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비크, 9명의 따뜻한 겨울 이야기

작성자 신호진
아이슬란드 SEEDS 116 · ART/CULT 2012. 12 레이캬빅

Christmas Photo Marathon in Reykjavík (2: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얼음의 나라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우리그룹은 리더 포함 총 아홉명의 따뜻한 그룹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리운 그 이름들 리투아니아 에서 온 저스티나, 라트비아 에서 온 마다라, 홍콩 에서 온 코비, 핀란드에서 온 두 자매 키카와 티나, 러시아에서 온 마리아, 독일에서 온 마티야 그리고 한국에서 온 저와 친한동생 효상.
저와 효상은 아일랜드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아일랜드에서 워크캠프 합격 소식을 듣고, 서둘러 항공권을 구매해 코펜하겐을 경유하는 레이캬빅 행 비행기표를 샀습니다.
겨울임에도 불구 하고 영상을 유지하는 탓에 눈이 오지 않는 아일랜드, 아이슬란드는 이름처럼 눈이 오지나 않을까 무척 설레였습니다.
사실 아이슬란드로 떠나기 전까지 아이슬란드에 대한 지식이 전무 했던 터라 열심히 블로그를 뒤적이며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읽거나, 아이슬란드에서 워크캠프를 했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어가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하얗게 밤을 지세우기도 했죠.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던 그날 늦은 밤, 저와 동생은 입수한 정보대로 집결지 앞까지 찾아갔지만, 인터넷에서 본 익숙한 한 숙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한동안 이야기를 한 끝에 우리 모임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깊은 밤 숙소를 찾아 헤메는 헤프닝을 겪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 조원들이 모이던 자리,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설레임 반, 행여나 조원들끼리 마음이 안맞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반에 살짝 긴장도 됐죠.
포토 마라톤에 참여한 인원이 많아 두 조로 나뉘게 되었는데, 우리는 에릭수스 라는 동네에 있는 보타닉가든에 있는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이 없는 곳, 그 아름다운 공간.
아이슬란드에서 머물던 2주간 스마트폰을 손에 쥔 이래 처음으로 인터넷 없는 곳에서 2주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한 곳에서 손톱처럼 짧은 낮과 긴 긴 밤 인터넷 없는 우리는 그 공허한 것처럼 보이던 공간을 채우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와 서로 다른 공간과 문화에서 자라온 환경과 하는 일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긴 긴 대화를 통해 우리는 공허해 보이는 공간을 채웠고, 그 공간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에겐 커다란 신선하고도 부러운 유럽의 젊은이들의 문화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가고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과 상관없이 남들이 알아주는 시험을 통과하거나,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아왔고, 그 길이 아니라면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지는게 사실인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이 갖는 아쉬운 현실이었습니다.
유럽의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후 짧게는 1년의 유예기간을 가지고, 본인의 적성을 찾으면 대학을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인생을 즐기는 법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경제적 어려움을 헤치며 아프리카의 가나와 같은 최빈국에서 이만큼 성장한 동력이 교육열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우리는 인생을 즐기기 보다는 산란을 마치며 죽음을 기다리는 연어처럼 거친 물살을 즐기지 못하고 할 일을 마칠 즈음 인생의 황혼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즐거웠던 테스크.
가장 기억에 남는 테스크는 아이슬란드 레드크로스에서의 활동과 물건바꾸기 였습니다.
물건 바꾸기는 간단한 게임이였습니다.
2인 1조가 되어 작은 물건을 조금 더 가치있는 물건으로 바꾸어 오는 그런 게임이었는데,
핀란드에서 온 키카와 한조가 되어 작은 고무줄을 멋진 모자로 바꾼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무줄을 무엇으로 바꾸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고 처음엔 자신이 없었습니다.
