로 연필이나, 색연필 등 기초적인 학습자원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우리가 가져온 물품들을 나누어 주며 같이 그림도 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 이외에 동양인 봉사자가 일본인 한명 더있었는데, 아무래도 같은 문화권에 온 친구 이다보니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것도 많고 역사적으로 설명할때 그 친구에게 미안했지만 설명하기도 쉬웠습니다. 그외에는 모두 유럽 문화권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아무래도 유럽에서 장기간 생활하다보니 그친구들의 마음도 이해갔지만, 어린이 체벌 문제나 기타 내가 가지고 있는 유교적 마인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러피안적인 마인드들이 가끔 의견 충동할 때가 많았습니다. 유럽인들은 그들 나름의 가치관이 너무 확고하여 자신들이 틀렸다고 생각 하는것은 비록 그 자신이 틀렸을 지언정 절대 굽히지 않았고, 나는 그 잘못된것을 바로 고쳐주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성격이라, 토론 할때 독일인 친구가 우는 사태도 발생 하였지만, 공적인 토론 장소 이외에는 다같이 산책을 가고 시장을 가고, 여가시간에 책을 바꿔 보며 실뜨기, 고무줄넘기 등 공통적인 게임을 함께 즐기며 생활 했습니다. 음식 또한 지역 사정상 참가자들 끼리 해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키친 슈퍼바이저가 동행하여 항상 맛있는 탄자니아 전통음식을 해주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특별한 에피소드는 탄자니아 고아원에 봉사활동 갔을 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스와힐리어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서로 의사 소통이 안되서 그저 매달리면 손 잡아주고 같이 뛰어놀고, 작은 어린이 들이 해야하는 가사 부담을 저희가 조금 덜어 주는 식으로 봉사 활동을 진행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고아들 이다 보니 작은 정에 목말라 항상 손을 잡고 나를 봐줘 라는 식으로 우리에게 접근을 하였는데 눈을 들여다 보면 그런 것 다 떠나서 너무 순수 하고 맑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 같은 경우에는 조금 그늘이 있기 마련인데, 그들이라고 슬프지 않을일 없지만 우리가 그려주는 그림 하나에 너무 행복해 하고 같이 놀아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해주는 것이 없는데 너무 과분한 감사를 받는것 같아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먹기 직전까지 항상 붙어 있으면서 어린이들이랑 놀아주고 맛있는 밥을 함께 먹고 그들에게 온기를 나누어 주면서, 이아이들이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나중에는 내 사랑을 기억해서 꼭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 본인의 조국이 조금더 나아질 수 있는 발판의 첫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처음에 탄자니아에 도착헀을 때는 그저 못사는 빈민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우리의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풍족하고 행복한 나라였습니다. 푸른 녹지, 오염되지 않은 땅, 순수한 사람들 우리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그런 풍족한 나라 였습니다. 반면에 내가 그곳에 지내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 조건에서, 풍부한 교육을 받으며 모자란것 없이 자라고 있나 생각 했고, 전후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우리나라의 기반이 되신 우리의 어른들에게 정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제 어려운 나라를 도와줄수 있는 조국을 가진 청년이 되었습니다. 도움이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나는 그 곳 유럽인들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봉사자 였습니다.
워크캠프 이후에 조금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기준으로만 생각하지않는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탄자니아에 도착헀을 때는 그저 못사는 빈민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우리의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풍족하고 행복한 나라였습니다. 푸른 녹지, 오염되지 않은 땅, 순수한 사람들 우리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그런 풍족한 나라 였습니다. 반면에 내가 그곳에 지내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 조건에서, 풍부한 교육을 받으며 모자란것 없이 자라고 있나 생각 했고, 전후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우리나라의 기반이 되신 우리의 어른들에게 정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제 어려운 나라를 도와줄수 있는 조국을 가진 청년이 되었습니다. 도움이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나는 그 곳 유럽인들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봉사자 였습니다.
워크캠프 이후에 조금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기준으로만 생각하지않는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