처음 시도한 손자의 손을 잡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웃으며 단박에 거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미소와 칭찬으로 다가가기로 했고, 작은 전략을 짰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 이 아이슬란드 관광정보센터였습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아이슬란드에서 하는 봉사활동을 설명했고, 지금 하고 있는 게임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더니, 직원분이 흥미로워 하시며 아이슬란드의 화산이 그려진 엽서 한장을 주셨습니다. 우린 사진한장을 찍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나와 엽서를 가지고 싶어할 만한 관광객을 찾아 나섰습니다. 영국에서 온 아주머니 한분께 전과 같이 우리를 설명하니, 엽서를 작은 초코바 하나와 바꾸어 주었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작은 소품 샵이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점원은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흔쾌히 초코바 하나를 쿠키를 베이킹 하는 케릭터 틀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순식간에 가치가 커진 우리의 물건을 보고, 욕심이 생겨 우린 근처 음반 샾으로 행했습니다. 음반 샾의 점원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그 틀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레이캬빅 시장이 스텐딩 코미디를 하는 DVD로 교환을 해주었고,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그 물건을 가지고 한참을 헤멘 끝에 한 브랜드 샾에 들어가 멋진 모자하나와 교환했습니다.
처음엔 작은 고무줄이었지만, 우리가 던진 미소와 칭찬 그리고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우리에 대한 관심과 친절로 인해 멋진 모자 뿐만이 아니라 자신감까지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함께한 키카의 선물로 지금도 이 모자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했던 아이슬란드 레드크로스 기금모금 행사.
우리는 크리스 마스 이전에 아이슬란드 홈리스 여성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거리 곳곳에서 핫초코를 나누어 주며 기금모금 행사를 했습니다.
어설픈 발음으로 아이슬란드 어로 메리크리스 마스를 외치며 길에서 핫초코를 나누어 주고, 추운 동료는 건물안에서 핫초코를 만들며 몸을 녹이며 뜻깊은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이 또한 길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핫초코를 권하고, 모금을 유도하는 말을 하기도 약간은 망설여 졌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웃으며 다가와 주었고, 많은 돈을 모금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모금하던 거리 맞은편에 저희에게 모자를 선물해주었던 샾이 있어서, 잠깐 시간을 내어 한초코 두잔을 가지고 들어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이 행사는 몸은 힘들었지만, 모두들 웃으며 일했고, 설혹 추운 동료가 있을까 서로를 배려해주며 원치도 않는 교대를 해주던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서 행복 했습니다.
Never say good bye.
시간이 흘러 아이슬란드를 떠나던날, 저와 효상 러시아 친구 마리아는 이른 아침 비행기였습니다.
떠나기 전날 우리는 짧지만 긴 추억을 회상하며 추억을 되짚기 시작했고,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서로에게 긴 편지를 돌려가며 써주었습니다. 핀란드 자매는 눈물을 훌쩍이며 우리와 만나서 너무 행복했다고 말해주었고, 동양인 친구들을 처음 만난 그녀들은 우리의 배려와 동정가득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남자인 저와 효상은 울지 않았지만, 모두 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작별할 때 우는 것을 좋지 않은 이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마음은 아프지만 울지 않겠다 이야기 했고, 이 만남이 다시 될 것이라 믿기때문에 작별이라 말하지 않겠다 말했습니다. 모두가 피곤했을테지만, 그들은 우리의 가는 뒷모습을 보기위해 끝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배웅을 위해 기다려 주었습니다. 마지막 그들을 떠나올땐 눈물 한방울이 앞을 가렸지만 또 만날 수 있을 거란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왔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아직도 서신을 왕래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SNS를 비롯해 손편지를 통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그리워 하고 추억합니다.
짧지만 긴 이 여정은 단순히 이력서 한줄을 위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숨어있던 친구를 만들어준 보물 찾기 같은 여행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난 일을 회상하며 지내지만, 시간과 자금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 그들을 만나고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국제친구를 만들 수 있음에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기대하던 아이슬란드에서의 눈은 보지 못했지만, 눈보다 더 하얗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좋은 친구들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번 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값졌습니다.